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2화 고인물은진행한다.
"먼저 VIP가 되신 여러분들에게 드리는 소정의 선물입니다."
셋에게 인벤토리에서 아이템 하나씩을 건넸다.
모두 칠왕의 신전에서 나오는 것들이었다. 유니크 아이템은 아무리 저렴해도 몇십만 원이 나오니 주기에는 아까워 레어급으로 선정했다.
랭커급에게도 나쁜 것은 아니니 소정의 선물이라는 단어에 가장 적합할 것이다.
"이게 나쁘지 않은데요?"
"흠. 선물 잘 받지."
"렙제가 걸리지만 곧 쓰겠네요."
랭킹 10위를 지키는 개마만 조금 시큰둥하지만 나머지 둘은 선물에 만족한 것처럼 보였다.
"VIP가 되셨으니 제가 공략했던 부분들에 대한 팁과 유니크 아이템의 우선거래권을 드릴 겁니다."
"뒤에가 제일 마음에 드네."
"내 무기도 분명히 있겠군."
"벌써 설레네요."
역시나 이 부분에 셋의 반응이 제일 좋았다.
특히나 개마의 두 눈은 마주보기에 버거울 정도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칠왕의 신전에서 나온 유니크 아이템은 오로지 나를 통해 나온다.
경매장보다 먼저 엠페러와 흑랑, 빡겜 길드에게 향했다. 사실 그쪽이 90%를 차지하고 있었다.
지금 저 개마의 태도를 아예 바꿔버릴 물건이 있다.
"물건을 보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죠."
인벤토리에서 그 물건을 만지작거렸다.
장담하건데 현재 시점에서 이것보다 강력한 무기는 없을 터였다.
쿠웅!
내가 한손으로 들어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그것은 내 캐릭터보다 더 컸다. 그 압도적인 크기에 셋은 벙 쪄 있었다.
그들에게 친절하게 아이템의 정보를 보내줬다.
[처단자의 도끼.]
-등급 : 유니크.
-공격력 : 1692~1802.
-효과 : 근력 10 상승, 최대스태미나 50 감소, 스태미나 소비 10% 상승, 무기데미지 10%만큼의 고정데미지, 무기데미지 100%의 방어, 타격 대상에게 넉백 30%, 일반공격범위 20% 상승, 대검전용스킬 쿨타임10% 감소, 치명타 확률 10% 상승, 치명타데미지 10% 상승, 대검전용스킬 피해량 10% 상승, 파괴LV7, 절단LV4, 출혈LV4, 즉살LV8.
-설명 : 수많은 이들을 처형한 도끼에 거인의 피와 혼이 스며들었다. 거대한 도끼날로 인해 방어까지도 가능해 보인다.
칠왕의 지하신전에서 대장간에 자리잡은 중간보스 중 하나인 이단의 사이클롭스에게서 얻은 무기다.
중간보스 중에서도 상대하기 쉬운 편이었던 이단의 사이클롭스에게 얻기에는 지나칠 정도의 무기다. 특히 이전에 나왔던 레어무기인 울부짖는 망령의 배틀엑스와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스펙이었다.
이 무기가 그냥 드랍으로 얻어졌다고 생각하기에는 의아할 정도였다.
어떤 특별한 조건을 달성해야 획득할 수 있는 것인지 몇 번이고 되새겨봤을 정도다.
아니면 날을 잡고 중간보스룸마다 싹 조사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칠왕의 지하신전이라면 숨겨진 장소가 나오는 것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어쨌든 사냥 당시에는 전과 달리 이면의 그림자를 통해 초반에 딜량으로 찍어 눌렀다는 점 정도일 뿐이었다.
"이, 이건 뭐야."
"맙소사. 엄청나잖아!"
"렙제보다 근력 요구가……."
셋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처단자의 도끼는 날 수없이 죽였던 바호크의 대검보다도 더 컸다. 과장을 더 보태자면 이 거대한 도끼는 판자집 하나를 휘두르는 수준이다. 그 크기를 생각하면 최대스태미나 50 감소나 스태미나 소비가 고작 10%만 증가하는 것이 엄청나게 적게 느껴질 정도다.
특히 처단자의 도끼로 방어까지 가능하다는 건 엄청난 장점이기도 했다.
나야 모든 조건을 만족하지만 이 무기는 높은 레벨제한과 높은 근력수치를 요구할 것이다. 애초에 근접직업군의 상위랭커들만이 착용 가능할 것이다.
이 물건에 욕심을 낼 사람은 당장 코앞에 있다.
고구려 길드의 개마. 엑스 익스퍼드인 그가 입맛을 다시는 것이 그러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 물건을 올릴 겁니다. 여기 세 분은 물론 나머지 VIP에게 구매의사를 물은 후, 현실적인 제의가 아니라면 히든레코드에 올리겠습니다."
"……."
다들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정확하게 말해서는 두 사람이 개마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처단자의 도끼는 다른 직업군이라도 욕심이 난다. 이걸 길드원에게 주기만 하더라도 엄청난 이점일 테니까.
하지만 개마만큼 이것이 욕심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주인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니 심사숙구하신 뒤에 연락을 주십시오."
누가 봐도 개마가 높은 금액을 부르겠지만 난 최대한 계산기를 두드릴 거다. 여기서 낙찰이 되더라도 히든레코드에 올리면 만족스러울 정도의 가격으로 판매될 테니까.
"난 포기할게요. 다 법사 쪽이라."
정령왕김정령이 불쑥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면서 개마쪽을 보며 웃는 것이 뭔가 이야기라도 주고 받은 것 같다.
"아쉽지만 우리도요. FST는 아직 저렙이니까."
마르쉔도 포기 의사를 드러냈다. 이래서 눈치가 빠른 양반들이 싫다. 둘이서 가만히 있었으면 개마는 보이지 않는 경쟁자로 인해 패닉바이라도 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인데.
"지금 막히신 부분에 대해 궁금한 것 알려주세요."
거래는 이쯤에서 하고 셋이 막힌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플레이 영상을 체크해보니 정령왕김정령이나 개마는 각자의 수호자들에게 막혀있었다.
"먼저 김정령님은 소환수 캐스팅이 기니까 딜량기대치는 낮아도 낮은 레벨의 정령을 불러서 대응하세요. 백스탭처럼 일단 판정이 좋고 빠른 스킬로 피하시고요. 이건 개마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공격모션이 큰 직업이라 한 대라도 더 때리기보다는 한 대라도 덜 때리세요."
이들에 대한 조언은 결국 독고무적이나 흑군의 것과 비례한다.
다음은 마르쉔이었다.
마르쉔은 이제 막 오크펠슨에 진출했기에 해당 부분에 대한 세세한 진행팁만 알려줬다.
"이걸로 해산하겠습니다. 다음에 또 뵙죠."
일단 칠왕의 지하신전을 공략했으니 다음은 퀘스트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칠대악룡 무구의 행방 이전에 요한이 준 것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먼저 무법지대의 식탐가를 알기 위해 빈민촌에 들렀다.
"촌장. 무법지대의 식탐가에 대해 알고 있나?"
"그들을 처지해주시는 겁니까?"
"사정상 그렇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촌장은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내 손을 붙잡으며 무법지대의 식탐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빈민촌은 아웃사이더 시티의 영역에서 벗어난 곳에서 화전을 한다고 했다. 따로 병력을 구할 수 없어서 그들이 지은 농작물을 약탈을 해나가는 이들을 무법지대의 식탐가라고 부른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어디에 있지?"
"저희가 화전을 하는 곳에서 남쪽으로 더 가면 나오는 황무지에 굴을 파고 살고 있습니다."
"인간인가? 아니면 몬스터?"
"둘 다입니다."
"음?"
촌장의 말에 귀를 의심할 뻔했다.
인간과 몬스터가 함께 움직인다. 그러면 몬스터 테이머쪽의 적이지 않을까 싶었다.
"인간과 몬스터들이 함께 움직이고 있습니다."
"목격자는 있나?"
"곧 불러오겠습니다."
촌장이 사라지고 불러온 것은 빈이라는 NPC였다.
"빈입니다. 영웅께서 저를 찾으셨다고요?"
"무법지대의 식탐가에 대해 묻고 싶다. 적들의 구성은 어떻게 되지?"
"처음에 적들은 인간 하나에 오크 하나, 코볼트와 고블린이 둘씩이었습니다."
저 구성이면 몬스터라 불리는 코볼트와 고블린도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어서 협력체계가 아닌가 싶었다.
"그 다음은?"
"거대한 거인 하나의 명령에 인간들이 따랐습니다. 그들은 모두 목줄이 메여져있었고요."
"……."
두 번째 이야기를 들으니 뭔가 이상하다.
처음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앞선 이들에게는 목줄 이야기가 없었다.
그런데 뒤의 인간들은 달랐다고 하니 그들 사이에서도 계급차이가 있는 것 같다.
그때는 우두머리가 거인족인 것 같은데 지능은 있으나 높지 않아 사고방식이 유연하지 않다. 하나를 시키면 하나를 할 뿐이다.
"더 있나?"
"세 번째는 주술사 하나에 오크가 여럿이었습니다."
"주술사의 종족은?"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확인."
세 개의 서로 다른 구성의 집단이다.
세력다툼은 아닌 것 같으나 단순히 서른마리만 잡으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뭔가 냄새가 나는 퀘스트임은 확실하다.
"놈들의 출몰시기는?"
"매번 밤이면 나타납니다. 어째서인지 놈들이 있으면 주변에 몬스터들이 보이지도 않아요."
"좋아. 알겠어."
그 뒤에 빈민촌들의 화전 위치를 전해받았다.
내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그게 다였으니 거기로 이동을 해 은신을 했다.
[카카칵! 똥 싸냐? 왜 가만히 있어!]
"넌 닥치고 있어."
옆에서 임프가 쫄랑쫄랑거리는 것이 신경이 쓰일 뿐이다. 그래도 놈이 붙어있을 것을 보면 칠왕의 지하신전과 같은 예외적인 경우는 아니라는 뜻이다.
칠왕의 지하신전에 다시 들어가기 전의 여흥이라고 생각해도 괜찮을 것 같다.
늦은 오후의 붉은하늘은 점점 차갑게 가라앉았다.
달이 차오르며 피어오르는 밤안개가 볼품이 없는 화전을 가로 막았다.
[빈민들의 화전을 지켜라.]
목표가 갑자기 생겨났다.
무법지대의 식탐가만 처리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이 퀘스트도 제법 길지도 모른다.
멀리서 횃불이 보였다. 그 높낮이가 서로 다른 것을 보니 처음에 들었던 인간과 오크에 코볼트와 고블린 둘의 구성인 것 같았다.
LV78. 식탐가의 일꾼.
뒤이어 드러난 적들은 예상대로였지만, 머리에 적힌 것은 예상을 벗어났다.
내가 목표하던 무법지대의 식탐가는 아니었다.
"별 수 없나."
적들의 레벨은 고작해야 78에 횃불을 들고 있어서 위치도 식별하기 너무나 쉽다.
바호크의 손도끼로 무기슬롯을 바꾸어 힘차게 던졌다.
퍼걱! 퍼걱!
"케헥!"
"컥!"
두 번의 투척에 인간 일꾼과 코볼트 일꾼이 죽었다.
"적이다! 죽여라!"
"식량을 뺏어야해!"
"적은 하나다!"
나머지 셋이 나를 발견하고 달려들었지만 직선으로만 와주니 아주 고마울 뿐이다.
한 번 던질 때마다 빨라지는 도끼에 적들은 죽었다.
적들의 습격은 이게 시작이었다. 후방에서 같은 구성의 적들이 쏟아졌다.
"디펜스 게임이고 이게 1페이즈네."
빈이 말했던 세 차례나 적들을 방어하면 될 것 같다.
적들을 향해 바호코의 손도끼를 던져댔다. 쉴드가 채워지지 않는 점은 애석하지만 굳이 이런 놈들을 상대로 시간을 질질 끌고 싶지 않았다.
칠왕의 지하신전에서 구른 것을 생각하면 동레벨의 몬스터에게는 가까이 가는 것도 수치니까.
1페이즈에 나타난 적은 총 다섯 무리였다. 그들 중에서 특별하게 위협이 되는 건 없었다.
무법지대의 식탐가는 언제 나올 것인지 당장은 알 지 못했다.
스태미나를 채우고 난 다음에 또다시 횃불이 보였다.
쿠웅! 쿠웅!
바닥을 울리는 진동 탓에 2페이즈가 시작됨을 알 수 있었다.
빈이 알려준 대로라면 거인 하나에 인간 여럿이다.
LV80. 식탐가의 일꾼.
먼저 거인은 사이클롭스로 레벨이 2가 높았고 무기는 못이 촘촘하게 박힌 몽둥이 하나가 전부였다.
반면에 놈이 목줄을 쥐고 있는 인간들은 LV77에 불과했다. 숫자는 무려 여섯 명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장비도 특별한 것이 없이 수확을 하기 위한 낫과 가죽배낭 정도 밖에 없었다.
퍼억! 퍼억!
"컥!"
"으악!"
앞선 경우와 똑같이 앞에 튀어나온 인간 일꾼 둘을 죽였다.
거인보다 일꾼을 먼저 죽였는데 그건 거대한 덩치 때문에 속도가 느리다는 판단이 들어서다.
쿠웅! 쿠웅!
[구워어어어!]
"이게 아니구나."
잘못된 판단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든 것은 거인이 난입을 하는 순간에 화전의 내구도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스도 아닌 일반 몬스터에 불과한 거인이다. 이놈도 도끼를 네 번 던지자 죽었다.
그 뒤에는 똑같이 거인과 인간일꾼들이 나타났는데 아예 결사항전의 영역을 사용해서 거인들을 먼저 죽였다.
최대 30%까지 상승된 공격속도 덕분에 인간 일꾼들조차도 내게 3m 이상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했다.
[카카칵! 쉽다! 쉬워!]
다시 스태미나를 회복하는 사이에 임프는 부지런하게 자동수집을 했다. 놈의 배낭을 살피니 나오는 것은 쓸모가 없는 잡화뿐이었다.
칠왕의 지하신전에서 얻었던 것과 비교하면 비루하기 짝이 없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