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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은 옷을 입지 않아-186화 (186/201)

제186화 고인물은공공의적.

"따로 퀘스트를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몇 번을 더 캐물어도 알퐁스는 따로 퀘스트를 주지 않았다.

같은 대화의 연속인지라 요한에게 갔지만, 그 또한 다른 퀘스트를 주지 않았다.

내 레벨이 부족하거나 혹은 알퐁스와 말처럼 나머지 칠대악룡의 왕들이 찾아오는 걸 기다리는 수순이지 않을까 싶었다.

"레벨부터 올릴까."

생활비는 많을수록 좋으니 그래도 칠왕의 지하신전으로 날아갔다.

그 앞으로는 공략을 위해 모인 레이드 파티가 하나 보였다.

여러 길드가 모인 랭커파티로 그중에 골드캐시 인물 중 하나인 S2영이아빠가 있었다.

저들 중에 나와 거래를 했었던 이도 있었기에 입안이 썼다.

결국 내 공략보다 더 나은 해결책을 저들이 제시를 했다는 것이다.

[빨간약파란약 : 썩이나감님. 골드캐시가 제시한 공략법을 알았습니다.]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 귓속말이 왔다. 이건 무시할 수 없어 곧바로 답장을 해야만 한다.

[썩이나감 : 어떤 겁니까.]

[빨간약파란약 : 이 조합표입니다.]

빨간약파란약이 보낸 링크를 눌렀다.

"…와."

화면에 띄워진 사진을 보는 순간 눈앞이 멍해졌다.

내가 하려다가 미루어둔 스킬 조합표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몇 번을 시도했는지 모르지만 오십개의 조합은 꽤나 매력적인 것들이 있었다. 특히 그중에 몇 개는 수호자에게 쓰기 딱 좋은 스킬들이었다.

내가 투자할 수 없는 인력과 자본이 합쳐진 결과물이다.

"…분하지만 인정해야겠네."

내 수호자 공략은 냉정하게 비슷한 스텟과 스킬 활용도를 가져야만 한다. 그걸 만족하는 직업군은 소수에 불과하다.

황금추적자에게 왜 VIP들이 넘어갔나 이해가 되었다.

"배울 건 배워야지."

저 필요한 스킬들을 구하려고 경매장을 열었지만, 재료가 되는 스킬들의 재고는 없었다. 심지어 스킬 조합표에 있는 쓸모가 없는 스킬들마저도 모두 가격이 폭등해있었다.

"이야. 잘 끼워뒀네."

그걸 보면서 느낀 건 황금추적자의 수완이었다.

저 스킬조합표의 모든 것이 효과가 있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같은 목록에 있기에 랭커들이 무지성으로 구매를 한 것이다.

그걸 욕할 생각은 없다.

저 사업수완에 감탄할 뿐이었다.

난 생각만 했을 뿐, 시도를 못한 거였으니까. 이럴 때는 팀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다.

[썩이나감 : 잘 만들었네요.]

[빨간약파란약 : 스킬북 시세는 전체적으로 높아졌습니다. 꼭 구사히고 싶은 물건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썩이나감 : 말씀 감사합니다. 당장 필요한 건 없을 것 같아요.]

[빨간약파란약 : 저에게 따로 알려주실 정보는 있으십니까?]

[썩이나감 : 하나 있죠. 정리해서 올릴 겁니다.]

뭔가 고마우려다가 팍 식었다.

역시 업계사람이라서 그런지 기브 앤 테이크는 확실하다.

칠대악룡의 무구를 당장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정보를 제공하면 꽤나 비싸게 나올 것이다.

*       *       *

쿠우우웅!

가고일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때 생기는 충격파에 둘이 휩쓸려 큰 피해를 입었지만, 즉각 들어가는 체력회복에 죽지는 않았다.

"공겨어어억!"

이미 암기하고 있는 패턴이기에 독고무적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나머지가 스킬을 사용했다.

특수한 경우로 합류한 황금추적자를 제외하고 30위 이내의 최상위 랭커들 중의 11명을 선별한 최정예 파티. 그중에 죽은 이들도 있지만, 남은 이들의 압도적인 화력에 가고일들이 무너졌다.

"사람 수대로 가고일이 있는 것은 너무하지 않냐?"

"놈은 혼자서 두 마리를 상대했다. 고작 열 마리일 뿐이야."

"그것도 그렇지."

전방에서 어그로를 끌어주던 흑군은 곧바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소모된 마나를 스태미나를 회복하기 위해 무투사의 스킬인 연공을 시작한 것이다.

독고무적도 인벤토리에 쓸모가 없어 쌓아둔 음식물들을 섭취했다.

그 사이에 남은 이들이 죽은 이들을 부활시켰다.

"미안. 스킬 준비 중에 덮쳐서 죽었다."

"우리 좀 제대로 지켜달라고."

죽은 이들은 모두 원거리 딜러들이었다.

주요 화력을 담당하는 그들은 자신들의 죽음이 못 마땅할 수밖에 없었다.

"전위에서 항상 어그로를 끌어줄 수 없다. 수호자의 공격도 피했으면서 뭐가 힘들지?"

"……."

독고무적의 물음에 그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가고일과 수호자.

둘을 비교하는 것조차 말이 되지 않을 정도의 난이도 차이가 있었다.

그런데도 가고일에게 말도 안 되게 죽었다.

만약 자신의 길드만으로 이루어졌다면 독고무적은 조금의 고민도 없이 처음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최소한의 숙지 및 긴장도 하지 않는 놈들을 붙잡고 하루종일 까댔을 것이다.

하지만 최상위 랭커들에게는 그럴 수 없다.

다들 거대길드의 길드장 혹은 그에 준하는 위치에 있는 이들이니 서로 불편한 상황이 만들어진다.

최상위 랭커들과의 레이드가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그저 남들보다 더 빨리 난이도가 높은 던전에 참가하기 위한 궁여지책일 뿐이다.

저번 묘지기의 무덤에서 잃었던 신뢰는 도저히 메워지지 않았다.

"곧 있으면 듀라한이다. 놈에게 집중하자.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놈의 공략을 다시 읽자."

독고무적은 그 이상의 불만을 말하지 않았다. 그나마 그와 친한 흑군이 분위기를 바꾸려고 헛소리를 할 뿐이었다.

'템팔이보다 못한 놈들.'

독고무적은 이미 달달 외운 썩이나감의 공략본을 읽는 척을 했다. 이걸 보니 다시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얼마나 살리냐는 유저의 몫이었지만 썩이나감의 공략은 상세한 편이기는 했다. 냉정하게 말해 이건 잘 해먹으라고 밥상까지 차려준 격이었다. 이것만 제대로 파악했어도 레이드 속도는 훨씬 빨라졌을 것이다.

전원 전멸을 하지 않은 것도 사실상 수호자를 상대하기 위해 잔뜩 올린 장비와 스킬빨일 터였다.

독고무적은 슬쩍 파티원들을 상태를 살폈다. 자신처럼 흑군도 공략을 읽는 척을 하는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독고무적 : 넌 안 읽냐?]

[흑군 : 다 읽었지. 넌 왜 쥐새끼처럼 눈치를 살피냐.]

[독고무적 : 쥐새끼는 너지. 템팔이 하나 때문에 눈치나 보고.]

[흑군 : 씨발. ㅋㅋㅋㅋㅋ.]

근엄해보이는 모습과 달리 둘은 웃으면서 귓속말을 나눴다.

[흑군 : 그 변태가 쥐새끼면 저놈은 기생충인 것 알지?]

[독고무적 : 맞지. 템값만 오지게 올렸으니까.]

[흑군 : 저놈은 아주 단단히 해먹으려고 하더라.]

[독고무적 : 아까 전부터 뭔가 메시지를 주고받는데 아주 수상해.]

둘의 의견은 자연스럽게 황금추적자에게 닿았다.

두 사람은 황금추적자에 대한 악감정을 푼 적이 없었다. 그저 필요에 따라 선택했을 뿐이다.

썩이나감의 플레이를 인정해도 결국 템팔이로 봤듯이 황금추적자는 그보다 더 악랄한 놈이었다.

지금은 협력이지만 엄연히 갑과 을이 나눠져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죄송합니다만, 이 레이드를 중간에 나가도 되겠습니까?"

"……."

황금추적자가 불쑥 손을 들었다. 그를 주목하고 있는 독고무적이나 흑군은 물론 억지로 공략집을 읽던 이들까지도 어처구니없어 그를 쳐다봤다.

레이드 중에 파티원 하나가 나가면 자동으로 던전에서 쫓겨나게 된다.

이미 레이드 진행 중인 입장에서는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다.

"제 정신으로 하는 말인가?"

특히 이번 최정예 파티를 구성한 독고무적으로서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말이었다.

이건 황금추적자가 자신의 체면에 똥칠을 하는 일이다.

"업계의 일입니다만, 보시면 이해할 겁니다만."

황금추적자가 능글맞은 웃음을 보였다. 저게 어떤 말인지 다들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보지 않으셨습니까?"

황금추적자는 파티원 전원에게 꽉 쥔 주먹 사이로 반지가 살짝 보이는 캡쳐화면을 보여줬다.

누군가는 그걸 보면서 침묵했고 다른 누군가는 그걸 보면서 알아차리지 못해 의문을 드러낼 뿐이었다.

"이걸 보시면 이해가 되겠죠."

"엔비의 반지? 이게 왜?"

"칠대악룡 세트네."

뒤이어 보인 사진에도 의문을 드러내는 이들이 있었다.

"네. 엔비의 반지죠. 방금 전은 전작의 것이고 처음에 보인 것은 이번 작의 것입니다."

"……!"

확정을 짓는 말에 그들조차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엔비의 반지.

칠대악룡 세트라는 것에 집중하기에는 단일로 가지는 효과도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상대의 마나를 태워버리는 마나번은 PvP든지 PvE든지 치명적인 효과를 나타냈기 때문이다.

"저걸 누가 얻은 거지?"

"칠대악룡 무구가 이번 작에도 있었구나."

"미쳤네. 도대체 누구야?"

다들 그 아이템을 가진 사람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냈다.

"썩이나감입니다. 우리가 이곳에 있는 동안에 그가 찾았다고 합니다."

"……."

뒤이어진 황금추적자의 말에 다들 입을 꾹 다물었다.

'또 그 탬쟁이 새끼라고?'

'우린 아직 칠왕의 지하신전인데.'

'도대체 뭐하는 놈이야.'

'내가 그딴 놈에게 뒤쳐진다고?'

모두 게임으로서는 한 가닥 한다고 자부하는 이들이다.

독고무적이나 흑군 정도가 유독 도드라질 뿐이지 사실 나머지 이들간의 차이는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그럴 수 있던 것은 그만큼의 시간과 돈을 쏟았기 때문이었다.

투자를 한 만큼 강해진다.

최상위 랭커들은 거기에 대한 나름대로 자존심이 있었다. 고작 템팔이 따위가 자신보다 더 앞서나간다는 것을 마냥 좋게 생각할 수 없었다.

"전 VIP분들에게도 묻고 싶습니다만, 그는 자신의 진행사항을 최대한 숨겼습니다. 맞습니까?"

"맞다."

"그건 그래."

독고무적과 흑군도 거기에는 동의했다.

칠왕의 지하신전이 모두 공략된 이후에야 이곳의 정보를 조금씩 들을 수 있었다.

"처음부터 털어놓지 않는 것은 결국 두 분을 견제하기 위함이었겠네요."

"……."

독고무적과 흑군의 눈이 마주쳤다. 거기에 대해서는 사실 의견이 조금 갈렸다.

썩이나감이 견제를 했냐고 한다면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랬다면 수호자에 대한 정보도 풀지 않았을 테니까.

황금추적자는 그 애매모호한 침묵마저도 자신에게 유리한 분위기임을 알았다.

"썩이나감이 칠대악룡의 무구를 다 차지한다면, 놈은 제2의 ZI존짱짱맨이 되겠죠. 템을 팔고 사라지지 않고 계속 여러분들보다 강해진 채로 말입니다."

그는 말을 이어나갔다.

누구도 반박하거나하지 않고 조용히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나조차도 놀랐으니 네놈들은 어떻겠어?'

황금추적자로서도 이건 충격적인 일이었다.

썩이나감이 혼자 게임 진행을 앞서나간다고 했어도 설마 엔비의 반지를 손에 넣었을 줄이야. 하나가 쉬울 뿐이지 두 개, 세 개가 된다면 놈은 압도적인 무력을 가지게 될 터였다.

눈앞에 있는 최상위 랭커들은 그에 동조하는 기색이었다.

다들 전작에서 칠대악룡 세트를 한 번쯤은 가져봤거나 혹은 그 압도적인 위력을 체감한 이들이었다.

썩이나감이 일반적인 유저도 아니고 업계사람인데 그에게 일인자의 자리를 내어줄 랭커가 어디에 있을까.

업계사람에게는 단순히 비즈니스이지만 랭커들은 이미 인생을 간 사람들이 아닌가.

'다 와간다.'

황금추적자는 손쉽게 경쟁자를 처리할 방도가 생겨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놈을 접게 만들면 되잖아."

침묵 속에서 한 명이 불쑥 비집고 들어왔다.

랭킹 9위, 투기사 직업을 가지고 있는 알렉산더였다.

"맞아. 어차피 한 명이야."

"템팔이가 우리 위에 있게 둘 거야?"

"절대 안 되지."

"우리면 가능하잖아."

다른 이들도 기다렸다는 듯이 한 마디씩 거들기 시작했다.

게임만이 아니다.

어디에나 혼자 튀어나온 이가 있다면 여러의미로 주목을 받는다.

썩이나감은 그게 지나쳤다. 그가 단순한 광대나 공략러였다면 아무렇지 않았을 것이다.

"두 사람은 어때요?"

"전직 VIP시잖아."

그 의견에 동조하지 않은 두 사람에게 화살이 쏟아졌다.

독고무적. 흑군.

둘은 한숨을 쉬고 있었다.

"놈은 강하다."

"서로 죽이면 우리 손해야."

이 던전에 있는 이들 중에 썩이나감을 제일 잘 파악하고 있는 이들은 회의적이었다.

"이쪽도 손을 거들면 조금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승낙하라. 그렇게 황금추적자가마저도 부추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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