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림하되 지배하지 않는다-1화 (1/155)

01. 이야기의 시작.

01. 이야기의 시작.

꿈으로부터 시작된 이미지들.

꿈은 무의식적 기억을 나타낸다.

그것이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지 말이다.

따끈한 빵의 고소한 냄새. 창문 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눈이 부신 햇살. 그리고 이어지는 상반된 장면. 겨울눈의 차가운 느낌. 눈앞에 보이는 어딘지 아름답고도 슬퍼 보이는 여인.

‘엄마........’

꿈에서조차 부르고 싶은 따뜻하고도 슬픈 느낌.

그리고 이어지는 청아한 이미지의 울림.

“아이의 이름은 사람들의 구원자답게 그 옛날 시초 대륙에서 인류를 구원한 노아 님의 방주. 아크(Ark)가 좋겠어요.”

눈앞의 아름다운 여인이 아이를 보며 슬픈 눈으로 말한다. 점점 멀어지는 여인. 그리고 점점 가까워지는 괴성과 불꽃들 그것들이 뜨거워지면서 눈앞이 번쩍인다.

"허억........ 허억........ 헉."

악몽을 꾸었는지 한 소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뭐지? 꿈인가 뭐였지? 음? 다시 기억이 안 나 꿈이........”

꿈에서 깨어나면 자신의 첫 기억을 다시 기억 못 하는 붉은 머리 소년이었다.

그런 붉은 머리 소년의 시작은 이랬다.

15년 전.

휙!

화르르!

눈과 불꽃이 휘날리는 이곳은 불과 반나절만 하더라도 오래된 고성이 있는 성곽 지역으로 평화로운 분위기의 마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인간들에겐 악마와도 같은 존재인 수라들의 노예들 즉, 괴물들이 이 마을을 침공하였다.

이를 막기 위해 그 지역 고성의 병사들과 기사들이 마을 사람들을 대피시키며 괴물들과 전투를 벌이는데.

촤아악!

화르르!

피와 불꽃이 낭자한 이곳에 유독 눈에 띄는 이가 있었으니.

진녹색의 눈동자와 붉은 머리의 검사였다. 그 검사는 자신의 붉은 머리와 대조적으로 푸른빛 플레이트 아머를 입고 있었다.

쿵!

“큭, 많이도 몰려왔군. 바알 그 녀석의 짓인가?”

검사의 주변에는 방금 쓰러뜨린 집만큼 커다란 덩치의 괴물들의 사체가 쓰러져있었다.

‘수라 녀석 들은 천계와의 협정의 영향으로 간섭을 못 하니까, 수하의 괴물들을 데리고 왔군.’

검사는 상황이 급박해도 차분히 분석하였다.

그때 고성의 병사들과 그들을 이끄는 기사들이 검사에게 달려왔다.

“여기 계셨습니까. 지고의 왕, 보브 님. 어서 부인이신 니르 님과 두 분의 아기님이 있는 곳으로 가십시오. 백성들은 대부분 피난이 완료되었습니다.”

검사의 이름은 보브였다. 그리고 그들 중 중년의 기사는 보브를 지고의 왕이라고 부르며 보브의 소중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가면 그대들이 위험할 것이다.”

보브는 진즉에 자신의 가족들에게 돌아가고 싶었지만 지금 이 고성지역에 침범한 괴물 무리는 자신의 가족을 노린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괴물들의 수장인 수라들이 노리는 것은 자신의 아이였다.

그래서 이 지역에 괴물들이 쳐들어왔을 때. 최대한 피해를 줄이고자 자신이 직접 이곳의 전장에 뛰어든 것이다.

“아기님은 분명 예언의 아이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괴물들이 쳐들 올 이유가 없겠지요. 그렇다면 저희는 그 예언의 아이를 지킨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죽더라도 이보다 더한 영광이 없을 것입니다.”

중년 기사의 말에 다른 기사들과 병사들이 각오를 다짐한 얼굴로 끄덕인다.

“그대들은 목숨이 아깝지 않은가.”

보브는 그 사람들에게 고마웠지만, 여전히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저희는 인간을 초월한 초인인 데바들이 아닙니다. 백 년도 못살 짧은 인생, 인류의 원수인 괴물들과 수라들에게 한 방 먹인다면 그보다 값진 인생은 없을 것입니다. 하하!”

중년의 기사는 뭐가 그리 기쁜지 자신의 가슴을 탕! 치며 말한다. 과연 기사다운 말이었다.

“고맙다. 이 빚은 명계에서 갚도록 하지. 모두 창조주 안의 가호가 있기를.”

보브는 고마움을 느끼며 자신의 가족들이 있는 고성의 홀로 향하였다.

※ ※ ※

고성의 홀.

그곳에는 아름다운 은발과 영롱한 황금빛 눈을 가진 여인이 푸른빛이 나는 결계를 친 채. 아직 대피하지 못한 노약자들을 지키고 있었다.

“쿨럭, 쿨럭.”

그 여인은 몸이 아픈지 기침을 하였다.

“괜찮으세요? 니르 님?”

그 여인의 이름은 니르. 보브의 아내였다. 니르가 기침을 하자 그녀가 지키고 있던 여 시종이 니르를 걱정하며 다가가는데.

“헉!”

여 시종은 놀란다. 니르가 기침을 하며 썼던 수건에는 피가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괜찮다. 괜히 소란 피우지 말렴. 아크는 잘 자고 있니?”

니르는 아기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채 무리해서 힘을 써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그래도 니르는 사람들을 위해 힘을 쓰고 있다.

“흑흑, 네 니르 님. 아크 님은 지금 편안히 자고 있습니다.”

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니르.

“울긴 왜 우니? 나는 괜찮으니 아크를 잘 보살펴다오.”

“네, 니르 님.”

이 여 시종은 니르를 따른 지 꽤 오래된 시종이라서 니르에 대한 애정이 많았다. 그래서 지금 니르가 무리해서 힘을 쓰는 것을 보는 것도 괴로웠다.

“니르!”

그때 고성의 홀에 보브가 도착했다.

“여보.”

니르는 무사한 모습의 보브를 보며 창조주 안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니르가 친 결계는 악의를 가진 자들을 몰아내는 힘이 있지만, 보브와 같이 전개를 한 자에게 악의가 없는 자들은 들어올 수 있었다. 그리하여 보브는 니르가 친 결계로 들어오며 말한다.

“괜찮은 거야?”

“네 괜찮아요. 여보, 우리의 아이. 아크를 지켜줘요.”

니르는 마치 자신의 마지막을 직감하듯이 말한다.

“무슨 말이야! 아크는 우리 둘이 잘 키울 거야 걱정하지 마. 어서 여기 사람들을 데리고 가자. 렌 사부님도 곧 오실 거야.”

보브는 축 처진 니르를 부축하며 움직이고자 하였다.

그때.

쾅!

고성의 홀의 한 면이 부서지면서 그곳으로 누군가가 들어왔다.

“크크큭, 역시 이곳에서까지 성자 놀이를 하고 있었군.”

들어온 자는 하얀 머리를 허리까지 기르고 하얀색 법복을 입은 자였다. 그리고 특이한 점은 두 눈이 불타오르는 듯이 요동치는 붉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바알!”

보브는 자세를 잡으며 바알이라고 부른 그자에게 경계태세를 취하였다.

“큭, 나에게 그딴 결계가 통할 거로 생각했나?”

바알의 손에 기운을 끌어모으더니 이내 검붉은 불꽃이 휘날리는 검이 생성되었다. 그리고 니르가 친 결계에 검기를 날리는데.

쾅!

쩌저쩡!

채캉!

결계가 금이 가더니 이내 깨진다.

“욱!”

니르는 피를 토하며 주저앉는다.

“?!”

보브의 표정에서 살기가 일어나고.

“크크큭, 역시 닌우르타와 4 성웅 녀석들이 없으니 예전만 못하는군.”

바알은 비웃으며 말한다.

“이놈!”

보브는 자신의 검에 지고의 왕의 상징인 골드 오라 블레이드를 생성하고 바알에게 쇄도한다.

쐐 애액!

콰앙!

바알은 가볍게 보브의 검을 막는데.

“경지가 마스터밖에 안 되는 주제에 나에게 덤비다니. 너는 예전부터 그랬어, 부족해서 다른 녀석들에게 도움만 받는 녀석.”

바알은 보브를 계속 도발한다.

“이 개자식이!”

보브는 바알의 도발에 넘어가서 검을 휘두른다.

쐐액!

챙!

채캉!

바알은 그런 보브를 갖고 놀았다.

보브는 있는 힘껏 검을 질렀으나 경지가 자신보다 높은 바알은 장난처럼 맞붙이 쳤다.

깡! 카캉!

“이놈! 제대로 덤벼라!”

“흥! 네놈에게 진심으로 대하는 것 자체가 나에겐 수치이다.”

파팟!

“억!”

바알은 보브를 단 일격에 구석으로 몰았다.

“흠~ 네 녀석보단 니르에게 검을 나눠주는 것이 더 재밌겠군.”

그리곤 바알은 순간 검로를 바꾸어 니르에게 검기를 날리는데.

“안 돼!”

보브는 바알은 신경 쓰지 않은 채. 니르에게 날려가는 검기를 막고자한다.

쾅!

“큭!”

보브가 겨우 막아내고 틈이 생겨 순간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끝이다!”

바알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보브에게 쇄도해 보브의 두 눈을 공격하였다.

“으악!”

보브는 고통에 찬 소리를 지르고 두 눈을 잃은 채 의식을 잃었다.

“여보!”

“깍!”

니르는 놀랐고 뒤에 숨죽여 있던 노약자들조차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에 아기인 아크 또한 잠에서 깨어 우는데.

“응애! 응애!”

바알은 아기인 아크를 바라보며 다가갔다.

“저 녀석이 그 예언의 아이인가. 예언대로 혐오스러운 아르드리 핏줄이고 황금빛 눈이로군.”

“이 개자식! 우리 아기에게 다가가지마.”

니르는 바알에게 살기 어린 눈빛으로 보며 막아섰다.

“쯧, 그러게 보브 대신 나를 선택했으면, 이런 일은 없었잖아. 아니, 적어도 우리들의 일을 들추지는 말았어야지.”

바알은 니르를 딱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데바임에도 인간을 저버리고 수라를 택한 당신을 선택하지 않은 건, 내 인생의 최고의 선택이었어. 그리고 당신도 인간이라면 그런 일은 하지 말아야 해.”

니르는 독기어린 말을 내뱉는다.

“크크큭........ 죽어.”

바알은 잠시 웃더니 검붉은 검으로 니르에게 다가가 찌른다.

푸슉!

“크윽!”

검붉은 검이 니르를 관통하고 니르는 쓰러지는데.

이에 바알을 적대하며 여 시종이 아기를 감싸고 노약자들이 몸으로 아크를 보호하고자 한다.

“죽어, 죽어, 죽어.”

바알은 그런 노약자들을 하나씩 베어가며 아크에게 다가간다.

“으악!”

“억!”

“지옥에나 떨어져라 수라 놈!”

“예언의 아이에게 가호를.”

사람들은 죽어가며 바알을 저주하고 아기에게 축복 했다.

결국 여 시종과 아기만이 남고.

“너도 죽을 테냐? 처음 본 그 아기를 위해서?”

“이분은 나의 소중한 사람들의 아기이다!”

여 시종은 두 눈에 공포에 어린 눈물을 흘리고 목소리는 떨렸으나 행동은 단호했다. 아기를 지키고자 한 것이다.

“그럼. 죽어.”

바알은 검을 내리치려고 하는 순간에.

쐐 액!

콰아앙!

“큭!”

갑자기 날아온 불타는 황금빛 검에 바알은 비틀대며 뒤로 물러났다.

“렌, 이 자식!”

조금 전에 보브가 말한 렌 사부가 온 것이다.

분노한 렌은 살기를 뿜으며 바알에게 쇄도했다.

그런 모습을 땅에 피를 흘리며 누운 채 본 니르. 여 시종은 니르가 아직 숨이 붙어있다는 것을 알고 아기를 안고 니르에게 다가간다.

“니르 님!”

여 시종에게 고마움을 표시한 니르는 눈물을 흘리며 아기의 손을 살포시 잡고 마지막 인사를 한다.

“안녕, 우리의 아크. 사랑한다. 우리 아이야. 엄만 네가 꼭 행복한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구나.”

그렇게 니르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1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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