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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은 옷을 입지 않아-168화 (168/201)

제168화 고인물은당황한다.

칠왕의 기사 바호크. 놈을 죽이고 얻은 바호크의 도끼는 매력적이었지만, 놈이 원거리 공격을 되돌리는 패턴이 있기에 조심해야만 했다.

[YOU DIED.]

"…이건 실패."

먼저 시도를 한 것은 똑같이 도끼를 던졌을 경우다.

슈팅게임 중에서 공격으로 사라지는 탄막이 있는 것을 생각해서 해 봤지만, 이건 아예 실패였다.

내 도끼는 빗나갔고 바호크의 공격은 적중해 연달아 맞다가 죽었다.

다음 도전 때는 도끼 공격이 통할까였는데 놈이 대검을 들고 있으면 무조건 되돌리는 것을 확인했다.

이때도 죽어서 다시 시작했다.

빠른 보스런으로 경험치 및 레벨업을 챙긴 다음에 바호크를 공략했다.

이때는 어쩔 수 없이 수호자 미크엘의 장검만을 썼다.

다른 보스보다 강한 것은 인정하지만 바호크의 도끼가 통하지 않아 사냥속도는 물론 진행과정에서의 답답함은 어쩔 수 없었다.

"답답하다. 답답해!"

직전까지의 모든 전투에서 흔히 말하는 양학을 해서일까.

바호크와의 전투는 숨이 턱턱 막힐 만큼 답답함만을 가져야만 했다.

사이다라도 마시고 싶지만 그걸 꾸역꾸역 억눌렀다.

약 20분가량을 투자했을 무렵.

콰아아앙!

굳게 닫힌 철문이 박살나며 칠왕이 나타났다. 그는 그대로 사라졌고 뒤를 쫓아온 미크엘이 바호크를 죽였다.

"어디 뭘 주려나."

막타를 뺏긴다는 것은 항상 기분이 나쁘다. 그걸 억누르는 것은 큰 보상이 따르리라는 것을 믿고 있어서다.

[바호크의 대검.]

-등급 : 유니크.

-공격력 : 1102~1231.

-효과 : 공격속도 10% 하락, 공격 범위 10% 상승, 타격 대상에게 넉백효과 50%, 근력 10 증가, 민첩 3 하락, 스태미나 소모 10% 증가, 인간형에게 입히는 데미지 5% 증가, 치명타 데미지 20% 증가, 치명타 확률 10% 증가, 절단LV1, 즉살LV2, 파괴LV8.

-설명 : 칠왕의 기사 중 하나인 바호크의 무기. 크고 단단한 대검은 모든 걸 부숴 버린다.

재가 된 바호크의 몸에서 꺼내진 것은 그토록 바랐던 바호크의 대검이었다.

수호자 미크엘의 장검이 없었다면 이걸 쓰고 싶다는 생각이 덜컥 들 정도의 무기였다. 공격속도가 떨어지는 것이 문제일 뿐, 나머지는 1선에 서는 전사형의 캐릭터라면 누구나 가지고 싶을 물건일 터였다.

"특히 양손 무기라서 아쉽네."

만약 한손무기였다면 필요에 따라 번갈아 쓸 고민이라도 했겠지만, 그럴 필요는 없어 보였다.

[썩이나감 : VIP분들께서 선구매를 하실 의향이 있다면 연락을 주십시오.]

먼저 영안실의 지휘자의 아뮬렛의 링크를 올렸다.

[독고무적 : 역시 네가 판 거였나.]

[흑군 : 썩 나쁘지는 않는데.]

[열파창 : 묘지기의 무덤에서 얻은 물건이 더 낫다.]

셋에게서 온 귓말은 별로 긍정적이지 않았다. 이건 예상했으니 바호크의 대검을 올렸다.

[독고무적 : 산다.]

[흑군 : 괜찮은데? 얼마야.]

[열파창 : 내놔.]

이 물건을 내놓으니 다른 반응들이 나왔다.

[썩이나감 : 신규던전의 중간보스에게서 나오는 무기입니다. 잘 나오지 않아서 당분간 풀리지 않으니 신중히 구매하시기를.]

내가 파악한 바로는 묘지기의 무덤에 나온 무기들 중 어떤 것도 이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

만약 바호크의 대검을 강화한다면 값어치는 더 올라가겠지.

난 세 사람의 가격을 들으며 더 좋은 쪽으로 주기로 했다. 물론 독고무적이었다.

검과 방패를 쓰는 그가 사용하지는 않겠지만, 그의 길드원에는 척준경이 있다.

대검을 써도 전혀 이상하지 않는 유저다.

"저기는 더 강해지겠네."

히든레코드 쪽으로 팔면 더 가격이 붙겠지만, 수수료는 물론 VIP들에게 내 가치를 어필하기 위해서는 이쪽 직거래가 더 좋다.

[썩이나감 : 던전은 아직 다 공략 못했으니 진행상항에 따라 먼저 알려드리겠습니다.]

또한 신규던전에 대한 갈증이 컸을 이들이니 적당한 말로 달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추가적인 귓말도 있지만 거기에 더 신경을 쓸 수는 없었다.

나는 다시 미크엘과 함께 칠왕을 잡으러 가야만 하니까.

미크엘이 정면으로 뚫고 지나가며 적들을 유린했다. 전과 달리 바호크의 도끼로 뒤에서 틈틈이 데미지를 줬다.

쥐새끼처럼 기다리다가 막타를 침으로써 쏠쏠하게 경험치를 얻어갔다.

시간대비 효율을 따지면 바로 이 구간이 열렙을 하기에 좋다.

"데스티아 여신의 수호자여. 너의 운명을 얼마나 소모했는가."

"닥쳐라. 이단."

"누굴 같이 데리고 왔다만, 날 알현하기 위해서는 쉽지 않을 것이다."

칠왕의 알현실. 그 끝의 옥좌에 앉은 칠왕은 같은 대사와 행동을 취했다.

LV85. 칠왕의 기사단장 파엘.

그가 일어나 미크엘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저번에는 파엘을 무시하고 칠왕에게 기도를 올리는 기사들을 공격했지만, 이번에는 다르게 할 생각이었다.

파엘을 먼저 공략한다.

"칠왕께는 갈 수 없다."

파엘이 검과 방패를 움켜쥐고 미크엘에게 이동했다. 어그로가 자연스럽게 그에게 끌리니 미크엘의 뒤에서 잠자코 있었다.

콰앙!

미크엘의 검이 방패를 후려치고 파엘의 체력이 깎인다. 어그로가 정확하게 미크엘에게 넘어간 시점에서 날개를 활짝 펴며 날아올랐다.

파엘의 뒤로 날아가 그의 등판에 쉴 새 없이 바호크의 도끼를 던졌다.

무방비인 후면에 프리딜을 넣는 구조가 나오니 파엘의 체력은 눈에 띄게 빠르게 깎였다.

"크아아아!"

미크엘의 공격을 방패로 열심히 막고 있던 파엘의 어그로가 내게 쏠렸다.

내가 너무 자유롭게 공격을 한 덕분에 어그로가 내게 쏠렸다.

"너무 기분을 냈나."

물론 신을 낸 것에는 나름대로의 근거가 있다.

미크엘과 부딪칠 때 놈이 보였던 공격패턴 중에서는 원거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플레이어가 상태이상 공포에 걸렸습니다.]

[플레이어가 상태이상 도발에 걸렸습니다.]

"와. 이거 뭐야."

그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은 것은 1분도 지나지 않았다.

파엘이 나를 노려보며 다가오자 곧바로 상태이상에 걸렸다.

캐릭터의 조작을 상실해 몸뚱이가 바닥에 처박혔다. 공포와 도발에 걸려 도망치지도 나아가지도 못하는 실정이었다.

콰과과과광!

그때 날 살린 것은 미크엘의 스킬이었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신성력의 다발에 파엘의 어그로가 극적으로 돌아간 것이다.

"뒤질 뻔했네."

이번에는 칠왕에게 공격 한 번도 못하고 죽는 것인가 식겁했었다.

미크엘의 딜에 맞추어 파엘을 공격하자 얼마 있지 않아 그가 무너졌다.

칠왕에게 향한 기도가 끝나기 직전이라 스태미나를 회복하는 한편 파엘의 몸을 뒤졌다.

여러 아이템들이 모두 관심을 이끌어내는 것은 아니다.

[강자의 오오라의 스킬북.]

"이건 뭐지?"

단 하나의 스킬북이 날 사로잡았다.

[강자의 오오라의 스킬북.]

-종류 : 유니크.

-효과 : 스킬 습득.

-설명 : 강자의 오오라를 배울 수 있는 책이다.

강자의 오오라.

이건 전작에서도 접한 적이 없는 스킬이었다.

유니크 스킬이기에 팔면 얼마나 가격이 나올까 싶었지만, 당장 칠왕과의 싸움에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스킬, 강자의 오오라를 배우셨습니다.]

스킬을 배운 뒤에 곧바로 정보를 확인했다.

[강자의 오오라LV1.]

-종류 : 패시브 스킬.

-효과 : 피격 혹은 가격 대상에게 10% 효과로 무작위의 상태이상을 일으킵니다.

"미쳤다."

스킬을 본 순간 뜨악할 수밖에 없었다.

왜 뒤에서 공격만 하다가 상태이상을 걸렸는지 이해가 되어버렸다.

직업군에 따라 거리는 무제한으로 늘어난다.

특히 마음에 드는 것은 피격 혹은 가격 대상이라는 거다.

패시브 스킬이라 마나도 닳지 않으니 어떤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인지 예상도 되지 않았다.

내 숙련도에 따라 스킬 레벨만 오르면 10%의 확률은 미약하게나마 오를 것이 분명했다.

"나의 기도가 끝이 났다."

그사이에 칠왕이 손가락을 튕겼다.

기도를 올리고 죽었던 기사들이 칠왕의 망령기사로 하나씩 부활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오자 미크엘이 차례대로 범위공격스킬을 사용했다.

한 번, 두 번 훑고 체력이 떨어지는 이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바호크의 도끼를 던졌다.

거의 막타만 노리는 개념이라 강자의 오오라의 효과를 알 수 없었지만 아쉽지는 않았다.

"이 공략이 맞았던 거야."

전에는 어설프게 기도를 끊었는데 확실히 미크엘이 있음이 좋다.

미크엘이 한 번씩 쓰는 스킬이 너무나 강력해서다. 그 덕분에 내가 아무리 공격을 해도 어그로가 끌리지 않아 자유로운 사냥이 가능했다.

물론 전방위로 쏟아지는 잊혀진 기사의 일격은 소름이 돋았다.

이때는 시공간이동자의 블링크는 물론 등가교환의 방패도 썼다. 그마저도 안 되면 결사항전의 영역을 펼쳐서 맞딜로 쉴드를 채워 억지로 살아남아야만 했다.

[레벨이 1 상승합니다.]

[전 능력치가 1 상승합니다.]

막타면 먹기 위해 열심히 한 덕분에 레벨이 또 올랐다. 이로서 73레벨이 되었는데 지금의 속도라면 독고무적이나 흑군을 넘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나의 힘이 돌아왔다. 수호자. 나의 영역에서 네놈의 헛된 운명을 보여 봐라."

칠왕의 망령기사 전멸 후.

칠왕이 드디어 일어났다. 공간 전체를 잠식하는 어둠이 찾아온다.

이때 잠자코 있다가 칠왕에게 칠죄종을 하나 뺏기고 무기력하게 죽었다.

저걸 피할 방도가 있을까.

여러 의문 속에서 내가 택한 것은 바로 미크엘이었다.

칠왕에게 공격하기 위해 날아가는 그의 뒤에 바짝 붙었다.

후우우웅!

어둠이 미크엘을 감쌀 때, 거기에 끌려갔다.

공간은 온통 어둠뿐이었다. 그 안에서 빛나는 것은 미크엘이 가진 수호자의 날개와 후광이었다.

"불사자. 살아 있나."

"아, 괜찮아."

혹시 즉사기 패턴일까 우려했지만 그건 아닌 모양이다.

문제라면 내가 가진 수호자의 날개가 온데간데없어졌다는 거다.

"이게 왜 사라진 거지?"

"신성력이 없어서다. 이곳은 그 이외의 모든 것을 억누르는군."

"으흠."

미크엘의 말에 최소한의 궁금증은 해소가 되었다.

결국 여기서 나는 아무것도 도움이 안 된다는 뜻일까.

[너의 운명은 거짓되었다. 미크엘.]

[나는 불사자가 되지 말아야만 했다.]

어둠이 일렁거리며 회색의 반투명한 존재들이 나타났다.

문제는 하나가 미크엘과 쏙 빼닮았고 다른 하나는 나와 아주 똑같았다는 거다.

LV99. 수호자 미크엘의 그림자.

LV73. 썩이나감의 그림자.

각기 표시된 레벨을 보니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이거 아무래도 자신과 똑같은 존재와 싸워야만 하는 것 같다.

"살아남아라."

"빨리 끝내주라고."

미크엘이 자신의 그림자에게 향했고 나는 내 그림자를 노려봤다.

내가 궁금해지는 것은 과연 그림자가 어디까지 날 복사를 할 수 있냐는 거다. 완벽하게 구사를 하지는 못하더라도 비슷하게만 하더라도 좀 곤란해진다.

후웅! 후웅!

[죽어라. 불사자.]

"인사 잘 하네."

선공을 한 것은 내 그림자였다. 나와 똑같은 바호크의 도끼를 먼저 던져 대는 덕분에 선공권을 잃었다.

구르기로 피해도 끝은 아니다.

바호크의 도끼는 알아서 회수가 되기에 두 번의 공격을 한 빈 손은 빈손이 아니다.

상대와의 거리를 짐작한 후에 시공간이동자의 블링크를 썼다.

"…없다?"

코앞에 있어야 할 내 그림자가 없다.

[멍청한 놈.]

문제는 내 바로 뒤에서 그 목소리가 들렸다는 거다. 상체를 틀어 백스탭을 해서 다가올 공격을 피하려고 했지만, 내 그림자는 그대로 날 쫓아왔다.

쾅!

"제길!"

내게 바짝 다가와서는 곧바로 밀치기 스킬을 썼다. 뭔가 공격을 시도하기 전에 신체의 균형이 무너졌고 내 그림자는 한 발자국을 남겨 둔 거리에서 바호크의 도끼로 나를 난도질했다.

[YOU DIED.]

"이걸 이렇게 뒤지네."

예상하지 못한 죽음인 것은 맞지만, 이렇게 아무것도 못하고 죽을 줄은 몰랐다.

내 그림자라면 공격 단 한 번에 끝냈을 수 있었는데!

"AI가 생각보다 귀찮은데."

아무리 그래도 시공간이동자의 블링크에 바로 반응할 줄은 몰랐다.

내가 쓰는 스킬을 나보다 더 잘 구사할지도 모른다. 그 생각이 들자 머리가 복잡해졌다.

난 내 생각보다 더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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