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은 옷을 입지 않아-157화 (157/201)

제157화 고인물은도착했다.

듀라한의 스킬들은 전반적으로 봤으니 최대한 안전하게 접근했다.

저번처럼 스킬이 꼬이게 쓰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하면서 일을 진행했다.

목표는 듀라한이 아니라 유령마다.

말위에서 내리치는 검이야 튕겨낼 수 있지만, 한 번씩 유령마의 질주와 함께 검을 찌르는 공격은 피하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듀라한의 모든 스킬을 뺀 뒤에 검을 튕겨내고 유령마에게 공격을 우겨넣는 식으로 세 번을 반복했다.

유령마 또한 레벨이 높았는지 쉽게 체력이 닳지 않았지만, 약점파악으로 도드라진 무릎을 베어내자 금방 무너졌다.

[푸히이이잉!]

유령마는 처음으로 긴 울음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전우여. 또다시 먼저 네가 나를 떠나는 구나.]

듀라한은 먼저 다가오지 않았다. 유령마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두 눈을 감으며 두 번째 죽음을 애도했다.

카가가각!

"쳇. 역시 무적인가."

거리를 벌린 뒤에 역섬기검을 썼지만, 검기는 듀라한의 몸에 닿기 직전에 투명한 막에 부딪히며 사라졌다.

[너를 용사하지 않을 것이다.]

듀라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의 몸 주변 1M에 검은색 기운이 회오리를 쳤다.

"아. 유령마가 죽으면 저거인가."

전작 기준에서는 듀라한이 아니라 또 다른 언데드 기사 중 하나인 데스나이트가 가지고 있던 스킬이 있다.

원혼의 장막. 사용자의 방어력을 높여 주는 한편 주변에 다가오는 적에게 데미지와 함께 감속 효과를 주는 사기적인 스킬이었다.

"이거 꽝이잖아!"

검의 길이도 있으니 1M의 범위는 얼핏 보면 안전하다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 거리를 유지할 수 없다.

상대가 오면 무조건 물러나야하는 것은 물론 갑옷을 입은 상대에게 찌르기를 입히려면 일반적인 베기보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즉, 내가 찌르기를 하더라도 듀라한이 한 발자국만 내게 다가와도 원혼의 장막에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후웅! 후웅!

"골 때린다. 진짜!"

유령마와 함께 있을 때와 달리 두 발을 땅에 디딘 듀라한의 공격빈도는 일반적인 기사 정도로 올라왔다.

역시 미크엘만큼은 아니기에 흘리거나 튕겨내는 것에는 문제가 없지만 단순한 내려치기나 찌르기만이 아니라 횡이나 사선으로 비틀어서 베는 등의 공격도 섞이니 문제였다.

어설프게 튕겨내기를 시도하다가는 죽는다.

원혼의 장막이 발바닥부터 허리까지만 올라왔기에 그 판정을 더 파악하고자 날개를 피고 날아올랐다.

[도망가지 말아라.]

그러자마자 듀라한이 스피릿 체이서를 사용했다. 쫓아오는 영혼을 천장에 붙어 이동하며 없앴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죽음을 맞이하라!]

듀라한이 곧바로 잊혀진 기사의 일격을 사용했다.

천장에서부터 내리꽂히는 검기는 무섭게 나를 노려 왔다. 물론 시공간이동자의 블링크로 피하면 될 뿐이었다.

[죽음조차 너를 구원할 수 없다.]

그때 내게 검을 상태로 듀라한이 달려왔다.

죽음의 돌격.

전작에서도 악명이 높았던 스킬이다. 빠른 이동속도는 물론 무적판정까지 가지고 있다.

듀라한의 돌격속도는 엄청났다. 그가 타고 있던 유령마보다도 두 걸음 더 빠를 정도이지 않을까 싶었다.

"…느리다고."

문제는 그조차도 미크엘의 일격과 감히 비교할 수 없다는 거다. 이쯤이면 내가 그에게서 어떻게 5분을 버텼나 의아할 정도다.

"할 수 있다."

그보다 훨씬 약한 듀라한이다.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긁어내면 무조건 내가 이길 수 있다.

필요한 것은 인내심과 집중력뿐이다.

중간마다 터지는 피어만 조심하면 필승이다.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수를 놓듯이 듀라한의 몸에 내 흔적을 남겼다.

후우웅!

"제길."

물론 모든 것이 수월하지 않았다.

공격을 하다가 물러날 때마다 듀라한이 한 발자국 내딛으면 기껏 쌓아 둔 쉴드가 듬성등섬 깍였다.

이럴 때마다 미크엘에게 고마울 뿐이다.

수호자의 날개만이 아니라 그가 준 유니크 검이 아니었으면 이 순간에 바로 죽었을 테니까.

듀라한이 다시 스피릿 체이서를 사용했다. 그에 맞춰서 날개를 피며 날아올랐다.

스피릿 체이서를 피하는 동안에도 듀라한은 거리를 좁혔고, 다시금 피어를 사용하려는 모션을 보였다.

[나를 내려다보지 말아라. 건방진 인간.]

그 대사가 다 끝나기도 전에 듀라한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유령마가 있을 때도 거리를 제대로 좁히지 못했는데 지금이면 말할 것도 없다.

뒤이어 듀라한이 잊혀진 기사의 일격과 죽음의 돌격을 사용했지만, 이 역시도 대비하고 있던만큼 피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 뒤는 나의 턴이었다.

듀라한의 스킬 쿨타임이 전부 돌기까지는 3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때까지 원혼의 장막에 닿지 않는 거리에서 꾸준히 공격을 가했다.

보스가 아니라는 것을 이 부분에서 깨달았다.

듀라한에게서는 페이즈를 지날수록 더 괴랄해지는 패턴 및 더 강력해지는 스킬 따위는 없었다.

그냥 강하고 둔한 몬스터일 뿐이다.

[레벨이 1 상승합니다.]

[전 능력치가 1 상승합니다.]

[도전과제, 듀라한을 이긴 자를 달성하였습니다.]

[도전과제, 불가능한 적을 이긴 자를 달성하였습니다.]

듀라한을 죽이고 연달아 알림이 떴다.

80레벨짜리 몬스터를 죽였는데 레벨업을 못 한다면 아주 억울했을 것이다.

첫 번째 도전과제의 보상으로 무려 전 능력치 1 상승을 추가로 줬다.

두 번째 보상은 추가 경험치 획득 스킬북이었다.

[추가 경험치 획득 스킬북.]

-종류 : 일반.

-효과 : 스킬 습득.

-설명 : 추가 경험치 획득을 배울 수 있는 책이다.

스킬 이름을 보면 어떤 효과를 가졌는지 뻔히 보인다. 실망했다기보다는 아주 흡족하다.

파티 사냥을 하지 않는 나였기에 고레벨의 몬스터를 잡아도 체감상 레벨업 속도가 느렸었기 때문이다.

[스킬, 추가 경험치 획득을 배우셨습니다.]

과연 경험치를 얼마나 더 줄 것인지 확인을 해 볼까.

[추가 경험치 획득LV1.]

-종류 : 패시브 스킬.

-효과 : 플레이어보다 레벨이 높은 몬스터 경험치 획득량 10% 증가, 보스 몬스터 경험치 획득량 20% 증가.

"……."

스킬 설명을 본 순간에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텍스트가 깨진 것이 아닐까 싶어서 두 눈을 몇 번이고 비벼서 내용을 확인했다.

그런데도 설명은 똑같았다.

스킬창을 껐다가 켜도 적혀진 내용은 똑같았다.

"미쳤다."

항상 나보다 더 높은 레벨의 몬스터를 사냥한다. 그 부분에서 추가 경험치 획득만으로도 감지덕지인데 보스는 두 배는 더 크게 줬다.

희열과 성취감에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언제나 공격 스킬 혹은 생존을 위한 방어 스킬을 원했었지만, 지금의 것은 예상을 벗어났더라도 너무나 황홀한 것이었다.

"푸하하하!"

이 스킬을 가지고 지하도시의 신전에서 몇 번을 구른다면 금방 랭킹 1위도 가능할지도 몰랐다.

다시금 정상에 서는 것이 거짓말은 아닐 터다.

게임 내외적으로 내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멍청한 작자들을 짓누르고 비웃어 줄 수 있을 수 있다.

"망상은 거기까지."

지금 나는 지하2층이다. 아직 칠왕의 지하신전에는 발도 들여놓지 못하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 가만히 있어 봐야 될 것도 안 된다.

석문의 보석을 하나씩 건드리며 미크엘이 있는 중앙석문을 확인했다.

몇 번이나 들락날락 거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10분은 넘게 맵을 뛰어다녔을 무렵이었다.

미크엘은 녹색으로 통일된 악마의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드디어 열렸군."

"이제 지하신전일까?"

"물론이다. 조심하도록."

미크엘이 두 손으로 석문을 열었다. 천천히 열리는 문 너머의 공간에는 아무것도 없는 어둠  뿐이었다.

불사자의 영혼함을 챙겨와 그 속으로 들어갔다.

어둠 속에서도 미크엘과 나의 수호자의 날개로 주변의 시야가 들어왔다.

내가 걷고 있는 좁은 길 아래는 절벽이었다.

그 끝에는 녹슨 쇠사실에 매달린 승강기 하나가 보였다.

수호자의 날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크엘은 그 안으로 들어갔다.

[어둠은 항상 우리 곁에 있습니다. 그 끝에는 아무 것도 없죠. 소울리스 CEO 대니얼 올림.]

로딩화면과 함께 찝찝한 멘트가 나타났다. 그마저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승강기가 열리는 소리와 함께 미크엘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가 먼저 나서고 난 뒤에 알림이 떴다.

[칠왕의 지하신전에 도착했습니다.]

"드디어 도착했다."

칠왕의 지하신전.

새로 패치된 누구도 닿지 못한 미지의 던전.

드디어 이곳에 발을 디뎠다.

칠왕의 지하신전은 곳곳에서 불타오르는 등불로 인해 그렇게 어둡지는 않았다.

붉은 안개가 살짝 깔려진 거대한 신전은 나도 모르게 긴장하게 만들었다.

[칠왕의 지하신전에 입장하라.]

목표 또한 새로 생겨났다.

별 다른 것이 없는 것인가 싶었는데 미크엘이 더 나가지 않고 발을 멈췄다.

"왜 그러지?"

"가라. 부정한 것들이 있으니."

미크엘의 말을 하자마자 바닥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쾅! 쾅! 쾅!

바닥을 부수고 나타난 것은 여기까지 오면서 봤던 몬스터들이다. 숫자만 대충 세어도 오십 마리는 넘었다. 그중에서 가장 기겁했던 것은 무려 열 마리나 되는 듀라한들이었다.

나보고 저걸 상대하라고 하면 그럴 자신이 없다.

미크엘에게 전적으로 의지를 해야 하는데 놈이 무쌍을 찍는 동안에 버틸 수나 있을 지도 문제였다.

필요에 따라서는 그간 아껴 둔 칠죄종 스킬도 써야만 했다.

"먼저 들어가라."

그때 미크엘이 한 말이 날 들뜨게 했다.

"무슨 말이지?"

"시간을 끌겠다. 저곳까지 먼저 가라는 거다."

"얼마든지."

미크엘이 드디어 일을 하겠다는데 마다할 생각은 없었다. 들뜬 마음에 수호자의 날개를 활짝 피며 공중에 날아오를 때였다.

"멍청한 놈."

미크엘이 말을 하는 것과 동시에 검은 지옥촉수들이 날 둘러쌌다.

날개마저 잡혀 바닥에 떨어지자 듀라한의 유령마와 리빙 아머가 나를 찢어 버렸다.

[YOU DIED.]

"……."

가라고 해서 갔다니 바로 죽어 버렸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서 불사자의 영혼함에서 부활했다. 천만다행이게도 승강기에서 내리자마자 바닥에 설치한 것이 다행이었다.

다시 미크엘과 앞으로 걸었고 그가 또 가라는 말을 해 줬다.

"혼자서?"

"흥. 귀찮은 놈."

미크엘이 검을 역수로 쥐고는 그대로 바닥에 찍었다.

콰드드득!

그를 중심으로 십자형태의 검기가 지면을 부수며 뻗어나가며 적들을 쓸어 버렸다.

그 일격에 듀라한을 제외한 나머지 몬스터들이 전멸했다.

"…시원하네."

"가라."

미크엘이 손을 뻗어 칠왕의 지하신전을 가리켰다.

듀라한밖에 없으니 다시 날개를 피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어그로가 모두 미크엘에게 쏠려있었기에 아무런 문제도 없이 칠왕의 지하신전에 발을 디뎠다.

쿠웅!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신전의 문이 굳게 닫히며 시네마틱 모드로 바뀌어졌다.

*       *       *

데스티아 여신교의 수호자.

미크엘은 그 이름에 부족함이 없는 강력함을 보였다. 지면을 가득 채우며 달려드는 수많은 적들 사이에서 그만이 홀로 빛이 나고 있었다.

여신이 내려준 후광과 신성을 뿌리는 날개. 그리고 운명을 정하는 검까지 움켜쥔 그에게 감히 생채기를 내는 존재가 없었다.

콰앙!

"큭!"

그때 머리 위에서 창이 떨어졌다.

미크엘은 반사적으로 그걸 튕겨냈다. 어찌나 강한 힘이 실렸는지 팔이 가늘게 떨렸다.

"누구냐."

"이곳의 주인. 칠왕이다."

피처럼 붉은 갑옷에 인간의 비명을 둘러쓴 자. 악마의 가면은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생기를 띄고 있었다.

체격은 미크엘보다 훨씬 커서 3M에 육박하는 거구였다.

"칠왕. 너의 운명이 정해졌다."

미크엘의 뒤의 후광이 점점 여신의 형상을 띄기 시작했다.

"수호자. 그게 너의 죽음이다."

칠왕 또한 움켜쥔 창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갑옷에는 피가 쉼 없이 흘렀고 망토에 그려진 인간의 얼굴에서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에 흥분하듯이 웃기 시작하는 악마의 가면은 지옥의 한 곳을 잘라온 것처럼 보였다.

높게 날아오른 미크엘이 떨어져 내리며 검을 휘둘렀다. 그에 칠왕은 힘껏 창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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