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림하되 지배하지 않는다-18화 (18/155)

18. 란데르그.

18. 란데르그.

이 노래야말로 태초부터 내려오던 메긴의 실체이다. 소리로써 전달된 영적 의식은 영혼 깊숙이 각인되어 영혼 그 자체로 되기 때문이다. 한참 동안 노래를 이어 오던 12명의 천신은 서서히 곡조가 끝나가면서 지친 듯 자리에 앉았다.

“휴~ 이래서 정식적으로 메긴 내려주기가 어렵다니까.”

태양의 우투가 긴장이 풀린 듯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건 저희의 의무이지요.”

숲의 클로이네가 말한다.

“그건 그렇지요. 하하.”

우투가 그리 말하였고 엔릴도 지쳤는지 이마에 땀이 많이 맺혔다.

“아크여. 메긴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느냐.”

아크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지만 영혼 깊숙이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아닙니다. 하지만 제안에서 무언가가 느껴집니다.”

그때 아미가 이야기를 거들었다.

“죄송하지만 디아우스 님들이 지쳤고 하니, 제가 설명하고자 합니다. 괜찮겠습니까?”

아미가 나섰다.

“오! 아미 님이 설명해 주신다면 고맙지요. 미처 인사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아크에게 신경 쓰다 보니 미처 인사를 못 드렸습니다.”

12명의 천신 중 우투가 아미에게 존칭을 쓴다? 이것도 아크와 란데르그는 충격이었다. 이 신수 친구분의 급이 어느 정도가 된단 말인가!

하지만 내색 하지 않기로 하였다. 워낙 거물급 인사들이 있는 자리라 함부로 내색하지 못하겠으니 말이다.

“아크, 잘 들어. 데바의 힘. 즉 메긴은 육체와 영혼의 한계를 보통의 인간보다 월등히 높여주는 거야. 그래서 일반적인 데바들의 평균 수명은 천년이지 그 많은 시간 동안 수련을 하고 또 영혼과 육체의 한계치가 보통의 인간보다 높아서 월등히 강해질 수 있지. 하지만 수련을 안 하고 농땡이 피운다면 일반 전사와 다를 바가 없어. 메긴은 한계의 상한선을 높여주지만 그 자체로 강해지는 것은 아니야.”

아크는 아미의 복잡한 이야기에 그제야 정신을 차리렷다. 메긴을 받은 이후로 12명의 천신과 아미가 대자연의 조화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 ※ ※

잠시 후.

12명의 천신은 아크를 루에게 맡기고 물과 얼음의 마나난 맥리르는 란데르그를 나머지 천신들은 아미를 데리고 홀을 나갔다.

루는 아크와 이야기를 하다가 아크가 어디로 가줬으면 하는지 이야기를 먼저 꺼내었다.

“아크, 너는 곧장 동대륙, 즉 마고 대륙으로 가주어야겠다.”

“마고 대륙이요?”

“그래, 우리들. 디아우스들은 각자의 예언들을 각기 교단에서 받았지. 내가 받은 예언은 ‘황제의 영혼을 가진 아이를 동 대륙으로 향하게 하라. 거기에 뜻이 있을 것이다.’였다.”

아크는 고민할 것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예언의 완성은 아크의 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 죽은 부모님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근데 아크 동 대륙 가는 길에 잠시 라이언 백작 가를 방문하였으면 한다. 거기에 내가 좀 골치를 썩이는 게 있어서 말이지. 좀 도와주었으면 한다....... 이상하게 쳐다보지 말아라. 이건 하운드에게 내리는 의뢰다. 이그나이트를 통해 의뢰를 내리마.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면 너희 부모님들이 조사하던 일도 실마리가 잡힐 것이다.”

“네?”

아크는 좀처럼 실마리가 잡히지 않던 부모님들이 조사하던 것을 이 빛의 디아우스가 알자 당황한다.

“보브와 니르. 그러니까 너의 부모님들이 살아생전 쉘츠 제국과 연계했다는 것을 알고 있겠지. 나는 너의 부모님에게 쉘츠 제국과 연계되었다는 것만 알고 렌 사부도 쉘츠 제국을 중심으로 조사하라고 했을 것이다.”

그렇다. 아크는 렌 사부에게 쉘츠 제국을 중심으로 조사하라고 들었다. 그렇기에 쉘츠 제국에만 있는 용병. 즉 하운드가 된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실마리를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어찌 저의 사정까지 다 아시는지?”

루는 한숨을 쉰다.

“예전 라 님의 선포만 아니었다면 나는 너의 부모님의 일을 진즉에 알아봤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고 믿을만한 자들은 모두 은거하거나 죽었으니, 지금까지 미뤄진 것이지. 그것에 대한 후회가 남아있구나.”

아크는 루의 진심 어린 말에 감동한다.

“괜찮습니다. 루 님. 감사합니다.”

아크는 루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 씩씩하게 말한다.

“그럼 디아우스 님의 의뢰가 저의 첫 임무가 되는 거군요.”

아크는 씩씩하게 말한다.

“그래 이그나이트 가문을 통해 내가 정식으로 의뢰하는 것이다.”

루는 그런 아크가 대견스러웠다.

“그곳에서 저는 무얼 하면 되겠습니까?”

아크는 다시금 루에게 자신이 할 일을 물어본다.

“그건 가보면 자동으로 알게 될 거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네가 보고 느낀 대로 너의 양심이 시키는 일을 하면 된다는 거다.”

아크는 아리송한 느낌을 받았다.

※ ※ ※

“네가 그 아이들의 아이로구나.”

물과 얼음의 천신인 마나난 맥리르는 은백색의 청년 란데르그와 자신의 궁전에서 독대하였다. 란데르그는 영문을 몰라 마나난 맥리르를 쳐다본다.

“저를 아십니까?”

란데르그는 맥리르에게 질문한다.

“후우~ 왜 모르겠느냐.”

맥리는 한숨을 쉬고 이어지는 충격적인 말을 하였다.

“너의 부모님들은 나의 제자들이다.”

“네?! 저희 부모님이 맥리르 님의 제자라고요?”

깜짝 놀라는 란데르그.

하지만 란데르그는 평소의 말투보다 다른 점이 있었다.

평소에는 어른 말투이던 란데르그도 디아우스들 앞에선 감히 그런 말투를 사용하지 못하였다.

“그래 엘프인 너의 아버지와 야수 족인 너의 어머니. 모두 내가 디아우스가 되기 전 나의 마법을 배우는 제자들이었단다.”

란데르그는 부모님이 어느 정도 마법에 정통하였다는 건 알고 있었으나 마법의 최고경지인 로드이자 지금은 물과 얼음의 디아우스 된 맥리르의 제자라곤 생각지도 못하였다.

“하여, 너도 나의 제자라고 생각하고, 너의 운명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 실력은 숨기고 있겠지. 내가 통찰하기론 너는 이미 마스터 최상급을 바라보고 있구나.”

뜨끔!

란데르그의 마음이 처음으로 동요하고 있었다.

마스터가 되었는지는 꽤 되었다 하지만 크게는 국가 단위로 작게는 조직 단위로 자신을 이용하고자 하는 자들로부터 도망치기 위하여 숨기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하고자 ‘자신들만의 길드’를 만든 것이고.......

“그 정도면 나의 보물을 맡겨도 될 것 같구나. 그동안 많이 힘들었겠구나. 아이야.”

왈칵!

란데르그는 그 한마디에 울컥했다.

란데르그는 하프이다.

그것도 자존심이 센 두 종족의 하프이다. 당연히 각기 종족에선 환영받지 못하고 부모님이 떠난 이후론 줄곧 혼자서 지낸 란데르그가 다시금 오랜만에 부모님 같은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봐주는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봐주는 것에 눈물이 나왔다.

“그래그래, 네가 너무 어른인 척 안 해도 된단다. 지금은 너의 동료들도 있고 그 아이들은 너의 운명을 헤쳐나가는 것을 도와주리라고 생각한단다.”

맥리르는 란데르그를 따스하게 안아준다.

“네, 흐윽, 맥리르 님”

결국은 눈물을 흘리는 란데르그.

“너는 너의 각 종족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새로운 시대를 열 거라고 생각한단다. 하프도 인정받는 세상. 아크는 그런 세상을 열어주는 문이 될 거란다. 자 마음껏 울어라, 오늘은 기쁜 날이 아니겠느냐.”

맥리르의 말이 란데르그의 가슴에 스며든다.

※ ※ ※

잠시 후.

란데르그는 오랜만에 아이처럼 울었던 것이 민망하였는지 맥리르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녀석, 그런 것 가지고 민망해하긴 후후.”

란데르그는 고개 숙인 채 미동도 없다.

“자, 그만하고 여길 보아라.”

맥리르는 자신의 창고에서 두 가지 종류의 검을 가지고 왔다. 하나는 단도로 날이 휘어져 있었는데 검의 곳곳에선 붉은 장식을 하여 불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다른 하나는 장도로 검날과 손잡이에 푸른색의 보석을 치장하여 푸른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

“여기 단도는 작은 분노. 화염속성 석이 들어간 마법 무기이고 여기 장도는 바람속성 석이 들어간 마법 무기 큰 분노이다. 하나같이 역사에 이름이 남는 나의 무기이지 이것을 줄 것이니 너는 아크를 도와 너의 세상을 바꾸어라.”

란데르그는 놀랐었다. 하나같이 역사서에 나오는 마나난 맥리르의 마법 무기였다.

“이런 보물들을 저에게 주어도 되는 것입니까? 맥리르 님.”

란데르그는 다시 한번 확인했다.

“후후후, 걱정 말아라. 이것들은 모두 너의 부모들에게 빌려주었던 것이었으니, 당연히 아들인 네가 가지고 있는 게 맞겠지.”

란데르그는 이런 보물들이 자신에게 오자 정신이 아찔했다.

그런 것도 잠시 란데르그는 잠시 옛날 생각에 빠졌다.

자신이 철들 무렵 자신들의 부모님들은 자신을 어떤 마을에 맡겼다. 그 이유는 세상을 위해서라고 하는데.

사실 그건 어린 란데그한테는 말도 안 되는 이유이다.

자신은 부모님들이 필요했다. 어쩔 수 없단 건 안다. 자신은 하프. 엘프에게도 수인 족에게도 환영받지 못한 존재라는 걸, 그래서 낯선 인간들의 마을에 살 수밖에 없단 걸.

하지만 인간들의 마을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이유는 뻔했다.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

그 하나뿐이다. 그래서 멸시와 구박을 당했다.

자신이 어릴 때 아버지가 가르쳐주신 궁술로 세상에 나갈 나이 때는 뛰어난 솜씨를 가져 필요함에 따라 여러 전쟁터에 끌려나갔다.

그 유명한 엔주의 대혼돈 때에도 싸울 정도였으니 실력은 자신 있었다.

그리고 그 후에 여기저기 끌려다니기 싫어서 자신만의 조직 ‘하프 블러드’를 창설하고 자신과 같은 혼혈 아이들을 모아 키웠다.

그리고 자신의 특기를 살려 정찰, 정보 수집하는 조직으로 키웠다. 그리고 자신은 하운드로 위장해 여러 정보를 모아 언젠가는 혼혈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였다.

그리고 최근에는 정체를 숨기고 살았을 때. 사람의 정이 그리웠을 시기에 아크와 아미를 만났다.

그건 자신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을 만남으로써 자신도 다시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뜻밖의 존재를 만나 자신에게 힘을 실어주려고 한다.

모든 게 꿈만 같았다. 마치 창조주 안의 잃어버린 ‘운명을 서판’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이끌어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든다. 너무나도 감사했다.

또한 무거웠다.

젊은 날치기에 불과했던 꿈을 다시 갖게 해줘서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런 생각을 다 한 란데르그는 맥리르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나난 맥리르여!”

다시 한번 온 기회에 물러서지 않는 란데르그의 의지가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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