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3화 고인물은한걸음더.
다시 돌입한 칠왕. 그림자 패턴부터 시작해 다시 2페이즈까지 돌입했다.
앞선 패턴을 겪다 보니 칠왕의 그림자 패턴은 잠깐 쉬어 가는 정도로 느껴졌다.
미크엘로 단련된 덕분이다. 그에게 5분을 버티는 미션으로 눈이 뜨이지 않았다면 칠왕에게 오기까지 더 많은 시행착오를 견뎠을 것이다.
"그걸로 충분하다고."
결국 공략에 성공해야 그간의 시행착오도 일개 헤프닝으로 끝난다.
실수는 괜찮다.
실패도 괜찮다.
헤아릴 수 없어도 결국 끝만 괜찮다면 그건 노력의 증거일 뿐이다.
칠왕의 그림자 패턴 후.
칠왕은 질주를 하며 창을 휘둘렀다.
다른 것에 비해 워낙 동작이 큰 패턴인지라 조금만 의식해도 대처가 쉬워졌다.
결국 창을 한 번 쳐 내고 백스탭으로 한 번 물러나면 끝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다면 사방에 뿌려지는 그의 핏방울 정도다.
여러모로 신경을 써야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던 저번과는 확실히 다르다.
내 반응속도는 조금씩 느려져도 의식하고 있으니 중독에 걸릴 일은 없다.
칠왕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저번에는 천장이었으니 이번에도 위를 볼 때였다.
"피해라. 불사자!"
미크엘이 소리를 치기에 나다 모르게 뒤를 돌아봤다. 거기에 칠왕은 보이지 않았고 불길한 마음에 백스탭을 사용했다.
푸욱!
"제길."
다리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밑을 보자 칠왕이 바닥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간 모은 쉴드는 당연히 모두 증발하다시피 했다.
"패턴 랜덤 진짜 거지같네."
뒤나 위면 몰라도 설마 바로 발밑일 줄은 몰랐다.
차라리 공중으로 뛰었으면 좋았을까 싶지만, 창날은 나를 쫓아 휘어지니 그건 불가능했으리라.
칠왕은 미크엘에게 한 대 맞고 사라졌기에 맵을 움직이며 다음 기습을 주의했다.
"피가 왜 안 사라지지?"
30초가 지날 때마다 핏방울을 사라져야만 한다. 그러나 방금 전까지 칠왕이 질주하던 자리에 튄 핏방울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핏방울이 더 늘어났다.
"맵 전체에 다시 나타났어."
그 핏방울들을 눈으로 쫓으니 뭔가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모두 칠왕이 질주를 하던 경로였다.
칠왕이 은신을 하고 어디에서 나타나는가. 그 답이 지금 나타난 것이다.
"내가 중독을 당하지 않은 것도……?"
그때 그 자리는 핏방울이 사라진 자리였다.
저번에는 중독을 당하고 이번에는 당하지 않은 차이는 핏방울이 한 번 사라졌나 아니냐의 차이까지도 볼 수 있었다.
일단 핏방울이 드물게 찍힌 알현실 구석으로 갔다.
칠왕은 거기에 가까이 가자마자 옆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곁눈질을 하고 있었기에 발목을 향해 휘두르는 창대는 튕겨내기에는 너무 늦었다.
제자리에서 뛰어올라 1차 공격을 피한 뒤에 포물선을 그리고 찔러오는 창날은 2단점프를 활용해 벗어났다.
창날이 아무리 나를 쫓아와도 급격한 움직임이면 피할 수 있음은 이미 잘 알고 있던 일이다.
콰아아앙!
공중에 뜬 상태에서 곧바로 지면강타를 사용했다.
머리를 짓밟힌 칠왕은 데미지를 입으며 다시 사라졌다. 여기서 알게 된 것은 칠왕이 이동에 쓴 핏방울이 사라진다는 거다.
"피해를 입어도 추가적인 핏방울도 없다는 것도 확인."
특히 조심스러웠던 점은 잘못해서 공격했다가 중독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는 것은 알았으니 칠왕의 공격을 피하고 때리기만 하면 된다.
알현실에 널린 핏방울이 마치 구멍과도 같아 두더쥐 잡기를 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칠왕을 상대하면서 가장 쉬운 패턴이구나 싶을 정도였다.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구나."
체력이 드디어 70%대가 깨지자 칠왕이 은신을 포기했다. 꼿꼿하게 펴져 있던 허리가 조금 굽혔다.
전체적으로 자세를 낮게 만든 그가 다시 질주를 하기 시작했다. 이동속도가 더 빨라진 것은 아니지만 휘두르는 창은 중단에서 하단으로 비스듬한 각을 이루었다.
이전의 질주가 완전히 중단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차이가 있다.
이때까지 내 튕겨내기는 주로 중단과 상단 위주였다.
하단 공격을 튕겨내는 것에는 조금만 더 눈이 익숙해져야만 한다.
쉐에에엑!
문제는 2차로 찔러오는 창날이었다.
칠왕의 시선을 따라 심장 혹은 머리를 향하던 것이 이번에는 포물선을 그리며 허벅지를 노려 왔다.
창날마저 궤도가 바뀌었기에 이번에는 시공간이동자의 블링크를 사용했다.
"여기부터는 진짜 튕겨내야만 하네."
창날이 머리, 심장, 허벅지로 선택지가 늘어난 것은 은근히 까다롭다.
이번에 칠왕은 반대편에 있는 미크엘에게 질주해 공격했다.
미크엘과 공방을 한 차례 주고받고는 다시 내게 달려왔다.
터어엉!
하단으로 휘둘러지는 창대를 끝까지 주의해 튕겨냈다.
그 뒤에 창날은 더 큰 포물선을 그리며 머리를 향해 왔다.
피하는 방법은 똑같이 백스탭이었다.
역섬기검으로 반격을 가한 뒤에 미크엘과 거리를 좁히며 칠왕을 상대했다.
미크엘이 다시 광범위 스킬을 사용하자 칠왕은 망토로 몸을 감쌌다.
나 또한 바호크의 도끼로 무기를 바꾸어 이후에 나올 칠왕의 사령을 줄이기 위해 미친 듯이 도끼를 투척했다.
망토에서 흘러나오는 검은기운을 피하면서 신경이 쓰인 것은 방금 전까지 칠왕이 흘린 핏방울이 군데군데 남아서였다. 그걸 밟지 않게 피하면서 도끼를 던지려니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미크엘의 두 번의 스킬이 끝난 뒤에 나타난 칠왕의 사령은 직전보다 더 많은 열둘 정도였다.
칠왕은 사령 셋과 함께 미크엘에게 향했다.
난 나머지 일곱이 시선을 돌리는 즉시 도끼를 던져 공격을 이어 갔다.
광전사의 집중력은 물론 한 번 건맨의 소울이 터져 나오자 칠왕은 곧바로 연쇄폭발을 일으키며 죽었다.
저걸 보면 칠왕의 사령의 폭발데미지는 내가 가한 피해량이 어느 정도 비례하는 것 같았다.
그 사이에 미크엘도 칠왕의 사령을 터트렸다.
같이 데미지를 입은 칠왕은 미크엘을 공격하다 말고 나에게 방향을 틀어 질주했다.
"어그로 끌지 않아도 오니까 미치겠네."
만약 파티를 이뤘다면 이런 식의 보스가 나타날 때는 곤혹스럽다.
회피기가 빈약한 후방직업군은 칠왕의 창을 피하지 못하고 죽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터어엉!
하단으로 휘두르는 창을 피하고 머리를 찌르려는 창날을 다시 백스탭으로 피했다.
반격을 가하려고 하니 칠왕은 얄밉게도 다시 미크엘에게 향했다.
이전의 패턴들을 반복하며 싸우는 칠왕 덕분에 시간은 살살 녹아 들어갔다.
새로운 패턴이 나오지 않는다면 어쨌든 죽지 않게 공략을 이어나갈 수 있을 정도였다.
칠왕의 체력이 50% 대에 이르는 순간, 그가 쓰고 있는 악마의 가면에서 피눈물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네놈들을 더 이상 가볍게 상대할 수 없구나."
피눈물이 갑옷을 타고 흘러 바닥을 적기시 시작했다. 빈틈이라 생각해 도끼를 휘둘렀으나 무적판정인지라 데미지가 들어가지 않았다.
"피의 바다에 잠겨 죽어라."
칠왕이 활짝 핀 왼손을 들어 올렸다.
드드드드드.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더니 천장의 틈에서 핏물이 흘러나와 무릎까지 차오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죽어라."
칠왕이 왼손을 튕겼다. 그러자 천장에서 떨어지는 핏물이 칼날로 변하기 시작했다.
피의 칼날비.
칠왕을 공격하며 쉴드를 채워 놨으니 한 번에 죽지 않겠지만, 절대 맞아서는 안 된다.
위를 쳐다보는 와중에 칠왕의 창이 원을 그리며 휘둘러졌다.
충격파가 궤적을 따라 생겨났는데 피의 칼날비가 그에 휘말려 칼바람이 되어 날아왔다.
충격파 하나라면 피하기는 어렵지 않지만, 칼날비가 그 여백을 촘촘히 채워 날아오고 있으니 가슴이 막막해질 정도였다.
[등가교환의 방패를 사용합니다.]
[헤이스트를 사용합니다.]
저건 완전히 피할 수 없다. 그 생가에 오랜만에 등가교환의 방패를 쓰며 움직였다.
파바바바밧!
먼저 피의 칼날비가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타다당!
"큭."
백스탭을 써서 피의 칼날을 피하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데미지를 고스란히 입었다.
내 예상보다 피해는 적었기에 쉴드가 깎이는 것으로 끝났다.
충격파는 피하기 쉬워서 다행이지만, 공격은 이게 시작일 뿐이다.
재차 충격파를 쓰는 패턴에 의해 피의 칼날에 온몸에 난도질 당해 죽어 버렸다.
[YOU DIED.]
"이건 어떻게 피하지."
죽은 뒤에 부활해 피의 칼날비 패턴을 봤다.
알현실에서 피의 칼날이 조금이라도 적게 떨어지는 지점을 찾으니 옥좌밖에 없었다.
기둥에라도 숨으면 좋겠다 싶었지만 그건 칠왕이 질주를 하며 다 부수기에 뾰족하게 피할 방도가 없었다.
"…피할 필요가 없다?"
동영상을 이리저리 보다가 미크엘이 눈에 띄었다. 그가 휘두른 검에 피의 칼날이 부서지는 것이 발견되었다.
"저러면 되는 구나."
역섬기검을 쓰거나 타이밍을 맞게 충격파 혹은 바호크의 도기를 난사하는 수밖에 없다.
해결방안은 나왔으니 다시 공략에 들어갔다.
다만, 나도 사람인지라 휴식은 필요했다.
잠깐 VR게임기에서 벗어나 수면과 식사를 끝낸 후에 히든레코드의 정보를 살폈다.
해외쪽 정보를 보니 아직 칠왕의 지하신전에 대한 정보가 올라오지 않았다. 오히려 신규던전 및 묘지기의 무덤에 대한 것만 더 활발할 뿐이었다.
올스타로 꾸린 랭커파티가 아니라 각 길드에서 선별한 랭커파티로도 공략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해당 공략 중에 칠왕에게 쓸 만한 것이 있을까 싶었지만, 특별한 것은 없었다.
만의 하나를 위해 배리어 스킬을 구매해 피의 칼날에 조금이라도 생존율을 높이는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있을 이들의 눈길을 피해 배리어 스킬을 가지고 칠왕의 지하신전에 들어와 스킬합성 기능을 사용했다.
[배리어와 등가교환의 방패의 스킬합성을 진행하시겠습니까? Y/N.]
배리어. 등가교환의 방패.
이 둘이면 합성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스킬합성이 실패하였습니다.]
"흐음."
물론 모든 것이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스킬합성이 불가능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운이 없던 것인지 알 수 없어 재차 도전했다.
[스킬합성이 실패하였습니다.]
그래도 한국의 국룰이면 삼세번이다.
새로운 그림이 그려지길 바라며 다시 스킬합성을 시도했다.
[등가교환의 배리어를 생성하였습니다.]
"떴다."
역시 세 번은 해야 실패하는지 성공하는지 알 수 있다.
[등가교환 배리어LV1.]
-종류 : 액티브 스킬.
-효과 : 1분 동안 공격력의 40% 만큼의 물리공격력 및 마법방어력을 상승시킵니다.
-쿨타임 : 5분.
-마나 소모량 : 100.
등가교환의 방패와 달리 5%나 방어력이 높아진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마법방어력도 높아진다는 거다.
피의 칼날과 같은 스킬에 생존력이 더 높아진 셈이다.
출력이 좋아진 만큼 그만큼 연료가 더 필요해진 것은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다.
마나가 50만 소모되는 것이 배로 늘어났으니 다음 레벨업 때는 해당 스텟을 좀 찍어 놔야만 할 것 같다.
액티브 스킬이 늘어나면서 마나의 부족함을 절실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소모되는 마나량을 줄이거나 눈에 뜨일 정도로 마나회복속도가 높지는 않기에 궁여지책이기는 했다.
다시 칠왕의 알현실로 가서 공량을 진행했다.
잠깐 쉬다가 온 것이라고 하더라도 몸이 기억했으니 금방 피의 칼날 패턴까지 왔다.
"죽어라."
칠왕의 창이 원을 그리며 충격파가 쏘아졌다. 주변에 떨어지던 칼날비가 함께 휩싸여 나와 미크엘에게 쏟아졌다.
먼저 피의 칼날을 제거하자.
바호크의 도끼를 빽빽하게 시야를 채운 피의 칼날을 향해 힘껏 던졌다.
쾅! 쾅! 쾅!
도끼는 미크엘의 검처럼 피의 칼날을 박살 냈다. 하나를 파괴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뒤에 있는 것까지 그대로 파괴해서 손에 돌아왔다.
그런데도 피의 칼날의 수가 너무 많았다는 거다.
내 공격이 더 빠르거나 범위공격을 할 스킬의 부재를 여기서 느꼈다.
[등가교환의 배리어를 사용합니다.]
그래서 새로 합성한 스킬에 모든 것을 담았다. 반투명한 막이 몸에 겹쳐졌고 그 위를 피의 칼날이 두들겼다.
"…살았다."
마법방어력이 새로 붙은 덕분에 쉴드가 일부 사라지는 선에서 생존했다.
합성을 시도한 것이 옳은 것이다.
문제는 충격파가 한 번이 끝이 아니라는 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