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은 옷을 입지 않아-162화 (162/201)

제162화 고인물은정리한다.

칠왕의 장교의 갑옷이 부서질 것 같은 임펙트가 생겼다. 곧바로 반격을 하려는 것을 밀쳐내기 스킬로 무효화한 뒤에 다시 찌르고 베어 내자 놈이 무릎을 꿇고 무너졌다.

칠왕의 병사들이 거리를 좁혀 투창을 던진 것도 그때였다. 비교적 근거리라 백스탭으로 물러나도 투창에 죽는다.

그 판단이 서자 놈들의 코앞으로 시공간이동자의 블링크를 사용했다.

퍼버버벅!

바닥에 떨어지는 투창은 북소리와 같았고 내가 휘두르는 검은 화음처럼 칠왕의 병사들의 갑옷을 갈랐다.

타앙!

"큭!"

문제는 그중의 하나가 방패로 튕겨내기를 쓴 것이다.

체감상 1초도 되지 않는 이동에 맞춰 투창을 거두고 다시 검과 방패를 들 줄은 몰랐다.

아웃사이더 시티에서도 한 번은 겪었던 패턴. 나조차도 여기에서 벗어날 수단은 없다.

푸욱! 촤악!

두 명의 병사가 내 몸을 가르고 베었다.

쉴드량이 출렁거렸으나 워낙 많은 양을 쌓았기에 크게 티가 나지는 않았다.

[벽타기를 사용합니다.]

경직 상태가 풀리고 곧바로 벽타기를 사용해 천장까지 달려갔다.

나머지 병사들의 검이 허공을 갈라는 소리가 귀에 닿았고 역섬기검을 사용했다.

풀로 차징을 했다가는 놈들이 반응한다.

최대한 짧게 사용했다.

카가가각!

"크헉!"

"컥!"

길게 그어지지 못한 검기에 병사 둘이 머리를 맞았다. 피해도 적었기에 예상보다 데미지도 적었다.

천장에 있는 내게 나머지가 투창을 던지려고 하자 기꺼이 그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다시 검과 방패로 바꾸려는 그들 중에서 가장 체력이 낮은 놈의 목에 검을 꽂아 마무리를 했다.

칠왕의 병사는 셋.

투창을 쓰지 못하는 거리를 유지한 후에 스킬 쿨타임이 도는 족족 사용해 무너트렸다.

그 뒤에는 칠왕의 병사들의 소지품을 뒤졌다.

임프가 줄 법한 음식류와 은화 30개에 아쉬움을 표할 무렵에 방패 하나가 나왔다.

[칠왕의 병사 방패.]

-등급 : 일반.

-방어력 : 400.

-효과 : 넉백 저항10%, 방어시에 피해 감소 5%.

-현재 적용 세트 효과(1/5).

"별로네."

역섬기검을 막을 때는 제법 좋은 아이템인 줄 알았는데 실상은 약하기 짝이 없었다.

칠왕의 병사 세트를 전부 착용하더라도 여기까지 올 유저들에게는 별로 쓸모가 없을 것 같았다.

"컬렉터들은 있을 테니까."

인생의 태반이 게임이라 그런 것일 수 있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취미를 가진 사람이 존재한다. 특히 별다른 능력치가 없어도 새로운 아이템이면 일단 구매하거나 세트 아이템이라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모아 두는 경우도 있었다.

그들이 좋은 고객은 아니지만 의외로 악성재고를 처분할 수 있는 이들이기는 하다.

"칠왕이라 적혀 있으면 환장하겠지."

이번에 새로운 던전의 증거이기도 한 칠왕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템이니 조금 사기를 쳐도 구매하는 사람은 있을 거다.

만약에 없다면 상점에 처분하거나 파괴해서 재료 아이템으로 바꾸면 된다.

같은 구성으로 두 번의 전투를 더했다.

지하신전의 중심부에 들어서자 미니맵에는 칠왕의 훈련소라는 글자가 새겨졌다.

칠왕의 훈련소에는 수많은 병사들과 장교들이 훈련을 하고 있었다.

[키키킥. 좀 많다!]

"정면으로 가기는 무리네."

목표의 60%만큼 탐색한 상황이다.

나로서도 욕심이 아니 훈련소 안으로 들어갈 생각을 버렸다. 최대한 기척을 죽여서 주변을 돌아가려고 했다.

탐색율은 높여 미니맵은 점차 밝아졌지만, 그건 쓸모가 없는 짓이었다.

"다 막다른 길이구나."

훈련소를 돌아가는 길은 전부 다 막혀 있었다. 영안실이나 대장간으로 갈 수 있는 길뿐이었다.

다시 훈련소 앞으로 돌아가 창공의 독수리를 썼다. 비교적 넓은 공간이었기에 내부에 있는 적들이 빽빽하게 있었다.

"이건 좀 걸리겠는데."

수가 많은 적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하나씩 유인하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너무 시간을 끌었다가는 적들이 다시 리젠을 하는 경우다.

"가운데에 몰아서 결사항전의 영역을 쓸까."

그게 가장 아른거렸다.

육안상으로는 훈련소의 모든 적이 보이지 않는다.

스킬로 확인한 미니맵으로는 보스 몬스터의 존재의 유무를 알 수 없다.

"레벨업 신경을 안 쓰면 그냥 음욕의 속삭임으로 끝내면 되는데."

그래도 칠왕의 수하들인지 불사자의 눈에 감지가 되는 놈도 하나씩 있었다.

즉, 이곳에서는 그간 아껴 왔던 칠죄종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거다.

"밀고 보자."

음욕이야 다시 채우면 되는 일이다. 또한 보스인 칠왕에 다다르기까지 몇 번이고 죽을 각오도 되어 있었다.

"넌 대기."

적이 수십에 다다르면 임프가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말 필요할 때 죽으면 골치가 아파지니까.

"적이다! 놈을 잡아라!"

"죽여라! 칠왕께 보낼 수 없다!"

훈련소에 몇 걸음 떼자마자 적들이 나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장교들은 늑대를 몰며 쫓아왔고 병사들은 다가오다가 투창을 들었다.

[등가교환의 방패를 사용합니다.]

[헤이스트를 사용합니다.]

날개를 활짝 피며 하늘을 날리는 것보다 아직은 두 발로 대지를 질주하는 것이 더 빠르다.

팔과 어깨를 물어뜯는 늑대들을 뿌리쳤고 등과 머리를 두들기는 투창마저도 무시했다. 기껏 채워 둔 쉴드는 모조리 박살 나기 시작했지만 기어고 훈련소 끝까지 달렸다.

거대한 철문이 굳게 닫혀 있어 더 나아갈 수 없었다.

구석에 몰린 쥐새끼가 되었지만, 난 고양이를 물어뜯는 수준이 아니다.

거리가 좁혀지고 적들이 나를 포위하며 천천히 다가왔다.

군인이라는 키워드를 가진 AI가 보여 주는 조직적인 움직임의 특징이다.

[음욕의 속삭임을 사용합니다.]

가까워질수록 서로 어깨를 붙여 오며 다가오는 적들이 최대한 많이 뭉친 곳을 지정했다.

[내놔라. 너의 모든 욕망.]

스킬을 사용함과 동시에 칠왕의 병사와 장교가 서로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

"놈을 죽여라!"

"보내서는 안 된다!"

수를 셀 수 없는 적들이었기에 모두가 음욕의 속삭임에 걸린 것이 아니다.

좌측과 우측에 몰려 있는 적들은 그대로 온다.

[결사항전의 영역을 사용합니다.]

[스피어마스터의 소울을 사용합니다.]

놈들에게 맞추어 스킬을 사용한 뒤, 그대로 난투전을 시작했다.

*       *       *

묘지기의 무덤. 최근에 발견된 던전 중 하나로 현재 수많은 공략대가 밀집한 곳이었다. 이곳의 특징은 언데드 위주의 몬스터였다.

유저들을 괴롭히는 것은 1차적으로 좀비나 구울을 죽이면 2차로 스켈레톤과 레이스로 분리가 되어 싸우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그 수가 워낙 압도적이라 천적이라 불리는 성기사나 성직자로 비율을 높여도 개체가 너무 많아 체감상으로 큰 효능을 못 느꼈다.

광역기 위주의 정령술사나 대마법사가 있어도 마나가 금방 닳아 중간중간 딜로스가 심했다.

그렇다고 탱커진이 없으면 금방 무너지니 난공불락이라 불리기도 했다.

파도와 같은 언데드들을 해치운다고 끝이 아니다.

LV78. 악마와 계약한 묘지기.

던전의 보스인 그는 싸우는 족족 처음과 같은 몬스터들을 부활시켰고 필드에 널린 그들의 살점과 뼈로 체력을 회복시키거나 온갖 버프를 사용했다.

그래도 해답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유저들은 해치운 몬스터의 잔해를 빠르게 수습하거나 불을 붙여서 활용하지 못하게 했다.

또한 유저의 수가 높을수록 던전의 난이도가 높아지는 것을 파악해 랭커로만 이루어진 공략대조차도 최정예를 골랐다.

결국 길드간의 경쟁을 떠나 하나의 공략대가 만들어지기에 이르렀다.

랭킹1위. 엠페러 길드장 독고무적.

랭킹2위. 흑랑 길드장 흑군.

랭킹3위. 빡겜 길드장 열파창.

이들을 포함해 랭킹 10위권 이내로만 만들어진 공략대가 대표적이었다.

"…강하군."

성기사로서 최전방에서 방패와 지휘를 모두 담당했던 독고무적은 옅은 한숨을 쉬었다.

엘리멘탈 소울2에서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적을 상대하는 것이 벅찬 것이야 알고 있었지만, 현재 1티어 아이템으로 도배를 하고 있는 그조차도 몇 번이고 이곳에서 죽었다.

다른 이들은 말할 것도 없다.

지금 상태에서 계속 공략에 실패하면 망신도 보통 망신이 아닐 것이다.

"그놈 생각나네."

"그러게 꼬시자고 했잖아요."

흑군과 열파창도 여간 불만이 아닌 것 같았다.

불사자 썩이나감.

그가 있다면 지금처럼 맨땅에 헤엄을 치는 불상사는 없을 것이다.

불사자라 사망 페널티가 없는 것을 떠나 공략과 분석을 하는 부분에는 감히 따라갈 유저가 없었으니까.

업계 1티어에게 흔히 원장님 소리를 붙이고는 하는데 거기에 썩이나감의 이름을 넣어야만 할 것이다.

"…그놈 벌써 레벨 69다."

독고무적은 그의 이야기가 나온 김에 랭킹 페이지를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확인할 때 140위 대였던 썩이나감은 어느새 100위 이내로 들어왔다. 그가 묘지기의 무덤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 엄청난 레벨업 속도를 보인 것이다.

"진짜? 그 사이에?"

"랭킹 98위잖아? 뭐야!"

흑군과 열파창 또한 그걸 확인하고 화들짝 놀랐다.

썩이나감은 따로 부주가 없다는 것은 물론 자신보다 더 높은 레벨의 몬스터에게 전투를 일삼았기에 빠른 레벨을 할 수 없는 구조였었다. 그런데도 랭커에 들었으니 수많은 게이머가 그의 집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인정에도 정도가 있는 것이다.

"제3의 도시라는 것이 진짜인 것 같다."

"빨리 깨고 가고 싶네."

"절대로 우리 자리 못 내주지."

세 명의 최상위 랭커들은 모두의욕을 드러냈다.

썩이나감은 단순한 거래상대가 아니었다. 그는 엄연히 경쟁상대이기도 했다. 필요에 따른 거래를 하지만 그건 자신들이 위를 차지하고 있을 때였다.

"모두 집중! 이번에야말로 이곳을 공략한다!"

"언재까지 여기에 있을 거야! 다들 정신 차려. 어서 깨 버리자고!"

"뒤쳐지는 놈은 알아서나가. 오늘 잠은 다 잤으니까!"

셋은 다른 파티원들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코앞에서 몇 번이고 놓쳐 버린 악마와 계약한 묘지기의 숨통을 이번에야 끊어 버릴 계획이었다.

*       *       *

"…벅차네. 제법."

내 계획은 틀리지 않았다.

적이 아무리 많아도 NPC인 이상에야 음욕의 속삭임으로 대규모 몰살이 가능했다.

어떤 클래스의 랭커라고 하더라도 이런 위력을 낼 스킬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그만큼 칠죄종의 스킬들은 위력적이었다.

그 영향을 받지 않고 좌우에서 비집고 들어오는 칠왕의 병사와 장교들도 결사항전의 영역이 있는 이상에야 크게 위협이 되지 않았다.

한 번 공격을 받으면 두 번, 세 번으로 갚아 주면 되니까.

스피어마스터의 소울까지 있으니 방어력과 체력이 고루 높은 병사계열에게 톡톡한 위력을 발휘했다.

문제가 있다면 하나.

바로 내 스태미나였다.

결사항전이 끝나고 적을 더 쓰러트리지 못해 뒷걸음질을 치면서 숨을 돌려야만 했다.

만약 음욕의 속삭임에 걸렸던 적들이 날 쫓아오던 병사들과 뒤엉키지 않았다면 분명 다시 칠왕의 지하신전을 시작해야만 했을 거다.

"죽어라아아아!"

날 죽음에서 구해 준 칠왕의 장교가 늑대를 잃고 두 발로 달려왔다.

음욕의 속삭임에 걸려 흥분상태인 그는 스태미나가 닳아 거북이처럼 걸어오는 와중에도 나와 거리가 조금만 가까워져도 헬버드를 휘둘러 대고 있었다.

터엉!

그 맥없는 공격을 튕겨낸 후에 피투성이가 된 가슴팍에 검을 깊게 꽂았다.

칠왕의 장교는 별다른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무너졌다.

[레벨이 1 상승합니다.]

[전 능력치가 1 상승합니다.]

추가 경험치 획득 덕분에 날개가 달린 레벨업 알림에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추가로 얻은 능력치는 이번에 부족함을 느낀 기력에 넣었다.

근력은 물론 민첩에 부족함을 느끼지 않으니 당장은 기력에만 투자를 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보다 이건 왜 안 열려……."

칠왕의 훈련소에서 굳게 닫힌 철문을 힘껏 밀어도 미동조차 없었다.

퍼즐 같은 요소는 없었기에 따로 열쇠가 있나 임프를 이곳으로 불러 전리품을 뒤졌다.

칠왕의 병사 세트 아이템 등의 잡화가 넘쳐서 인벤토리에 다 채우지도 못할 때, 임프가 하나를 들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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