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8화 고인물은이겼다.
"흥. 저놈이 나오지도 않는군."
S2영이아빠를 비롯한 나머지 인원들은 혹시 성벽 위로 날아오를 썩이나감을 요격하기 위해 대기했다. 고작 2분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뭐해! 빨리 오라니까!"
"안이 시끌벅적하군."
요새 안에서 들리는 외침에 S2영이아빠는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황금추적자가 저렇게 목청을 높일 정도라면 다소 어렵더라도 곧 썩이나감은 죽을 것이 분명했다.
썩이나감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황금추적자가 동원한 이들은 업계에서도 모두 이름이 알려져 있다. 어설픈 뜨내기를 동원한 것이 아니니 곧 죽일 수 있을 것이다.
"뉴 알론이랑 아웃사이더 시티에 대기시킨 인원들에게 연락해. 놈이 나타나면 조지라고."
S2영이아빠는 다음 계획을 위해 명령을 내렸다.
상대가 게임을 접을 정도의 충격을 주는 PK의 조건은 몇 번을 죽이냐가 아니다. 어디에도 죽을 수 있다는 공포감을 심어 주는 것이다.
독수리의 요새에 모인 인원만큼 각 도시의 광장에 배치되어 있다. PK 1번 성공마다 보수가 돌아가니 페널티 따위는 조금도 부담이 되지 않을 것이다.
"영이아빠님. 황금추적자가 부르는 것 아니에요?"
"맞아. 우리 부르는 것 같은데."
"황금이 못 믿어요?"
주변의 말에 S2영이아빠는 고개를 저었다.
황금추적자와 오래 일을 한 사람이기에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씨발. 영이아빠! 빨리 튀어와! 바깥에서 뭐하는 거야!"
"응? 진짜였네?"
황금추적자가 다급히 자신을 부르자 S2영이아빠는 나머지를 데리고 요새 안으로 들어갔다.
"저 새끼 왜 세 명이야?"
"분신인가?"
"분신이 저렇게 공격해?"
독수리 요새의 광경을 본 이들은 모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세 명으로 늘어난 썩이나감이 미친 듯이 도끼를 휘두르는 광경이었다.
요새에 들어간 이들은 대부분 죽어서 황금추적자와 셋만이 있었다. 그들은 감히 반격할 생각도 못하고 취객의 걸음걸이처럼 균형도 못 잡고 피하기 급급할 뿐이었다.
그때 썩이나감의 시선이 합류한 이들에게 향했다.
황금추적자쪽을 향해 쏟아지던 도끼는 갑자기 S2영이아빠 쪽으로 쏟아졌다.
한 눈이 팔린 덕분에 본 즉시 피해도 힘든 것을 뒤늦게 반응했다.
퍼버버버버벅!
앞서 있던 두 명이 도끼질에 의해 곧바로 죽었다.
"제기랄! 다들 뭐해! 뭘 멍청히 보는 거야!"
황금추적자는 그걸 보며 욕설을 참기 어려웠다. 뻔히 보이는 것을 멀뚱히 볼 정도로 멍청한 놈 중의 하나가 자신이 믿고 있는 S2영이아빠였다.
심지어 요새 입구에 밀집된 것이 아니었다면 나머지도 그대로 쓸려 나갔을 터였다.
"정신 차리고 싸우란 말이다아아!"
황금추적자는 절규와 같은 고함을 쳤다.
* * *
"목 나간다. 앞으로 소리칠 일도 많을 텐데."
황금추적자의 그 발악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나와 이면의 그림자의 공격을 피해 바닥을 뒹구던 탓에 먼지투성이가 된 꼴이 너무나 잘 어울렸다.
칠왕의 지하신전에서 겪은 벽들이 너무 높고 단단했던 탓일까.
나도 놀랐지만 적들이 이렇게 약할 줄 몰랐다.
저들이 쓰는 스킬은 칠왕의 지하신전에서 겪은 광역스킬 패턴보다도 더 피하기 쉬웠을 뿐더러 잡몹처럼 한 대만 맞아도 죽는 것이 너무나 컸다.
설마 준랭커의 탱커들마저도 바호크의 도끼 한 번에 죽을 줄은 몰랐으니까.
사실 독수리의 요새에서 몇 번이나 죽어 불사자의 영혼함에 대해서도 들킬 줄 알았는데 괜한 기우였던 것 같다.
남은 적은 고작해야 열한 명.
마흔 명이었던 처음에 비하면 너무나 많이 줄었다.
"분신이 줄었다!"
"반격해라. 놈이 다시 그 스킬을 못 쓰게!"
"지금 당장 죽여 버려!"
이면의 그림자의 3분이 끝나자 적들은 눈에 불을 켰다.
각종 스킬들이 내게 쏟아지는 순간, 시공간이동자의 블링크를 사용했다.
"사, 사라졌다!"
"놈이 없어!"
맨땅에 작렬한 스킬속에서 적들은 나를 찾았다.
요새의 성벽 위에 있던 나는 무기를 수호자 미크엘의 장검으로 바꾸며 뛰어내렸다.
콰아아아앙!
"크허억!"
"아아악!"
지면강타로 적들의 사이에 나타났다.
충격에 넉백이 된 놈들이 넷이고 나머지는 지면강타로 그대로 전멸해 버렸다. 그중에 황금추적자도 끼어 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남은 넷을 처리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나머지를 기다려 볼까."
황금추적자라면 나름대로 계획을 다 짜 뒀을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나에게 전멸당하는 그림은 전혀 없었겠지.
정석대로라면 내가 부활할 장소에 적들을 배치시켰을 거다. 그들이 과연 황금추적자가 전멸한 것에 어떤 입장을 보일까.
"그보다 칠대악룡의 무구가 문제가 되어 버리네."
황금추적자가 움직였다는 것은 다크로얄도 안다는 뜻이다. 내게 따로 연락이 없는 것을 보면 가지지 못할 바에는 부숴 버린다는 쪽일 것 같다.
[썩이나감 : 황금추적자쪽 정리했습니다.]
[빨간약파란약 : 그렇지 않아도 갑자기 그들이 고객님을 노린다고 하더군요.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빨간약파란약이 어디까지 아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그의 정보력이면 곧 알게 될 것이지 솔직히 말하는 것이 차라리 이로울 것 같다.
[썩이나감 : 엔비의 반지 얻었습니다.]
귓속말을 보낸 후부터 3분 동안 답장이 없었다. 아마 윗선과 급하게 연락을 하는 중일 것이다.
칠대악룡의 무구에 대한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을 테니까.
[빨간약파란약 : 황금추적자에게는 어떻게 유출이 된 겁니까. 혹시 그와 거래를 하셨습니까?]
이 부분에서는 조금 놀랐다.
설마 내가 황금추적자와 거래를 했으리라 생각했다니.
어쩌면 그간에 거래와 실적으로 쌓은 신뢰 따위는 무시하고 아무런 편견 없이 날 한 명의 업계관계자로 치부하는 것 같았다.
"이 바닥이 그렇지."
칠대악룡의 무구가 어떤 물건인가.
엘리멘탈 소울1을 플레이하지 않아도 살면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아이템이었다. 적어도 국내기준으로는 게임보다도 더 유명한 물건일 것이다.
[썩이나감 : 했겠어요? 인벤토리에 넣을 때 들켰습니다. 저에게 사람을 계속 붙여놓은 것 같습니다.]
[빨간약파란약 : 고객님이 가시는 장소에 아무나 따라갈 수 없잖습니까.]
[썩이나감 : 그러니 당한거죠.]
나도 이건 억울하다. 설마 방랑자의 협곡까지 날 추적해 와서 살펴보는 놈들이 있을 줄이야.
새해마다 연예인들을 도촬해서 팔아넘기는 파파라치를 보는 피해자들의 심정이 이럴까.
상대는 엄청나게 은신 스킬이 높은 것으로 보여진다. 이걸 위해서라도 상당히 높은 수준의 탐색스킬이 필요할 것 같았다. 물론 경매장에서 구할 수 있냐는 거다.
[빨간약파란약 : 공개할 정보가 혹시 그것이었습니까?]
[썩이나감 : 정리해서 주려고 했죠. 이거 퀘스트용 아이템이거든요.]
[빨간약파란약 : 엔비의 반지가요?]
[썩이나감 : 정확하게는 칠대악룡의 반지라고 되어있어요. 현 시점에서는 아무런 사용가치가 없어요.]
귓속말로는 못 믿을 것이 뻔하다. 아예 아이템의 정보를 스샷으로 찍어서 보내줬다.
[빨간약파란약 : 말씀하신 대로군요. 하지만 봉인이 되어있다는 것도 중요하고요.]
[썩이나감 : 스토리에 따라 다를 겁니다. 그건 진행해봐야겠죠.]
[빨간약파란약 : 저희 쪽에서 지원을 해도 되겠습니까?]
[썩이나감 : 그래주세요.]
상대가 전력을 다하면 나 또한 그에 맞는 도움이 필요하다. 이걸 부담스러워할 이유는 없다. 어차피 히든레코드도 내 가치를 인정하기 때문에 제의를 하는 거니까.
[빨간약파란약 : 궁신을 포함해 이쪽 인원들을 붙여드리겠습니다.]
궁신은 영 미덥지 않지만 그걸 가릴 처지는 아니다.
전에 약속을 한 것처럼 궁신에게 해당 정보를 전달했다.
[궁신 : 맙소사. 형님 진짜 대단하십니다!]
[썩이나감 : 잘 지원해줘. 도시에 황금추적자 놈들 발견하면 연락을 주고.]
[궁신 : 지금 놈들 바깥으로 다시 튀었답니다. 조심하십시요.]
[썩이나감 : 몇이나 와도 상관없어.]
방금 전처럼 압도적인 힘의 차이로 지워 주면 될 뿐이다.
"다 네놈 때문이다. 이 애물단지야."
인벤토리에서 유독 눈에 띄는 엔비의 반지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다시 망루에 올랐다.
쉴드도 넉넉하니 다시 찾아올 적들은 조금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어?"
문제는 황금추적자의 사십 인과 함께 오는 인물들이었다.
"저들이 왜?"
엘리멘탈 소울2를 플레이하는 유저라면 다 알 법한 유명한 길드의 인물들이 함께했다.
공통점은 최근 황금추적자와 파티를 이루어 칠왕의 지하신전으로 갔다는 거다.
"작정했구나."
저들이 내게 등을 돌렸다.
아니, 그런 표현은 옳지가 않았다.
그건 서로 그만큼의 신뢰가 있을 때의 경우였으니까.
* * *
뉴 알론의 광장에서 부활한 황금추적자는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같이 움직였던 이들은 마찬가지였다.
썩이나감.
그 한 명에게 자신들이 전멸당했다. 그저 아무것도 못하고 일방적으로 학살을 당한 거다.
"이게 맞는 거야?"
"……."
황금추적자의 자조섞인 물음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
누구도 이런 참사를 생각하지 못했다.
압도적이다.
그 말 이외에 뭐라고 표현할 수 없었다.
"또 갈 거야?"
"가야지."
"……."
S2영이아빠는 입맛만 다셨다. 괜히 물어봤다는 생각이 목끝까지 차올랐다.
"기다려."
잠깐의 침묵 끝에 황금추적자는 친구창을 열었다.
이 계획을 열기 전에 함께하기로 한 길드장 목록을 살펴서 곧바로 귓속말을 보냈다.
첫 번째는 명혼 길드의 길드장인 철권이었다. 순례자 직업으로 무려 랭킹 4위에 있는 인물이었다.
[황금추적자 : 합류 가능하십니까?]
[철권 : 무슨 일이지?]
[황금추적자 : 썩이나감에게 당했습니다.]
그 귓속말에 철권은 의문을 드러냈다.
[철권 : 처음에는 그쪽이 알아서 조진다면서요. 그런데 왜 진 거죠? 그놈이 먼저 선빵이라도 때려서 통제당한 겁니까?]
[황금추적자 : 놈이 대기 중이었습니다.]
[철권 : 적이 몇 명인데요.]
[황금추적자 : 한 명입니다.]
그 귓속말을 보내자 잠깐 동안 답장이 없었다.
[철권 : 장난치지 말고요.]
[황금추적자 : 그 한 명에게 당했습니다. 그놈은 강합니다.]
[철권 : 그 변태새끼가 뭐가 강한데요.]
철권의 귓속말은 마치 비아냥거림과 같아 황금추적자는 눈살을 찌푸렸다.
[황금추적자 : 당신보다 강합니다.]
[철권 : 님 지금 장난쳐요?]
[황금추적자 : 열파창보다. 흑군보다. 독고무적보다. 놈이 더 강합니다.]
[철권 : 이 사람 진짜 웃기네.]
철권은 여전히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애초에 준랭커급으로 구성이 된 사십 명을 혼자서 이겼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황금추적자 : 단 한 대도 공격 못했습니다. 저놈이 칠대악룡의 무구를 다 챙기면 당신은 놈의 발밑에서 벌벌 기어야할 겁니다. 그래도 안 도울 겁니까?]
[철권 : 흥. 부길드장을 대신 보내지.]
철권은 그저 약한 소리라고 생각했는지 직접 움직이지 않았다.
황금추적자는 연거푸 한숨을 내쉬며 다른 이들에게 연락했다. 다른 길드장들도 직접 오기보다는 대리인을 보냈다.
그들이 모두 랭커라서 다행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황금추적자는 온갖 욕을 퍼부었을 것이다.
"한 명에게 전멸당했다는 것이 맞아요?"
"구라 좀 작작치지."
"아무리 강해도 개 혼자잖아요."
"한 놈 잡겠다고 이게 뭐야."
"씨발 졸라 쪽팔리네. 길드장님만 아니면 안 오는데."
미리 약조한 것이 있었기에 왔지만 다들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무한 PK를 하면 시간만 버릴 뿐이지 경험치는 1도 못 올린다.
경쟁자들에게 뒤쳐질 수밖에 없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진짜입니다. 도와주시죠."
황금추적자는 그들에게 고개를 푹 숙였다. 그는 쓸데없는 자존심을 세우지 않기로 했다.
썩이나감은 그만큼 강했다.
2차 PK를 시도하면 솔직히 지금 합류한 열 명의 인원들도 분명히 죽을 것이라 각오했다.
아까 전과 크게 다른 상황은 나오지 않지만 오히려 그걸 바랐다.
자존심이 강한 길드들이 알아서 전력을 이끌고 싸우게 될 테니까.
'끝까지 가자. 썩이나감.'
황금추적자는 당장이라도 썩이나감을 찢어 버리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