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림하되 지배하지 않는다-79화 (79/155)

79. 신검합일(身劍合一).

79. 신검합일(身劍合一).

아크는 무아지경에 이르렀다. 무기와 몸에 흑빙의 봉인기가 아크를 덮쳤지만, 아크는 기운을 최대한으로 방출하여 그 기운을 상쇄시켰다.

‘이 미친 자식이!’

카셀은 기겁하며 전투에 임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아크는 크리드에 오라를 부여했다. 하지만 카셀이 번번이 흑빙으로 봉인시켰다.

그리고 아크는 다시 오라를 주입하여 크리드에 걸린 봉인을 풀었다. 이것이 계속 반복적으로 검술과 격투술이 부딪힐 때마다 이루어졌다.

카셀은 격투술을 사용하며 봉인기인 흑빙을 동시에 사용하였다. 그리하면서 카셀이 느낀 점은 이 아크라는 남자는 진정으로 미친 자였다.

‘이렇게 계속 기운을 내뿜으면....... 먼저 기운이 다해 죽을 텐데.’

카셀이 그리 생각할 정도로 아크는 기운을 많이 소모하고 있었다. 아크가 다른 자들에 비해 여러 기연과 특수한 기술들로 기운의 양이 많았으나 이렇게 소모한다면 먼저 지쳐 쓰러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물론 기운을 아낀다고 하면 먼저 카셀의 흑빙에 당해 봉인되거나 죽을 것이라서 아크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아크!

크리는 초조한 마음으로 아크를 불렀으나 아크는 마음의 소리로도 대답이 없었다. 아크의 몸과 마음은 오직 카셀과의 전투에만 신경을 썼다.

“이 미친놈이!”

카셀이 평범한 얼음의 마법을 쓰며 아크와 거리를 벌리라고 하였다. 카셀의 마나도 무한한 것이 아니라서 흑빙을 계속 사용할 수 없었다.

‘이때다.’

아크는 속으로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여 남아있는 기운을 끌어모아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일도양단(一刀兩斷)!’

아크가 마고 대륙에서 고현에게 배운 기술이다. 검에 맺힌 기운을 모아 일격에 내리치는 기술이다.

후우웅!

콰카카!

크리드가 울었고 대기가 진동하였다.

파아앗!

크리드가 대기를 갈랐다.

그때 카셀이 기분 나쁜 미소를 짓더니 흑빙을 사용하였다.

“걸렸구나! 아크!”

카셀은 마나를 최대한 짜내어 커다란 흑빙의 기운을 만들어 아크의 기술을 봉인하였다.

“크으윽!”

카셀의 신음을 흘렸다. 그만큼 카셀은 일도양단의 거대한 기운을 봉인시킨다고 전력을 다한 것이다.

“?!”

아크는 자신이 성급했다는 걸 깨달았다.

쿠우와아!

결국은 일도양단의 기운이 흑빙에 의해 봉인되어 거대한 검은 얼음이 되었다.

“허억, 헉, 헉.”

패왕 모드도 꺼진 채 아크는 결국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숨을 헐떡인다. 기운을 너무 많이 소모한 탓이었다.

-아크!

크리는 아크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아크가 기본적인 영력을 주입해주지 않는 이상 크리는 아무런 도움을 못 주었다.

“헉, 헉, 이 징그러운 놈.”

카셀도 기운을 많이 소모했는지 숨을 헐떡이며 아크를 바라본다. 하지만 아크보다는 나은 몸 상태였다.

카셀은 검푸른 대지의 속성 석을 발동하여 엉망이 된 유적지의 벽에 아크를 밀었다,

슈우웅.

쾅!

“크윽!”

아크는 신음을 냈지만 움직이지는 못했다.

쩌저정!

그리곤 카셀이 하얀 얼음의 속성 석을 발동해 아크의 손목과 발목에 얼음을 얼리게 하여 벽에 고정했다.

“크크큭! 너를 여기서 없애면 예언은 허구가 되고 ‘형’도 기뻐하겠지. 아르드리 핏줄에 대한 우리 형제의 완벽한 복수가 완성되는 거다. 크카칵”

아크는 무기력하게 그러한 상황에 아무런 대응을 할 수가 없었다.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정신만큼은 맑았다.

‘내가 지금 죽으면 나를 믿어준 사람들을 배신하는 거야 정신 차려! 아크!’

아크는 자신에게 그리 말하며 이 상황을 이겨낼 방법을 구상하였다.

아크는 한 가지 방법이 떠오른다.

‘크리! 너는 치우 천왕이었을 때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였지?’

아크는 이 상황임에도 마음의 소리로 크리와 대화를 시도하였다.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그랬어. 그게 지금 도움이 될 만한 정보야?

크리는 직감적으로 아크가 방법을 찾아냈다고 생각했다.

‘그럼 오라 파이어같은 기술도 가지고 있었겠네.’

크리는 정신이 번쩍 든다.

-그래 그거면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어! 하지만 그건 쉽게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야. 우리들은 그걸 이기어검(以氣御劍)이라고 불려 하지만 그걸 사용하려면.......

‘목숨을 걸어야겠지.’

이기어검은 마고 대륙 식으로 말하면 진기를 사용한다. 그러나 지금 아크의 몸 안에 있는 마나(=진기)는 바닥. 지금 그 힘을 쓰려면 방법도 모르고 혹시라도 쓸 수 있다고 해도 목숨을 걸어야 한다.

저벅, 저벅.

카셀은 승리를 직감하고는 천천히 즐기며 아크에게 다가왔다.

아크는 두 눈을 감고는 며칠 전 카다른 성에서 렌 사부가 해줬던 조언을 떠올렸다.

『“아크야 오라 파이어를 쓰기 위해선 일단은 먼저 신검합일(身劍合一)의 경지에 도달하여야 하느니라.”

아크는 갸우뚱하며 물어본다.

“신검합일의 경지가 무엇인가요?”

“너는 검을 무엇이라고 느끼느냐.”

“음....... 검은 검사가 자신의 무를 나타낼 때 쓰는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흠, 신검합일의 경지가 되기 위해선 검에 대한 마음부터 바꿔야 하느니라.”

“네?”

“바로 검을 자신의 몸의 한 부분같이 아끼고 마음을 줘야 하느니라.”

아크는 진지하게 고민한다.

“쉽게 말하자면 검과 자신의 육체가 호흡을 같이하는 것. 그것이 신검합일의 경지에 다가가는 열쇠이니라.”

“네! 사부님.”』

‘사부님.’

아크는 렌 사부의 말처럼 일단 주변에 호흡을 맞췄다.

처음은 자신의 호흡부터 그리고 손발을 고정한 얼음의 호흡, 벽의 호흡, 그리고 카셀의 호흡, 마지막으로 땅에 널브러진 크리드의 호흡으로 인지의 영역을 확장해갔다.

아크의 의지가 간절했는지 그것들의 호흡이 느껴졌다.

그것은 사물이라도 하나의 생물처럼 호흡하는 것이다. 돌은 돌의 호흡을 공기는 공기의 호흡을 하며 그것을 하나의 하모니처럼 이 세상의 호흡과 같이하는 것이다.

두 근, 두 근.

‘사부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깨달음을 얻고 아크는 순간이지만 순식간에 신검합일의 경지에 도달하였다.

-아크!

크리도 느꼈다. 아크가 새로운 경지에 도달했음을.

“뭐냐? 포기했나? 두 눈을 감다니. 적어도 전사라면 죽는 순간에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내 두 눈을 통해 볼 줄 알았더니. 전사가 아닌가 보군.”

카셀이 조롱 조로 말하든 말든 아크는 정신을 집중하고는 확장하였다. 바로 땅에 있는 크리드에게로.

‘움직여라!’

아크는 목숨을 건 도박을 하였다.

그때! 카셀이 아크의 앞에 도착하였고 카셀은 얼음을 창으로 만들어 아크에게 그 창을 찌르려 했다.

푹!

“크악!”

피와 함께 소리가 유적지에 울려 퍼졌다.

※ ※ ※

몇 초전.

‘크리!’

-좋아! 아크!

아크는 크리의 호흡을 느끼며 크리에게 있는 약간의 진기를 받았다. 아직은 신검합일의 경지가 처음이라 약간의 진기만 받을 수 있었다. 아크는 순간 지기를 발휘하여 신검합일을 응용하여 크리에게 진기를 받았다. 크리에게는 미리 속으로 말을 하여 된 것이다.

크리는 아크에게 도움을 주어 기뻤다.

※ ※ ※

다시 현재 시각.

“크아악!”

카셀이 소리를 질렀고 등에는 크리드가 베어난 자국이 있었다. 이기어검을 아크가 해낸 것이다. 그야말로 기적과 같은 상황.

팡!

파팡!

아크는 크리에게 받은 기운을 사용하여 손과 발을 묶던 얼음을 깼다.

털썩!

아크는 겨우 두 다리로 서 있었다.

카셀은 크리드의 참격에 버티다가 결국은 쓰러졌다.

“크윽!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되는 것이야! 아르드리는 모두 죽어야 해!”

카셀은 고개만 든 채 소리를 지른다.

“그만하자 카셀, 선조 때부터 내려오던 증오의 고리는 여기서 멈춰야 해.”

아크는 담담히 말한다. 아크도 렌 사부를 통해 알고 있었다. 카셀의 선조인 브레스가 한 시도와 그에 따른 최후를 말이다. 그로 인해 그의 후손이 아르드리 핏줄에 대한 증오심을 품은 것도 이해가 되었다.

브레스는 아르드리 핏줄이자 수라들의 후손이기도 했다. 즉 혼혈이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차별을 받았으나 그 훌륭한 실력으로 결국은 아르드리의 자리에까지 오른다. 그 이후 브레스는 수라와 인간들의 화합을 하려 했지만 너무 혁신적인 생각이었고 무엇보다도 예언의 아이라는 예언 때문에 인간들의 지배자 계층은 비협조적이었다.

그들의 생각으로는 어차피 수라들을 이길 것을 괜히 평등하게 화합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기에.

결국은 수라들 편에 들어 인간과 전쟁을 벌였고 지금의 빛의 디아우스가 되기 전의 루 라바다에게 져서 최후를 맞이하였다.

그리고 그의 후손들은 인간들 땅에서 쫓겨나 방랑 생활을 하였고 결국은 대부분이 죽고 실종되었다.

카셀은 그러한 사실을 떠올리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바로 눈앞에 있는 자. 예언의 아이 아크의 존재 때문에 자신의 일족이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은 그 원수한테 져서 억울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래서 억울한 울분을 계속해서 토해냈다.

아크는 담담히 그러한 카셀의 울분을 가만히 경청하였다.

그리곤 입을 여는데.

“나도 브레스 님의 일은 유감이다.”

“?!”

아크가 자신의 조상을 존칭으로 부르다니 그건 카셀에겐 의외의 말이었다.

“놈! 감히 나를 동정하는 것이냐!”

카셀은 마지막 자존심을 부렸다.

“그저 이해할 뿐이다.”

아크는 계속 담담히 말한다.

“약속하지 예언의 아이의 이름을 사용해서라도 너희들의 일족인 브레스 가문의 명예를 되찾아주지.”

“!”

카셀의 눈이 커다래진다. 조금 전까지 목숨을 걸고 싸웠던 상대의 억울함을 풀어주겠다니. 카셀로서는 이해가 안 갔다.

“그러나 네가 지은 죗값은 받아야 할 것이다.”

“크윽!”

“자 선택해라 여기서 나에게 죽던지, 살아남아 죗값을 받고 가문의 억울한 멍에를 풀 것인지.”

사실 카셀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목숨은 안 아까우나 자신 가문의 명예를 되찾을 수만 있다면.......

“크윽!”

카셀은 고민하였고.

“선택해라!”

아크가 소리를 질렀다.

“......좋다. 벌은 무엇이냐.”

카셀은 결국은 후자를 선택했다.

“나의 곁에서 이 브란티아 대륙의 전란을 평정하고 나의 사람들과 너의 사람들이 서로 이해를 하며 같이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 것. 그에 따른 소임을 다하는 것. 그것이 너의 벌이다.”

“!”

카셀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아크를 처음으로 똑바로 보았다. 진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자신을 눈을 보는 저 아크의 두 눈. 카셀은 저도 모르게 말도 안 됐지만 자연스레 신뢰를 느꼈다.

후에 기록될 ‘가을 전란’이 끝나가고 있었다.

※ ※ ※

아크와 카셀이 있는 유적지에서 벗어난 카셀의 부하들이 숨어있는 계곡. 아크의 진영이 쳐들어오면 급습을 할 요량으로 매복하여 있었다.

그러나 불과 몇 시간 전 갑자기 붉은 갑옷과 배경에 붉은 불꽃이 그려진 녹색 망토를 입은 자들이 들이닥치더니 매복해있는 자들을 순식간에 제압하였다.

매복의 이점을 살려 게릴라전을 해보려고 했지만, 붉은 갑옷 쪽에는 전략이 통하지 않는 괴물이 있었다. 바로 제노 이그나이트 공작과 그의 수하들인 붉은 태양 전사단이었다.

카셀의 지시가 없는 매복한 자들은 쉽게 무너졌다. 카셀은 아크와 전투를 벌이고 있어서 매복조의 긴급한 통신을 받지 못하였다. 그렇게 두뇌 역할을 하던 대장이 없으니 너무나도 쉽게 제압되었다.

“어서어서 가자! 내 동생이 기다린다!”

제노는 한시바삐 카셀의 본거지로 가서 아크를 도와 자신의 머리를 밟은 카셀을 응징하고 싶어 몸이 안달이 났다.

아크와 카셀의 결투와 화해는 앞으로의 세상에 새로운 국면이 될 것을 아직은 모른 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