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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은 옷을 입지 않아-197화 (197/201)

제197화 고인물은깼다.

썩이나감의 분신은 소문보다 더 강했다. 동굴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학살과 즉살 길드의 절반이 고스란히 죽어 나갔다.

"왜 막아 둔 거냐?"

학살 길드장 블러드소울은 무너진 동굴 입구를 보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썩이나감에게 가장 까다로운 것은 비행보다는 이단의 그림자였다. 비교적 협소한 동굴이기에 그때에 PK 확률이 높아질 터였다.

"시간을 벌어야지. 준비해라."

"녀석이 마인시티로 튈 건데?"

"바로는 못 튀어."

"확실해? 그냥 가둬 둔 것뿐이잖아."

전이라면 호언장담하는 황금추적자에게 믿음을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그를 블러드소울은 덜컥 믿을 수 없었다.

골드캐시마저 사라진 이상 개인역량으로 썩이나감보다 앞서는 다크게이머는 현 시점에서 없다고 봐야만 했다.

"못 나와. 그거 퀘스트거든."

"퀘스트면 포기하면 그만이다."

"포기 못해."

황금추적자의 자신감에는 이유가 있었다.

*       *       *

[마인시티의 위기.]

-갑작스런 충격으로 마인시티의 입구가 무너졌다. 3분 안에 이곳을 탈출해 그 위험을 마인시티의 시장에게 알리도록 하자.

-완료 조건 : 시장에게 보고.

-실패 조건 : 마인시티의 파괴.

갑자기 퀘스트가 뜰 줄은 예상도 못했다.

뒤를 돌아보니 마인시티로 가는 방향도 무너졌다. 아예 가둬진 상황인 것이다.

강제된 퀘스트는 곧바로 시간이 녹아들고 있었다.

어떤 퀘스트인지 모르지만 이것이 황금추적자가 마련한 함정일 것이다.

지형을 이용해 억지로 퀘스트를 선물해 줄 수 있다는 건 나도 생각조차 못했다. 오히려 이걸 어떻게 알아냈나 싶은 정도다.

"그냥 죽으면 땡이지."

미지의 퀘스트에 호기심과 승부욕이 돋는 것은 사실이다. 거기에 눈이 팔려서 중요한 목적을 잃어버릴 정도의 바보는 아니다.

3분이면 그대로 죽음을 맞이하면 된다.

쿠구구구구.

동굴에 강한 지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게임 중에도 어지러움을 느낄 정도였는데 2분이 끝나자마자 천장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 무너지는 곳에 다가가 기꺼이 죽음을 맞이했다.

[YOU DIED.]

죽은 뒤에는 불사자의 영혼함에서 부활했다. 그래봐야 마인시티의 증기기관 위였기에 다시 바깥으로 향했다.

다시 동굴의 입구에서 황금추적자의 모습이 보였다.

놈을 향해 힘껏 날개짓을 할 때였다.

콰과과과광!

다시 동굴의 길목이 무너져 내렸다.

[퀘스트가 등록되었습니다.]

"또 폭발시킨 건가?"

문제는 무너져 내리기 전의 폭음이 들리지 않았거니와 황금추적자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도화선도 없었기에 바깥에서 함정을 발동시킨 것 같지 않았다.

"이건 또 생겼네."

다시 3분의 시간제한이 생겼다.

어떤 조건에 충족되어야 해서인지는 몰라도 일단 적이 앞에 있다면 이 퀘스트는 반복이 되는 것 같다.

[이면의 그림자를 사용합니다.]

"부서."

그렇다면 퀘스트를 공략하면 될 뿐이다.

이면의 그림자를 바호크의 손도끼로 바꾸어 마인시티 방향을 뚫게 했다.

반복퀘스트만 아니면 어렵지 않아 보였다.

쾅! 쾅! 쾅! 쾅!

통로를 막은 잔해를 두드리는 것은 너무나 쉬웠다. 일격일격이 너무나 강해서 금방 잔해가 부서져 통로가 보였다.

문제는 그 뒤였다.

쿠구구구궁.

2분대가 지나서야 시작될 지진이 30초도 되지 않아서 발동된 것이다.

[등가교환의 배리어를 사용합니다.]

"귀찮네."

머리 위로 잔해가 떨어지기 전에 이면의 그림자가 만든 구멍으로 빠져나왔다.

이면의 그림자도 뒤따라 올 때였다.

콰과과과광!

잔해가 떨어지며 앞에 새로운 벽에 생겼다.

이면의 그림자로 그걸 다시 뚫으며 지나갔지만 재차 벽이 생겼고 2분이 자나자 본격적으로 잔해가 머리 위로 떨어졌다.

"진짜 귀찮네."

이때는 나도 바호크의 손도끼를 들어 공간을 만들었다. 그걸 비집고 들어가다 떨어지는 잔해는 대폭 늘었다.

퍼억!

"제기랄."

앞을 계속 뚫다가 바위 하나가 머리에 떨어졌다. 한 번에 실피가 남았는데 수호자의 날개가 주는 방어력이 아니었다면 즉사였을 것이다.

이면의 그림자도 잔해에 맞아서 3분을 채우기도 전에 사라졌다.

"이거 답이 없네."

잔해를 피하면서 통로를 벗어날 방도가 보이지 않았다.

[YOU DIED.]

다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황금추적자를 재차 쫓아가자 똑같이 동굴이 무너지며 퀘스트가 반복되었다.

"이게 맞아?"

이번에도 황금추적자는 날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이면의 그림자도 쿨타임인지라 그냥 죽음을 맞이했다.

당장에 이 퀘스트를 깰 방도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랬다가는 상대에게 시간을 줄 뿐이다.

마인시티에는 샛길도 있으니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갈 수 없다?"

본래 뚫려있던 샛길은 거짓말처럼 막혀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거길 공격했지만 아무리 공격을 해도 조금의 흠집도 나지 않았다.

황금추적자가 왜 동굴 입구에서 대기를 탄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이건 정말이지 제대로 엿 먹일 수 있는 퀘스트였다.

"그래도 놈은 깼다는 거니까."

각 도시 별로 텔레포트를 쓸 수 있으니 그걸 쓰기 위해서 담당NPC에게 갔다.

안에서 못 나가면 바깥에서 움직이면 될 뿐이다.

"죄송합니다. 현재 지진이 심해져서 텔레포트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뭐?"

"시장님의 명령이 있었으니 절대 사용이 불가능합니다."

"……."

돌아오는 답에 입안이 썼다.

도대체 황금추적자는 이딴 퀘스트를 어떻게 받아낸 것일까.

히든레코드에 해당 정보에 관련해서 살폈지만 아무런 것도 건질 수 없었다.

황금추적자가 의도해서인지 사고가 났든지 그 혼자만 알고 있는 것이라 봐야만 한다.

내가 오크펠슨과 아웃사이더 시티에 있는 동안에 일어난 것이니 놈은 이것에 대한 해결책을 알 것이다.

"시장이 키워드야."

그가 한 것을 내가 왜 못할까.

곧바로 시장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정지. 범죄자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돌아가라. 이 사악한 녀석."

문제는 NPC들이 날 들여보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PK 페널티는 끝났지만 내가 워낙 카르마 수치가 높은 댓가이기도 했다.

"와. 이러면 어떻게 해야 하려나."

설마 이런 식으로 마인시티에 갇히게 될 줄은 몰랐다. 학살과 즉살 길드도 아예 이곳에서 모습을 감췄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정도의 인복은 없으니 새로운 샛길을 찾거나 이 퀘스트를 깨는 수밖에 없다.

"분석을 좀 해 보실까."

내가 죽었을 때의 영상을 다시 돌려봤다. 0.3 배속에 화면밝기도 최대한 밝게 한 뒤에 몇 번을 살폈다.

"쓰읍. 특별하게 걸리는 것이 없는데."

아무래도 이것만으로는 특별한 것을 찾을 수 없다. 그래서 퀘스트에 걸리기 전에 출입을 했던 것을 살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천장이었다.

지진 후에 무너져 내린다지만 묘하게 천장이 반짝였다.

"저건가."

앞으로도 뒤로도 가기는 요원하다. 그렇다면 위나 아래를 노리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다.

"하이리스크 노 리턴일 수 있겠네."

비행도 가능하고 벽타기도 가능하니 천장에 붙기는 쉽다. 문제는 잔해가 떨어지는 것을 직격으로 맞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도 가만히 손가락을 빨고 있는 것보다야 훨씬 낫다.

쿠구구구궁!

다시 입구로 날아갔다.

잔해로 시야가 가려지며 날 비웃는 황금추적자의 얼굴이 고스란히 들어왔다.

"다크로얄에서 내쳐진 놈이 뭔 자신감으로 쪼개는 거야."

설마 날 붙잡고 있으면 자신의 평가가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잘나가던 팀을 폭발시키고 사업도 날려먹은 주제에 짬타이거 출신들과 엮인 순간부터 그딴 것은 없다.

놈의 업계평판은 이미 수직낙하하고 있었다.

"아니면 내가 계속 죽기를 바라는 건가."

그게 목적이라면 우습기만 하다.

독고무적이나 흑군의 입이 참 무거워서 다행이구나 싶을 뿐이었다.

내게는 죽음에 대한 페널티가 없다는 걸 알면 저런 식으로는 절대 나오지 못했을 것인데.

"기쁜 마음으로 놀아볼까."

황금추적자도 멍청한 놈이 아니니 내 레벨이 다운되는지 아닌지 정도는 살피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죽어도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 것인지가 궁금할 뿐이다.

바닥을 박차고 날아올라 천장을 살폈다.

구구구구궁.

지진이 시작되고 천장은 얇은 금이 갔다. 거길 빠르게 훑어보자 틈 사이에서 옅은 빛이 보였다.

"여기다."

그 틈에 수호자 미크엘의 장검을 찔러 넣고 비틀었다.

콰드드득.

천장이 부서져 내리며 작은 구멍에는 희미한 빛이 새어나왔다.

[이면의 그림자를 사용합니다.]

"부숴."

퀘스트를 깰 방도를 찾았으니 거부할 이유 따위는 없었다.

이면의 그림자와 함께 빛을 따라 검을 찔러 넣었다. 틈이 커져 구멍이 되었다.

2분이 되어 천장이 내려앉을 때는 거기에 어떻게든 몸을 쑤셔 넣었다.

쿠구구구구.

천장의 구멍은 마인시티에서 나오는 빛과 연결이 되어 있었다. 우려와 달리 구멍은 모래처럼 쉽게 파헤쳐졌다.

이면의 그림자가 앞으로 치고 나가다 빛이 끊겼다.

콰르르릉!

바닥이 무너지며 잔해와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날개를 펴서 추락을 피하고 주변을 둘러보자 동굴의 잔해는 딱 내 뒤까지만 무너져 내렸다.

미니맵을 보면 대충 5차 벽까지 나올 거리인 것 같았다. 그냥 무식하게 치고 나갔으면 살아갈 방도는 없었으리라.

"입구가 무너지다니. 무슨 일인가!"

남은 시간 때문에 다급히 달려가자 경비NPC들과 함께 마인시티의 시장 스탕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자네가 혼자인가? 누가 다치지는 않았고?"

"저 뿐이었습니다."

"휴우. 다행이군. 범죄자 한 명이라면 아무런 피해도 없는 거니까."

스탕은 내 보고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런 반응을 보자니 가급적이면 도시에서 PK를 좀 사려야만 할 것만 같다.

계속 이 패턴이라면 마인시티에서 정상적인 퀘스트 진행이 불가능하게 될 지도 모른다.

"어쨌든 알겠네. 금방 입구는 복구가 될 것이야."

스탕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몇 푼의 금화를 쥐어주더니 사라졌다.

입구는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왔지만 내 선택은 샛길이었다. 거기로 빠져나가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마인시티로 가는 동굴입구 위에 멈춘 다음에 창공의 독수리로 시야를 확보했다.

미니맵에 수십 개의 점들이 빠르게 찍혀졌다.

날 죽이려고 했던 놈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폭탄을 던져볼까."

지면까지 약 1km가 떨어져있다.

지면강타가 무적은 아니라 여기서는 쓰지 못하지만 적당한 높이에서 떨어진다면 놈들의 대부분이 죽을 것이다.

후우우웅!

날개는 접고 밑으로 떨어졌다. 몸속의 내장이 비워지는 것만 같은 묘한 느낌과 함께 떨어지는 속도에 두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어 반쯤 감겨졌다.

"그 새끼 아직도 못 나오는 거야?"

"뭔지 몰라도 효과 지리네."

"그런데 언제 레벨 다운 되냐."

적들의 대화도 어렴풋이 들릴 때, 날개를 활짝 펴고 균형을 찾았다.

아래로 쏠려있던 머리가 위로 돌아오고 발밑에 적들을 온전히 시야에 담은 이후에 지면강타를 사용했다.

콰아아아앙!

"뭐, 뭐야. 갑자기!"

"뭔가 떨어졌다!"

내가 떨어진 곳은 마인시티 옆의 수풀이었다. 적들이 가장 많이 밀집한 곳이라 눈대강으로 대충 스무 명은 될 것만 같았다.

"네가 어떻게!"

하늘에서 떨어진 날 보며 황금추적자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나에게 강제로 준 퀘스트에 절대적인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다.

[이면의 그림자를 사용합니다.]

[결사항전의 영역을 사용합니다.]

[스피어마스터의 소울을 사용합니다.]

"지금처럼 찢었지."

지면강타로 쉴드도 채웠으니 이면의 그림자도 나도 눈에 먼 공격에 죽을 일이 없다.

다시 사냥꾼과 사냥감의 자리가 올바르게 갖춰졌다.

내가 직접 수호자 미크엘의 장검을 들고 적에게 달려들었고 이면의 그림자들은 바호크의 손도끼로 날 지원했다.

내가 하나를 죽이자 이면의 그림자가 넷을 지우는 아주 바람직한 그림이 맞춰졌다.

"저 새끼 도대체 뭐냐고!"

"저걸 어떻게 잡으라는 거야!"

"진짜 레벨다운 된다고!"

적들은 제대로 된 저항도 못하고 죽어 나갔다.

황금추적자는 그걸 보며 이를 부득부득 갈며 손에 쥔 경전을 높게 들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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