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5화 고인물은마주했다.
가고일은 낙하공격과 돌진공격 두 개를 사용하는 것이 공략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동작이 크고 사이사이마다 시간이 있어서 오히려 좋은 먹이감이었다.
내가 불편한 적은 원거리 스킬로 무장하거나 튕겨내기는커녕 피할 틈도 주지 않을 경우였으니까.
그런데 지금 가고일이 불편해진 것은 놈이 날개로 자신의 몸을 방어할 때다.
"역섬기검은 그냥 맞았단 말이지."
모든 스킬이 반사가 된 것은 아니다.
낙하공격 이후에 역섬기검은 데미지가 들어갔다. 돌진공격 후에 지면강타의 데미지가 돌아왔을 뿐이다.
콰아앙! 콰아앙!
"화염구."
가고일들이 다시 천장에서 떨어지며 공격해 왔다. 구르기로 피하면서 곧바로 임프에게 공격을 지시했다.
퍼엉!
"어?"
화염구는 정확하게 가고일1의 몸에 맞았다.
먼저 든 생각은 낙하공격 패턴 때는 공격을 방어하지 않는구나였다.
방어는 돌진공격 이후일 것 같았다.
퍼엉!
[키아악!]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임프의 두 번째 화염구를 가고일이 돌진공격이 끝난 후에 날개로 튕겨낸 것이다. 자신의 공격에 맞은 임프는 화들짝 놀라 뒤로 도망쳤다.
"조건부라 다행이네."
두 번의 패턴 중에서 단 한 번을 노려야만 한다.
모든 공격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것만 하더라도 큰 소득이다.
"덫 종류 설치해."
[키키킥! 알겠어!]
공격할 타이밍을 익히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미니맵에 빠르게 핑을 여러 개 찍었다.
임프가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사이에 나는 가고일의 공격을 피했다.
카가가각!
"역시 맞네."
물론 타이밍을 맞춰서 낙하공격 때 역섬기검을 넣는 것은 잊지 않았다.
예상한대로 이때는 데미지가 들어갔다.
날개로 몸을 감싸려는 모션도 없었다.
[카카칵! 다했다! 나 휴식!]
"교란만 걸어."
임프가 함정설치를 끝냈으니 해당 지점으로 이동했다.
콰득!
맹수처럼 내게 달려들던 가고일2가 곰덫을 밟았다. 암석과 같은 거친 발목이 잡히며 틈을 드러냈다.
[헤이스트를 사용합니다.]
이때는 0.1초라도 빠르게 접근해야만 한다. 그래야 일반 공격 한 번이라도 더 할 수 있으니까.
카카각!
"안 뚫어지는데?"
평소처럼 찌르고 베어내는 평타캔슬을 쓰려고 했지만 검은 가고일에게 파고들지 못했다.
불똥을 튀며 밀려날 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본 브레이커를 쓰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마자 가고일1이 내가 있던 곳을 발톱으로 훑으며 지나갔다.
가고일2도 곰덫에 벗어나 달려들기에 구르기로 얼른 피했다.
서로 공격하는 시간대가 달라진 것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었다.
엇박자로 공격해 들어와서 반격하기가 애매해졌다.
결사항전의 영역을 쓰고 싶어도 매 공격마다 이동거리가 크다보니 그 안에서 충분한 데미지를 넣지 못할 것 같았다.
[등가교환의 방패를 사용합니다.]
"…한 번은 죽어야겠는데."
불사자의 영혼함이 있어서 지하2층에서의 부활은 확정이 되어있었다.
앞일을 위해서라도 놈들에게 바짝 붙어서 다른 패턴이 있는 지를 확인해야만 할 것 같다.
콰앙! 우드득!
정면으로 몇 걸음 떼기도 전에 서로 다른 공격이 내 몸에 작렬했다.
낙하공격에 짓눌린 몸뚱이를 훑고 가는 어금니는 그간 채운 쉴드를 아낌없이 털어내려고 했다.
"오래 견딜 수 있겠는데……."
수호자 미크엘의 장검으로 인해 높아진 공격력. 그 일부로 급격히 높아진 방어력은 보스 몬스터에 준하게 된 것 같았다.
나보다 11레벨은 높은 적에게 맞아도 쉴드 소모량은 크지 않았으니까.
문제는 그 시간이 찰나와 같다는 거다.
등가교환의 방패가 소모된 이후에 돌아온 방어력은 형편없었다. 기껏 모은 쉴드가 종이처럼 찢겨져 나갔다.
"아직……!"
패턴을 확인하기 위해서 무작정 거리를 가깝게 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한 번이라도 더 데미지를 우겨넣어야만 한다.
체력이 일정이상 닳아야만 숨겨진 패턴을 보이는 개체는 분명히 존재했으니까.
콰드드득!
그래서 모든 공격을 가고일2에게 집중했다.
두 번째 먹인 본 브레이커가 정확하게 들어갔다. 체력이 절반 이하로 내려감과 동시에 몸의 일부가 부서져 내렸다.
가고일2는 두 팔과 다리로 내 몸을 움켜쥐고는 하늘로 날아오르며 목을 씹어 댔다.
[YOU DIED.]
공중에서 반항을 하려면 힘찬 날갯짓밖에 없었다. 근력이 문제인지 비행 스킬의 부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가고일2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죽었다.
방금 전의 패턴이 내가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것인지 아니면 몇 초 동안 물어뜯는 것인지를 확인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그래도 이건 똑같네."
부활하고 보인 경로는 똑같았다.
다섯 개의 갈림길이 그대로였고 미크엘은 이번에도 가운데를 정해 이동했다.
만에 하나를 위해 한 번 더 따라갔다.
저번과 다른 것이 없었다.
등장하는 몬스터는 물론이고 그 끝의 석문도 변함이 없었다.
"로그라이크라고 해도 다 변하는 것은 아니니까."
다른 갈림길이 대폭 변할 것일 수 있다.
다시 첫 번째로 가자 바닥의 패턴이 변했다. 거친 동굴 바닥의 질감이 아니라 타일이 깔려 깔끔해진 것이다.
"이건 무조건 함정이라도 있으면 골치 아프겠는데."
타일의 배열을 일일이 살펴보다가 눈이 사시가 될 것 같다. 심지어 함정이 바닥만 있는 것은 아니니 여기에서 고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뭐. 나야 상관이 없지만."
천장에 혹시 있을 지도 모르는 검은 지옥촉수만 조심하면 된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임프를 의지했다.
퍼엉! 퍼엉!
[키키킥! 불 장난이다!]
화염구를 최대한 적극적으로 쓰게 했다. 문제는 자유도를 너무 높여 줬더니 아무 곳에나 난사를 했다는 점 정도일까.
그때마다 튀어나올 검은 지옥촉수를 생각하느라 움직이는 것에 제약이 걸렸다.
"여기는 함정지대가 맞았구나."
석문에 다다를 때까지 몬스터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악마의 눈에 손을 얹어 초록색으로 바꾼 뒤.
드드드득!
가고일들이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쉴드가 없어서 아쉽지만, 그렇다면 만들면 될 뿐이다.
[결사항전의 영역을 사용합니다.]
[스피어마스터의 소울을 사용합니다.]
가고일1의 앞에서 곧바로 장판을 깔았다. 아직 기상 중이라 무적판정이지만 그 유효시간은 길지 않을 것이다.
놈이 공격모션을 취하기 전에 무작정 공격을 시작했다.
촤악! 촤아악!
가고일1이 날개를 힘껏 피고 나를 노려보는 순간에야 데미지가 들어갔다.
두 개의 스킬 덕분에 급상승한 충격으로 가고일1의 체력은 듬뿍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스피어소울 마스터의 효과가 지대한 것으로 보아 체력이 높기보다는 방어력이 높은 것 같았다.
계속해서 공격을 하고 싶지만 가고일1과 2가 살짝 몸을 움츠렸다.
돌진공격 패턴인 것을 알기에 백스탭으로 가까이에 있던 가고일1의 공격을 피한 뒤에 구르기로 가고일2의 이어진 공격에서 멀어졌다.
공격순서가 달라졌다지만 이때 반격을 해서는 안 된다.
퍼엉!
[키아아악!]
"이런."
화염구의 공격 자유도를 미처 낮추지 못했다.
가고일1이 날개로 자신의 몸을 감쌌고 되돌아온 화염구에 임프는 직격 당해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정신 차리면 교란만 걸어."
화염구는 물론 함정설치도 봉인이다.
계속 아이템을 썼다가 다시 보급을 하고 돌아오면 집중이 깨지게 되니까.
콰앙! 콰앙!
가고일들이 천장에서 떨어지는 낙하공격을 했다.
이때가 최적의 기회였기에 역섬기검을 쏘아냈다.
카가가각!
길게 그어진 검기가 가고일 두 마리에게 적중했다. 그와 동시에 시공간이동자의 블링크로 가고일1의 뒤로 이동했다.
퍼걱!
등판에다가 정확하게 본 브레이커를 사용했다.
가고일1의 체력이 빠지면서 등판에 붉은 점이 생긴 것을 확인했다.
약점파악이 발동했다.
저길 노리면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콰드드득!
"좋아."
힘껏 붉은 점을 찔렀다.
가고일1의 체력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무릎을 꿇은 놈은 심지어 두 날개마저 떨어져 부서졌다.
공격을 더 이어나가고 싶었지만 가고일2가 돌진공격을 해 왔기에 백스탭으로 물러났다.
가고일1도 일어나서는 네 발 달린 짐승처럼 달려왔다.
낙하공격의 패턴도 사뭇 달라졌는데 천장까지 기어올라 떨어지는 식이었다.
콰앙!
가고일2가 낙하패턴을 한 뒤에야 한참 늦게 낙하공격을 할 정도였다.
날개를 잃은 것은 생각보다도 큰 것처럼 보였다.
바로 공격을 하고 싶었지만 연달아 스킬을 쓴 이유로 부족해진 마나를 포션으로 채웠다.
계속 공격을 피하며 확인한 결과 가고일1은 낙하공격에 크게 딜레이가 생겼으나 돌진공격의 속도는 한층 빨라졌다.
날개가 있었을 때는 날 붙잡고 날아올라 물어뜯는 패턴은 관찰 결과 사라진 것으로 보였다.
가고일 사냥은 데미지를 준 후에 약점파악으로 날개를 없애야만 필승으로 이어진다.
콰르르르!
꾸준히 데미지를 주어 가고일1을 무너트렸다.
홀로 남은 가고일2는 어렵지 않았다.
낙하공격 때만 공격이 가능하다는 점이 여전히 귀찮았지만, 다소 시간이 걸려도 확실하게 제압할 수 있다는 점은 큰 이점이었다.
[가고일의 흉갑.]
-등급 : 매직.
-방어력 : 642.
-효과 : 체력 10 상승, 상태이상 저항 10% 상승, 마법 저항 5% 상승, 스태미나 5% 감소, 이동속도 5% 감소, 어둠LV5.
-설명 : 가고일의 몸으로 이루어진 갑옷이다.
가고일 두 마리를 뒤지면서 나온 것은 이 갑옷이었다.
"매직인데 애매하기는 하다."
방어력이 낮은 편은 아니다. 체력이나 저항력 상승도 매직 아이템치고는 훌륭한 편이었다.
아쉬운 점이라면 그 이외의 부분이었다.
"탱커용이기는 하지만 고가에는 판매가 불가능하겠네."
강화작업이라도 할까 싶었지만 그런다고 엄청나게 인기가 있는 매물은 아닐 것 같았다.
메리트가 있다면 가고일이라는 몬스터가 아직 다른 곳에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 정도일 뿐이다.
칠왕의 지하신전을 돌다보면 더 좋은 아이템이 나올 것이니 그것들에게 강화작업을 해야 할 것 같다.
두 번째 통로는 처음의 것과 흡사했다.
저주받은 구울과 검은 지옥촉수가 일찍 나와서 쉴드를 누적시키기에는 좋았다.
끝의 석문에도 가고일 두 마리가 지키는 식이었다.
한번 정리하는 것에 시간이 걸리지만, 침착하게 가고일을 정리했다.
두 번째 석문도 발동시킨 김에 미크엘이 지키고 있는 세 번째를 확인했다.
"뭐지?"
악마의 네 개의 눈 중에서 두 개가 녹색으로 변했다. 문제는 1번 2번이 아니라 1번과 4번의 눈이 녹색으로 변했다는 거다.
"이거 진짜 퍼즐인가 보네."
차례대로 석문의 눈을 만진다고 될 것이 아니다.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정해진 것을 맞추지 않으면 계속 이곳저곳을 들리면서 확인해야만 한다.
혹시나 싶어서 2번 통로를 하니 그대로 녹색이었고 1번 통로는 다시 붉은색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밀고 보자."
아무래도 여러 번 왔다갔다하면서 시간을 버려야만 할 것 같았다.
3번 통로는 리빙 아머와 이단의 순교자가 중간 지점에 대기를 했다. 숫자가 각각 넷과 둘이었는데 검은 지옥촉수가 없어서 비교적 빨리 끝냈다.
문제가 있다면 석문을 지키는 것이 가고일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시퍼런 두 눈을 번뜩이며 숨결에서 어둠이 흘러나오는 유령마. 그 위에 중갑을 찬 기사는 한 자루의 검과 자신의 머리를 움켜쥐고 있었다.
LV80. 듀라한.
한 마리에 불과하지만 그 압박감은 보통이 아니었다.
"너무한 것 아냐?"
레벨 65짜리가 상대하기에는 레벨이 너무 높다.
문제는 아직 지하신전에 당도하지도 못했다는 점이었다.
"후우."
다르게 생각하자.
어쩌면 듀라한이 지하2층의 보스일 수 있다.
이 녀석만 넘으면 칠왕의 지하신전에 당도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화염구."
[쟤 강한데!]
"써."
[쟤 무서운데!]
어떤 스킬을 쓸 것인지 몰라 임프에게 공격을 명령했는데 놈은 망설이며 내 뒤에만 숨었다.
압도적인 레벨차로 인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가고일에게는 왜 공격을 했단 말인가.
"…보스가 맞겠지."
아니면 듀라한이 가지는 스킬 자체가 상대방에게 위압감을 주는 종류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