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3화 고인물은관찰당한다.
빈이 말한 세 번 중에서 마지막은 종족을 알 수 없는 주술사 하나에 오크 여럿이라고 했다.
횃불의 수는 총 여덟.
주술사는 하나에 오크에 여덟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먼저 시야에 들어온 오크들은 똑같은 식탐가의 일꾼으로 레벨은 78이었다.
LV80. 식탐가의 주술사.
단 하나 주술사만이 다를 뿐이다.
"끝내보실까."
오크 일꾼이니 체력이 더 많기는 하다. 그러나 나와 동레벨의 일반 몬스터인만큼 바호크의 손도끼 한 번에 죽는 것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적이다! 죽여라!"
"놈을 죽여!"
오크 일꾼들은 낫을 들고 살벌하게 뛰어왔지만, 몇 걸음을 떼기도 전에 죽었다.
식탐가의 주술사는 내게 다가오지 않았는데 그의 뒤로 오크 일꾼들이 한 차례 더 나타났다.
"주술사만 그대로인가."
세 차례 등장한 적들 중에서 혼자만 이름이 특별하다. 저걸 처리하는 것이 먼저다.
내가 다가가자 식탐가의 주술사가 스킬을 사용했다.
드드드득!
주술사의 몸 앞에는 거북이 모양의 토템이 솟아났다. 방어력을 높이는 토템으로 확인되기에 먼저 그것부터 노렸다.
콰앙! 콰앙!
"…단단한데?"
바하크의 손도끼를 두 번이나 던졌지만, 거북이 토템은 체력이 절반만 깎였을 뿐이다. 그 사이에 오크 일꾼이 여섯이 화전에 합류했다.
거북이 토템의 영향으로 놈들의 몸에 쉴드가 생겼다.
"귀찮네."
한 번에 처리하자.
무기를 수호자 미크엘의 장검으로 바꾼 뒤에 달려갔다.
"죽어라! 인간!"
"너도 먹어주마!"
섬뜩한 말과 함께 두터운 팔뚝으로 휘두르는 오크 일꾼의 낫을 본 순간, 내 눈은 식탐가의 주술사에게 향했다.
후웅! 훙!
한 박자 기다리면서 시공간이동자의 블링크를 썼다. 찰나의 순간에 오크 일꾼들의 낫이 날 베는 효과음이 들렸지만, 내 시야는 이미 주술사의 코앞에 있었다.
"엘프네."
로브를 둘러쓴 주술사의 얼굴은 엘프 특유의 뾰족한 귀가 드러났다.
전작 기준으로 엘프 주술사라고 하더라도 특별하게 다른 것은 없었다.
촤악! 촤악!
"터졌다!"
한 번 검을 휘두르자 건맨의 소울로 두 번의 공격이 적중되었다.
엘프 주술사는 크게 휘청거렸다. 거북이 토템이 생각보다 방어력을 높게 올려주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다음 공격에는 목숨을 잃었다.
내 뒤를 노리는 오크 일꾼은 먼저 역섬기검으로 피해를 준 뒤에 공중으로 날아올라 지면강타로 마무리했다.
"역시 비슷한 레벨대는 너무 쉬워."
최소 5레벨 정도가 차이가 나지 않는 이상에야 내가 위험에 빠질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 뒤에는 똑같은 구성으로 세 차례 적이 나타났다.
아까 전처럼 주술사를 죽이지 않으면 오크 일꾼들이 계속 나타나는 방식이라 오크 일꾼들을 최소한으로 제거해서 달려들어서 끝냈다.
3 페이즈의 디펜스를 끝냈다.
기존의 목표는 달성하여 새로운 목표가 나타났다.
[무법지대의 식탐가를 처치하라.]
퀘스트 완료조건대로 나타났다. 문제는 놈들이 숨어있는 땅굴이 어디에 있냐는 것 정도다.
[카카칵! 이거 뭐냐!]
시체들 사이에서 아이템을 수집하던 임프가 무언가를 집어서 건넸다.
* * *
다크로얄이 항상 업계 1위를 지켜온 것은 단순히 오래되어서만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고객친화적인 서비스 체계를 가지고 있냐는 것은 아니었다.
후발주자들이 오히려 기본적인 인터페이스부터 아이템 판매구조 등부터 더 좋게 되어 있었다.
다크로얄이 유지가 된 것은 돈을 쓰기 너무나 쉽고 편하게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끝은 아니다.
다크로얄은 항상 경쟁자들을 견제하고 필요에 따라 핵심인력을 빼오는 것도 서슴없이 해왔다.
히든레코드는 사업방향성의 차별화를 강조하며 성장했기에 이때까지 지켜만 보는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히든레코드와 거의 독점계약을 하다시피한 썩이나감으로 인해 칠왕의 지하신전의 아이템이 대부분 그곳에서 유통되었다. 심지어 황금추적자를 통해 단단하게 다져놓은 마인시티의 사업에도 관여를 하니 더 이상은 두고 볼 수 없었다.
먼저 썩이나감에 대한 최후통첩을 할 생각이었다.
현재 엘리멘탈 소울2에서 가장 강한 영향력을 지닌 다크게이머 중 하나였기에 여러모로 탐이 나는 존재였다.
영입을 하거나 아니면 모든 수를 써서라도 놈을 접게 만들거나.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 전에 놈에 대한 면밀한 파악이 필요했다.
다크로얄의 전속 다크게이머 피엘과 밀은은 썩이나감에게 24시간 붙어있으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다만, 하늘을 날아다니는 놈을 쫓기란 여간 쉽지 않았다.
시스템적으로 정해진 시야를 벗어나니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다크로얄에 제대로 된 보고도 하지 못해 매일 눈치만 보던 시기에 썩이나감이 이상행동을 보였다.
놈이 뜬금없이 빈민촌에 오래 머무른 것이다. 심지어 전처럼 하늘 높이 떠올라 사라지지도 않았다.
피엘과 밀은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뒤따랐다. 자신들이 들킬 거라는 생각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피엘은 망원경 역할을 할 수 있게 모든 스킬과 능력치를 감지와 탐색으로 맞춘 레인저였고, 밀은은 랭커들의 코앞에서도 들키지 않을 정도의 암살자였기 때문이다.
"크크크. 놈이 뭘 찾고 있어. 이대로면 계속 쫓아갈 수 있다고."
피엘은 한 쪽 눈을 찡그린 상태로 말을 몰았다.
스킬, 천리안을 발동 중인 그는 일반 유저들보다 1.5배가 넘는 시야를 활용할 수 있었다.
그 끝에 살짝 걸리는 썩이나감은 지도상에도 점처럼 표시되는 동네 뒷산과 같은 곳으로 내려갔다.
"저 산에 갔다!"
"내 차례군. 돌입한다."
다음은 밀은의 차례였다. 은밀하게 걸어가는 그는 주변에 돌아다니는 몬스터도 아예 무시하고 갈 수 있을 정도였다.
피엘이 찍어주는 핑을 따라 가니 볼 품 없는 논과 밭이 보였고 수풀에 숨고 있는 썩이나감이 보였다.
[밀은 : 목표 발견. 수풀에 은신 중이다. 퀘스트 수행 중인 것 같군.]
[피엘 : 뒤에 붙을까?]
[밀은 : 아직. 신호를 하면 붙어라.]
밀은은 썩이나감의 바로 뒤에 붙을 자신이 있었지만, 굳이 모험은 하지 않았다.
모든 최상위 랭커가 무릎을 꿇은 수호자를 며칠이나 앞서서 홀로 공략한 시점에서 썩이나감에 대한 기존의 평가는 모두 백지로 돌아갔다.
처음부터 평가를 해야만 하는 위험대상이었다.
'저 놈은 괴물이야.'
밀은 또한 업계의 사람으로서 썩이나감에 대해서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업계에 관종이라 생각했더니 파면 팔수록 새로운 모습이 드러나고 있었다.
실제로 수호자 미크엘의 공략본을 봤을 때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밀은과 같은 민첩에 올인한 캐릭터라도 수호자의 그 공격은 제대로 피할 자신이 없을 정도였다.
[밀은 : 지금 와라. 뭔가가 시작된다.]
갑자기 밤안개가 피어오르며 멀리서 횃불이 보였다.
썩이나감이 움직이는 것은 그때부터였다.
'저건 뭐지?'
밀은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두 자루의 도끼였다.
썩이나감의 보조무기가 슬링으로 알고 있었기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템 사전에 없다. 그 말은…….'
칠왕의 지하신전에 나온 아이템이 분명하다.
밀은은 두 눈을 반짝였다.
얼마나 좋은 것이기에 썩이나감이 양손으로 무기를 든다는 말인가. 심지어 그간 손에 익은 슬링을 버릴 정도라니!
밀은의 시야에도 식탐가의 일꾼이 보였다. 레벨은 무려 78로 썩이나감과 같았다.
퍼억 퍼억!
밀은으로서는 감히 상대하기 몬스터가 단 한 방에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동레벨의 몬스터는 일단 죽이고 간다.
썩이나감의 극공전사 컨셉이기에 당연한 것이지만 넋이 나가는 것은 공격속도였다. 별다른 스킬을 쓰지 않고 있음에도 점점 속도가 빨라지고 있었다.
'진짜 괴물이다.'
심지어 사이클롭스 마저도 금방 쓰러트리니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잘 되어가고 있어?"
뒤늦게 합류한 피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파티 음성대화이기에 썩이나감에게 안전함에도 워낙 중요한 일거리라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계속 봐봐. 진짜 괴물이야."
이윽고 주술사과 오크 일꾼들이 나타났다.
"저, 저건 뭐야."
"말했잖아. 괴물이라고."
오크 일꾼들이 순삭당하자 놀라는 피엘의 모습은 마냥 남일 같지 않았다.
썩이나감이 검으로 무기를 바꾼 순간에 오크 일꾼들이 낫을 휘둘렀다. 방어력이 전무하기에 저대로 허무하게 죽는 것인가 싶을 때, 돌연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
"……."
둘은 입을 다물었다.
썩이나감의 모습을 놓쳤다.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에 어느새 주술사의 앞에 그가 나타난 것이다.
"저건 무슨 스킬이지?"
"나도 몰라. 저건 도대체 뭐냐고."
어떤 스킬인지 몰라도 몇 미터나 되는 거리를 그대로 줄여버렸다.
오크 일꾼의 공격에도 당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시전하는 순간에는 무적판정까지 되는 것이 확실했다.
"원거리에서도 공격이 되는 것만으로도 무서운데……."
"저렇게 한 번에 파고 들면 답이 없어. 저 쉴드를 봐."
"저 무기의 효과인가? 미쳤군."
"한 번이라도 공격을 허용하면 그 뒤부터는 놈을 죽일 수 없을 것 같은데."
둘은 썩이나감에 대한 관찰을 이어갔다. 무언가를 찾고 그가 사라지는 순간에 은신을 푼 두 사람은 다크로얄의 관계자에게 연락을 보냈다.
위험도 최상.
썩이나감이 적이 된다면 하루라도 빨리 그를 죽여야만 할 터였다.
* * *
[미식가의 열쇠.]
-종류 : 퀘스트 아이템.
-설명 : 무법지대의 미식가가 있는 동굴의 열쇠다.
임프가 건넨 것은 나에게 딱 필요한 퀘스트 아이템이었다. 그 이외에도 간략한 지도가 보였는데 화전에 X표가 그여져 있었다. 그 옆에 따라진 점표를 따라가면 무법지대의 미식가가 있다는 곳으로 갈 수 있을 터였다.
미니맵과 지도를 번갈아보며 이동하자 곧 목표물인 커다란 나무가 보였다. 그 주변의 나뭇잎이 쌓인 곳을 확인하자 녹이 슨 철문이 보였다.
"여기다."
미식가의 열쇠를 밀어넣자 철문의 잠금쇠가 열렸다.
[미식가의 동굴에 입장하시겠습니까? Y/N.]
이 퀘스트가 향후 스토리에 밀접한 관계가 있기를 바라며 Y를 눌렀다.
[던전의 권장조건에 미달됩니다. 그럼에도 입장하시겠습니까? Y/N.]
뒤이어 뜬 메시지에는 조금 놀랐다.
내가 상대한 일꾼의 레벨을 생각하면 난이도가 그렇게 높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서다.
보상도 짠데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기를 바라며 Y를 눌렀다.
잠깐의 로딩과 함께 지하동굴이 눈앞에 펼쳐졌다.
"함정은 특별하게 없나."
언제 던전을 공략하더라도 귀찮은 것은 함정이다.
동굴은 안이 넓기도 했으니 날개를 활짝 펴서 날아다녀도 지장은 없었다.
임프에게 횃불을 들게 하고 놈의 뒷목을 잡고 비행했다.
[크르르르릉.]
앞으로 나아가다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임프를 바닥에 두게 한 뒤에 무기를 바호크의 도끼로 바꾸었다.
앞으로 더 가자 빛을 본 무언가가 달려왔다.
[카카칵! 우리 쪽 애다!]
나보다 먼저 임프가 목소리를 높였다.
LV84. 무법지대의 미식가.
광대에 닿을 듯이 쭉 찢어진 입술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짐승처럼 날카롭게 솟은 발톱을 들이밀며 박쥐의 날개를 펄럭이며 다가오는 놈은 뱀파이어였다.
예상과 다른 점은 반듯한 정장이 아니라 다 헤지고 피칠갑이 된 가죽갑옷을 입고 있는 점이었다.
"그래봐야."
동굴이 아무리 넓어도 무법지대의 미식가는 정면으로 올 수밖에 없다.
놈은 날아오는 바호크의 도끼를 연달아 맞고 더 다가오지 못하고 죽었다.
무법지대의 미식가에게서 나온 아이템은 흡혈귀의 송곳니라는 재료템과 상대를 유혹에 빠드리게 하는 흡혈귀의 타액이라는 포션류의 아이템이었다.
[피 냄새가 난다.]
[피? 누구지? 동족의 것이다.]
멀리서 다른 무법지대의 미식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후각에 발달이 된 컨셉으로 보였다.
"함정 설치하고 뒤로."
핑을 찍어서 임프에게 죽은 무법지대 미식가의 시체 위에 함정을 설치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