82. 업보.
82. 업보.
진실을 알자 모두 혼란에 빠졌고 특히 가장 혼란한 것은 드라이였다.
“그것이 사실입니까? 주군. 그렇다면 내가 믿어온 정의와 신념은......”
드라이가 오랜 시간 지켜오고 믿어왔던 것에서 균열이 일어났다.
“드라이. 창조주 안의 교리는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는 거야. 그 교리를 만든 의도가 목적이 있다고 해도 그 교리의 이상으로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았어. 너는 그것을 알아야 해. 너와 다른 사람들이 정의를 위해 따름으로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았어. 그것만으로 되지 않을까?”
아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위로의 말을 최선을 다해 말했다.
“주군......”
드라이는 잠시 혼자만의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아크 또한 오랫동안 미뤄왔던 일을 하기 위해 생각에 잠겼다.
※ ※ ※
아크는 이틀 동안 특사들의 분노를 최대한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을 했다.
란셀의 한 수가 제대로 먹힌 것이다. 결국 아크는 무력을 이용한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자 갑과 을의 관계가 억지로 제자리를 찾았다. 물론 이에 따른 부작용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크는 그들의 도움으로 지금의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눈치 볼 것도 없었다.
그리고 아크는 특사들을 달래기 위해 시간 낭비할 수가 없었다. 겨우 합의 문서를 작성하고 특사들을 돌려보내는 아크.
나머지는 렌 사부와 다른 이들에게 맡기고는 아크는 아미와 함께 이그나이트 영지로 빠르게 날아서 갔으나 크리드는 놔두고 갔다. 전투를 벌이려고 가는 게 아니니.
슈우웅.
“아미, 좀 어때?”
태극사신무의 힘 중 주작의 힘으로 아미를 데리고 날고 있는 아크는 아미의 심리상태가 걱정되었다.
“난 괜찮아, 아크. 약간이지만 이 세상에 나에 대한 기억이 왜곡된 할아버지를 만날 생각을 하니 좀 떨리긴 하네. 예전에 그냥 봤을 때와 이 이야기를 하러 간다고 생각하니 좀 그렇긴 하네, 용기를 내야겠어.”
아크는 아미가 이해가 갔다.
“하긴, 한때 가까웠던 자들에게 잊힌 것은 너무 잔인하지. 너 혼자 무인도에 떨어진 기분이랄까?”
아미는 놀란다.
“어머! 아크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책으로 읽어서 간접경험으로 대충은 알아.”
아미는 오늘 처음으로 기뻐하며 웃었다.
“호호호, 예전 선생님의 입장에서 학생이 책을 읽는 것은 기쁜 일이지.”
아크는 아미가 웃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도 아크. 다행히 렌 님과 너의 부모님 보브와 니르는 나에 대해서 어느 정도 기억해주었어. 그래서 위안을 많이 받았지. 나에게 있어서 그들은 소중한 사람이고 그들의 소중한 사람인 너 또한 소중해.”
아크는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근데 아미, 틸을 사용할 때 시공간의 기술이라서 잘못하면 자신의 존재가 사라질 수도 있잖아. 근데 아직 나에겐 그러한 현상이 없고 아미 너의 예로 들면 어떻게 나의 부모님과 렌 사부는 너를 기억하고 있지?”
아미는 생각하다가 이내 말한다.
“음....... 아직 틸에 대해서 연구할 게 많아. 이건 나의 생각인데 장소로 가까울수록 기억하고 있을 확률이 많은 것 같아. 애초에 신무기 틸이라고 만든 건 엔키이니까. 자세한 것은 아직 몰라.”
아크는 놀란다.
“뭐? 신무기 틸이 엔키가 만든 거라고?”
“그래, 신무기 틸을 만든 건 원래는 엔키가 나의 할아버지 엔릴 님을 쓰러뜨리기 위해 만든 기술이야. 신들의 옥쇄인 운명에 서판에 대응하기 위해.”
“근데 그걸 어떻게 닌우르타 님과 너에게 전수했지?”
“할아버지가 그리 명령했어. 엔키는 틸을 보다 완벽히 만들 생각으로 승낙했고 그래서 많은 유능한 데바들과 아버지 닌우르타와 내가 투입되었지. 하지만 엔키는 할아버지의 세력을 약화시키려고 일부러 데바들이 틸을 익힐 때 식을 조작하여 시공간에 영혼을 흩어지게 했지. 나는 그걸 눈치를 채고 나와 아버지에게 틸이 맞도록 조작했어. 그래서 살아남고 틸을 완전히 습득한 것은 아버지 닌우르타와 나뿐이었지. 할아버지는 이를 뒤늦게 알고는 모든 권리와 직위를 박탈하고 엔키를 쫓아냈지.”
아크는 말한다.
“정말 미친놈이군, 근데 엔키는 왜 그리 엔릴 님의 자리를 노린 거지?”
아미는 한숨을 쉬고는 말한다.
“사실 엔키는 할아버지 엔릴 님의 이복형이야 형이지만 초월자 아누 님의 정식부인의 아들이 아니라서 정식 승계자는 못되었지. 그래서 큰 신들의 중추적인 집단인 위대한 원에 수장이 못 되었어. 그것에 불만을 품고는 미친 짓을 많이 했지. 엔키 자기 아들이 후계자가 되도록 순수 핏줄을 만들려고 근친혼을 미친 듯이 했어. 처음에는 나의 할머니인 닌후르쌍 님으로 시작하여 딸이 태어나면 그 딸을 범하고 또 딸이 태어나면 그 딸을 범하고 결국은 닌후르쌍 님이 손을 보셨고 완전히는 우리 아버지가 태어나자 그만뒀어. 그 이외에도 정말 여러 사건이 많았어.”
아크는 경악한다.
“완전 미친놈이잖아.”
아크는 분노했다.
“그에 관해 더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할게. 지금은 기억하기 싫은 옛날 기억을 꺼내느라 약간 지쳤어.”
아미는 몸을 부르르 떤다.
“알겠어. 아미 쉬어 도착하면 말할게.”
“고마워 아크.
아크는 보호막을 좀 더 강화하여 아미가 쉴 수 있도록 하였다.
※ ※ ※
아크와 아미는 이그나이트 영지에 도착하여 니푸르로 이동한 뒤 딘 가르드로 가였다. 미리 말을 했기에 이동에 불편함은 없었다.
아크와 아미는 곧이어 딘 가르드의 수뇌부인 디아우스들을 만났다.
“어서 오너라. 그동안 잘했더구나. 브란티아 대륙의 혼란을 이 정도로 안정시키다니. 역시 예언의 아이로군.”
아미의 할아버지 엔릴이 말했다. 이에 아크는.
“위대한 창조주 안의 바람의 디아우스 엔릴 님. 제가 엔릴 님에게 긴히 드릴 말이 있습니다. 잠시 시간 좀 내주시겠습니까?”
“음? 그거야 어렵지 않지. 나의 신전, 에쿠르로 따라오너라.”
“네.”
아크와 아미는 엔릴을 따라 엔릴의 신전 에쿠르로 향했다.
에쿠르는 거대했다. 그리고 여러 명의 시종이 있었다. 엔릴이 손짓을 하자 시종들과 병사들은 모두 에쿠르에서 나갔다.
“자, 중요한 할 말이 있는 것 같아서 데바들을 모두 물리었다. 어서 이야기해 보아라.”
아크와 아미는 고개 숙여 엔릴의 호의에 감사 표시를 했다.
“감사합니다. 엔릴 님. 그럼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전 큰 신의 존재를 압니다.”
“!”
엔릴의 표정이 무섭게 변하였다가 이내 풀어진다.
“흠~ 지금 운명의 서판이 있었다면, 아크 네가 아무리 예언의 아이라도 기억을 바꾸었을 것이다.”
아크는 담담히 말한다.
“그리고 지금 옆에 있는 아미는 엔릴 님의 아들 닌우르타의 딸이자 당신의 손녀입니다.”
“?!”
“손녀? 무슨 헛소리를 하느냐. 나의 아들 닌우르타는 자식이 없다.”
엔릴의 불편한 기색에 기운이 새어 나왔다.
콰카카!
그때 아미가 나선다.
“엔릴 님. 이것을 보십시오.”
엔릴은 아미가 건네준 목걸이를 본다.
“! 이건.”
아미는 조심히 말한다.
“네, 저의 할머니이자 엔릴 님의 부인이신 닌후르쌍 님이 엔릴 님에게 받았던 생명의 목걸이입니다.”
“......”
아미는 계속 말한다.
“이건 훔치거나 복제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님을 누구보다도 엔릴님이 아시겠지요. 엔릴 님의 메긴의 힘이 담겨있으니.”
목걸이에 엔릴의 라그나 메긴 8단계의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건 분명 자신이 지금은 어떠한 사건으로 명계로 돌아간 닌후르쌍에게 선물한 진품이었다.
닌후르쌍이 아미가 태어났을 때 선물한 것으로 주인을 지켜주는 강력한 성법기였다. 엔릴은 기운을 거두고 조심스레 말한다.
“내가 운명의 서판에 기억을 조작당한 것이냐.”
“아닙니다. 엔릴 님. 이 현상은 운명의 서판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틸의 영향입니다. 제가 아버지와 함께 엔주와 싸웠을 때 틸을 너무 많이 사용하여 저의 존재가 사라지거나 어긋난 것입니다.”
엔릴은 얼굴을 손으로 감싼다.
“나의 업보로구나. 예전 인간들을 한번 벌하였던 대홍수와 함께 큰 신으로서 세상에 내린 결정으로 인한 업보.”
그렇다. 예전 엔릴은 인간이 아직 시초 대륙에 있을 때 타락한 인간에게 한번 벌을 준 적이 있다.
그 이름은 ‘대홍수’. 그로 인해 대부분 인간이 죽었고 소수의 선택받은 자들만이 아크(Ark)라는 방주에 의해 살아남았다고 한다. 살아남은 자도 엔릴이 구해준 것이 아니라 다른 큰 신들이 몰래 도와준 것이다.
이는 창조주 안의 교리에 나와 있어 후대에도 알려진 사건이었다. 교리에선 창조주 안이 내린 결정이다. 라고 하였지만 실제로는 큰 신의 우두머리인 엔릴의 결정이었다.
엔릴은 그랬다. 한번 입 밖으로 결정을 내리면 바꾸질 않는 자였다. 후회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핏줄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없는 것은 분명 업보에 의한 벌이었다.
“좋다. 분명 나의 업보에 의한 벌이지만 그것 또한 나의 업. 후회는 없다. 하지만 손녀와 잠시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군.”
“예, 엔릴 님.”
아크는 그리 말하고는 아미에게 엔릴과 이야기를 하라고 손짓했다.
그리고 에쿠르를 나오는 아크. 나오자 빛의 디아우스 루 라바다가 있었다.
“여! 잘 지냈나. 아크.”
“루 님!”
아크는 디아우스들 중에서 가장 친한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루 라바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만큼 친근한 자였다. 실제 디아우스들 중 그 아들을 아는 자도 루 라바다였으니(샴바라의 아버지.) 아크의 인식은 불경하지만 루 라바다를 친구 아빠 정도로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차 한 모금을 하며 아크는 루 라바다에게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하였다. 그중에는 루가 궁금해하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래 브레스 일족을 만났다고.”
“네. 루 님. 카셀이라는 자로 가을 전란을 조장했지만, 지금은 저의 수하로 있습니다.”
루는 생각에 잠겼다.
“그래, 그때의 아르드리 핏줄들은 분명 실수했지. 수라들과 인간과 데바의 공존이라는 큰 그림을 못 본점. 나도 아쉽게 생각해. 그들의 명예를 다시 찾아 준다는 너의 결정은 옳았다.”
아크는 사실 독단으로 카셀에게 약속하여 다른 아르드리들이 반발할까 살짝은 걱정했다. 하지만 결국은 자기 뜻대로 했겠지만.
“하지만 말이다. 아크. 공존이라는 결과는 좋지만 스스로 일어서는 것과 인형처럼 줄로 이어져 일어서는 것의 차이점을 아느냐.”
“음......”
루는 항상 그랬다. 직설적으로 말하기보단 이야기를 만들어 스스로 생각하게끔 하는 화술을 쓴다.
“잘 모르겠습니다.”
“브레스는 기다려야 했다. 수라들에게 집과 가족과 같은 소중한 것들을 잃은 자들이 많은데 무작정 자신의 계획이 결과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하여 과정을 무시했지. 사람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게 기다려야 했다. 브레스가 간과한 것이 그것이다.”
“그렇군요.”
“아르드리 뿐만이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스스로 그 뜻에 따를 수 있도록 해야 했었어. 너도 알다시피 나도 수라와의 혼혈이다. 기록에도 쓰여 있지. 나는 지금도 기다리는 중이란다. 인간과 데바, 심지어 수라와도 이해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사실 아크는 수라들에게 좋은 감정은 가지지 않았다. 루는 그것을 눈치를 채고 말했다.
“흠~ 너의 분노가 모든 걸 해결해주진 않는단다. 언젠가는 서로 이해를 하며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해. 예언의 아이인 너의 답은 어떨 것 같으냐?”
아크는 지금으로선 아무런 말도 못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