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6화 고인물은당했다.
시공간이동자의 배리어는 이미 빠졌다.
황금추적자의 준비성이라면 아마 이 일대는 함정으로 가득할 것이다.
아까 전의 폭파범위를 본다면 백스탭으로는 회피가 불가능하다.
[등가교환의 배리어를 사용합니다.]
[결사항전의 영역을 사용합니다.]
함정에 위험한 것은 결국 내 방어력이 부족해서다. 일단 스킬로 몸을 보호한 뒤에 수호자 미크엘의 장검으로 바꿨다.
사령을 이걸로 죽인다면 나도 폭발에 휘말리는 도박수이지만 지금은 이것 말고는 황금추적자에게 살아남는 방법이 없다.
콰앙! 콰아아앙!
칠왕의 사령이 팔을 뻗기 전에 검이 놈을 터트렸다. 폭발에 휘말린 다른 칠왕의 사령들이 연달아 폭발에 휘말렸다.
쉴드는 사라졌지만 체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움직임이 좀 다른데."
특이점이라면 줄줄이 달라붙어야 할 칠왕의 사령이 사방으로 흩어진 것이다.
저 스킬이 유저가 쓸 경우에 조작이 가능한 것도 지금 알았다.
"너의 30초. 받아가겠다!"
"응. 튀면 그만이야."
함정의 유지시간도 끝났으니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그때 마주친 황금추적자의 눈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투두두두두둥!
동굴의 위쪽에서 활 사위를 튕기는 소리가 먼저 들렸다. 시야를 돌리자 번쩍이는 화살촉 뒤에서 캐스팅 중인 스킬들이 보였다.
저걸 모두 피할 수는 없다.
지면강타를 사용해 곧바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머리 위로 화살과 스킬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공격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두둥.
작은 진동과 함께 내 머리와 심장에 표적이 그려졌다.
막스맨에 속한 저격수 스킬트에 있는 죽음예고라는 스킬이었다. 저 표적에 계속 겨눠지면 곧 내 숨통을 끊을 사격이 가해진다.
피할 곳을 찾아야만 하지만 날아오르지 못하게 위쪽으로 지향사격이 가해지고 있고 황금추적자는 내가 동굴로 숨지 못하게 그쪽 방향으로 미리 공격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건 내 패착이다.
지면강타를 쓰지 말고 더 공중으로 날아가야만 했다. 혹은 수호자 미크엘의 장검을 쓰지 말았거나.
황금추적자의 골드캐시마저 깨지는 바람에 혼자서 왔을 거라고 생각해버린 내 실수다. 놈이 직접 온 순간부터 의심했어야했는데!
콰과과과광!
허공을 두드리는 스킬샷들이 점점 아래로 내려온다.
서서히 조여오는 공격들을 보며 도박을 거는 수밖에 없다.
약간의 차이로 죽음예고의 표식이 사라졌다. 그때를 노리며 백스탭을 사용했다.
타앙! 타앙!
"큭!"
적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영악하다. 시간차로 쏘아진 두 번의 총격은 한 발은 피했지만 다른 하나는 피할 수 없었다.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러 튕겨내기를 시도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당신은 아수라에게 PK를 당하셨습니다.]
[YOU DIED.]
죽음과 함께 뜬 알림에 눈이 찌푸려졌다.
아수라라면 나도 잘 안다.
엘리멘탈 소울2에 약자들만 노리고 막무가내로 PK를 하는 학살 길드에 속한 준랭커였으니까.
짬타이거 출신이라는 업계의 소문이 있던 놈에게 황금추적자가 손을 뻗은 것이다.
* * *
[당신이 썩이나감님을 PK하였습니다.]
"내가 변태새끼 잡았다!"
아수라는 올빼기의 저격총을 움켜쥐며 소리쳤다.
현 시점에서 제일 강하다고 평가를 받고 있는 썩이나감을 자신의 손으로 죽인 것이다.
"입금해라! 당장!"
절벽을 바로 뛰어내려 체력의 손실을 입었음에도 괘념치 않고 곧장 황금추적자에게 달려갔다.
"물론이다. 이대로 녀석을 더 죽이면 된다."
"하아? 무슨 소리야. 이미 잡았잖아."
"선수금은 줬잖아. 아직 녀석의 레벨도 떨어지지 않았다고."
황금추적자로서가 맺은 조건은 썩이나감을 겨우 한 번 죽이는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3일 동안 썩이나감의 레벨을 하나씩 떨어트릴 때마다 단계별로 보상을 주는 식이었다.
"포상금은 줘야지. 전에는 준다고 했다며."
"맞아. 그러지 않으면 일 못하지."
"우리가 널 어떻게 믿냐고."
"돈 아니면 우린 못 움직여."
학실 길드원들은 옆에서 불만을 표출했다.
"…제대로 해라."
황금추적자는 인벤토리에서 10만 원가량의 가치의 미스릴 주괴를 건네줬다.
"우리 믿으라고. 그 새끼 이제 접을 테니까."
"뭘 하더라도 방심하는 순간 끝이야."
"그 놈 잡고 용돈이나 타자."
학살 길드원들은 히히덕 거리며 다음을 준비했다.
* * *
"랭커는 없으니까 문제는 없겠지."
부활지점을 갱신하지 않아 되살아난 곳은 마인시티였다.
학살 길드가 랭커가 아니지만 소문대로 짬타이거들이 섞여있다면 거기가 오히려 더 까다로울 것이다.
빨간약파란약에게 해당 내용을 물으려는데 알 수 없는 이상한 기척이 느껴졌다.
[등가교환의 배리어를 사용합니다.]
스킬을 쓰며 날아오름과 동시에 몸이 휘청거렸다.
"쳇. 눈치를 챘나."
누군가가 몰래 내 뒤에 다가와 창으로 찌른 것이다. 즉살 길드로 학살 길드와 똑같은 놈들이 있는 곳이었다.
먼저 공격을 당했으니 역으로 놈의 머리를 가르며 날아올랐다.
건물 옥상마자 대기를 하고 있던 즉살 길드가 공격을 했지만 더 위로 올라가 놈들의 공격을 피했다.
[썩이나감 : 학살 길드랑 즉살 길드가 황금추적자와 붙었습니다. 놈들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빨간약파란약 : 짬타이거가 속해있다는 소문은 알고 계십니까.]
[썩이나감 : 그래서 묻는 겁니다. 일반적인 길드는 아닌 것 같아서요.]
[빨간약파란약 : 본사에서는 전원이 신분세탁을 한 짬타이거 출신으로 보고 있기에 그들과의 거래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돌아오는 답변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업계 사람이 그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그렇게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다. 물론 학살과 즉살 길드쪽은 아니라고 발뺌을 하겠지만 황금추적자가 궁지에 몰렸음은 확실하다.
[썩이나감 : 황금추적자와 놈들이 같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빨간약파란약 : 저희도 파악하겠습니다. 소문대로 다크로얄에서는 황금추적자를 빼겠군요.]
[썩이나감 : 그런 소문이 있나요?]
나도 모르던 것에 귀가 솔깃했다.
빨간약파란약에게 들으니 이번 불법프로그램의 일로 다크로얄도 제법 손해를 봤다고 했다.
한국서버의 작업장은 모두 날아갔고 발 빠른 외국서버 몇 곳에서도 움직였다고 했다.
모든 사업이 날아간 것은 아니지만, 다크로얄에서는 이번 일로 황금추적자를 아예 쳐내기로 했다는 거다.
[빨간약파란약 : 골드캐시가 깨지게 된 과정도 한몫은 할 것입니다. 고객님이 들쑤시는데 대놓고 작업을 돌렸으니까요.]
[썩이나감 : 그러니까요. 아주 병신 같은 판단이더라고요. 녀석답지 않게.]
[빨간약파란약 : 아마 골드캐시의 누군가가 몰래 돌린 것 같지 않나 싶습니다.]
거기에는 적극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황금추적자가 팀을 깨트릴 정도면 그때 한 두 명이 연루된 문제가 아니었던 것 같다.
어쨌든 팀원의 잘못은 팀장이 질 수밖에 없다.
[썩이나감 : 그렇다고 짬타이거 출신들과 손을 잡을 필요가 있나요?]
[황금추적자 : 고객님에게 반드시 타격을 줄 이유가 있는 것 같군요.]
나에게 타격을 준다. 거기에는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서로 죽고 죽이면 피해를 보는 것은 나 이외에 전부였으니까.
[썩이나감 : 정보 감사합니다. 즐겜 하고 오죠.]
내가 어디를 가도 쫓아온다면 보이는 족족 사냥을 해주면 된다.
다시 제일 커다란 증기기관에 불사자의 영혼함을 싣고 마인시티 위를 떠다녔다.
아까 전에 본 길드 옥상의 놈들이 목표였다.
"학살 길드에게 뺏길 수 없지!"
"용돈 타가자. 잡아!"
"저 새끼 레벨만 떨궈!"
"이미 한 번 죽였어!"
"쉴드 없어서 금방이야!"
고도를 낮추자 놈들이 신이 나서 공격을 시작했다. 그걸 보면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설마 이런 취급을 받을 줄이야.
세상물정 모르는 놈들이 코앞에 있다.
내가 고작 저놈들에게 통제당해 죽을 것 같았으면 진즉 썩이나감이라는 캐릭터를 버려뒀을 것이다.
[고속비행을 사용합니다.]
"몇 번이고 쉽게 죽어줄 것 같았나?"
내가 죽었던 것은 단순히 황금추적자가 판을 잘 깔아뒀기 때문이다.
약한 유저들한테 깽판이나 치는 놈들 따위가 가볍게 볼 상대가 절대 아니란 말이다.
[이면의 그림자를 사용합니다.]
"아예 다 찍어눌러주마."
이면의 그림자를 방패막이로 세우며 공중에서 놈들에게 쉼없이 도끼를 던졌다.
랭커쯤되야 수호자 퀘스트를 하니 내 도끼에 반응을 하지 그 아랫것들은 피하기도 급급해 반격 따위는 꿈도 꾸지 못했다.
독수리의 요새 때 증명된 사실이었다.
"3분만 버텨. 어차피 분신이야!"
"피하지 말고 그냥 죽여. 놈은 랭커라서 더 피해가 커!"
"죽여! 그냥 죽어도 죽이라고!"
이면의 그림자도 제대로 모르고 덤빌 줄은 몰랐다.
거대길드들이 단순히 명분 때문에 나에게 제대로 갑질을 못하는 것인 줄 아는 것일까.
고작 3분이라는 시간 동안에 나는 마인시트를 떠돌며 눈에 띄는 족족 즉살 길드원들을 죽였다.
"저 새끼 왜 안 죽어?"
"3분 되기도 전에 몇 번이나 죽은 거야!"
"이걸 어떻게 이겨!"
"접어. 튀라고!"
"그 새끼가 구라쳤잖아!"
그들은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깨닫기 시작하고 내게서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굳이 놓아줄 마음이 없어 아예 광장에 자리를 잡았다. 수호자 미크엘의 장검으로 바꾸어 놈들이 부활하는 족족 죽여 나가며 쉴드를 채웠다.
"이제는 레벨 다운이라고!"
"왜 한 대를 안 맞는 거야!"
"개X같은 개임!"
그들 나름대로 반항을 하려고 했지만, 그런 반항은 오래가지 않았다.
딱 10분 동안만 죽 치고 있으니 아무도 부활을 하지 않았다.
[썩이나감 : 왜 안 오냐? 쫄았어?]
아예 황금추적자에게 귓속말을 보냈지만 놈에게는 답이 없었다.
"좋아. 힘으로 눌러주마."
최후의 발악을 하는 놈이다. 최대한 추하게 무너트려줄 의향은 충분히 있었다.
마인시티를 나서는 동굴 앞으로 나아가자 썩이나감이 홀로 서있었다.
"이번에는 또 뭘 준비했지?"
"덤벼라."
황금추적자가 다시 스킬을 사용하려는 모션을 취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주변을 살폈다.
동굴 입구쪽에 슬쩍 학살과 즉살의 길드마크가 보였다.
저기에 다같이 숨어있다가 나를 노릴 셈인 것 같았다.
"바보 같은 짓 좋네."
일단 바호크의 손도끼로 바꾸어 먼저 공격을 가했다.
황금추적자는 수호자 퀘스트를 깬 놈답게 피했지만 내 목표는 놈이 아니다.
콰아아앙!
바로 놈이 주변에 깔아둔 함정이었다.
저번처럼 놈에게 시선이 쏠린 것도 아니다.
나 또한 수없이 함정을 설치한 덕분에 주변에 어떤 것이 있나 한 눈에 파악이 되었다.
곰덫부터 시작해 지뢰 등 상위급 함정들이 아무리 좋다지만 결국 바호크의 손도끼면 한 번에 박살나기 일수였다.
[이면의 그림자를 사용합니다.]
"쓸어버려."
내가 황금추적자를 상대하는 사이에 이면의 그림자는 동굴 입구로 보냈다.
"제기랄. 눈치를 챘잖아!"
"분신부터 죽여. 지금 숫자면 가능해!"
"결국 놈은 혼자야."
숨어있던 놈들은 어쩔 수 없이 분신에 반응했다.
이면의 그림자도 결국 AI인지라 한계가 있다지만 워낙 스팩이 좋아 놈들이 처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너다."
30초는 이미 지났다.
내 공격을 피하는 동안에 헐떡이는 황금추적자는 죽이기 좋은 먹이감일 뿐이다.
다시 바호크의 손도끼를 던지며 거리를 좁혔다.
황금추적자는 맥없이 뒤로 물러나다가 칠왕의 사령을 사용했다.
"함정이라도 쓰게?"
시공간이동자의 블링크를 써서 뒤로 물러나 안전거리를 확보한 뒤, 칠왕의 사령을 터트렸다.
황금추적자가 컨트롤을 하더라도 폭발범위까지 줄일 수는 없었다.
칠왕의 사령들이 터지며 내가 미처 제거를 못한 함정들이 터져나갔다.
구구구구궁!
"…이건 머리 좀 썼네."
지형지물도 폭발을 받으면 당연히 변화가 생긴다. 설마 마인시티로 가는 동굴 입구가 무너지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던 바였다.
거리를 확보해둔 덕분에 내가 물러나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황금추적자가 헛물을 켰다고 생각했을 때.
[퀘스트가 등록되었습니다.]
변수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