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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은 옷을 입지 않아-170화 (170/201)

제170화 고인물은파악한다.

"저건 또 무슨 거지같은 공격이야."

창은 기본적으로 거리가 길다. 그걸 알기에 내가 피할 수 있는 최소한의 거리를 알고 있다고 여겼다.

미크엘과 내게 창이 두 갈래로 나눠질 줄은 몰랐다.

반응이 느려진 것은 그래서다.

"아냐. 그래도 죽었어."

백스탭을 써서 피한 것 자체가 패착이다. 아예 공격범위를 벗어나는 시공간이동자의 블링크를 썼어야만 했다.

"창을 흔들면 추격형 공격."

이 패턴은 나에게는 치명적이다.

쉴드를 넉넉하게 채웠어도 칠왕이 너무나 강했다.

포지션은 무조건 미크엘의 뒤여야만 한다. 든든한 방패가 먼저 당해야 내가 뭐라도 대응할 테니까.

"다시 하자."

답이 없어 보이던 그림자 패턴도 결국은 넘어섰다. 칠왕이라고 하더라도 답은 있을 거다.

유의미한 답을 얻기까지 맨 땅에 헤딩을 하며 칠왕에게 부딪혔다.

본격적인 조사는 그림자 패턴은 열에 여섯 번 정도가 성공하기 시작할 때부터였다.

칠왕의 창 패턴은 유도 스킬보다는 범위공격이었다.

필드에 설치한 허수아비에도 동시에 작용하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답은 처음부터 칠왕의 공격범위를 벗어나거나 시공간이동자의 블링크로 피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 내가 택한 것은 후자다.

그냥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칠왕의 등 뒤다.

[결사항전의 영역을 사용합니다.]

[스피어마스터의 소울을 사용합니다.]

거리도 적당하게 벌어졌으니 바호크의 도끼를 쉬지 않고 던졌다.

쾅! 쾅!

칠왕의 등에 바호크의 도끼는 연달아 꽂혔다. 처음보다 레벨이 오른 것도 있겠지만 예상보다 데미지가 많이 들어가는 느낌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칠왕은 미크엘에게 공격을 계속했다. 살아있는 뱀처럼 휘어지는 창에 미크엘은 다 피해내지 못했다. 방어일변도를 취하면서도 간간이 공격을 허용할 정도였다.

맹공을 취하던 칠왕이 뜬금없이 창을 거뒀다.

"피해라!"

돌연 미크엘이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칠왕의 창이 원을 크게 그리기 시작했다.

머리 위에서 허리까지 그려진 궤적을 따라 충격파가 번져 나왔다.

중단과 상단을 휩쓰는 패턴이라 보고 곧바로 엎드렸다.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건너편의 미크엘을 보니 두 번의 충격파를 차례대로 피해냈다.

칠왕의 충격파 패턴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원을 사선으로 그리기 시작했고 그 궤적을 따라 충격파가 차례대로 쏟아졌다.

무지성으로 전방위에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나와 미크엘을 노리는 것이기에 바호크의 도끼를 던질 타이밍을 잡기 힘들었다.

그 패턴이 끝나자마자 칠왕이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공중으로 날아올라 놈에게 벗어나려고 했지만 칠왕은 곧바로 창을 찔렀다.

쉐에에엑!

창날은 길게 뻗어져 나를 노려왔다. 몸을 틀어도 그대로 쫓아오기에 닿기 직전에 지면강타를 사용했다.

콰아앙!

스킬 사용 후의 경직.

그때 살핀 사이에 칠왕은 공격을 거두고 다시 거리를 좁혔다.

미크엘 때와 비교하면 공격의 빈도가 확실히 줄어들었다.

"거리에 따라 다르구나."

그 차이를 파악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창이 늘어나는 거리가 멀수록 다음 공격까지의 시간은 오래 걸린다.

"타겟지정은 아니지만 추격형인데 까다롭네."

찌르기 공격 중에서 제일 위협적인 것은 창이다. 그것만으로도 버거운데 창날은 채찍보다도 더 집요하게 날 노려온다.

듀라한의 소울 체이서는 느리기라도 했지 칠왕의 창날은 빨라서 피하기도 버겁다.

미크엘이 공격해서 어그로를 끌기 전까지 나는 칠왕에게 무조건적으로 도망을 칠 수밖에 없었다.

임프를 통해 함정을 설치하려고 했지만, 녀석은 구석에서 벌벌 떨고 있어서 도움도 안 되었다.

"진짜 안 움직일 거야?"

[나 죽어! 카아악! 못 해!]

저렇게까지 집요하게 나오면 어쩔 수 없다.

그 사이에 미크엘이 본격적으로 공격을 시작했다. 바닥에 검을 꽂아 쓰는 십자검기 패턴을 쓴 것이다.

"신의 하수인이여. 불허한다."

그걸 맞이하는 칠왕은 자신의 망토로 몸을 가렸다.

대지에서 튀어나와 일대를 훑어버리는 검기가 칠왕의 망토에 닳는 순간 변화가 일어났다.

[끄아아아아!]

[으아아아악!]

망토에 수놓아진 절규하는 이들의 얼굴이 살아 있는 사람처럼 절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얼굴 하나하나가 검기를 맞을 때마다 사라지며 정반대로 검은색의 기운이 사방에 뿜어졌다.

"저건 뭐야."

미크엘과 내 일반공격에 닳던 체력이 조금도 변화가 없었다. 저 망토로 막으면 일시적인 무적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문제는 망토에서 다시 배출한 검은색 기운이다.

앞으로를 위해서는 굳이 저것에 맞아볼 필요는 없다.

똥인지 된장인지 일일이 찍어볼 필요는 없다. 당장에 미크엘이 스킬 발동 중에 그걸 맞아서 체력이 닳고 있었으니까.

하나하나가 내 일반공격은 상회하는 수준인 것 같다.

고레벨의 랭커라고 하더라도 한 대를 맞으면 바로 사망하는 즉사기 수준이지 않을까 싶었다.

"…많이 줄었다?"

거기서 눈에 띄는 것은 망토에 빽빽하게 그려졌던 사람의 얼굴들이 눈에 띄게 사라졌다는 거다.

스킬 반사의 패턴인가 싶어 수호자 미크엘의 장검으로 교체해 역섬기검을 사용했다.

카드드득!

검이 닿은 부분의 얼굴들이 절규하며 사라졌고 미크엘 때처럼 검은색 기운으로 방출되었다.

바호크의 도끼로 먼저 확인했다면 일반공격도 그런 것인지 확인할 것이었는데 이 부분에서는 꼼꼼하지 못했다.

미크엘은 거기에 멈추지 않고 검을 천장에 닿을 듯이 높게 들었다.

콰아아앙! 콰아아앙!

그의 신성력이 번개가 되어 떨어졌다.

칠왕은 여전히 망토로 몸을 감싸고 있었다. 십자검기 패턴보다 더 강력했기에 망토에서 사라지는 얼굴 문양이 더 많아졌다.

즉, 그만큼 검은색 기운이 사방을 채우기 시작했다.

아까까지는 잠자코 있었지만 지금은 그걸 피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여야만 했다.

미크엘이 적은 아니기였기에 그의 번개가 내게 피해를 주지 않아서 다행이다. 잘못했다면 여기에서 수없이 죽다가 포기를 했었을 테니까.

서로에게 공격을 쏟아 붓고 있지만 미크엘과 칠왕의 체력은 고작 10% 남짓도 닳지 않았다.

남은 시간 동안에 얼마나 많은 패턴이 나올지가 두려울 정도다.

그래도 망토를 걷은 상태가 아니니 바호크의 도끼로 교체해 힘껏 던졌다.

쾅! 쾅!

바호크의 도끼 또한 적중하자 망토의 얼굴 형상이 하나씩 사라졌다.

"적을 쫓아라."

칠왕이 뒤이어 망토를 거뒀다. 망토에 남아 있던 사람얼굴의 문양들이 연기처럼 사라져 온전한 인간의 형상을 취하기 시작했다.

LV82. 칠왕의 사령(死靈).

칠왕의 망령기사보다도 레벨이 2나 더 높다. 15마리 중에서 열이 내 주변에 나타난 것은 결코 희소식이 아니었다.

[네놈을 죽이겠다!]

[칠왕의 명이시다!]

칠왕의 사령은 검은 안개로 이루어져있다. 빼곡하게 차지 않아서 크레파스로 몇 번 그려낸 것처럼 보였다. 특히 눈과 입이 있어야할 곳은 텅 비어 있어서 묘한 이질감이 나타나기도 했다.

기사들이 기도하는 패턴처럼 칠왕이 가만히 있어 주려나 싶었지만 그는 미크엘을 공격하고 있었다.

"빨리 끝내야겠네."

칠왕의 사령이 무장을 하고 있지 않았기에 안전하게 비행을 하며 바호크의 도끼를 사용할 생각이었다.

공중에 뜬 순간에 칠왕의 사령들이 나를 쫓아왔다.

언데드 중에서 레이스처럼 유령체라면 비행이 이상한 것은 아니다.

공격패턴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니 먼저 선공을 취했다.

바호크의 도끼에 맞은 칠왕의 사령은 체력이 크게 닳았다.

칠왕의 망토에 있을 때는 방어력이 높은 개체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달라진 점은 공격을 맞은 칠왕의 사령의 이동속도가 급격히 높아졌다는 거다.

퍼펑!

추가공격으로 마무리하자 놈은 부들부들 떨더니 그 자리에서 폭발했다.

폭발범위는 대략 3M 가량으로 나와는 제법 거리가 있어서 안전했다.

폭발 데미지는 같은 칠왕의 사령에게 통하는지 피해를 받은 놈들이 빠르게 내게 다가왔다.

사방에서 쫓아오는 놈들을 공중에서 계속 피할 도리가 없어 지면강타로 떨어졌다.

날 쫓아 내려오는 녀석들을 뿌리치기 위해 헤이스트를 써서 달리면서 꾸준히 바호크의 도끼를 던졌다.

콰아앙! 콰아앙!

도끼에 맞은 녀석들이 하나씩 폭발했다. 거기에 휘말린 녀석들도 연달은 폭발에 폭죽처럼 터져나갔다.

놈들의 숫자도 워낙 많았고 이동을 하면서 공격을 했기에 그 폭발에는 나도 휘말렸다.

"…쉴드가 다 사라졌네."

폭발 데미지가 얼마나 강한지 기껏 쌓아둔 쉴드도 다 사라졌다. 그것마저 없었다면 곧바로 바닥에 누웠을 것이다.

내가 끝냈을 정도였으니 미크엘 또한 진즉 칠왕의 사령들을 정리한 뒤였다.

미크엘의 체력은 70%대였으나 칠왕은 아직 80%대였다.

둘의 대치를 놔두다가는 확실하게 칠왕이 이긴다. 유저가 개입할 수밖에 없기에 슬금슬금 다가가 뒤에서 도끼를 던져댔다.

이전처럼 어그로가 끌리지 않게 주의했지만, 칠왕이 돌연 몸을 틀었다.

창은 내게 닿으려면 턱도 없는 거리지만 창날은 엿가락처럼 늘어났다.

그간 피하며 익혀 둔 것이 있으니 곧바로 백스탭 방향을 틀었다. 그래도 쫓아오는 창날을 피해 옆으로 구르고 또 굴렀다.

칠왕의 창날을 피하기 위해서는 아예 거리를 벌려 버리거나 지금처럼 방향전환을 연달아하는 수밖에 없다.

도대체 이러면 언제 데미지를 입히라는 것인지 답답할 노릇이지만, 그건 나 혼자일 때의 이야기다.

탱커들은 느리니 제외하고 비교적 민첩한 근거리 딜러들이 어그로를 끌고 후방의 원거리 딜러들이 공격을 퍼붓는 구조가 될 테니까.

같은 레벨의 던전도 아니고 상위레벨의 던전을 유저 혼자서 깬다는 것 자체가 이렇게 힘든 거다.

하지만 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개발사도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이니 분명 틈은 있을 것이다. 이때까지 그랬었고 지금도 그렇게 만들 거다.

어쨌든 내게 어그로가 한 번씩 쏠릴 때마다 미크엘이 공격을 해주니 나쁜 것은 아니다.

칠왕이 체력을 회복하는 패턴이 없다는 가정 하에서 내가 버틸 수 있는 만큼의 시간은 내 편이다.

언제일지 몰라도 공략을 확신하는 것도 그 이유다.

칠왕이 다시 창으로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충격파가 퍼지니 이리저리 뛰며 그 모든 것을 피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충격파 패턴을 피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칠왕의 체력이 70%에 흡사하게 내려가는 순간 그는 창으로 바닥을 크게 내리쳤다.

쿠구구궁!

바닥이 들썩거리고 천장에서 먼지가 떨어졌다.

쿵! 쿵! 쿵!

예상한 것처럼 천장의 일부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바닥을 비집고 피어오른 검은 기운들이 응축되어 폭발해댔다.

이 패턴들은 비교적 여유가 있었으니 바호크의 도끼로 계속 딜을 넣었다.

"건방지구나. 불사자."

그 패턴이 끝나고 칠왕이 내게 손을 뻗었다. 그에게로 몸이 조금씩 끌려갔다.

구르기로 얼른 피하자 그 범위에서 벗어났다.

칠왕은 총 5초 동안 손을 뻗고 있었다. 그 뒤에는 내게 창을 휘둘렀다.

계속해서 피한다고 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결국 나도 저 창을 대비해야만 한다. 수호자 미크엘의 장검으로 바꿔들고 창의 궤적을 끝까지 읽었다.

창날은 높은 확률로 내 머리 혹은 심장을 노린다.

이지선다에서 내가 노리는 것은 심장이었다. 호흡을 하고 튕겨내기를 시도한 순간, 창날은 직전에 비틀어져 머리를 꿰뚫었다.

[YOU DIED.]

죽음은 또다시 나를 찾아왔다.

"저거 휘어지나."

다른 패턴은 확인할 것도 없이 칠왕의 창을 계속해서 확인했다.

내가 방어하는 것에 맞추어서 방향이 틀어진 것인가 싶어서다. 그랬다면 정말 답이 없는 상황이 나온다.

면밀히 살핀 결과 내가 창날이 틀어지기 전에 먼저 움직여진 것을 확인했다.

그에 더해 칠왕의 고개 또한 살짝 비틀어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시선을 따라 창날이 휘어진다?"

갑자기 든 생각에 나머지 영상들을 꼼꼼히 살폈다. 실제로 창날이 휘어질 때마다 칠왕의 고개 또한 크게 돌아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해답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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