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3화 고인물은결전중이다.
저 태풍이 스킬조합으로 만들어진 것은 이해했다.
어떤 식으로 조합이 되는지 흑군도 알았을 것이니 자신이 가진 것 중에 좋은 걸 시도했으리라.
그 결과물에 흑군이 자신 있게 앞선 것은 충분히 이해하는 바다.
쿠구구구구구!
"이건 또 뭐야."
두 줄기의 태풍은 서로 부딪히며 더 커졌다.
나도 그 영향에 있어 날아오를 엄두도 내지 못해 꾸준히 데미지를 받고 있었다.
"뚫어."
결사항전의 영역은 버린다.
태풍 뒤에서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흑군에게 이면의 그림자를 전진시켰다.
콰앙! 콰앙!
태풍을 뚫는 순간 흑군의 백보신권이 이면의 그림자를 두들겼다.
이면의 그림자가 크게 휘청거리며 못 다가가는 것을 보니 큰일이다 싶었다.
시공간이동자의 블링크를 쓸 각을 정하려고 했지만, 흑군은 얄밉게도 뒤로 살짝 물러나며 독고무적의 가까이에 갔다.
독고무적에게서 나오는 오오라의 영향권에 들었으니 소모된 마나를 회복하는 중일 것이다.
"골치 아프네."
두 사람은 파티를 맺은 것이 분명하다.
지금이야 일대일이지만 언제 나머지 하나가 덤벼도 이상하지 않는 그림이었다.
"겁먹었나?"
"견적 내는 중입니다."
"그러면 덤벼."
흑군이 손을 나를 보며 손을 까닥였다.
[플레이어가 상태이상 도발에 걸렸습니다.]
"기가 차네."
그냥 제스쳐인 줄 알았는데 스킬일 줄 몰랐다.
귀신에 홀린 것처럼 통제를 잃은 두 발은 앞으로 나아갔다.
파지지지직!
"걸렸으면 죽어야지?"
흑군의 몸 전체에서 전기가 방출되기 시작했다.
열파창까지 총 네 명이서 절망하는 산맥의 고대정령을 사냥할 때 보였던 그 유니크 스킬임이 분명했다.
콰과과과과과!
흑군의 발이 대지를 달군다. 눈조차 깜빡일 수 없다. 그랬다가는 놈이 코앞에 다가올 테니까.
피할 수 없을까?
그건 아니다.
저 스킬이 완전무결했다면 수호자 퀘스트에서 몇 번이고 무너져서 황금추적자의 손에 넘어가지 않았을 테니까.
흑군이 과연 저 빠른 움직임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건 아니라는 과정을 세웠다.
나도 경험했듯이 너무 빠른 속도는 제대로 조작할 수 없다.
앞으로 나서던 걸음을 측면으로 틀었다.
흑군은 거기에 맞춰서 방향을 틀었지만 매끄럽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자신조차 제어하지 못하는 이동속도.
바로 저게 약점이다.
성난 황소를 조롱하는 투우사처럼 다시 한번 몸을 틀었다.
콰드드득!
흑군은 벽에 어깨를 부딪치는 충격으로 방향전환에 성공했다.
그때는 이미 또다시 백스탭으로 피할 뿐이었다.
"눈치가 빠른데!"
"그거라도 있어야죠."
아슬아슬한 간격을 유지하며 피하고 있지만 상황이 마냥 좋지는 않았다.
흑군이 지나갈 때마다 그에게서 방출되는 전기에 지속적인 데미지를 입기 때문이다.
[플레이어가 상태이상 마비에 걸렸습니다.]
"제길."
한 번 더 흑군이 스치자 상태이상에 걸렸다. 저 스킬의 유지시간이 얼마인지 모르지만 체감상으로는 거의 1분은 훌쩍 넘는 것 같았다.
"끝이다."
흑군이 호기롭게 내게 달려온다. 거기에 대한 내 답은 간단했다.
쿠구궁.
"무슨……!"
바로 어스싱크다.
흑군의 발이 내딛을 부분에 구멍이 생겼다. 미처 발밑을 보지 못한 그의 발이 거기에 빠져 버렸다.
쿠당탕!
균형을 잃은 흑군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나 또한 마비 상태였기에 그에게 공격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적의 강한 스킬이 빠졌으니 날개를 피며 날아올랐다.
턴이 내게 왔다고 느끼며 바호크의 손도끼의 투척을 시작했다.
쾅! 쾅!
"이걸 피해?"
"겨우 그 정도다."
바호크의 손도끼는 미세한 차이라 흑군을 빗나갔다. 공격을 피하려고 할 때마다 순간적으로 속도가 올라갔다.
황금추적자의 스킬 조합표에 있던 것이 분명했다.
회피가속. 패시브 스킬로 공격이 맞기 직전에 회피하면 이동속도가 증가하는 걸로 기억한다.
거기에 잔영의 발걸음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모든 움직임에 잔영이 생기며 정확하게 조준이 힘들어진다.
흑군은 그걸 피하며 스킬로 내게 계속 공격을 해 왔다. 위가 막혀 있지 않다면 압도적으로 유리한 위치겠지만 이곳은 그게 불가능하다.
독고무적과 흑군이 왜 여기에 기다렸는가도 이해가 되었다.
"영리한 아저씨들 같으니."
자신들이 유리한 상황에서 정정당당하게 일대일이라고 내색을 하다니.
여러모로 얄밉기만 하다.
[빨간약파란약 : 한 번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금 계속 접속 중이십니까?]
[궁신 : 형님. 우리 통제하던 애들 빠지는데요?]
빨간약파란약이나 궁신에게서 귓속말이 왔지만 거기에 답장할 정도로 여유롭지는 않았다.
흑군은 작정하게 날 준비했는지 사정거리가 긴 스킬을 새롭게 배워 공격을 해 댔으니까.
후우우우웅!
"이제 내려와라."
흑군의 발에 바람이 감돌았다. 그가 발을 휘두르자 그 짜증나는 태풍패턴이 시작되었다.
두 개의 태풍이 서로 부딪히며 전진해 온다. 그 범위가 넓어서 당장은 괜찮겠지만
공동에 골고루 영향을 미쳤다.
[벽타기를 사용합니다.]
[헤이스트를 사용합니다.]
날개를 접어야하지만 밑에는 흑군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태풍이 서로 부딪히는 순간에 틈이 들어났으니 놓치지 않고 벽을 타고 그걸 뚫어냈다.
콰과과과과!
서슬 퍼런 바람이 등을 훑고 지나가 쉴드를 깎아냈다.
흑군은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달려오던 그대로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허공에서 어퍼컷을 하는 자세는 잠룡출해라는 스킬이었다.
벽에서 뛰어내려 스킬을 피하자 흑군은 만근추로 바닥을 찍었다.
내가 가진 지면강타와 비슷한 스킬로 저게 까다로운 것은 내려오는 도중에 공격이 가능하다는 거다.
반격을 가할 생각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흑군이 거듭해서 스킬을 썼으니 마나 소모량도 있을 것이다.
[이면의 그림자를 사용합니다.]
[결사항전의 영역을 사용합니다.]
[스피어마스터의 소울을 사용합니다.]
이면의 그림자는 바호크의 손도끼로 지원사격을 하고 나는 흑군에게로 달려들었다.
카가가가각!
흑군이 도끼를 피하는 동안에 역섬기검을 길게 그었다. 그것만은 피하지 못했는지 흑군은 몸을 웅크려 막았다.
방어스킬을 따로 배웠는지 피해는 입었지만 예상보다는 낮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내 공격이 들어가기 시작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난 가까이 다가가 스킬을 빼주거나 혹은 튕겨내기를 하는 척을 하며 그의 움직임을 제한했다.
흑군도 사람이었기에 그 와중에 쏟아지는 이면의 그림자의 공격을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다.
쾅! 쾅!
"…제기랄."
이면의 그림자의 공격에 연달아 적중하자 흑군의 체력은 대폭 줄었다. 그는 더 이상 맞설 생각을 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난 졌다. 너는 어쩔래."
"…나도 지겠군."
흑군과 독고무적이 눈을 맞췄다.
날 가운데에 둔 상황에서 두 사람이 동시에 움직였다.
독고무적은 곧바로 이동기를 사용해 거리를 좁혔고 흑군은 물러나며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꺼냈다.
"체면이고 자존심이고 다 버린 모습 보기 좋네!"
독고무적은 이면의 그림자에게 맡겼다.
수호자 퀘스트를 깼다지만 결사항전의 영역에서의 공격은 쉽게 피할 정도의 수준이 아니다.
잘못해서 맞으면 적잖은 피해를 입게 되니 독고무적이라고 하더라도 쉽게 대할 수 없다.
미니맵을 힐끔 보니 독고무적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으니
"회복할 시간도 안 주는군!"
흑군은 인벤토리에서 꺼낸 힐링포션을 쓰지도 못하고 도망치기 급급했다.
난 칠왕의 지하신전 때문에 배운 마법들을 난사했다.
윈드 커터로 공격한 뒤에 그가 지나갈 곳에 포이즌 스모크를 사용했다.
"빌어먹을!"
흑군은 어쩔 수 없이 그걸 밟았다.
스킬 위력이 약하다지만 체력을 대부분 소모한 그로서는 조금의 데미지도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마법까지 쓰는 건 사기 아니냐고!"
"그러면 정당하게."
악에 받쳐 소리치는 그에게 바호크의 도끼를 던지는 척을 했다.
흑군이 바로 구르기를 쓰는 순간에 마법을 바꿨다.
치지지지직!
"체크메이트."
"큭!"
몸을 일으키는 순간에 흑군은 라이트닝 로드에 맞았다. 피해를 입고 순간 휘청이는 그의 몸에 한 발자국 다가가며 바호크의 손도끼를 던졌다.
[당신이 흑군님을 PK하였습니다.]
"랭킹 2등 컷."
흑군을 죽였다. 그게 주는 의미는 결코 적지 않았다.
결국 랭킹 10위권에게는 못 덤빌 거라는 말이 한낱 우스갯소리라는 것을 증명했으니까.
콰앙!
갑자기 뒤에서 충격이 느껴졌다. 어찌나 강한지 몸이 앞으로 고꾸라질 정도였다.
[플레이어가 상태이상 기절에 걸렸습니다.]
"나도 컷 해 보던가."
알림과 함께 들리는 것은 독고무적의 목소리였다. 어차피 못 움직이기에 미니맵을 보니 이면의 그림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무슨……!"
설마 독고무적이 이면의 그림자를 무시한 것이 아니라 없애 버린 것인가.
쉴드가 남아있던 상태의 그들을 어떻게 뚫었단 말인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갑자기 벼락이 치듯이 번뜩인 것은 흑군처럼 절망하는 산맥의 고대정령에게 보였던 그 스킬이었다.
절망하는 산맥의 고대정령이 던지는 나무를 막아내던 장면은 잊을 수 없다.
데미지를 반사하는 것은 알겠지만, 그게 이면의 그림자를 죽일 정도인가는 의문이었다.
콰드득!
독고무적은 연거푸 내 몸에 공격을 가했다. 스킬 하나하나가 묵직해서 쌓아둔 쉴드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그 방패."
정확한 스킬이름은 모른다.
독고무적도 굳이 밝히지 않을 것이다.
"피해반사는 알았지만, 방어력 상승이 아니라 무적이었나?"
"정답이다."
독고무적은 그걸 부정하지는 않았다.
이면의 그림자가 왜 죽었나. 그걸 깨닫고 말았다. 상대에게 데미지를 주지 못하니 체력회복은 안 되고 오히려 피해만 입게 되는 거다.
기절이 끝남과 동시에 독고무적에게서 물러났다. 그간에 맞은 공격 덕분에 쉴드가 대폭 사라졌다.
쿵! 쿵!
독고무적은 성급히 다가오지 않았다. 차례대로 버프 스킬들을 쓰며 내가 다가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어메이징한 장비만 들고 오셨네."
그의 장비를 보면 하나의 특징이 있다.
바로 피해 반사 옵션이다.
강화작업을 해서 알 수 없지만 최소 30%의 데미지를 돌려줄 것이다.
"쉴드가 사라진 네가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까."
독고무적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이쯤이면 흑군을 먼저 보낸 것도 내 쉴드를 깎기 위해서인 것 같았다.
"물론이죠."
난 불사자다.
먼저 죽는 것이면 몰라도 최소한 같이 죽는 것이라면 조금도 손해는 없다.
[분노의 전투를 사용합니다.]
독고무적처럼 나 또한 무적 스킬을 가지고 있다. 10초 뒤에 죽는 조건부이지만 이보다 나은 것은 없다.
[눈앞의 개새끼들의 멱을 딸 수 있다면 죽어도 좋아. 크하하하하!]
무적상태가 됨과 동시에 독고무적에게 달려들었다.
내가 어떤 스킬을 쓴 것인지는 모르는지 방패를 더 높게 들어올려 방어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터어엉!
첫 번째 검은 독고무적의 방패가 튕겨냈다. 정직함의 댓가로 두 번의 공격을 허용하고야 말았다. 그간 모아둔 쉴드와 체력이 그대로 바닥에 드러났다.
촤아아악!
내 몸을 꿰뚫은 검을 독고무적은 시원하게 뽑았다. 드디어 나를 이겼다는 생각에 몹시 기뻐하고 있었다.
"…죽지 않아?"
그랬기에 뚫어지게 자신을 쳐다보는 나를 뒤늦게 알아차렸다.
얼어버린 그의 몸뚱이에 검을 찔러 넣었다. 판금갑옷을 뚫고 살갗을 찌른 느낌이 들자 곧바로 검을 틀어서 베어냈다.
"……."
독고무적은 허망하게 나를 보며 무너져 내렸다.
[당신이 독고무적님을 PK하였습니다.]
[YOU DIED.]
동시에 뜬 알림을 보며 나 또한 죽음을 맞이했다.
* * *
"너도 죽었냐?"
아웃사이더 시티의 광장에서 흑군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승리를 확신하고 있던 독고무적마저 죽어서 부활한 것이다.
"…그래. 졌다."
"미친 놈이네."
고개를 푹 숙이는 동료를 보며 흑군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썩이나감을 죽이려면 아무래도 길드 전체를 움직여야만 할 것 같다.
"어? 재 뭐야."
갑자기 주변의 유저가 자신들을 보며 손가락질을 했다.
독고무적과 흑군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이었다.
[당신은 썩이나감님에게 PK를 당하셨습니다.]
[YOU DIED.]
하나의 알림이 두 사람의 눈에 새겨졌다.
회색이 된 자신의 시체 위로 겹쳐지는 썩이나감의 모습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