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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은 옷을 입지 않아-180화 (180/201)

제180화 고인물은갈등한다.

"씨바아아아알!"

도시 위를 지나가는데 밑에서 큰 욕설이 들렸다. 위치상으로는 모략의 신인 어이라교의 신전이었다.

누구인지 몰라도 수호자에 된통 깨진 모양이다.

"고생 좀 하겠네."

누구인지 몰라도 이렇게 쩌렁쩌렁하게 들릴 정도면 어지간히 악에 받쳤나보다. 혹시나 다른 신전도 지나갔는데 거기서도 곡소리가 울려 퍼졌다.

독고무적이나 흑군만이 아니라 다른 최상위 랭커들도 수호자와 마주하기 시작한 모양이다.

"개고생 좀 해봐라. 나약한 랭커들아."

나야 혼자서만 움직이니 뒤늦게 알게 된 것인데 수호자 미션은 같은 종교를 가진 유저라고 하더라도 개개인적으로 진행한다고 한다.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퀘스트가 주는 의미는 컸다.

현재 300위 내의 랭커들 중에서 길드에 속하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나처럼 혼자서만 움직이는 사람은 없다.

즉, 처음 시작할 때를 제외하면 그들 중 누구도 혼자서 보스를 혼자서 상대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그게 무슨 문제냐고 할 수 있겠지만, 각 유저들은 파티에서 자신의 직업이 확정된 상황이 익숙하다.

탱커 및 힐러들로 인해 안전이 확보된 상태에서 딜만 넣던 멍청이들이라면 아마 고생 좀 할 거다.

평소에 탱커들이 막아줬을 공격부터 피하기 급급할 테니까.

"…이쯤이면 나 이외에 아무도 공략 못할 수 있겠는데."

물론 모든 유저가 죽을 고생은 하지 않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누군가는 답을 찾을 거다. 나처럼 정성적인 플레이를 할 필요가 없다.

게임이라는 것은 항상 변수라는 것이 존재해왔으니까.

개인적으로 그런 플레이를 선호하지 않는 것은 패치로 인해 막히거나 심각한 경우 버그를 악용한 플레이라고 캐릭터가 정지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후자의 경우는 극히 드물다.

당장 기억에 남는 것은 어설프게 돈 버그 쓰다가 날아간 경우다.

아웃사이더 시티를 지나 칠왕의 지하신전으로 가는 동굴로 갔다.

내 시간은 아직이다.

*       *       *

처음의 성공은 우연이었을까.

첫 날의 재도전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다.

중간보스들에게 얻은 아이템들을 처분하고 두 번째 날이 되어야 다시 칠왕을 잡았다.

"나도 개쩐다."

처음 성공했을 때의 영상과 비교를 하니 내 움직임은 점점 칠왕의 모든 패턴에 알맞게 대응하기 시작했다. 가끔은 너무 섣불리 움직여 죽어나갔지만 기어코 다시 해냈다는 점이 중요했다.

특히 칠왕에게서 얻은 이면의 그림자로 톡톡히 재미를 봤다.

어그로가 끌리는 것은 물론 자리만 잘 잡으면 딜량이 순간 2.5배 정도는 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칠왕의 사령이나 칠왕의 그림자 같은 것들도 손 쉽게 죽였다.

물론 처음에 어둠 패턴으로 나오는 내 그림자에게 역으로 당하는 거지같은 일은 기억에 지워두고 싶지만 말이다.

[레벨이 1 상승합니다.]

[전 능력치가 1 상승합니다.]

"푸하하하!"

칠왕의 재사냥. 그보다 날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레벨 업이었다.

[엘리멘탈 소울2 랭킹.]

031위. 척준경. LV78.

032위. 썩이나감. LV78.

033위. 레디안. LV78.

마지막에 확인한 이후에 레벨이 무려 2계단이나 올랐다. 그런데도 척준경이 내 위에 있음은 썩 만족스러운 상황이 아니다.

지난 이틀 동안 수호자에 좌절을 한 랭커들이 다시 레벨업에 집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고무적이과 흑군은 레벨80까지 찍어버렸다. 그래놓고도 또 수호자에게 막히면 비웃어줄 거다.

"애초에 내가 70레벨 초반에 잡은 걸 아직도 못 잡았으니."

내 생각보다 랭커들은 파티 플레에이 집중했었나보다. 정해진 역활을 벗어나는 행동을 하면 예상하지 못하는 멍청한 짓만 골라해댄다.

그들의 삽질 덕분에 썩이나감이라는 캐릭터가 반대급부로 더 평가가 높아지니 마냥 나쁜 것도 아니다.

전과 달리 핵을 썼다느니 버그를 남발한다느니 그런 개소리도 없는 부분도 마음에 들었다.

노이즈 마케팅으로 시작한 셈이지만 지금은 진짜 실력으로 보여주니 억까들이 입을 다무는 수순이다.

"그리고 내게 필요한 물건도 왔고."

데스킹에게서 얻은 것은 지금의 내 눈에는 만족스럽지 않은 레어 아이템들이었다. 이건 다 판매할 것이다.

예외가 있다면 단 하나다.

바로 고속비행 스킬북이었다.

비행시에 단점은 헤이스트나 지면강타와 같은 스킬이 아니면 제대로 회피할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고속비행이라는 스킬이 마른 가뭄의 단비와 같기를 바란다.

[스킬, 고속비행을 익히셨습니다.]

습득이 끝난 스킬북은 사라졌다.

[고속비행LV1.]

-종류 : 액티브 스킬.

-효과 : 비행속도를 20% 상승시켜줍니다. 속도 대비 스태미나 소모량이 상승합니다.

-쿨타임 : 2분.

-마나 소모량 : 100.

비행속도의 상승폭은 헤이스트와 겹쳐지면 더 빨라질 것이다.

쿨타임도 적당하고 마나 소모량도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니라 더 마음에 들었다.

던전을 나와 다시 아웃사이더 시티로 갔다.

이틀 동안 칠왕의 지하신전에서 있느라 인벤토리는 온갖 레어와 유니크로 가득 차 있었다.

지금 속도로 1,2년만 돈을 모으면 고향에서 아파트 하나 정도는 어떻게 마련하지 않을까 싶었다.

[독고무적 : 지금 아웃사이더 시티라고 들었다. 광장으로 와라.]

우편함을 통해 빨간약파란약에게 판매할 아이템을 보내던 차에 독고무적이 귓말을 보냈다.

텍스트로만 보는 것이지만 그의 불편한 심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직 못 깬 건가."

독고무적은 신성기사로 딜이 조금 모자랄 뿐이지 탱딜힐이 다 되는 올라운더 클래스였다. 특히 내게서 구매한 아이템도 사간 덕분에 아웃사이더 시티에 입성하기 전보다 비교할 수 없이 강해진 상태였다.

그런데도 수호자에게 아직 해답을 찾지 못하는 것인가 싶었다.

"할 말이 있습니까?"

"……."

"사람 불러놓고 왜 말이 없어요."

광장에서 마주한 독고무적은 입을 꾹 다물고 날 노려봤다.

거기서 느껴지는 것은 자신에 대한 답답합과 함께 농도 짙은 짜증과 나에 대한 미묘한 적의였다.

"흑군이 마지막 페이즈까지 갔다."

"당신은요?"

"……."

답이 없다.

하지만 침묵의 의미는 알 것 같다.

"어디서 막힌 겁니까."

"…네 공략이 확실한 거냐?"

독고무적은 나에 대한 불신을 품기 시작했다.

"하아."

저런 상태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의 짜증이 나에게 전염이 되었다. 머리를 벅벅 긁는 나의 모습에 독고무적은 이를 악물기까지 했다.

독고무적과 흑군.

전작을 모르는 이들은 둘이 서로 사이가 좋다고 여길 것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아니다.

둘은 경쟁자다.

언제라도 서로 등을 지고 싸울 수 있는 상대다.

지금은 엠페러와 흑랑 길드가 서로 몸집을 불리며 단단해지고 있을 뿐이다.

때가 되면 두 거대 길드는 서로 편을 나뉘어 전쟁을 일으키는 수순이 될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독고무적이 언제나 흑군보다 반발자국 더 앞서갔다는 거다.

개인의 강함은 물론 모든 것에서 독고무적이 더 위라 평했다.

나 또한 거기에도 동감하는 바였다.

독고무적과 흑군.

둘을 놓고 보자면 독고무적이 더 낫다.

"왜 그에게 뒤쳐졌나 그것이 이해가 되지 않겠죠."

얼마나 진행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독고무적은 마지막 페이즈에 다다르지 못했다.

수호자 미크엘은 자해를 통해 내게 데미지를 쓰는 지랄 맞은 스킬을 썼지만, 독고무적의 경우는 다른 수호자이니 어떤 답이 나올 것인지는 모르겠다.

"첫 번째는 클래스 차이입니다."

신성기사는 좋은 직업이다. 어느 부분에서도 크게 모자람은 없지만 어느 부분에서 특별히 드러남도 없다.

예외가 있다면 생존력이겠지만 그건 레벨99의 수호자들 앞에서는 무력하다.

반면에 흑군의 무투가는 민첩성과 근력이 높은 근접딜러였다. 사정거리를 짧은 편이지만 그걸 만회할 대시기가 많다. 회피비가 없다는 것이 흠이지만 앞서 말한 대시기로 그걸 커버할 수 있다.

"그건 알고 있다.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고."

독고무적은 답답한지 진절머리를 쳤다.

"두 번째는 성향입니다."

"성향?"

"저보면 아시잖아요."

혼자서 높은 레벨의 던전과 보스를 공략할 때는 결국 머리를 들이밀고 몇 번이고 깨져봐야한다는 거다.

불사자라는 직업 때문에 특히 몸을 불사르기는 하지만 내 성향 자체가 그렇게 쌓은 데이터로 공략을 하는 편이었다.

흑군도 비슷한 편이었다. 그래서 길드전을 치룰 때, 직접 지휘를 하기보다는 부길드장에게 맡기고 자신은 일선에서 싸우는 경우가 허다했다.

"…인정할 수 없다."

"그러면 제가 알려준 팁이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까?"

"……."

이번에도 독고무적은 침묵했다.

내 조언은 도움이 되었다. 그게 아니라면 날 다시 찾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제가 좋은 솔루션을 제시해드리죠."

"너……."

불쑥 대화에 끼어든 것은 오랜만에 보는 불편한 얼굴이었다.

황금추적자.

아웃사이더 시티에서 조용히 지낸다던 녀석이 결국 나타난 것이다.

"이번에 수호자를 공략했습니다. 저쪽의 벌거숭이보다는 우리가 더 나을 것 같습니다만."

"끼어들지마라. 뒤지기 싫으면."

독고무적은 엄연히 내 고객이다. 그가 황금추적자와 그의 팀 골드캐시에 고생을 한 것을 생각하면 저렇게 끼어드는 것 자체를 불쾌하게 여겨야만 한다.

"……."

하지만 독고무적은 침묵했다.

난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 것인지 알 것 같았다.

그에게 나는 새롭게 부상한 다크게이머지만, 황금추적자는 오래 전부터 업계의 1티어로 군림했던 놈이었다.

내가 칠왕의 지하신전까지 최초공략한 상징이 있다면, 그에게는 마인시티와 엘리멘탈 소울2의 아이템 시장을 움직일 수 있는 시스템이 있었다.

"…확실한가?"

"물론입니다. 전부터 이야기 드렸잖습니까."

흔들리는 독고무적을 황금추적자는 환한 웃음으로 반겼다.

내가 칠왕의 지하신전에 몰두하는 동안에 저 능구랑이 같은 놈이 독고무적을 흔들었던 것 같다.

"감당할 수 있습니까?"

아예 등을 돌린 독고무적을 보며 애가 타지는 않았다. 어차피 거리를 두려고 했지만, 황금추적자에게 고스란히 뺏기는 꼴은 원하지 않았다.

"하! 내가 널?"

독고무적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나를 봤다.

"예. 감당할 수 있습니까?"

"난 독고무적이다."

"알고 있습니다."

독고무적과 엠페러 길드. 이들이 저력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만이 엘리멘탈 소울2에서 값어치가 나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새롭게 게임에 진출하는 과거 랭커들도 많았다.

"네놈이 우리가 아닌 다른 놈들에게 접촉하는 것을 참아주는 것도 여기까지다."

"……."

독고무적은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은 것인지 황금추적자와 사라졌다.

"저 아저씨 또 정치 때리겠네."

VIP에 추가할 명단을 달라고 했더이 자기쪽 사람만 대폭 추가해달라고 했던 것은 생각도 하지 않는다.

내가 저래서 게임이든지 현실이든지 자기 손해만 본 것만 생각하고 정치를 때리는 놈들을 싫어한다.

내일부터 대충 나에 대한 불만이 속출할 것이다.

[썩이나감 : 독고무적은 더 이상 VIP가 아닙니다. 그를 따라 가실 분들은 가셔도 됩니다.]

어차피 깨기로 했으니 다른 VIP들에게도 연락을 보냈다.

[흑군 : 난 있을게. 난 그쪽이랑 안 맞거든.]

흑군이 말한 그쪽은 황금추적자임이 분명하다.

[열파창 : 그 아저씨가 왜 나간 건지나 말해봐.]

반면에 열파창은 그쪽이 더 궁금한 것 같았다. 거기에 대해서 말하자 열파창이나 흑군이나 별다른 답이 없었다.

어쨌든 둘은 VIP로서 있겠다는 것 같으니 내 주관으로 다른 이들을 추가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쳐낼 것 쳐냈으니 신경 끄자."

만약 이탈자가 있어도 열파창이 먼저일 줄 알았으니 입 안이 썼다.

흑군과 열파창에게 수호자 공략에 대한 조언을 더 해주며 그날의 작업은 거기서 끝냈다.

[갤주가 독고무적 뒷담화했다. ㅋㅋㅋㅋㅋ.]

그리고 내 귓말의 캡쳐본이 올라감에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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