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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은 옷을 입지 않아-163화 (163/201)

제163화 고인물은정리당한다.

"열쇠?"

임프가 손에 쥔 것은 하나의 열쇠 꾸러미였다. 어디를 보더라도 오해하지 않게 검은색에 뭉툭한 모양이라 저 철문에 딱 어울릴 것 같았다.

[칠왕의 훈련소 열쇠.]

-종류 : 퀘스트 아이템.

-설명 : 칠왕의 훈련소를 지나갈 수 있는 열쇠.

설명도 예상한 것과 조금의 오차가 없는 쓰임새다.

문제라면 인벤토리에 넣지 못한 아이템들이다. 다 들고 갈 수 없으니 일단 음식류는 죄다 임프에게 먹였다.

포만감으로 먹지 못하는 것들은 필드에 버릴 수밖에 없었다.

다음 선택은 재료템 폐기였다.

내가 아이템 제작을 할 것도 아니고 특별하게 시장에 내놓을 정도로 가치가 있는 것도 없어서다.

"값어치를 따지면 결국 장비들인데."

장신구가 인벤토리를 차지하는 용량 대비 가격이 제일 비쌌으나 애석하게도 나오지 않았다.

인벤토리는 대충 정리가 끝났으니 열쇠를 문에 들이대는 순간이었다.

카드득.

열쇠는 숯불을 들이댄 것처럼 불타오르며 부서졌다.

열쇠 꾸러미에서 남은 열쇠는 총 아홉 개.

수호자의 날개에 보다 가까이 들어 올리니 열쇠마다 서로 다른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룬 문자인 것 같은데."

나라고 하더라도 룬 문자까지 전부 외우지는 않는다.

히든레코드에 들러서 룬 문자 사전을 구매해 확인했다. 열쇠에 새겨진 룬 문자는 물, 바람, 땅, 철로 방금 전의 열쇠를 생각하면 오대속성을 뜻하는 것 같았다.

물론 그 이외에 벼락과 얼음, 독 등의 뜻을 가지고 있었다.

"순서대로 넣어야만 하는 걸까. 아니면 딱 하나의 열쇠만 정확하게 넣어야만 하는 걸까."

아무래도 철문을 상세하게 살펴야만 할 것 같다.

날개를 활짝 피고 철문의 위부터 천천히 훑었다. 열쇠와 같은 문양들이 옅게 새겨져 있었는데 개중에서 중간중간 빈 부분이 있었다.

방금 전에 넣었던 불의 룬이 새겨졌으리라 예상되는 열쇠일 것이다.

"오대속성만 있네."

열쇠와 철문의 룬을 하나하나 비교하면서 보니 오대속성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열쇠구멍에 열쇠를 하나하나 넣었다.

각각의 룬 문양에 어울리는 효과를 보이며 열쇠들은 하나씩 부서졌다.

철문에 새겨진 룬 모양들도 그에 맞게 사라졌다.

덜컥거리는 소리가 철문에서 났고 전에는 꿈쩍도 하지 않던 것을 천천히 두 손으로 밀었다.

드드드드드.

그 묵직한 중량에 어울리게 내 근력으로도 버겁게 문이 열렸다. 문틈이 확장될수록 바닥의 진동이 점점 강하게 느껴졌다.

그러고 드러나는 것은 예상을 더 뒤엎는 것이었다.

오래된 고목은 잎 하나 없이 말라 있었다. 그걸 대신하듯이 수많은 시체가 널려 있었는데 그 앞에는 거구의 오크 하나가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LV82. 칠왕의 기사 바하크.

머리 위에 뜬 그 이름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작은 한숨을 쉬고야 말았다.

"중간보스이기는 한데 레벨이 82나 되네."

중장갑을 착용했으니 체력이나 방어력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등에는 대검을 매고 있었고 양옆에는 손도끼 두 개가 놓여 있었다.

바하크 또한 두 개의 무기를 쓴다.

손도끼는 투척용이라면 대검은 근접전일 것이다.

[키키킥. 싸울 거냐?]

"글쎄다."

무작정 싸우기에는 좀 벅차 보이기는 하다.

[창공의 독수리를 사용합니다.]

중간보스와 굳이 부딪히기 보다는 먼저 시야를 확보하자.

정원 너머에 있을 통로가 있다면 거기를 먼저 들려서 내부를 파악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퍼억!

"……."

창공의 독수리가 미처 천장에 닿기도 전에 스킬이 끊겼다.

등 뒤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기에 봤더니 바하크의 옆에 있던 손도끼였다.

"쥐새끼가 왔구나."

바하크가 천천히 일어났다. 그가 손을 뻗자 바닥에 떨어졌던 손도끼가 빨려 들어갔다.

손도끼가 자동으로 회수가 된다는 점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저 궤도를 활용해 부메랑처럼 날 노리는 패턴도 충분히 가능할 테니까.

"감지거리가 너무 먼 것 아냐?"

상대가 레벨이 아무리 높아도 정도라는 것이 있다. 놈과 나의 거리를 생각하면 여기서 들키는 것은 보기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때까지 어떤 보스도 300M가 넘는 거리에서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정원의 양분이 되어라."

바하크가 두 자루의 도끼를 차례대로 내게 던졌다. 그의 과분한 인사를 정면에서 받을 자신은 없다.

정원 곳곳에 횃불이 켜져 있다지만 그렇게 환한 곳이 아니라 제대로 보고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콰아앙! 콰아앙!

빙 돌아가면서 움직이는데 간헐적으로 폭탄이 던지는 것만 같은 소리가 났다.

이 던전이 환한 대낮이라고 하더라도 투척하는 도끼를 정면에서 받는 것은 무리일 것 같다.

바하크가 손을 뻗자 다시 그의 도끼가 빨려 들어갔다.

이때까지 그냥 팔만 휘두르던 놈은 마치 사이드암 투수처럼 도끼를 던졌다.

후우웅!

도끼는 크게 횡으로 원을 그리며 날아왔다.

내 이동경로를 절묘하게 걸치고 있어서 그대로 공중으로 날았다.

후우웅!

두 번째 도끼 또한 나를 노리며 던져졌다.

이번에는 다시 날개를 접으며 피했다.

바하크의 도끼 투척 패턴을 천천히 피하며 그에게 거리를 좁혔다.

그는 손도끼를 옆구리에 차고는 등에 맨 대검을 빼 들었다.

대검은 장창을 보는 것처럼 길고 거대했다. 검이라는 느낌보다는 기둥을 들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콰아아앙!

바하크가 대검으로 바닥을 내리찍었다. 감히 더 앞으로 다가가지 못해 옆으로 몸을 피했다.

바하크의 대검이 남긴 충격파는 마치 이단의 사이클롭스마냥 넓었다. 따로 스킬 이펙트가 없었으니 일반공격이라는 셈이다.

저 정도면 어떻게든 튕겨내기를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일반공격이라고 하더라도 대검이라면 다음 공격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빈틈을 노려 역섬기검을 사용했다.

카가가각!

"모자라다. 침입자."

바하크는 상체를 틀더니 검신으로 검기를 받았다. 그리고는 검기를 고스란히 내게로 돌려냈다.

"미…친!"

내가 펼친 것보다도 더 속도가 빠르다. 이건 피할 엄두가 나지 않아 시공간이동자의 블링크로 급히 피했다.

물론 바하크도 무적은 아니었다. 역섬기검을 되돌려 낼 때 미세하지만 피해를 입기는 했다.

퍼어엉!

[키아아악!]

"저 병신이 진짜."

입구에 버려뒀던 임프도 어설프게 화염구를 쓰다가 되돌리기를 당했다. 체력이 절반은 깎인 놈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 다녔다.

가고일 때와 비교하면 데미지가 확실히 더 많이 들어갔다.

"회복하고 함정 설치해."

어쨌든 숨은 한 번 돌렸으니 바하크의 대검 패턴을 더 파악할 때다.

쿠웅!

바하크는 돌연 바닥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천장에 매달린 등불을 가린 그는 대검을 거꾸로 쥐고 내 머리 위로 떨어졌다.

대검에 감싸인 검붉은 기운은 스킬이라고 대놓고 경고하고 있기에 바로 날개를 피고 날아올랐다.

콰과과과광!

바하크의 대검은 바닥을 완전히 부쉈다. 충격파의 규모와 시각효과는 내 지면강타 따위와는 감히 비교도 되지 않는 것이었다.

"도망치지 마라."

내려앉는 먼지 구름 속에서 바하크는 대검을 힘껏 휘둘렀다. 꽂혀있던 집채만 한 바위가 내게 날아왔다.

비행경로를 선회해 바위를 피했다.

낙하공격에 이은 바위 던지기. 어설프게 큰 스킬 뒤에 공격하겠다고 붙었다가는 바위에 맞고 뒤지기 딱 좋다.

"좀 사기 같은데."

저걸 어떻게 감당해야할 것인지 골치가 아파졌다.

후우웅! 후우웅!

거리가 20M 정도로 멀어지자마자 바하크가 다시 손도끼를 던져 댔다.

시공간이동자의 블링크마저도 쿨타임인 상황에서 비행 중에서 쓸 회피스킬이 내게는 없었다.

퍼어억!

"미친!"

손도끼가 정확하게 어깨에 맞았다. 넉백 효과마저 있는지 날개가 움직여지지 않았다.

높게 날아오른 나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두 번째 도끼도 그런 나를 노려 왔는데 날개가 다시 움직여진 것도 그때였다.

콰아앙!

그때 머리에 스친 것은 지면강타였다. 그 스킬을 사용하자 몸은 수직으로 떨어지며 도끼를 피했다.

어설프게 거리를 벌리면 안 된다.

아예 붙어서 죽을 때까지 싸우거나 뒤에서 지칠 때까지 손도끼를 피하는 수밖에 없다.

내 선택은 당연히 전자였다.

쿨타임이 돈 시공간이동자의 블링크로 다시 날아오는 도끼를 피했다.

[결사항전의 영역을 사용합니다.]

[스피어마스터의 소울을 사용합니다.]

바호크의 등 뒤에서 스킬을 전개했다. 적어도 이제부터는 무기력하게 피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촤아악!

후면을 공격하자 바호크는 곧바로 몸을 틀어 손도끼를 던졌다.

칠왕의 병사처럼 근거리에 붙으면 무기를 바꾸지 않을까 했지만, 공격 중에는 그러지 않는 모양이다.

후우우웅!

몸을 틀면서 백스탭을 쓰자 손도끼가 허공을 찢으며 날아갔다.

잠깐 들어난 빈틈에 본 브레이커를 먹였다.

이동속도가 늦어지는 것은 물론 넉백효과를 가진 스킬이지만 바호크는 해당 효과에 대한 내성을 가진 것 같았다.

넉백 효과는커녕 곧바로 움켜쥔 대검으로 나를 후려쳤으니까.

난 배트에 맞은 야구공마냥 허공으로 날아가 바닥을 뒹굴뒹굴 굴렀다.

누가 본다면 홈런이라는 두 굴자가 딱 어울리는 궤적이었다.

[YOU DIED.]

"이게 이렇게 죽네."

수호자 미크엘의 장검으로 모은 쉴드는 물론 결사항전의 영역이 가진 체력회복으로도 극복하지 못하는 데미지일 줄이야.

상대가 레벨도 높을뿐더러 워낙 강력하니 딜 계산이 전혀 되지 않았다.

"오랜만에 여기에 왔네."

불사자의 영혼함에서 부활하고 맞이한 것은 칠왕의 신전 앞이었다.

미크엘은 바닥에 솟아나는 적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다시 신전으로 들어가 재생되는 영상을 스킵하고 플레이를 진행했다.

한 번 겪었으니 보다 쉽게 공력이 가능해졌다.

일반 몬스터는 물론 영안실이나 대장간의 중간보스들은 패턴만 알면 비교적 쉽게 깰 수 있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영안실의 지휘자의 아뮬렛.]

-등급 : 레어.

-방어력 : 666.

-효과 : 스킬쿨타임 11% 감소, 이동속도 3% 증가, 마력 5 상승, 근력 5 감소. 연주LV10.

먼저 영안실의 지휘자에게서 얻은 것은 그토록 바랐던 장신구였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목걸이 주제에 높은 방어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잔뜩 기대를 했지만 정작 눈에 띄는 것은 스킬 쿨타임밖에 없었다.

연주가 무려 레벨10인 것을 보면 특정 퀘스트 말고는 쓸모가 없어 보였다.

대장간에서는 크게 소득이 없었다.

울부짖는 망령의 배틀엑스 정도의 고가의 아이템을 기대를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실망뿐이었다.

스킬북 하나도 없을뿐더러 포션만 거의 두 배로 쏟아질 뿐이었다.

이단의 사이클롭스는 몰라도 이단의 연금술사에게는 특별하게 기대할 것이 없는 모양이다. 그가 내놓은 잡템들이 인벤토리를 엉망으로 만든 주범 중 하나였다. 특히 포션류는 조금이라도 쓰기가 애매하면 전부 다 바닥에 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촛불을 하트 모양으로 만들어 프로포즈를 하는 것도 아니고 형형색색의 포션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저것들을 다 끌어 모아 판매했으면 만 원이라도 건졌을 것이니 아깝기만 했다.

한 푼이 아쉬운 마당에 저걸 버리고 가는 심정은 아무도 모른다.

"인벤토리는 더 확장할 수 없으니."

유료결제로 인벤토리를 최대한 질렀음에도 부족하기만 하다. 계속 진행을 하다 보면 매직 등급 이하의 아이템은 죄다 버려야만 하는 수가 생길 것 같다.

다시 칠왕의 훈련소에 들어가서는 똑같이 중앙을 가로 질렀다.

칠왕의 병사와 장교들에게 음욕의 목소리를 걸어서 난장판을 만든 뒤, 나머지를 죽여 나가며 다시 칠왕의 기사 바하크가 있는 정원의 문을 열었다.

바하크는 여전히 기도를 하고 있었기에 그에게 다가가는 즉시 미니맵에 핑을 찍었다.

임프가 함정을 설치한 함정을 이용해 다른 방향으로도 공략을 진행할 생각이었다.

콰아앙!

"이런."

문제는 바하크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는 거다.

임프의 머리를 박살 낸 도끼가 벽에 박혔다.

내가 더 가까이 있었는데도 어그로가 정반대로 움직인 임프에게 쏠릴 줄은 몰랐다.

콰아앙!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다른 도끼가 내 머리에 박혔다. 쉴드 덕분에 죽음을 면했으나 임프를 부쉈던 도끼를 회수한 바하크가 힘껏 팔을 휘둘렀다.

[YOU D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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