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아누(Anu)의 시험.
11. 아누(Anu)의 시험.
아미는 숨이 막히게 갑갑한 느낌으로 걸었다. 한참을 조셉의 뒤만 따라가던 일행은 중앙홀로 보이는 커다란 공간에 들어섰다.
그곳에는 아크처럼 붉은 머리의 사람들이 나와 있었는데.
그중에 아크의 눈에 들어오는 사람은 둘. 한 명은 붉은 머리에 녹색 눈동자의 얼굴에 상처가 있고 도(刀)로 보이는 칼을 차고 한쪽에는 머스킷으로 보이는 총을 찬 굉장히 잘생겼으나 한편으론 무섭게 보이는 사내와 다른 한 명은 마찬가지로 붉은 머리에 녹색 눈동자가 어울리는 미인이 눈에 띄었다.
그중 아크는 그 미인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자 아미가 아크의 발목을 할퀴었다.
“아얏! 아미 뭐 하는 거야?”
“흥! 아크, 너도 남자라고 저런 미인한테 한눈파는 거야?”
둘이 티격태격하는 사이 총과 칼을 찬 사내가 아크에게 다가온다. 조셉은 공손히 뒤로 물러나고 아크와 그 사내가 마주 보며 이상한 분위기를 풍기며 대치했다.
“네가 보브 님의 아들이냐? 그 붉은 머리....... 그리고 황금빛 눈동자.”
대뜸 반말을 하는 사내 아크는 기분이 조금 나빴다. 그리고 수근 대는 사람들.
“아르드리 가문 중 하나인 이그나이트 가문에 황금빛 눈동자라니.”
“예언의 아이야.”
“예언이 진짠가?”
아크는 수근 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애써 무시한 채 자신보다는 몇 살이나 많아 보이는 사내에게 대꾸를 해준다.
“네. 그렇습니다. 당신은 누구시죠?”
“내 이름은 제노 이그나이트 이곳 이그나이트 가문의 가주이다.”
아크에게 섬뜩한 기운을 풍기는 사내의 이름이었다.
아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자가 현 이그나트 가문을 이끄는 자신의 아버지 보브의 형의 아들 제노 이그나이트였기 때문이다.
그런 제노 앞에 아크가 본 아리따운 붉은 머리 여성이 나선다.
“안녕!, 아크 내 이름은 유이! 이그나이트 분가의 후손 이지 너의 먼 친척뻘쯤 되려나? 호호! 반가워 예언의 아이!”
아크는 갑자기 등장한 유이에 제노의 눈치도 봐야 해서 좀 당황했다.
“하하하, 안녕하세요.”
어색하게 웃는 아크.
유이는 아크의 손목을 잡더니 반갑다고 악수를 건넨다. 그런 유이를 째려보는 제노. 하지만 평소의 유이의 성격을 알기에 곧 살기를 거둔다. 그러자 다른 이그나이트 가문의 사람들이 아크 일행에게 다가간다.
“이야 반갑다. 보브님의 아들을 보다니 잘 지냈는지 모르겠구나.”
이번에는 덩치가 큰 이그나이트 가문의 기사로 보이는 자가 인사를 건넨다. 그 이후로도 한참 동안 아크에게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로 아크 일행은 정신이 멍해진다.
“저......, 제가 아버지인 보브의 아들이라고 확신하세요?”
아크는 자신을 처음 보는데 자신을 보브의 아들이라고 인정하는 이그나이트 가문에 의아함이 들었다.
“물론입니다. 아크 님에 대한 정보는 예전에는 없었는데. 렌이라는 자가 다짜고짜 저희 정보망에 연락을 넣었습니다. 곧 보브의 아들이 가니 잘 환대하라고 말입니다.”
조셉이라는 집사가 대신 설명했다.
렌 사부가 미리 손을 쓴 것이리라.
이번에는 덩치 큰 사내가 말한다.
“거기다가 이번 로크 산맥의 일로 조사를 하니 딱 렌 사부가 말한 인상착의랑 같아서 너인 줄 미리 알았지.”
다른 이그나이트 가문의 사람들은 뭐가 그리 신나는지 연신 싱글벙글 웃으며 아크를 맞이한다.
‘뭐지? 이 상반되는 반응은?’
아크가 당혹감이 들었을 때.
아미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제노가 가주를 지낸 이후로 이그나이트 가문은 서서히 기울기 시작하였다.
그런 와중에 예언의 아이가 아르드리의 수많은 가문 중 하나인 이그나이트 가문에서 나왔으니 예전의 영광을 떠올리는 것이리라.
그리고 현 이그나이트 가문의 가주인 제노는 잘 운영하였으나. 마고 대륙과의 전쟁이 뜸한 지금 쉘츠 제국의 무력을 담당하는 가문인 이그나이트 가문이 다른 아르드리 가문보다는 옛날보다 위세가 좀 꺾어진 감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크, 렌 사부님은 잘 계시느냐?”
제노의 입에서 아크가 아는 사람의 이름이 나왔다.
이에 아크는 좀 놀란다.
“어, 렌 사부님을 아세요?”
제노는 피식 웃더니 말을 건다,
“물론이다. 렌 사부는 이그나이트 가문의 전전 가주. 우리들의 할아버지 다자 모르 님 때부터 골드 오라의 전수를 담당하던 데바이기 때문에 잘 알고 있지. 나의 검술도 렌 사부의 작품이다.”
자신의 검술을 작품이라고 하다니.
제노의 검술 자부심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제노는 이제 서론은 끝났다고 말하고 가문의 시험을 시작하자고 말한다. 그 말에 일부는 서운한 감정이 있었지만 가주의 말을 따른다.
“자, 아크여 지금부터 이그나이트 가문의 일원이 되려면 이그나이트 가문의 비전인 프로미넌스를 익혀야 한다, 그것은 태초의 우리 가문이 받은 힘이자 자긍심이다. 이것을 익힐 준비가 되었느냐?”
만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바로 시험이라 당황했지만, 아크는 굳게 다문 입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모습을 본 제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번 시험의 위험성을 말한다.
“좋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네가 다른 차원인 명계에 가서 창조주 안의 감응 자인 아누의 시험을 받아야 한다. 각오는 되었느냐?”
아크는 결의에 가득 찬 채 고개를 끄덕이고 시험을 받을 준비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그나이트 가문의 사람들과 아크 일행은 준비가 다 된 시험을 받고자 고성의 지하 깊숙한 던전으로 향한다.
※ ※ ※
어딘지 모르는 어둠 그곳에서 어둠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황금 머리에 푸른 눈동자. 그리고 황금 갑옷에 붉은 망토를 한 온몸에 황금 칠한 것으로 보이는 사내가 있었다.
“드디어 때가 된 것인가?”
사내의 음성은 무거웠으나 은근히 활력이 느껴지는 말투였다.
※ ※ ※
드디어 시험을 받게 된 아크 약간의 긴장과 흥분이 아크의 몸을 적셔갔다. 던전에서의 시험 장소는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제노는 아크에게 다가가 시험의 어려움을 전한다.
“아크여, 아누의 시험은 이곳과는 다른 차원인 명계에서 받는다. 이그나이트 가문의 일원이라고 다 이 시험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가주와 관계된 사람만 받는다. 시험에 실패해 영원히 명계에 갇히는 자도 있다. 또다시 묻겠다. 이 시험을 받겠는가?”
아크는 전신이 짜릿하게 되면서 말을 한다.
“저의 아버지 보브 님도 받았습니다. 저도 받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이 말에 제노는 눈썹이 움찔거렸다. 자신의 아버지는 이 시험에서 실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아크에게 시험을 받을 준비를 하였다.
잠시 후.
신을 뜻하는 고대 상형문자가 있는 석문 앞에 아크가 섰다. 아미와 란데르그는 그런 아크를 보며 응원을 하였다.
“아크. 꼭 성공해야 해! 실패하면 죽어서도 끝까지 저주하겠어!”
아미의 앙칼진 말이었고.
“성공하시오! 그래서 나와 같이 동업을 해야 하지 않겠소!”
란데르그는 농담을 섞어 말하였다.
그리고 그런 응원을 받는 아크는 가슴이 시큰해졌다.
“그래 성공해서 꼭 살아서 보자고!”
이번에는 유이가 다가왔다.
“아크 꼭 성공해. 음~ 왜인지 모르겠지만, 난 네가 맘에 들어.”
유이의 갑작스러운 고백의 말을 들은 아크는 얼굴이 빨개졌다.
“네! 하하하!”
그런 모습을 보며 아미가 칫(?) 거린다. 이러한 응원에 아크는 다시금 각오를 다지고 석문 앞에 섰다. 시험을 치르는 과정은 던전으로 오는 길에 배웠다.
“나. 아크는 아누의 시험을 받을 준비가 되었다. 석문이여 나를 맞이하라!”
아크가 말하자 석문은 조금씩 움직였다. 그리고는 환한 빛을 내뿜고 아크를 빨아들였다. 아누의 시험이 시작되었다. 다른 차원으로 이동된 것이다. 그리고 끝도 안 보이는 어둠 속에 떨어지면서 아크는 정신을 잃었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정신이 들었다.
※ ※ ※
“으음....... 여긴가 명계인가?”
아크는 한참 뒤 정신을 차리고 두리번거렸다. 보이는 것은 어둠뿐이 어두컴컴한데 떨어졌다.
“뭐야 시험이 시작인데 아무것도 안보이고? 설마? 나 뭐 실수한 건가?”
자신이 실수라도 한 것에 대해 불안해하는 아크였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니 이곳 풍경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곳은 해 질 녘의 오래된 고성이었다. 그리고 고성의 홀쯤에서 저 멀리 황금빛이 일렁이는 것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아크는 그 빛을 반가워하며 빠르게 달려가 그곳으로 향하였다.
잠시 뒤.
도착한 곳에는 황금빛 머리에 푸른 눈동자. 그리고 황금빛이 나는 갑옷을 입고 까칠해 보이고 지저분하게 수염을 기른 잘생긴 사내가 있었다.
아크는 그자가 감독관처럼 보여 다가가 말을 건넸다.
“저기 아누의 시험 감독관님이세요?”
사내는 말 없이 아크를 보다가 갑자기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드디어 왔구나! 보브와 니르의 아들이여!”
사내의 호탕한 말투였다.
“저를 아세요?”
잠시 놀라는 아크였다.
“물론! 알다말다 내가 너를 기다린다고 몇 년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나의 의지를 이을 자여!”
아크는 속으로 안도를 하였다. 최소한 자신이 실수하거나 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저기 그럼 어서 프로미넌스를 얻는 아누의 시험을 시작하죠!”
“으음? 프로미넌스? 하! 하! 하! 그것 보다 더 좋은 걸 주마!”
아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네? 이건 아누의 시험이 아닌가요?”
사내는 한참을 웃더니 말을 이어간다,
“아누의 시험? 번지수를 잘못 찾아온 거구나 여긴 크로우 크루아흐의 뱃속이다!”
“네? 뭐라고요?”
아크는 점점 이마에 땀이 나기 시작한다. 그런 아크를 보던 사내는 빙긋이 웃더니 말을 한다.
“뭐 크로우 크루아흐의 뱃속이니 명계는 맞다. 그리고 아누의 시험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
“그게 무슨 말이세요?”
“아누의 시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느냐?”
“아누의 시험이란 태초에 창조주 안 님과 교감하던 데바가 만든 시험들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사내는 기특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맞다! 그 교감하던 자가 아누이고 그가 죽어서 남긴 열쇠가 아누의 시험이다. 그리고 나는 시초룡 죽음의 크로우 크루아흐의 뱃속과 교차로가 된 이곳의 불청객이지!”
아크는 당혹감에 얼굴빛이 흐려졌다.
“도대체 당신의 정체가 무엇인가요? 시험관도 아니고 여긴 크로우 크루아흐의 뱃속이라면서요?”
사내는 웃더니 자신을 소개한다.
“나? 나는 옛날 아르드리이자 브란티아 대륙의 황제. 서쪽 인간들의 왕. 태양의 누아자 아케트라브라고 한다.”
기겁하는 아크였다. 이자가 그 옛날 유일하게 서 대륙을 통일하던 황제의 이름을 쓰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