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림하되 지배하지 않는다-37화 (37/155)

37. 악연(惡緣) 혹은 인연(因緣).

37. 악연(惡緣) 혹은 인연(因緣).

아크 일행과 잭과 아이들은 음식을 배불리 먹고 잭과 아이들은 내일부터 근무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일단 오늘은 쉬었다.

“휴~ 배부르니 살 것 같다.”

아크는 음식이 만족스러운지 표정이 밝았다.

“어휴~ 진짜 먹보네 아크는.”

아미는 아크의 식성에 놀란다.

잠시 후.

해질 때의 노을을 보며 아크와 아미는 한가로운 잡담을 하였다. 평소의 노을은 아크의 머리키릭 색과 같은 붉은색이었다. 그러나 이번 노을은 너무 피처럼 붉었다. 그 노을에 아크는 아미에게 물었다.

“아미, 오늘 노을 너무 붉은 거 아니야?”

“그러게 아크. 노을빛이 너무 붉어, 불길하네.”

“응? 불길하다니?”

“노을이 너무 핏빛으로 붉으면 피를 본다고 했거든.”

“에이, 그건 다 미신이야 아미.”

아미는 아크를 바라보며 오랜만에 자신의 지식을 이야기함에 들떴다.

“어허, 예부터 어른들 말씀을 잘 들어야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 법이야.”

아크는 그러한 아미의 속셈을 눈치를 챘다. 하여튼 여자와 관련된 건 눈치가 없으면서 이런 데는 눈치가 100단이다. 아크는 아미의 속내를 말하지 않고 약간 속을 긁을 생각을 하였다.

“어이구! 그래 나이가 많이 잡수셔서 좋겠네요. 아미 할머니.”

“뭬야! 당장 그 말 취소 못 해! 아크! 어디가!”

아미를 약 올리고 도망치는 아크였다. 그런 모습을 뒤에서 찬찬히 보던 란데르그 곧이어 지긋이 웃는다,

‘허허허 청춘은 좋겠소이다.’

자신도 아직 외모와 더불어 하프 엘프로 치더라도 청춘인 입장에서 애늙은이 콘셉트를 버리지 않는 란데르그였다.

※ ※ ※

“흠~ 다 와 가는가?”

여기는 구름으로 가득한 장소. 어딘지 몰라도 높은 곳임은 틀림없다. 백발을 길게 늘어놓고 눈은 붉고 하얀 법복을 입은 자가 그곳의 정상에 서 있었다.

“다 와 가옵니다. 전하.”

전하? 이자는 왕이거나 왕자인가보다. 전하라고 부른 자는 척 보기에도 강해 보이는 자였다. 온몸이 근육질로 이루어지고 머리에는....... 뿔이 달렸다. 머리에 뿔이 달렸다는 것은 수라 중에서도 상급 수라가 가지는 힘의 상징이었다.

“그래? 그래도 느리니 원, 하이드 모드(hide mode)를 해제해도 좋으니. 바하무트의 속력을 더 높여라.”

“하오나 전하, 바하무트의 하이드 모드를 해제하면 저희 즉 수라들의 기운이 넘칩니다. 당장, 이 생체병기 ‘바하무트’도 말입니다. 그리하여 잘못하면 적지만 히브리아 대륙의 기감이 발달한 자들이 눈치를 챌 수도 있습니다. 재고하여 주십시오.”

“하하하, ‘바하’여 그대는 걱정이 많구나. 이미 우리들의 계획은 완성 단계이다. 브란티아 대륙이나 마고 대륙의 실력자들도 아니고 이미 황무지인 히브리아 대륙의 세력들이야 무시하면 된다. 나는 조금이라도 빨리, 우연이지만 우리들의 계획을 사사건건 방해하는 저 ‘예언의 아이’를 제거하고 싶구나.”

“알겠습니다. 그리하면 그렇게 하겠사옵니다. 바알 전하.”

바하라는 자의 입에서 전하라고 불리는 자의 이름이 나왔다. 5년 전 제레인트 마을의 참사를 일으킨 장본인인 바알이라고 한다. 5년 만의 등장이 ‘예언의 아이’ 즉 아크에게 어떠한 악영향을 끼칠지는 두고 봐야 알 것 같다.

※ ※ ※

해가 완전히 지고 완전한 어둠이 찾아오는 밤. 리우드 부족의 배려로 쉬고 있는 아크 일행.

“우와! 마스터의 마나를 준다고 우릴 완전 귀빈 대우하네.”

아미는 리우드 부족이 자신들에게 하는 대우에 만족하였다.

“그러게 아미. 그만큼 아들을 사랑한 부족장이야. 그가 다스리는 리우드 부족은 괜찮은 부족인 것 같아.”

아크도 이에 동의하며 리우드 부족을 높이 평가하였다.

그때.

아크 일행의 파오 밖에서 누군가가 들어오려고 신호를 보냈다.

“흠, 흠”

“누구세요?”

“아! 저예요. 저, 렉스입니다.”

“아! 렉스. 어서 들어와!”

“네, 아크 형.”

예의 바르게 들어오면서 아미와 란데르그에게도 인사를 잊지 않는 렉스였다.

“오! 그래! 어서 들어와!”

“어서 들어오시오!”

아크와 마찬가지로 반갑게 렉스를 맞이하는 아크 일행. 어지간히도 리우드 부족과 렉스에게 호감이 쌓였나 보다.

“저, 아크 형. 정말 감사합니다. 그 인사를 드리려고 왔어요.”

“그래, 고맙다. 그래도 위험하게 인사하러 이 한밤중에 와.”

“히히, 아니에요. 리우드 부족 지역은 제가 가장 잘 아는걸요.”

렉스는 귀엽게 웃으면서 아크에게 말한다.

“그래도 이 말은 꼭 하고 싶었어요. 제가 우리 부족의 주술사분들 한 테 들었는데 마나를 받는 것은 받는 사람은 물론 주는 사람한테도 엄청난 고통과 부담이 되는 행위라고 들었어요. 잘못하면 오라 경지의 하락도 할 수 있다고......”

“뭐야 그런 걸 걱정했어? 귀엽네, 우리 렉스. 걱정하지 말렴. 고통스럽지 않게 해줄게.”

아크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렉스에게 말한다. 짓궂은 형이었다.

“아뇨, 아뇨. 제가 걱정하는 건 아크 형에게 주어지는 부담 때문이었어요. 제가 받는 고통은 참을 수 있어요. 제가 살아온 세월은 얼마 안 되지만, 그래도 이 심장 때문에 고통엔 익숙해요. 매일같이 아프거든요.”

아크는 그 말을 듣자 가슴 한쪽이 아려왔다. 이렇게 착한아이가 겪은 고통에 마음이 아팠다. 그러한 생각이 들자 아크는 렉스를 꼭 끌어 안아주었다,

“어? 형.”

“잠시만 그대로 있어 렉스. 다 괜찮아질 거야 렉스. 모두 다.”

렉스는 어리둥절했지만 왜인지 아크의 진심이 느껴졌다. 그래서 가만히 있었다.

잠시 후.

렉스를 조심스레 놓아주는 아크. 그리고 렉스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렉스, 걱정하지 말고 푹 쉬고 자렴. 내일 이후부터는 좀 더 건강하게 놀 수 있을 거야.”

아크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네, 형. 고마워요.”

이에 렉스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 조심히 들어가고 무슨 일 있으면 마스터가 있는 이 파오에 오렴. 언제든지 도와주러 갈게.”

“네, 형. 히히.”

그렇게 말하곤 웃으면서 파오를 나갔다. 나갈 때 잊지 않고 아미와 란데르그한테도 공손히 인사하고 갈 때 손까지 흔들며 기분 좋게 갔다.

아크는 끝까지 렉스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보자 아미와 란데르그는 놀리는데.

“워후~ 아크. 동생한테 정말 잘하는걸.”

“허허허, 누가 보면 친동생이라고 생각하겠소이다.”

아크는 잠시 미소 짓더니 말을 한다.

“진짜 내 동생 하고 싶어. 봤어? 예의 바르고 예쁘게 웃는 거. 너무 귀여워서 안 그래도 동생 삼고 싶어!”

어?! 이게 아닌데 라고 생각하는 아미와 란데르그 아크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려 말한 건데 좋아하자 살짝 당황하였다.

※ ※ ※

한밤중. 리우드 부족의 위협을 가장 먼저 안 것은 기감이 발달한 주술사들이었다.

“이 기운들은 설마!”

밖으로 나오는 주술사들. 그러나 위협은 벌써 코앞에 다가왔다.

쾅!

쿠카캉!

거대한 불꽃이 리우드 부족의 영토를 침범하였다.

“뭐....... 뭐야 적 부족의 침입인가?”

밖으로 나오는 전사들. 그 모습을 보러 나온 주민들. 그러나 그것은 불행의 시작이었다.

거대한 고래로 보이는 생물체가 리우드 부족 영토의 상공에 떡 하니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거대한 고래의 틈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몬스터와 수라들! 딱 보아도 굉장히 흉포하고 사나워 보이는 것들이었다.

쿵!

쿠쿵!

날개 없는 수라들과 몬스터들은 땅에 떨어졌다.

“크아악! 쿠라라라!”

그것들을 막고자 리우드 부족의 전사들은 활과 쇠뇌 같은 무기들로 대항하였다. 그러나 역부족으로 보였다.

날 수 있는 수라들은 공중에서 공격하였고 날개가 없는 수라들은 다짜고짜 리우드 부족의 사람들에게 공격하였다,

“꺅! 살려줘!”

“으아악!”

“모두 도망쳐라!”

“살려주세요! 제발, 제발 으아악!”

“사막의 신이시여, 사막의 신이시여!”

어떤 자들은 살고자 기도하였고. 어떤 자들은 도망쳤으며, 어떠한 자들은 반항하였으나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그저 지옥 그 자체였다.

“무슨 일이지?”

리우드 부족 영토에서 조금 떨어진 손님의 파오에 있던 아크 일행은 한밤중을 낮으로 보이는 빛과 굉음의 소란에 눈을 떴다.

“아크, 란데르그 모두 일어나! 수라들의 침공이야!”

“뭣이 수라들이오? 하지만 왜 여기에!”

란데르그도 깜짝 놀라 파오에서 나와 주변을 살폈다. 척 보기에도 강하고 거대한 수라들이 리우드 부족을 헤집고 다녔다.

아크와 란데르그는 아공간 아이템을 이용해 빨리 무장하였다. 그리고 나가려는데.

“잠시만 아크, 란데르그. 기다려!”

아미는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아크와 란데르그를 불렀다.

“왜 그래? 아미! 빨리 도와야지!”

아크는 한시가 급한데 자신을 부른 아미를 바라보았다.

이에 아미는 냉정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현실을 가장 냉정하게 살폈다.

“아크. 지금 저기에 있는 수라들은 적어도 중급이상이야 지금 나가봤자 헛수고고 개죽음이야.”

“하지만 아미, 이대로 갈 순 없어!”

아미는 아크가 이성적으로 생각 안 할 줄 알았다. 그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크에게 마법을 걸었다. 엄청나게 강한 수 면마법이었다.

“아....... 아미, 너......”

그리곤 쓰러진 아크. 아미는 란데르그를 보았다.

“란데르그, 너는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지. 아크를 데리고 여길 벗어나야 해.”

란데르그는 잠시 갈등했으나 이미 한차례 수라들과 싸워봐서 이것이 얼마나 무모한지도 잘 아는 란데르그였다.

“알겠소이다. 아크가 깨면 잘 설득하시오.”

“그건 걱정하지 마. 란데르그. 어서 가자!”

아크 일행은 서둘러서 아크를 란데르그가 말에 태우고 달렸다. 이날은 아크가 평생토록 후회하고 자책하는 하루가 된다.

※ ※ ※

“라우!, 렉스! 어디에 있니?!”

“예, 아버지! 저희 여기 있어요!”

“오오오! 사막의 신이시여, 창조주 안이시여 감사하옵니다.”

리우드 부족장은 주술사들이 황급히 전개 한 결계에서 대피한 자신들의 아들들을 만났다.

“아버지....... 흐흑, 모두 죽었어요.”

렉스는 오늘 낮에만 하더라도 자신들과 놀던 아이들이 죽는 모습을 눈앞에서 봤다. 그 충격이 크리라.

“그래, 그래 렉스 괜찮단다. 괜찮아. 그만 울어라.”

어떻게든 렉스를 진정시켜주려는 리우드 부족장. 하지만 그의 노력은 헛수고에 가까웠다.

지금 결계 안에 살아남은 자들은 극소수. 그것도 노약자들이다. 리우드 부족장은 이들만이라도 살리려고 마지막으로 미끼가 되고자 이들을 둘러본다. 싸울 수 있는 자는 자신과 몇몇 호위 전사 그리고 자신의 첫째 아들 라우뿐이었다.

“라우야 이 사막의 전사로써 마지막 임무가 있다.”

“아버지. 저는 각오가 되었어요!”

사막의 전사답게 대답하는 라우. 그 모습을 보자 자신이 둘째 아들 렉스의 병만 생각한 세월이 너무나도 미안했다.

“너무 미안하구나. 라우야, 만약 명계에서 다시 만난다면 꼭 이번 생에 못다 한 사랑을 주마.”

“예, 아버지.”

라우는 떨고 있었으나 담담히 말한다. 그리고 렉스와 마지막 대화를 나눈다.

“렉스......”

“형, 아버지.”

렉스는 불길한 느낌을 감지하는데.

“그래 렉스야 항상 건강하고 웃으면서 지내 거라. 부디 살아남거라.”

“아버지.”

“렉스. 내 몫까지 살아줘 부디....... 부디....... 행복하게 살아!”

“형, 형 가지 마. 형, 아버지.”

따라가려는 렉스. 하지만 다른 부족민들은 울면서 렉스를 막는다.

“비켜....... 비켜.”

작게 힘없이 흐느끼며 발버둥 치는 렉스. 리우드 부족의 생존자들은 그런 렉스를 울면서 잡는다. 하지만 리우드 부족장과 첫째 아들 라우와 리우드 부족의 마지막 전사들, 용감히 결계를 치던 주술사들과 더불어 마지막 용기를 보여준다.

“자! 어서 가요! 렉스 도련님.”

렉스를 억지로라도 끌고 가려는 부족민들. 하지만 렉스는 이대로 아버지와 형을 잃을 순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아크의 말이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자신에게 오라던 아크 형의 말이 떠올라 렉스는 무리를 이탈해 아크 일행이 있는 손님의 파오로 달려갔다. 그러나........

“아크 형, 형. 도와주세요. 아버지가....... 저의 형이......”

그러나 아무도 없는 손님의 파오 렉스는 뭔가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어째서....... 어째서! 아크 형! 아미! 란데르그 형!”

아무리 불러 봐도 대답 없었다. ‘속았다’라고 생각되자 렉스는 깊은 절망과 분노를 느꼈다.

그때 그곳으로 오는 거대한 마기 덩어리.

쾅!

쿠콰캉!

렉스는 그 충격파로 멀리 날아갔다.

정신을 잃기 직전의 렉스 다행인지 파오의 천 조각들이랑 사막의 모래에 파묻혀서 치명상은 피하였다. 잠시 후....... 들리는 음성.

“흠~ 벌써 도망갔나? ‘예언의 아이’는 눈치 한번 빠르군.”

멀리서 그러나 확실히 들려오는 바알의 음성.

‘예언의 아이? 그게 뭐지?’

정신이 아득해지는 렉스. 그러나 그 말을 끝까지 듣고자 정신을 집중한다.

“황금빛 눈을 가진 ‘예언의 아이’ 아크....... 결국은 놓쳤나. 할 수 없지....... 크크큭, 끝까지 한번 도망쳐봐라. 브란티아 대륙으로 돌아오면 가장 먼저 목을 베어 버릴 테니.”

‘황금빛 눈? 아크.......? 아크 형!’

듣고야 말았다. 리우드 부족을 침범한 수라들이 왜 여기에 왔는지를. 그 말을 듣고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리는 렉스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