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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은 옷을 입지 않아-159화 (159/201)

제159화 고인물은진행중이다.

"뭐에 죽은 거야."

영안실의 연주자와 내 거리는 가깝지 않았다. 그 기다란 팔에 맞지 않도록 주의를 요했기 때문이다.

스킬을 쓴 것인가 싶었지만 기억상으로는 그런 모션이 없었다.

죽었을 때의 영상을 다시 봤다.

성사대와 연주자 모두 나와 거리가 있었다. 공격모션은 물론 스킬을 사용하는 임펙트가 없었다.

"제3의 적이 있는 건가."

현실적으로 그게 맞지 않을까 싶었다. 애초에 수호자의 날개가 아니면 시야가 확보가 되지 않는 구조라 더 그렇다.

"여기는 확인했으니까."

이번에는 우측으로 붙어서 끝까지 가볼 생각이다.

칠왕의 지하신전 또한 구조가 랜덤이겠지만 주요한 거점은 고정이 될 확률도 있으니까.

승강기 앞에 심어 둔 불사자의 영혼함에서 부활했다.

미크엘은 다시 앞으로 나아갔고 그의 뒤를 쫓아가다가 보니 다시 적들이 바닥을 부수고 나타났다.

"먼저 들어가라."

미크엘이 그 대사를 시전했다.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자 놈은 십자검기 스킬로 주변의 적들을 공격했다.

무너지는 적들 사이에서 우뚝 서 있을 수 있던 것은 듀라한들 뿐이었다.

난 그중 하나에게 달려들어 숨통을 끊었다.

"무슨 짓이냐."

"같이 가자고."

"혼자 가라."

"생각 좀 해 보고."

미크엘이 뭐라고 하던 간에 일단 여기서 최대한 버틸 거다. 다른 이벤트 분기점을 확인하는 것이 주목적이었고 듀라한을 죽이면서 레벨상승은 덤일 뿐이다.

내가 동료를 죽이자 듀라한들도 날 적으로 인식했다.

어떤 놈은 스피릿 체이서를 썼고 누군가는 잊혀진 기사의 일격을 사용했다.

그 어마어마한 공격이 살짝 기가 눌렸지만 내게는 훌륭한 방패막이가 있다.

시공간이동자의 블링크를 써서 멀리 떨어졌다.

내게 쏟아지던 공격은 자연히 미크엘에게 집중되었다.

"건방진."

모든 것을 다 맞은 미크엘의 체력이 조금이나마 닳았다. 불만이 가득한 눈으로 날 쏘아보던 놈은 그대로 듀라한들을 찢어버렸다.

미크엘의 앞에서는 나나 듀라한이나 별 차이가 없는 수준이었다.

이다음에 더 많은 적이 나타나나 기다했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미크엘은 우뚝 서 있었고 칠왕은 나타날 기색도 없었다.

"별 수 없는 건가."

내가 죽인 듀라한을 뒤져 아이템을 챙겼다.

이번에는 불사자의 영혼함을 칠왕의 지하신전 정문 앞에 뒀다.

문을 열면서도 힐끔힐끔 뒤를 쳐다봤다.

역시나 아무런 것도 없다.

아예 안에 들어가고 문이 닫히며 다시 봤던 영상이 나왔다. 당연히 스킵을 한 뒤에 창공의 독수리를 사용했다.

"좀 다르네."

첫 번째는 좌우에만 길이 트여져 있었다. 이번에는 정면과 우측으로 길이 트여져 있었다.

계획대로 우측으로 쭉 가 보자.

몇 번의 시도 만에 깰 생각은 애초에 버렸다.

칠왕의 지하신전의 컨셉을 여러모로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측은 시체와 핏자국은 없었다. 그 대신에 거미줄과 먼지로 뒤덮인 갑옷들이 줄 지어져 있었다.

"이거 설마……."

리빙 아머가 먼저 생각이 났다. 그놈이 있으면 꼭 이단의 순교자가 있었다.

"위에 쏴 봐."

이단의 순교자보다 더 까다로운 것은 검은 지옥촉수다. 놈들이 있으면 리빙 아머가 강화되어서 여러모로 귀찮아졌다.

퍼엉!

[키이이익!]

임프의 화염구가 천장을 때렸다.

어둠에 숨어 있던 검은 지옥촉수가 바닥으로 떨어지더니 전시된 갑옷 중 하나에게 스며들었다. 그걸 시작으로 우뚝 서 있던 갑옷들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역시나 이곳은 리빙아머의 영역이었다.

복도 양옆에 전시된 리빙아머는 총 스물. 그중에서 지옥촉수로 강화된 것은 하나뿐이다.

"그나마 다행인……."

말을 이으려다가 뚝 막혀 버렸다.

천장에서 네 마리의 검은 지옥촉수가 떨어져서 리빙아머를 강화시켰다.

리빙아머가 열다섯, 지옥촉수 리빙아머가 다섯. 가슴이 웅장해지기는커녕 옹졸해지기 딱 좋은 광경이다.

[결사항전의 영역을 사용합니다.]

[스피어마스터의 소울을 사용합니다.]

리빙아머의 장점은 기사계열의 능력치를 가졌다는 점이지만, 단점은 그걸 제외한 모든 것이다.

스킬 구성이나 움직임은 단조롭다.

원거리 스킬이 없더라도 아예 작정해서 딜로 찍어 누를 정도가 되면 이보다 더 좋은 먹잇감은 없다.

촤악! 촤악!

결사항전의 영역으로 높아진 공격속도는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스태미나를 가득 쓰는 강공격이 아니라 최소한으로 소모하는 약공격이라면 리빙아머가 한 번 공격을 가하기 전에 두 번의 공격이 가능하다.

그간에 높아진 레벨로 인해 이런 상황에서는 리빙아머가 단 두 번의 공격으로 죽는다.

전 세계의 유저들 중에서도 나만큼의 공격력을 가지지는 못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앞서 거쳤던 지하 1,2층만큼은 아니더라도 지하신전도 그렇게 넓은 편은 아니었기에 지옥촉수 리빙아머가 오기 전에 리빙아머 열둘을 제거했다.

남은 리빙아머는 넷, 지옥촉수 리빙아머는 다섯이다.

결사항전의 영역도 끝났으니 날개를 펴서 올라가 적을 유인한 뒤.

콰아아앙!

곧바로 지면강타를 사용했다. 보다 높아진 공격력 때문인지 스킬 임펙트가 조금 더 강해진 느낌이다.

적들은 피해를 입음과 동시에 넉백효과를 받았다.

역섬기검을 길게 그어 전체적으로 피해를 입힌 다음에 빠른 공격으로 리빙아머 둘을 추가로 처치했다.

남은 리빙아머는 둘, 지옥촉수 리빙아머는 다섯.

터엉!

찔러오는 리빙아머 하나의 공격을 쳐내고 다른 하나는 한 발자국 다가가 밀쳐내기로 공격을 끊었다.

그 뒤로 하나씩 리빙아머를 쓰러트렸다.

처음 리빙아머와 마주할 때와 생각하면 여러모로 장족의 발전이다.

"남은 것은 저 골치덩어리들인데."

지옥촉수 리빙아머. 이놈들이 강하지만 특별한 정도는 아니다.

듀라한들을 생각하면 마트의 시식코너에서 지나가다가 주워 먹는 고기조각 정도다.

그런데도 조심해야만 하는 이유는 그 안의 검은 지옥촉수다.

두 마리가 리빙아머에게 스며들어 레벨77의 강화된 리빙아머가 되는 것은 은근히 부담스럽다.

최악의 상황은 리빙아머 하나에게 다섯 마리가 우겨드는 상황이지만, 두 마리만 되더라도 허용량을 초과한 것만 같은 모양새를 생각하면 거기까지는 안 될 것이다.

퍼엉! 퍼엉!

그 사이에 임프는 부지런히 화염구를 던졌다.

물론 검은 지옥촉수는 리빙아머에게 숨어 있어서 아무런 효과가 없다.

지금은 여유가 생겼으니 공격지침을 교란에 집중하게 했다.

후웅! 후웅!

가까이 다가온 지옥촉수 리빙아머들이 방패를 휘둘렀다. 방패공격은 데미지가 낮아도 넉백이나 기절 등을 유발하는 중요한 공격이지만 애석하게도 검에 비하면 범위가 짧다.

백스탭을 쓸 필요도 없이 가벼운 뒷걸음질로 거리를 유지한 다음에 다음 공격모션을 준비 중일 때 찌르고 빠졌다.

그 일련의 동작은 펜싱에서 보던 동작과 비슷하다.

남들과 다른 공격모션이지만 판정을 제대로 얻을 수 있어서 특히 몬스터를 상대로 좋았다.

최근에 검도나 펜싱 영상을 틈틈이 보는 이유이기도 했다.

"차라리 레이피어 쪽으로 바꿔볼까."

지금 쓰는 수호자 미크엘의 장검은 형태가 롱소드 쪽이다. 검의 종류는 다영해서 레이피어처럼 찌르기에 조금 더 특화된 검도 있으니 차후에 그쪽으로의 전향도 고려해 볼 만도 하다.

지금 내 공격 스타일은 찌르고 튀는 쪽에 더 가까우니까.

리빙아머와 특별하게 달라진 것이 없는 지옥촉수 리빙아머이니 하나하나를 쓰러트리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숙주가 무너질 때마다 나를 덮쳐 오는 검은 지옥촉수였으나 이때마다 백스탭으로 피해서 촉수를 피했다.

그때마다 검은 지옥촉수는 동료들과 함께해서 강회돤 지옥촉수 리빙아머가 양산되었다.

여기서 확인된 것은 리빙아머에 들어갈 수 있는 검은 지옥촉수는 최대 두 마리였다는 거다.

천만다행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레벨 72짜리가 77로 된 것을 넘어 듀라한처럼 80까지 올라갈 수 있었으니까.

[키이이익!]

하나밖에 남지 않은 검은 지옥촉수는 숙주를 잃고 아예 전투에서 이탈했다.

그놈을 처리하고 싶었지만 굳이 쫓아가서 포위당할 생각은 없었다.

촤아아악!

강화된 지옥촉수 리빙아머들이 성큼성큼 다가와 검을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몸에서 넘친 촉수가 창처럼 솟아났다.

이때 임프의 화염구 공격빈도를 다시 높였다.

화르르륵!

[키아아악!]

임프의 화염구가 적절하게 강화된 지옥촉수 리빙아머2에게 맞았다. 바깥으로 노출된 촉수가 비명을 지르며 꿈틀거렸다.

나 또한 화염탄을 던져 다른 하나에게 피해를 입혔다.

이러면 촉수가 2차 공격을 하지 않으니 역섬기검을 사용해서 데미지를 줬다.

몸에 붙은 불을 무시하고 공격할 때, 시공간이동자의 블링크로 뒤로 이동했다.

콰드드득!

등판에 본 브레이커를 꽂았다. 딸피가 되었음에도 추가공격을 하지 않고 뒤로 물러난 것은 그 안에 숨어 있는 검은 지옥촉수 때문이다.

퍼어엉!

임프의 화염구가 한 번 더 노리자 리빙아머가 부서졌다. 그 안에서 자유를 찾은 검은 지옥촉수가 날 덮치려고 했지만 침착하게 검을 휘둘렀다.

검은 지옥촉수는 체력이나 방어력이 높지 않아 그 높은 레벨에도 불구하고 쉽게 무너졌다.

"남은 것은 하나."

검을 휘둘러 데미지를 주되 임프의 화염구로 끝을 내도록 공을 들였다.

또다시 리빙아머가 부서지고 날 덮치려던 검은 지옥촉수를 죽이는 것으로 이번에도 끝냈다.

[레벨이 1 상승합니다.]

[전 능력치가 1 상승합니다.]

"좋아!"

추가 경험치 획득 스킬로 인해 확실히 레벨업 속도가 다르다. 그런데도 마냥 기뻐할 수 없는 것은 도망친 검은 지옥촉수가 어디에서 나올 것인지 알 수 없어서다.

"계속 화염구를 써."

임프를 들고 날아가면서 항상 위를 조심했다.

우측 벽에 붙으면서 가다 보니 한 번 더 리빙아머들과 조우했다. 아까 전에 놓친 검은 지옥촉수가 있어서 지옥촉수 리빙아머가 하나 더 늘어났지만 전투양상이 확 바뀔 정도는 아니었다.

[엘리멘탈 소울2 랭킹.]

148위. 지옥혈검. LV68.

149위. 썩이나감. LV68.

150위. 양혼. LV86.

내 랭킹도 엄청나게 올라갔다.

전에는 300위를 지키는 것도 아슬아슬했던 것을 생각하면 고렙존에서 계속 머리를 부딪친 성과를 내고 있는 셈이다.

"괴물은 괴물이네."

내 VIP들은 똑같이 랭킹 1위부터 3위까지 잘 차지하고 있었다. 나도 엄청 쫓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73레벨이었다.

예전과 다르게 그렇게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보다 레벨이 높으면 뭐할까. 게임 진행은 내가 더 빠르다. 또한 내가 더 강했다.

저들 중 누구도 단독으로 이곳까지 올 수 없을 것이다.

지금 난리 중이라는 묘지기의 무덤도 내가 공략하면 저렇게 오래 걸리지도 않을 것이다.

이건 확신할 수 있었다.

수호자 미크엘에게서 버티는 5분의 시간이 그들이 고생 중인 보스 몬스터보다 더 어려울 테니까.

"환경이 중요하기는 하네."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자본과 인력을 동원해도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밑바닥에서 아등바등 버티면서 기어오르는 나와의 강인함은 감히 비교할 수 없었다.

이 게임에서도 정점에 오를 날이 그렇게 멀지 않았구나 싶었다.

나의 강함에 확신이 생긴다.

망상으로 끝나지 않고 현실로 만들 수 있다.

"왜 여기는 몬스터가 많지?"

한 번 더 리빙아머들을 만나자 의문이 들었다.

왜 처음에 영안실로 가는 길에는 아무런 적도 만나지 못했을까. 아니면 알아차리지 못한 것일까.

"골치 아프네."

지금은 후자에 무게를 두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었다.

카앙! 카앙! 카앙!

앞으로 더 나아가자 끝이 보였다.

전과 다른 점은 그곳에서는 밝은 빛이 비추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효과음을 생각하면 대장간에 가까울 것 같았다.

"정답이네."

문을 열자 거대한 용광로가 보였다. 모루에 쇳덩이를 올려 놓고 쉴 새 없이 망치질을 하는 사이클롭스와 탁자에 올려진 무기에 세공을 하고 있는 연금술사가 보였다.

LV80. 이단의 사이클롭스.

LV80. 이단의 연금술사.

칠왕의 지하신전에 자리를 잡고 있는 중간보스들이었다.

"그워어어어어어!"

"손님이군. 흘흘흘."

사이클롭스는 날 보더니 망치를 내팽개치고 고함을 질렀다. 이단의 연금술사는 그런 거인을 어루만지며 진정시켰다. 주름에 파묻힌 두 눈은 나를 아래 위로 흘겼다.

"강한 놈이로구나. 그 영혼은 새로운 무기에 깃들기 좋겠지."

이단의 연금술사가 손을 까닥였다.

인간은 감히 들 수 없는 거대한 배틀엑스가 이단의 사이클롭스에게 잡혔다.

[으아아아! 으아아아아!]

배틀엑스는 붉은 빛을 토하며 비명을 질렀다.

저것만 봐도 지금의 전투가 마냥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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