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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은 옷을 입지 않아-174화 (174/201)

제174화 고인물은배운다.

그래도 처음에 접했을 때보다는 상황이 많이 좋았다.

등가교환의 방패 때는 유지시간이 10초가 되지 않았지만, 등가교환의 배리어는 무려 1분이나 유지가 된다.

그때까지 피의 칼날을 최대한 피해야만 한다.

따로 피할 구조물이 없기에 일단 미크엘에게 향했다. 피의 칼날이 관통효과를 지니고 있었지만 그래도 맨몸으로 맞는 것보다는 훨 나을 터였다.

두 번째 충격파를 피하고 동반된 피의 칼날비를 맞으며 체력은 바닥을 보였다.

미크엘이 조금이라도 지워 주지 않았다면 그냥 죽었을 터다.

포션을 마셔 체력을 회복한 뒤에 다시 충격파를 쓰려는 칠왕을 지나쳐 눈여겨본 옥좌 쪽으로 뛰어갔다.

촤아아악!

거기로 가는 동안에 다시 충격파 패턴이 시작되었다. 전력질주로는 옥좌에 닿을 수 없겠지만 내게는 시공간이동자의 블링크가 있었다.

일단 스킬을 써서 거리를 좁힌 뒤에 옥좌를 향해 구르기로 맞을 부위조차 줄였다.

퍼버벅!

"…살았다."

피의 칼날은 옥좌에 박혔다. 관통효과도 옥좌까지는 꿰뚫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것은 다 부서져도 이것만은 멀쩡했으니 당연한 수순이기도 했다.

"처음부터 여기를 기점으로 해야 했구나."

칠왕이 앉아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유일하게 어떠한 공격에도 흠집조차 나지 않은 것이 옥좌다.

왜 이제까지 신경을 안 썼는지는 모르지만 충격파와 피의 칼날을 피할 때는 여기만한 곳이 없는 것 같다.

계속 이곳에서 숨고 싶지만 피의 칼날은 조금씩 떨어지는 위치가 변하고 있어서 피의 칼날에 맞을 확률이 존재한다는 점과 함께 칠왕이 어그로가 없는 대상에게도 공격을 취한다는 거다.

"이건 좀 심한데."

옥좌에서 벗어난 뒤의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미크엘이 엄청나게 체력을 잃었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칠왕이 질주를 하거나 공격 등과 같이 큰 모션을 취하면 아래로 떨어지던 피의 칼날이 그걸 따라 방향을 틀었기 때문이다.

충격파 패턴으로 끝나는 상황이 아니었던 거다.

피의 칼날.

저걸 원척적으로 막을 방법은 없을까.

푹!

[YOU DIED.]

칠왕의 감시하다가 피의 칼날이 어깨에 떨어졌다. 체력이 대폭 깎이며 그대로 죽고야 말았다.

"아. 미친."

그야말로 욕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뭔가 더 해 보기도 전에 이렇게 무기력하게 죽을 줄은 몰랐다.

어쨌든 피의 칼날에 대한 방도가 필요하니 적당한 스킬들을 찾았다.

방어스킬은 안 된다.

광범위의 공격스킬이어야만 한다.

"문제는 피의 칼날이 얼마나 많은 데미지를 입어야 터지냐는 건데."

그걸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 오기는 한다.

내 적은 마나량도 감안해서 먼저 떠오르는 것은 체인 라이트닝이지만 이건 광범위라기보다는 주변의 대상에게 퍼지는 것이라 패스다.

두 번째는 익스플로전 계열이다. 지정한 범위에 폭발하는 마법이라 이쪽이 가장 좋을 것 같다.

여러 계열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아이스 익스플로전이었다.

"공격마법 스킬은 처음인가."

불사자는 수많은 스킬을 자유자재로 익힐 수 있다. 그런데도 이쪽으로는 전혀 투자를 하지 않았었다. 일단 새로운 것을 익히고 구사를 하려는 것 자체가 그때의 나에게는 엄청난 자본이 들었던 거다.

지금도 보증금 때문에 말도 안 되는 고시원의 옥탑방에 살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마법 쪽은 엄두도 못 냈다.

지금이라면 조금 부담이 덜하다.

지혜 쪽의 스탯이 너무 낮아 마법계열 직업군보다 마법위력은 낮아도 게임 플레이에 도움이 될 것은 익혀도 좋을 것이다.

경매장에 제법 다양한 스킬들이 올라오고 있는 실정이니 여기서 투자를 해 볼 필요도 있다.

아이스 익스플로전은 샀으니 나머지 속성별로 하나씩 구매해 구색을 갖추기로 했다.

파이어 블래스터, 윈드 커터, 어스 싱크, 포이즌 스모크, 라이트닝 로드 정도였다.

"십만 원은 넘게 깨지네."

갑작스런 지출에 그야말로 속이 쓰릴 정도다.

하지만 칠왕의 신전에서 거둔 이득과 앞으로 거둘 미래 수익을 생각하면 이 정도 투자는 당연히 있어야만 한다.

스킬들을 모두 익힌 후, 나머지 물품들을 VIP들에게 쓸 만한 물건들을 먼저 넘겼다. 그들은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기에 집요하게 캐묻지는 않았지만, 내가 신규던전에 대한 정보를 알아서 주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썩이나감 : 지금은 정보를 풀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제가 히든레코드에 풀기 전에 먼저 알게 되실 겁니다.]

그때 내가 취하는 태도는 한결 같았다.

이 신규던전에 대한 것은 작은 정보 하나도 쉽게 흘릴 수 없었다.

추가로 공개한 던전 내부 사진이 히든레코드가 아닌 외부로 퍼져나가서 얼마나 뜨거운 반응이 일어났던가.

VIP들은 내가 특별하게 관리해 주고 있다는 걸 자각해야만 할 것 같다.

[썩이나감 : 제가 여러분들을 존중하는 만큼, 저를 존중하셔야 할 겁니다.]

VIP들과 달리 나에게 게임은 비즈니스다.

나를 자신들이 하는 게임 내의 알력싸움처럼 갑을 관계로 놓으려고 둔다면, 그들을 더 이상 VIP 취급할 필요는 없다.

독고무적, 흑군, 열파창.

이 셋을 VIP로 두면서 처음에 생각했던 그림은 완벽하게 그려졌다.

내게 VIP의 자격에 대해 질문을 하는 이들은 하루에도 열 명은 넘는다.

기존 세 명보다 길드 규모나 레벨은 낮아도 투자를 하는 금액들은 결코 적지 않는 이들이다.

랭커 중에서도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가는 와중에 공략 및 고가의 아이템을 다루는 것 등 이쪽 업계에서 독보적인 것도 컸다.

"VIP는 이미 유명무실하니까."

내 이름값이 높아질수록 기존의 VIP는 애간장이 타는 것 같다.

VIP를 추가하기 위해 추천해달라고 했지만 제대로 된 이들이 아니라 자신들과 친한 어중이떠중이만 은근히 언급하고 있었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열파창도 랭킹 3위가 아니었다면 거부했을 것 같다.

다시 칠왕의 지하신전에 찾아가 마법의 위력을 실험했다.

칠왕의 알현실에서 실수 및 사고가 겹치는 바람에 네 번째 재도전 끝에 피의 칼날 패턴까지 도달했다.

"죽어라."

칠왕이 손가락을 튕기자 천장에서 떨어지던 핏물이 칼날로 변하기 시작했다. 시험삼이 윈드 커터를 피의 칼날에 사용했다.

촤아아악!

"…통한다."

내가 착용한 장비 중에 마법공격력을 높여 주는 것이 없다. 그런데도 윈드 커터는 피의 칼날들을 부수고 사라졌다. 그렇다면 나머지 스킬로도 가능하다는 소리였다.

후우우우웅!

칠왕의 창이 원을 그려대기 시작했다. 충격파가 뻗어졌고 바닥으로 떨어지던 피의 칼날이 내게 쏟아졌다.

콰드드득!

먼저 아이스 익스플로젼을 썼다. 밑에서 터진 폭발에 해당 부분의 피의 칼날비가 부서지며 핏물도 하얗게 굳었다.

마법은 확실하게 들어갔으니 나 또한 핏물에 몸을 숨겼다.

한 차례 충격파가 훑고 지나간 뒤에 다시 일어나 상황을 주시했다.

이번에 칠왕은 내 기준으로 좌측 상단에서 우측하단으로 길게 그었다.

충격파와 함께 쏟아지는 칼날비에 이번에 택한 것은 포이즌 스모크였다.

"…이건 안 되네."

최대한 멀리 사용했지만 독연기에 닿은 피의 칼날은 조금의 손상도 없었다.

아이스 익스플로젼은 쿨타임 중이고 윈드 커터는 많은 피의 칼날을 제거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꺼낸 것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구매한 어스 싱크였다.

어스 싱크는 사실 공격 스킬은 아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보조용이다.

대지속성 마법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구조물을 생성하는 것인데 어스 싱크는 반대로 바닥을 내려앉히는 마법이었다.

상대를 밑으로 꺼지게 해서 소형 몬스터면 구덩이에 가두거나 그 이상이면 다리 혹은 허리까지 가두어서 균형을 무너트리는 식이었다.

그래서 이 스킬을 반대로 내 발밑에 쓰는 거다.

구구구구.

진동과 함께 발밑이 가라앉았다. 허리춤까지 내려갔기에 그대로 몸을 웅크렸다.

무릎까지 차오른 핏물이 머리를 덮었지만 피의 칼날이 지나가는 소리가 명확하게 들렸다.

"이거지!"

그렇게 막막했던 공격패턴을 이렇게 피할 수 있다.

돈값을 한다는 생각에 두 주먹을 피고 일어났다. 부족한 마나 때문에 포션을 들이키자 칠왕이 내게 손을 뻗었다.

거리가 워낙 멀어 5초 동안에 빨려들 거리가 아니었음에도 순간 등골이 오싹해 자세를 낮췄다.

청소기처럼 칠왕의 손에 피의 칼날이 빨려갔다.

만약 그대로 서 있었다면 뒤에서 날아오는 피의 칼날에 고슴도치 신세가 되었을 거다.

촤아악!

그 사이에 미크엘이 천장에서 떨어지며 칠왕을 공격했다. 거기에 나도 화력을 집중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바호크의 도끼로 바꾸어 신나게 칠왕을 공격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피의 칼날이 내게 떨어질까 봐 계속 위를 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피의 칼날의 위치가 고정되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 신경이 너무 분산되었다.

칠왕은 다시 질주공격의 패턴을 취했다.

피의 칼날이 함께 휩쓸려서 오니 저 주변에는 얼씬도 하지 않아야만 했다. 그래도 핏물 때문인지 전보다 속도가 느려져서 튕겨내지 않아도 피할 수는 있어서 다행일 뿐이었다.

"핏방울도 사라져서 다행이기는 하네."

특히 귀찮았던 것은 질주 이후에 중독을 유발하는 핏방울이었다.

핏물로 인해 아예 지워지니 이 부분은 그나마 만족이었다.

문제는 그 뒤였다.

칠왕이 모습을 감춘 것이다.

"…씨발."

이전에 칠왕은 핏방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반면에 지금은 어떤가.

무릎까지 차오른 핏물. 그리고 쉴 새 없이 천장에서 떨어지는 피의 칼날.

칠왕이 어디에 나타나고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피해라!"

그때 미크엘이 신호를 줬다.

뒤, 아래. 그리고 머리 위.

어느 방향에서 올 것인지 몰라 그대로 앞으로 구르기를 사용했다.

푸욱!

허리를 피는 순간에 창이 등판을 찔렀다.

[YOU DIED.]

"진짜 짜증나네."

찾아온 죽음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지금 이 패턴을 어떻게 할 것인가.

불사자의 영혼함에 부활한 뒤에 습관적으로 죽기 전의 영상을 봤다. 그래도 제3자의 시점으로 죽음을 관찰할 수 있는 부분은 신의 한수였다. 이게 안 되었다면 공략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미친. 진짜 여기서 나오네."

내가 기겁을 한 것은 칠왕의 등장 위치였다.

칠왕은 떨어지는 피의 칼날에서 나타나 먼저 반응한 내 등을 찔러 버렸다.

"저거 어떻게 하지?"

충격파 패턴은 어떻게 피했다 생각했는데 그보다 더 큰 상황이 와 버렸다. 흔히 말하는 딜로 찍어 누르는 상황이 아니면 여러모로 고생을 할 수밖에 없어 보였다.

"그래도 더 죽어 보자. 패턴이 나오겠지."

언제나 그랬듯이 공략하자.

내가 다른 유저들처럼 죽음에 대한 페널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수없이 머리를 들이박으면 결국 답은 나온다.

레벨이 올라가면 또 다른 그림이 펼쳐질 수 있는 것이 게임이 아닌가.

"그전에 일단."

수호자 미크엘의 장검과 바호크의 도끼의 내구도가 어느새 많이 달아 있었다.

인벤토리에 충분히 쟁여 둔 숫돌을 꺼내 내구도를 채웠다.

다른 게임을 하다 보면 내구도 때문에 매번 도시로 돌아가는 경우가 은근 귀찮았기에 이렇게 숫돌로 그걸 채울 수 있어서 정말로 다행이다.

"다시 하자."

어쨌든 칠왕에 대한 공략은 차곡차곡 이루어지고 있다.

매번 벽을 넘을 때마다 더 심한 난제가 오지만, 결국 칠왕을 잡으면 그보다 더 달콤한 보상이 있을 터였다.

현실과 달리 게임인 그런 부분에서는 정직하다.

특히 RPG는 아무리 바보 같은 플레이를 해도 시간을 녹이는 것이 강해지는 길이지 않는가.

이번에는 두 번의 도전 끝에 칠왕의 피의 칼날 패턴에 당도했다.

충격파와 함께 쏟아지는 피의 칼날.

아이스 익스플로젼과 어스 싱크로 그걸 피하며 틈틈이 공격을 취했다.

"피해라!"

다시 칠왕이 사라지고 미크엘이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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