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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은 옷을 입지 않아-176화 (176/201)

제176화 고인물은버텼다.

칠왕의 사령은 내가 예상한 수를 넘어섰다. 놈들의 속도가 그렇게 빠른 것은 아니다. 놈들만 있다면 이동을 하면서 하나씩 제거가 가능할 것이다.

문제는 칠왕의 혈인이 둘이 있다는 거다.

"임프!"

[나 안 해!]

"개 같은 놈."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불렀지만 여전히 임프는 구석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다.

인벤토리에서 다급히 덫 종류를 꺼내 바닥에 깔았다.

콰득! 콰득!

"…후우."

설치를 하고 다급히 물러나자마자 칠왕의 혈인 둘이 덫에 덜미를 잡혔다.

창은 허공을 갈랐고 창날은 집요하게 나를 노렸지만, 이번에도 서로 엮여서 찔러 오는 창날을 쳐냈다.

[헤이스트를 사용합니다.]

그 뒤에는 미련 없이 도주했다.

[결사항전의 영역을 사용합니다.]

[스피어마스터의 소울을 사용합니다.]

최소한의 안전거리를 확보한 뒤에 곧바로 스킬들을 사용했다.

먼저 역섬기검을 길게 펼쳐서 전방의 칠왕의 사령에게 피해를 준 뒤에 바호크의 도끼로 무기를 바꾸어 추가적인 피해를 주었다.

칠왕의 사령은 이미 날 포위한 상태였고 놈들에게 피할 방도는 없었다.

죽이냐. 죽느냐.

두 선택지 중에서 택할 수 있는 것은 포기하지 않는 일뿐이다.

칠왕의 사령을 하나 죽이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문제는 오십 마리를 전부 없앨 수 있냐는 것과 행여 가능하더라도 놈들의 폭발에서 멀쩡할 수 있냐는 거다.

내가 어떻게 피할 것인지는 이미 머릿속에 그려 놨다. 그걸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콰앙!

하나의 칠왕의 사령을 죽였다. 중심부에 일어난 폭발에 휘말린 사령들이 출렁거렸다.

좌우측에서 파고드는 놈들에게도 정신없이 바호크의 도끼를 난사했다.

콰왕! 콰왕!

결사항전의 영역으로 인한 각종 버프, 낮은 확률로 상태이상을 주는 강자의 오오라, 최대 10%까지 공격속도를 높여 주는 광전사의 집중력.

이 세 가지가 절묘하게 이루어져 칠왕의 사령의 무리의 중앙마다 폭발이 일어났다.

콰과과과광!

전체적으로 데미지를 입은 칠왕의 사령들이 5m의 거리에서 연이은 폭발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등가교환의 배리어를 사용합니다.]

곧바로 내 몸에 방어용 스킬을 쓴 뒤에 물러났다. 폭발에 휘말려 사라지는 와중에도 가까이 다가온 칠왕의 사령 때문에 피해를 입었지만, 죽지는 않았으니 문제는 없다.

진짜는 칠왕의 혈인들이었다.

놈들은 동시에 창으로 바닥을 두드렸다.

천장이 무너지고 바닥이 터지는 패턴이 중첩이 되기에 위태로운 비행으로 목숨을 연명했다.

그 뒤에는 임프의 배낭에서 함정들을 뺏어 놈들의 발을 하나씩 묶었다.

"…죽였다."

공을 들여 피해를 주던 와중에 결국 칠왕의 사령2가 검에 베어 두동강이 났다.

뒤에 있던 칠왕의 사령1도 형체를 잃고 바닥에 핏물을 뿌렸다.

촤아악! 촤아악!

바닥을 적시는 피의 물결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미크엘을 둘러싼 칠왕의 혈인들도 하나씩 흔적을 남기며 사라졌다.

"죽어라. 칠왕!"

"아직이다. 수호자!"

자유를 찾은 미크엘이 칠왕에게 달려들었다.

순간 화면은 시네마틱으로 바뀌었다.

피범벅이 된 알현실. 거기에서 빛과 어둠이 서로 뒤엉키며 어지럽게 싸우고 있었다. 설마 바호크 때처럼 허무하게 지나가는 식일까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엔딩도 나쁘지 않겠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내 손으로 끝내지 못한다는 것은 아쉬운 일 일 수밖에 없다.

"크허어억!"

약 1분의 공방전.

미크엘이 내려친 검이 칠왕의 가면과 갑옷을 갈라 버렸다.

칠왕의 드러난 모습은 전작에서 유저가 플레이가 가능했던 종족인 다크엘프였다. 짙은 회색의 피부에 하얀색의 머리카락, 붉은 눈동자는 섬뜩할 정도였다.

"쿨럭. 커허억!"

칠왕은 뒷걸음질을 치며 피를 토했다. 창을 지팡이 삼아 버티며 가까스로 서 있을 뿐이었다.

딱 막타만 넣으면 죽을 것 같아 몸이 근질근질했다.

"할 말이 있나. 칠왕."

미크엘이 그의 턱밑에 검을 들이 밀었다.

"……."

칠왕은 고개를 푹 숙였다. 살갗에 검이 파고들어 피가 흐르고 있음에도 그저 거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사악한 자여. 운명을 받들라."

미크엘이 검을 거두었다. 역수로 움켜쥐어 그대로 칠왕의 뒤통수를 꿰뚫을 것 같았다.

"여신 따위가 필멸자의 운명을 정할 수 없다!"

칠왕이 고개를 번쩍 들고 소리쳤다.

갑자기 알현실의 바닥에 금이 가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시네마틱 영상은 그게 끝이었다.

"아직이다. 날 따라와라 불사자!"

미크엘은 드러난 지하로 뛰어내렸다.

"보스전 더럽게 기네."

도대체 패턴이 몇 개나 나오는 것인가. 신물이 나다 못해 진절머리가 나올 정도다.

나 또한 밑으로 뛰어 내렸다.

날개가 있음에 낙사를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지하에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져 있었다.

칠왕만이 나와 미크엘을 노려볼 뿐이었다.

"여기서 네놈들은 모두 죽는다."

칠왕이 창을 거꾸로 쥐더니 자신의 몸을 찔렀다. 창이 바닥을 찍었기에 뒤로 넘어가던 몸뚱이는 어정쩡하게 서 있던 형태였다.

콰드드득!

그리고 칠왕의 몸에 이변이 생겼다. 아직 형태는 유지하던 갑옷이 터져 나가며 칠왕의 몸이 부풀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칠왕의 머리 위의 글자에도 변화가 생겼다.

LV99. 데스킹.

전작에서도 본 적이 없던 몬스터다.

거인족을 보는 것처럼 거대해진 몸뚱이 하나 만으로도 압도적이다. 피부를 찢고 두드러진 근육은 대교에 보던 와이어와 같았고 신체의 끝부분마다 튀어나온 뼈는 마치 칼날과 같았다.

"놈이 영혼을 죄악에 팔았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는데!"

"여신께서 도와주실 것이다. 그전까지 시간을 끌어다오."

"……."

미크엘은 처음으로 저자세를 보였다. 그만큼 지금 시간이 버겁다는 뜻이리라.

"이것만 넘기면 된다는 거지."

데스킹에게서 시간을 벌면 된다는 것이다.

[데스킹에게 버텨라. 04:52.]

목표도 새롭게 갱신되었다.

칠왕은 데스킹이 되면서 체력이 가득 차 있었다.

반면에 미크엘의 체력은 30% 가량이다. 검을 바닥에 내려놓고는 한쪽 무릎을 꿇은 뒤에 두 눈을 감고 기도를 외우는 그의 몸에는 은은한 빛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만약 데스킹에 의해 무방비한 상태의 미크엘이 피해를 입으면 던전공략이 실패할 가능성도 농후하다.

[크오오오오오오!]

데스킹은 먼저 칠왕의 지하신전이 떠들썩할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쿠르르르릉!

천장이 부서져 내리는 패턴이지만 피하는 것은 피의 칼날에 비하면 조금도 어렵지 않았다.

[죽어라. 불사자. 내놔라. 너의 것.]

주의해야 할 것은 데스킹이었다. 놈은 바닥에 떨어진 잔해를 움켜쥐더니 내게 집어 던졌다.

저건 위험하다.

바닥을 박차고 곧바로 하늘로 날아올랐다.

콰아아앙!

데스킹이 던진 잔해는 아슬아슬하게 미크엘을 스치고 벽을 맞췄다.

놈은 연거푸 잔해를 던졌다.

벽타기로 천장을 뛰며 두 번째를 피하고 벽타기로 바닥에 떨어지며 세 번째를 피했다.

그때마다 터져나가는 천장의 잔해들은 보고 피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딱 리듬게임의 초반부를 하는 정도였다.

이대로 시간만 끌어준다면 난 고마울 뿐이다.

[내놔라아아아아!]

데스킹이 고함을 치더니 내게 입을 쩍하고 벌렸다. 턱뼈는 가슴까지 내려왔고 비상식적으로 확장된 주둥이가 공기를 빨아 당기기 시작했다.

"큭!"

어딘가 피할 수 없게 지하에 전체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검을 바닥에 찍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어찌나 흡입력이 강한지 케이크를 자르는 것처럼 지하를 가르기 시작했다.

30M는 유지가 되었던 거리가 점차 줄어들었다.

검을 잡고 버티는 만큼 스태미나도 빠져나갔다.

[내놓으라고 했다. 불사자.]

데스킹의 목적이 있어야 할 부분에서 칠왕이 얼굴이 있었다.

순간 내 몸에서 검붉은 기운이 그에게로 빨려 들어갔다.

"이 패턴이냐 또!"

데스킹이 거대한 주둥이를 닫은 것은 그걸 먹은 뒤였다.

[칠죄종.]

교만 : 사용불가.

인색 : 100(MAX).

시기 : 100(MAX).

분노 : 100(MAX).

음욕 : 100(MAX).

식탐 : 100(MAX).

나태 : 100(MAX).

*칠최종 중 6개의 최대치 효과로 모든 능력치가 20% 상승 적용합니다.

칠죄종을 확인하니 또 이렇게 되었다.

만약 불사자인 내가 아니라 다른 직업의 유저가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의문이 들 정도였다.

교만이 사라짐으로서 능력치 상승폭이 줄어든 것은 피해가 적지 않다.

콰아앙!

데스킹은 땅을 박차고 달려들고 주먹을 휘둘렀다. 체구가 비슷한 자이언트 정도라고 생각했지만 팔은 놈보다 더 길었다.

예상보다 체감속도는 더 빠르지만 시야의 끝에 들어오는 미크엘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후우웅!

놈의 주먹을 피했지만 피부에 상처가 날 정도였다.

일반공격이지만 범위가 보이는 것보다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칠죄종 하나가 사라졌다고 발목을 잡힐 정도는 아니다.

타이밍만 더 빠르게 잡으면 이대로 시간을 버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쿠웅! 쿠웅!

문제는 데스킹의 시선이 날 떠났다는 거다.

데스킹이 미크엘에게 발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에 몇 미터는 움직이니 금방이라도 미크엘을 짓밟을 것 같았다. 그걸 가만히 볼 수 없어서 곧바로 바호크의 도끼로 바꾸어 공격했다.

카앙! 캉!

바호크의 도끼는 마치 강철을 두드린 것과 같은 소리를 냈다.

[귀찮게. 하지. 말아라.]

데스킹의 어그로가 다시 내게 향했다. 놈은 땅을 박차고 뛰어 올랐다.

거대한 몸뚱이로 날 깔아뭉갤 생각이었다.

저건 범위가 너무 넓어 보여 시공간이동자의 블링크로 피했다.

콰아아아앙!

데스킹의 두 발은 지면을 완전히 박살 냈다.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넓은 범위에 피해를 입혔다.

"불사자! 뭐하는 거냐!"

기도를 올리던 미크엘이 내게 버럭 소리를 칠 정도였다. 실제로 그의 체력은 칠왕이던 때와 다르게 대폭 닳아 있었다.

세 번 혹은 네 번.

데스킹의 공격에 휘말리면 미크엘은 죽게 된다.

"골치 아프네."

데스킹의 공격범위를 감안하면 저 도약 공격을 못 쓰게 해야만 한다.

그 말은 죽음을 각오하고 계속 붙어있어야만 한다는 뜻이다.

과연 가능할까?

"안 되도 되게 해야지."

공략이 목전이다. 여기서 겁을 먹을 수 없다. 주저하지 않고 데스킹에게 달려갔다.

쿠웅! 쿠웅!

데스킹 또한 한 걸음씩 다가오다 곧바로 날 걷어차려고 했다.

후우웅!

구르기로 피하자 거대한 발이 허공을 훑었다. 몸을 일으키는 즉시 바호크의 도끼로 발등을 공격했다.

[가소롭다.]

데스킹은 휘둘렀던 발을 무릎까지 들어 올리더니 그대로 내려찍었다.

콰아아앙!

도약보다는 못하지만 강하게 바닥이 내려앉았다.

저런 충격파의 형태는 공중으로 날아올라 피하는 것이 가능했다.

데스킹의 목을 스쳐가며 도끼를 계속 던졌다. 놈은 모기라도 잡듯이 팔을 휘저었다. 그 어지러운 손길은 비행만으로 피하기에는 버거웠다.

[벽타기를 사용합니다.]

천장을 뛰어다니며 손바닥을 피하며 도끼를 던졌다.

데스킹은 여전히 큰 데미지를 입지 않고 있지만, 체력소모는 꾸준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최소한 미크엘에게 어그로가 끌리지 않을 정도는 될 것이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다.

역시나 데스킹에게 가까이 있는 것이 옳았다.

콰아앙!

손바닥이 천장을 후려치자 곧바로 지면강타로 바닥으로 대피했다.

파편에 의해 계속 데미지를 입었기에 부족한 쉴드를 얻고자 수호자 미크엘의 장검으로 바꾸어 발등을 두 번 베어 냈다.

"곧이다. 불사자."

남은 시간은 1분 30초.

미크엘은 외침이 내게 힘을 주었다.

데스킹이 지금과 같은 패턴을 보인다면 피하지 못할 것은 없었다.

[내놔라. 너의 것.]

데스킹은 무릎을 굽히더니 두 팔을 크게 휘두르며 나를 잡아채려고 했다.

뒤로 피할 공간은 없다.

공중으로 피하기에는 너무 빠르다.

내가 낼 수 있는 답은 오히려 품안으로 파고드는 것이었다. 팔꿈치 안의 빈 공간에 몸을 숨기자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데스킹이 방향을 틀어 날 계속 잡아채려고 해 주니 시간은 계속 흐르기만 했다.

"…좋아. 좋아!"

1분은 진즉 깨졌다. 10초 대도 깨지자 데스킹은 포효와 함께 두 손을 깍지를 끼더니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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