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5화 고인물은방심했다.
"왜 그랬어?"
"……."
"왜 그랬냐고!"
연이은 물음에도 S2영이아빠는 입을 꾹 다물었다. 개인의 일탈이라고 보기에는 그 여파가 너무나 컸다.
다크로얄과 합작이기에 이 사업의 실패는 평판은 물론 앞으로의 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불법프로그램을 쓴 계정이 아니라 이곳에 있는 전원의 계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리라.
특히 지금처럼 중요한 시기에 프로그램을 돌린 것은 조금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바늘도둑이 소도둑이 된다고 이번이 처음일 것이란 생각도 들지 않았다.
어째서 아무도 몰랐는가.
황금추적자는 그저 눈앞이 먹먹해졌다.
"네들은 알고 있었냐?"
"……."
"개판이었네. 내 팀."
황금추적자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모두가 묵인했다는 말이다.
결국 자신이 다 만들어서 떠먹여주는 수익만으로도 모자랐다는 셈이다. 한계까지 화가 올라온 순간, 오히려 그는 더없이 냉정을 찾고야 말았다.
다 찢어죽이고 싶던 놈들에 대한 아무런 감정도 생기지 않았다.
"꺼져. 다 해체다."
믿을 수 없는 이들과 더 일을 할 수 없다.
갑자기 분위기가 바뀐 그의 통보에 다들 눈치를 보며 사라졌다.
"하! 제대로 당했네."
사고는 이미 터졌다.
업계에서 손을 뗄 것이 아니니 어떻게 수습을 하느냐가 중요한 숙제였다.
[다크로얄1 : 이번 사태에 대해서 윗선에서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에 대한 정확한 보고를 내놓으십시오.]
다크로얄의 직원 중에 스윗이 스카우팅 쪽이라면 다크로얄1은 윗선에게 직통으로 이어지는 연락책이었다.
그가 직접 귓속말을 보냈다는 것은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황금추적자 : 수습할 겁니다.]
[다크로얄1 : 수습이 가능합니까?]
황금추적자는 순간 답을 할 수 없었다. 수습을 어떻게 할 것인가. 사업기반이 완전히 날아간 상태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 이외에는 막연하기만 한 일이다.
'그리고 그놈들이 그걸 기다려줄까.'
처음부터 시작한다면 다크로얄은 황금추적자가 필요가 없다. 다른 서버에 작업장을 차렸듯이 오히려 한국서버에서 그를 제외하고 새로운 작업장을 만들 것이다.
'어쩌면 벌써 시작했겠지.'
이번에 쓴 불법프로그램은 그가 아는 인맥을 통해 만든 것이다.
다크로얄도 그 프로그램이 있으니 이번 사태를 통해 개량해서 새 작업장을 돌릴 터였다.
[다크로얄1 : 대답하십시오.]
[황금추적자 : 시간을 주시면 됩니다.]
[다크로얄1 : 당신을 대체할 사람은 많습니다.]
다크로얄1의 말에 황금추적자는 욕지거리를 참을 수 없었다.
"씨발. 미친 새끼들 지랄하고 있네. 내가 아니라 누가 이만큼 해? 날 대체해? 지랄하지마라!"
다크로얄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
황금추적자는 버려지면 버려졌지 감히 누가 자신을 대체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크로얄1 : 본사는 썩이나감에게 접촉할 것입니다. 그전에 당신의 가치를 보이십시오.]
이어진 귓속말은 그의 역린을 건드리는 통보였다.
[황금추적자 : 놈이 그때까지 게임을 접지 않을 때는 그렇겠지.]
황금추적자는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데드라인이 며칠 남지 않았지만 반드시 녀석만큼은 없앨 생각이었다.
[독고무적 : 지금 시간부로 우리 길드는 너와의 계약을 파기한다.]
[흑군 : 네가 제공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여기서 끝이다.]
[철권 : 명혼 길드는 너와 같이 가지 않기로 했다.]
[지옥귀 : 개털된 것 축하하고 앞으로 연락하지는 마라.]
그사이에 협력을 하기로 한 길드장들의 손절이 연이어지기 시작했다.
[썩이나감 : 그 녀석을 가만히 둘 겁니까. 지금이 아니면 녀석은 계속 당신들의 위에 있을 것인데?]
황금추적자는 저들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했다. 혼자서는 절대로 썩이나감을 감당할 수 없었다.
[독고무적 : 우리의 일이다. 넌 빠져라.]
[흑군 : 귀찮게 하지마라.]
[철권 : 명혼 길드는 너를 거부한다.]
[지옥귀 : 네다병.]
"……."
어떤 길드장의 답변도 긍정적인 것은 없었다.
황금추적자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썩이나감보다 자신이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보여야만 할까.
'내가 뭘 해야하지?'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수습해야만 할까. 끈이 떨어진 연이 된 자신을 도와줄 이들이 있을까?
황금추적자는 인맥이 닿는 대로 연락을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침묵 혹은 비웃음과 거절이었다.
"결국……."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생각이 난 것은 돈 때문에 업계의 불문율을 어긴 이단자들이다.
"내 정체를 안 들키고 놈들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이야 많지."
적금 하나를 깨고 그 짬타이거들을 부르면 된다.
칠대악룡의 무구인 엔비의 반지라면 그들도 환장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 * *
"뭐야. 다 날아갔는데?"
내가 일으킨 여파는 생각보다 컸다.
미다스의 왼손과 오른손을 다시 털려고 했는데 길드건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썩이나감 : 미다스 길드쪽이 왜 다 사라진 거죠?]
[빨간약파란약 : 운영자들이 해체시켰습니다.]
공지사항으로는 며칠은 더 걸릴 줄 알았는데 곧바로 움직일 줄은 몰랐다.
황금추적자쪽에 큰 피해가 간 것은 좋지만, 나에게는 참 좋은 먹이감이 갑자기 사라져버려서 안타까울 뿐이었다.
[빨간약파란약 : 그렇지 않아도 관련된 이야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썩이나감 : 어떤 겁니까.]
[빨간약파란약 : 썩이나감님이 획득한 아이템들이 소멸되었습니다.]
뒤이은 말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썩이나감 : 전부다요?]
[빨간약파란약 : 썩이나감님이 저격영상을 촬영할 때부터의 장물입니다.]
[썩이나감 : 그 외의 것은 괜찮은 것 맞죠?]
[빨간약파란약 : 1시간 전까지 확인한 바로는 그렇습니다.]
이건 그나마 다행이다.
어떤 버그나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템이 대량으로 퍼지면 제대로 수습을 할 수 없어서 그냥 하루나 이틀 전으로 백섭을 하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선량한 게이머로서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시간만 버려 허탈함을 양산하니 다소의 불만은 있어도 이쯤이 좋다.
어차피 황금추적자쪽의 사업체를 밀었으니 유저들도 그걸 모를 수 없을 것이다. 아마 그놈들만 욕을 오지게 먹을 것이다.
[궁신 : 형님. 골드캐시 싹 날아갔답니다!]
궁신도 기분이 엄청 좋은 것 같았다.
[썩이나감 : 통제는 풀렸나?]
[궁신 : 풀리기는 했는데 형님은 조심하셔야겠는데요.]
[썩이나감 : 나? 왜?]
날 통제하려는 놈들의 구심점은 황금추적자다. 놈이 사라졌는데 왜 유지가 된다는 말인가.
[궁신 : 형님한테 죽은 랭커들이 이 갈고 있답니다. 지금 각자 PvP 돌리면서 파훼법 찾는다는데요.]
"씨발. 그 아저씨들이 진짜."
독고무적과 흑군이라면 그러고도 남는다.
내 임펙트를 위해서라지만 아웃사이더 시티에서 암살한 것이 여전한 것 같았다.
"뭐. 도망다니면 끝이니까."
나야 그 사이에 칠왕의 지하신전을 다니면서 스펙만 올려두면 된다. 그 마음으로 이동을 하자 나를 발견한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따라오고 있었다.
"썩이나감이 저기에 있다!"
"길드장한테 귓말해!"
"저 새끼 끝까지 죽여!"
엠페러와 흑랑, 마계 등 나를 통제하려다가 역으로 학살당한 길드소속들이다.
"수고하시고."
그들보다 빨리 움직여 칠왕의 지하신전으로 움직였다.
템값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기 전에 아이템 하나라도 더 팔아서 수익을 내야만 하는 입장이니까.
일방적으로 유저들을 학살을 해와서일까.
오랜만에 마주한 칠왕은 전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리고 말았다.
반나절은 훌쩍 지나서 겨우 한 번 성공을 했을 뿐이니까.
칠왕의 지하신전 바깥으로 나왔을 때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니 나를 기다리다가 지쳐서 돌아갔나 싶었다.
"뭐냐. 너."
공중으로 날아오르려는데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이 내게 다가왔다.
바로 황금추적자다.
저번에는 몇 십 명을 동원하며 나를 잡으려고 하던 놈이 지금은 초라하게 혼자였다.
"니네 길드 다 사라졌다며. 축하한다."
진심에서 우러러 나오는 박수로 그를 격려했다.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이를 가는 표정을 보니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게 분수에 안 맞게 왜 나댔냐. 나한테 썰릴 때 조용히 짜져있지. 병신처럼 나대다가 사업 다 날아갔잖아. 역시 대단하신 1티어 템팔이셔. 브라보."
"……."
기쁜 마음의 칭찬에도 놈은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여기서는 뭔가 이상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포기 안 했구나?"
황금추적자는 날 이기지 못한다. 그건 녀석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쉬운 상대라면 아직도 거대길드들이 연합을 유지하고 있을 리가 없다.
"그 아저씨들이 용케 너랑 손은 잡고 있나보네."
그게 아니라면 황금추적자가 이곳에 있을 이유는 없다.
개인적으로는 놀라운 일이다. 황금추적자와 엮여있다면 그렇지 않아도 좋지 않아진 평판이 바닥까지 찍을 것이 뻔해서다.
"네 계정은 안녕하시냐?"
"네놈에게 내 자리를 넘겨줄 수는 없다."
황금추적자는 타락신관의 전용무기인 경전을 펼쳤다. 놈이 사용한 스킬은 악마새 소환이었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하얀색 부리. 병에 걸린 것처럼 삐쩍 마르고 깃털이 듬성듬성 빠진 거대한 새가 나를 향해 발톱을 들이 밀었다.
"스킬도 없는 소환수 따위."
칠왕을 잡느라 쉴드를 대부분 잃어버린 내게는 오히려 고마운 상대일 뿐이다.
촤아아악!
곧바로 역섬기검을 사용해 악마새를 죽였다.
소환사보다 체력이 높아도 나보다 낮은 레벨의 소환수 따위 조금도 위협이 되지 않았다.
"아직이다."
황금추적자는 비슷한 류의 스킬을 사용했지만, 내게는 조금도 위협이 되지 못했다.
바호크의 손도끼로 바꾸어 소환되는 순간 죽였다.
"다 놀았냐? 마나 슬슬 떨어졌지?"
암흑신관은 엄연히 지원형 직업군이었다.
내게 위협이 될 스킬 따위는 조금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나마 소환 관련해서 공중전을 대비한 모양이지만 조금도 효과를 보지 못했다.
갑자기 황금추적자가 바닥에 주저 앉았다.
아까 전에 사용한 스킬 중에 마나가 아니라 스태미나까지 소모하는 스킬이 있었던 것 같다.
놈을 비웃어주기 위해 땅을 발을 디딘 순간.
황금추적자가 걸친 망토가 어딘가 익숙하다. 하얗게 염색이 되어 몰랐지만 회색의 문양은 살아있는 사람의 얼굴이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저주받은 사령의 망토?"
"정답이다!"
황금추적자가 망토를 뒤집어쓰고 칠왕의 사령을 사용했다.
단 한 번도 데미지를 입지 않아 완전히 충전이 된 칠왕의 사령이 내게로 쏟아졌다.
"그래봐야."
칠왕의 사량은 자폭 데미지에 피아를 구분하지 않고 피해를 받는다.
선두의 둘이나 셋 정도만 죽이면 연쇄폭발이 일어나 황금추적자까지 죽게 만들 것이다. 아무래도 녀석은 칠왕의 사령의 특성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콰앙!
바호크의 손도끼로 선두의 칠왕의 사령을 죽였다. 뒤이어 두 번째를 죽이려고 할 때다.
치이이이익!
발밑에서 무언가 타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모르게 시선이 밑으로 향했다. 흙과 모래 속에서 불꽃이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도화선?"
내가 있는 곳에 함정이 설치되어 있다.
콰과과과광!
초인적인 반사신경으로 시공간이동자의 블링크를 사용했다.
내가 있던 지점에 몇 개인지 알 수 없는 폭탄이 터졌다. 쫓아오던 칠왕의 사령도 휘말려 터져나갈 정도였으니 가만히 있다가는 무조건 죽었을 것이다.
콰득.
"머리 좀 썼……."
안도를 하며 한 걸음을 내딛었다.
발등에 충격과 함께 상태이상 출혈과 함께 이동불가가 떠버렸다.
곰덫을 설치한 것이다. 빨리 함정을 해체하고 싶지만 아직 남은 칠왕의 사령을 죽이는 것이 먼저다.
광전사의 집중력이 붙어 빨라진 손놀림으로 하나하나 처리했을 때다.
치지지지지직!
칠왕의 사령의 폭발에 숨겨져있던 도화선이 타들어갔다.
방향은 물론 내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