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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은 옷을 입지 않아-198화 (198/201)

제198화 고인물은이겼다.

촤라라라락.

바람이 불지 않아도 스스로를 허공에 훑고 지나가는 경전은 마치 노랫소리와 같았다.

뭔지 몰라도 저기에서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시공간이동자의 블링크로 건너편의 적에게 달려드는 순간이었다.

콰과과과광!

"저 미친놈이 시체폭발을 써?"

"저 새끼 진짜 미친 놈이네!"

지면을 두들기는 폭음과 그걸 비집고 들어오는 적들의 고함.

황금추적자가 쓴 시체폭발은 악마신관이 쓰는 스킬 중에서 가장 악랄한 것이다. 주변의 시체를 피아를 구분하지 않고 폭발시키는데 그때 상대의 경험치도 미량이지만 소모하는 점에서 최악의 비매너 행위로 꼽혔다.

저 스킬을 지금에서야 쓸 줄은 몰랐다.

지금이야 한통속이지만 막피를 일삼는 길드에게 저걸 쓰면 뒷일이 좋지 않을 것이기에 저의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분신 죽였으면 되잖아!"

황금추적자는 역반하장으로 나왔다. 그의 말마따나 주변에 시체를 두둑하게 깔아둔 이면의 그림자가 전멸했다.

구구구구궁.

문제는 그 뒤였다.

시체폭발에 함정들이 폭발을 잇자 동굴 입구가 흔들리며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내 공격을 피해 그쪽으로 물러났던 적들이 고스란히 갇혔다.

"야이. 개새끼야! 우리 애들 갇혔잖아."

"이 미친놈이 아주 지랄을 하는 구나!"

"푸하하하!"

개판이 눈앞에 펼쳐지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처럼 비행 스킬이나 벽타기 스킬이 없다면 저 강제된 퀘스트를 깨기란 요원할 터였다.

저 혼란을 틈타서 공중으로 날아 올랐다. 아직 쉴드가 두둑하니 바호크의 손도끼로 공격을 하며 적들을 하나씩 줄였다. 당장이라도 분열될 줄 알았던 적은 죽었던 이들이 합류해 머릿수를 채웠다.

"보상은 다 한다. 저 놈을 죽이라고!"

황금추적자의 저 외침이 적들의 불만을 다소 억누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봐야 승기는 내게 넘어왔다.

하늘은 동굴처럼 공간적인 제약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수한 함정이 설치되지도 않았다.

독수리의 요새와 미다스 길드 때의 습격이 또다시 재현될 뿐이었다.

"길드장! 저 새끼 못 죽이겠는데?"

"계속 죽어야하는 거야?"

"씨발. 이거 언제 복구하냐고!"

미다스 길드원들이야 상하관계가 확실하니 저런 불만이 없었지만, 학살과 즉살 길드원들은 아니다.

내 기억이 맞다면 학살 길드장인 블러드소울만 세 번이 죽고 즉살 길드장 데몬이 네 번을 죽었다. 그나마 강한 그들이 그런데 나머지는 어떨까.

경험치나 아이템 복구비용이나 나 하나 잡겠다고 죽기에는 불만이 차곡차곡 쌓일 수밖에 없다.

나를 잡으면 조금이라도 해소가 되겠지만, 이미 공중을 제압한 상황에서는 죽음은 요원한 일이었다.

혼자서 적들을 유린하는 것은 쉽지만, 캐릭터에게 부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스태미나가 고갈되려고 하기에 동굴 위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저 새끼 또 동굴 위로 튀었잖아!"

"기어 올라가. 스태미나 회복하게 두지마라고!"

오랫동안 비행에 지친 캐릭터에게는 간헐적으로 휴식이 필요하다.

동굴 위에 앉아있으면 적들은 다급히 나를 잡으려고 했다.

타앙! 타앙!

고개를 살짝 내밀자말자 마크스맨들이 저격을 했다. 총열이 겨누어지는 순간에 숙였기에 총알은 내 머리 위를 시치고 지나갔다.

[창공의 독수리를 사용합니다.]

스킬을 써서 동굴의 벽을 기어오르는 적을 확인했다.

양쪽에 다섯 명씩이었는데 수풀이 우거진 우측이 저격을 맞지 않을 확률이 높아보였다.

문제는 그쪽으로 가기 전에 적의 소환수들이 위를 덮쳐온 것이다.

칠왕의 사령과 망자의 원혼 등 비행이 가능한 개채였기에 절벽을 오르는 적을 공격할 생각은 버렸다.

여기서 황금추적자가 나름대로 머리를 쓴 것은 칠왕의 사령을 제일 앞에 배치를 한 것이다.

칠왕의 사령을 보면 후미의 개체의 체력이 닳아있었는데 연쇄폭발을 역으로 사용해 날 공격하려는 것 같았다.

그걸 허락할 수 없어 칠왕의 사령을 공격해 터트렸다.

그 사이에 적들이 동굴 위로 하나씩 올라왔다.

"저 새끼 지쳐있다. 잡아!"

"양쪽에서 덮쳐!"

내게 달려오는 놈들은 거센 목소리와 달리 주눅이 들어 있었다. 당장에 공격을 하려는 자세만 취해도 바닥을 구르며 피하려다가 다시 아래로 미끄러져 떨어질 정도였으니까.

그 멍청이들을 도륙낸 뒤에 다시 위로 날아 올랐다.

두둥.

곧바로 죽음의 표식이 겨누어졌다.

[고속비행을 사용합니다.]

스태미나 소모가 아쉽지만 저걸 피하려면 이게 제일 확실하다.

전보다 빨라진 비행속도에 죽음의 표식이 몸에서 어긋나졌다.

마크스맨들이 상체를 비틀며 죽음의 표식을 당겼지만 그때마다 고도를 바꾸어 가볍게 벗어났다.

그 사이에 남은 이들이 스크롤을 찢어 소환수를 소환했다.

모두 비행이 가능한 것들로 어떻게 해서라도 내 발을 묶겠다는 의미로 보였다.

그러면 더 위로 올라갔다.

지상의 적들이 시야에서 멀어졌어도 날 쫓아오는 소환수들만은 고스란히 보였다.

놈들을 모조리 죽인 이후에 이면의 그림자를 사용했다.

"여기서 잠깐 대기."

스킬을 사용한 것은 적들에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다시 아래로 내려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총알과 화살이 쏟아졌다.

30초가 넘는 시간 동안에 근접직업군들조차 원거리 무기로 바꾼 것이다. 처음부터 저렇게 방향을 바꿨으면 적들에게 더 유리했을 것이다.

손가락을 까닥이며 이면의 그림자들의 위치를 움직였다.

적들이 밀집한 곳의 머리 위에 움직이게 만든 뒤에 지면강타를 사용했다.

후우우우우웅!

"뭐, 뭐야. 저건 언제 쓴 거야!"

"도망쳐! 놈들이 온다!"

첫 번째 지면강타를 쓴 이면의 그림자가 낙하하자 적들은 황급히 흩어졌다.

적들의 선택지에는 마인시티로 가는 동굴의 입구는 없었다.

콰아아아아앙!

첫 번째 이면의 그림자가 바닥에 처박혔다. 거기에 휩쓸린 적은 겨우 셋에 불과하다.

미안하지만 놈들은 머리 위를 못 봤다.

콰아아아앙!

"제, 제기랄 하나가 더 있잖아!"

"몇이나 살아남은 거지?"

"학살 일곱 명!"

"즉살 길드 전멸! 즉살 전멸!"

뒤이은 두 번째 지면강타에 적들이 대폭 줄어들었다.

서로 브리핑도 잘 되는 덕분에 일일이 세지 않아도 될 정도다.

"뭐야. 황금추적자도 죽었네?"

사망자 중에 그도 있음은 반가운 일이다.

"…기다려. 우리는 빠지겠다."

잠깐 눈치를 보던 학살 길드장 블러드 소울이 황금추적자의 시체를 보더니 급히 두 손을 들어 올렸다.

"투항인가?"

"포기다. 여기서 손 떼겠다."

"꺼져."

물러나는 적들을 굳이 잡을 필요는 없다.

블러드소울은 화색을 띄우더니 급히 자판을 두드리며 물러났다.

짝짝짝.

"역시 강하시네요."

텅 비어진 전장에 누군가가 박수를 치며 다가왔다.

적인가 싶어서 다급히 도끼를 던지려고 했지만, 닉네임을 보고 손을 거뒀다.

"다크로얄1이네. 어쩐 일이죠?"

"직접 이야기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황금추적자가 당신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고 해서요."

다크로얄1.

다크로얄의 간부들 중에 한 명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의 발언력을 가진 놈이 내게 더 가까이 다가왔다.

"작업장 피해보상이라고 청구하시게요?"

다크로얄이 아직도 황금추적자를 품어줄 마음이 있는 것인지 최종적으로 확인이 필요하다.

뒤늦게라도 마음이 바뀐다면 내게도 썩 좋은 상황은 아닐 테니까.

물론 두렵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귀찮을 뿐이다.

"아뇨. 그럴 생각은 아닙니다. 당신과는 계약관계도 아니고 적대적인 관계도 아니니까요."

그 대답은 바라던 바였다.

기대대로 대화가 풀리고 있으니 보다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면 뭐죠. 아직 PK가 진행 중인데 혹시 방해를 하실 생각입니까? 그게 아니라면 중재?"

"둘 다 아닙니다. 황금추적자에 대한 건은 본사에서도 강경하게 대응할 예정입니다."

"어떤 식으로죠?"

"3등급으로 낮추어 그간의 혜택을 뺏을 겁니다. 또한 엘리멘탈 소울2가 아니라 다른 게임으로의 전향을 권유하겠죠."

다른 게임에서 밑바닥부터 시작하라는 말이기에 저건 말이 좋아 권유지 강제다.

"황금추적자가 절 통제하려고 한 것에 다크로얄은 관여하지 않았다입니까?"

"예. 물론이죠. 저희는 이번 사태에 대해서 당신에게 피해를 가하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물론 저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다.

"그쪽이 원하는 조건은?"

"본사와 거래를 할 의향이 있냐는 겁니다."

"독점은 반대입니다."

"네. 물론이죠. 독점은 차후에 생각하십시오."

상대가 저렇게 나오는 것을 보니 아예 작정을 한 것 같다. 그만큼 내 위치가 올라갔다는 것을 반증하기에 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잠깐 이야기를 멈추죠. 선객이 있으니까."

"아. 그렇군요."

뒤를 가리키자 다크로얄1은 순순이 뒤로 물러났다.

"…무슨 짓을 한 거냐."

황금추적자는 나와 다크로얄1을 번갈아 노려봤다.

"두 길드를 말하는 거라면 알아서 빠지던데?"

"……."

"왜 그래? 방금 전까지 기세 좋게 덤비던데. 보는 눈이 있어서 그런가?"

다크로얄1이 있는 것이 그렇게 큰 의미일까.

황금추적자가 똥 마려운 개처럼 아무것도 못하는 꼴이 우습기만 할 뿐이었다.

"네 레벨이 바닥까지 떨어질 때까지만 죽자."

전의를 잃은 황금추적자의 머리를 바호크의 손도끼를 보내 터트렸다.

[썩이나감 : 황금추적자에게 원한이 있는 애들 몇이나 있지?]

[궁신 : 대충 스무 명은 됩니다. 다들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어요.]

[썩이나감 : 마인시티에서 황금추적자 보이면 귓말해주라. 지금부터 녀석만 통제한다.]

[궁신 : 어차피 그놈 하나면 제 선에서 처리하겠습니다. 형님.]

궁신은 기다렸다는 듯이 마인시티의 각 채널마다 사람을 배치하겠다고 말했다. 그것만 봐도 황금추적자가 얼마나 훌륭하게 업계 생활을 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황금추적자에게 본사의 뜻을 다시 말했습니다. 다음 거래 때 뵙도록 하죠."

다크로얄1도 적당한 선에서 정리가 되자 그 말을 남기며 사라졌다.

뭔가 끝나는 분위기가 된 것 같지만, 아직 마무리는 짓지 못했다.

[궁신 : 5채널에 녀석이 있습니다.]

[썩이나감 : 길막만 해라.]

궁신의 연락에 답을 한 이후에 곧바로 마인시티로 날아갔다.

"살인범이 나타났나!"

"반드시 잡아야 한다!"

한바탕 시원하게 PK를 한 덕분에 마인시티에 들어서자마자 경비병들이 내게 총을 겨눴다.

타앙! 탕!

내 입성을 축하라도 하듯이 쏘아지는 총알을 피하며 광장으로 날아갔다.

"푸하하하!"

광장에 펼쳐진 광경을 보자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궁신을 포함해 골드캐시였다가 쫓겨난 놈들이 둥그렇게 모여서 황금추적자를 에워싸고 있었으니까.

"이, 이 자식들이! 비켜! 당장!"

황금추적자는 그들을 밀어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근력 스텟이 모자란 직업군은 저런 노골적인 길막을 피해낼 수 없다. 그래서 놈은 긴급히 손가락을 허공에 뻗었다.

채널을 옮겼는지 궁신을 포함한 이들이 똑같이 사라졌다.

[궁신 : 형님 15채널입니다.]

궁신에게 온 답에 곧바로 15채널로 바꾸니 포위하는 사람만 바뀌었지 똑같이 황금추적자를 압박하고 있었다.

황금추적자가 다시 채널을 옮기려고 하기 전에 바호크의 도끼를 놈의 정수리에 던졌다.

[당신이 황금추적자님을 PK하셨습니다.]

황금추적자는 내가 다가온 것도 몰랐는지 아무것도 못하고 죽었다.

다시 놈이 부활할 장소는 궁신 무리가 알아서 대기를 탔다.

"이 버러지들이!"

황금추적자는 부활 직후에 무적상태가 되었어도 여전히 궁신무리를 뿌리치지 못했다.

"업계 사람끼리 이렇게까지 해야하는 거냐? 응?"

황금추적자는 나를 보며 연민을 호소했지만 이때까지의 그를 생각하니 가소롭기만 했다.

"인생은 B와 D사이의 C라지.  빚과 대출 사이에서 네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캐릭터 삭제밖에 없어. 씹새끼야."

다시 한 번 황금추적자의 머리를 도끼로 쪼개버렸다.

세 번, 네 번째도 같은 상황이 펼쳐지자 황금추적자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아예 로그아웃을 해버렸다.

"형님. 이따가 놈이 오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썩님 덕분에 오랜만에 속 시원하네."

"황금이 저 새끼 진짜 담구고 싶었다고."

궁신을 포함한 놈들은 그것만으로도 기쁜지 시시덕거렸다. 그들이 사라지고 난 뒤에 주변의 풍경은 묘하게 바뀌었다.

마계와 스피릿 길드 같이 나와 적대를 한 길드의 유저들이 슬금슬금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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