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0화 고인물은아쉽다.
모든 일이 순탄하다고 생각했지만, 마냥 그런 것은 아니었다. 지하1층으로 가는 문이 잠겨 부수려는 찰나였다.
[크워어어어어어!]
갑자기 뒤에서 괴성이 들렸다. 감옥 전체가 쩌렁쩌렁하게 울릴 정도였다.
[플레이어가 상태이상 공포에 빠집니다.]
"뭔데 이건."
그냥 울부짖음이 아니다.
오랜만에 겪게 된 상태이상 공포는 이 감옥에서는 치명적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어두운 시야가 횃불조차 컴컴하게 보일 정도였다.
[야! 술 마셨어? 머리 아파?]
"닥…쳐 봐."
그래도 지독한 스킬은 아닌지 금방 상태이상이 풀렸다. 아무래도 중간보스가 나타나는 것 같다.
쿠웅! 쿠웅!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리는 발걸음 소리.
요한을 바닥에 눕혀 두고 그 진원지를 향해 이동했다.
천장에 닿을 듯이 커다란 키. 복도 전체를 채우는 체격. 그것만으로도 버거운데 몸뚱이는 검붉은 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워어억.]
고문실이 있던 곳에서 걸어오는 것은 레벨 69의 블러드 골렘으로 2차 직업인 악마술사의 스킬로 소환이 가능한 소환수였다.
블러드 골렘의 몸뚱이가 벽에 쓸리며 살짝 드러난 틈으로 뒤에 있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날 죽였던 그 이단심문관이었다. 변한 점은 칠대악룡의 이단심문관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점이다.
"너. 그때 죽은 놈……!"
"정답."
이단심문관은 나를 알아챘다.
죽었으나 되살아나는 자.
언데드와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이 세계관에서는 단 하나뿐이다.
바로 나, 불사자.
"네놈이 설마…설마……."
"불사자다."
"드디어 찾았다. 이 소식을 알려야!"
"어떻게 알리게?"
지하1층으로 향하는 길목은 내가 틀어막았다.
이단심문관에게 더 대화를 걸고 싶었지만 블러드 골렘의 몸이 그 작은 틈을 다시 채웠다.
"저놈을 죽여라!"
[그워어어어!]
이단심문관은 빠른 판단을 내렸다. 악마술사가 아닌 것임에도 블러드 골렘을 일으킨 것은 특정 아이템을 가지고 있거나 단순한 이벤트 연출로 보면 될 것 같다.
카가가각!
블러드 골렘이 더 다가오기 전에 먼저 선공을 가했다.
역섬기검의 검기는 핏물로 된 몸뚱이에 박혔다. 핏방울이 떨어지며 거대한 몸뚱이에 파동이 퍼졌다.
나보다 레벨은 높지만 데미지는 충분히 잘 들어갔다.
길목에 몸이 꽉 차서 제대로 움직이기 힘든 블러드 골렘은 그냥 피로 가득 찬 샌드백일 뿐이었다.
[그워어어어어!]
블러드 골렘이 억지로 팔을 뻗었지만 그뿐이었다, 천장을 치고 바닥을 한 번 내리찍는 것만으로도 끝이었다.
공격속도가 현저히 느리다는 것도 파악했으니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본래 가지고 있던 스킬을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일반공격만 하고 있으니 중간보스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공격을 가하다가 움직이면 물러나고 또 다가가서 공격을 하는 공방전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으니까.
"왜 안 죽는 거냐!"
뒤에서 경악하는 이단심문관의 울부짖음은 가볍게 무시했다.
블러드 골렘은 체력이 떨어질 때마다 바닥에 피를 뿌려 댔다. 본래라면 악마술사의 스킬에 따라 저 핏물이 폭발을 일으키거나 중독을 걸고는 한다.
문제는 이단심문관이 그걸 못 한다는 거다.
덩치만 큰 핏덩어리.
블러드 골렘은 거기에서 지나지 않았다.
3분도 되지 않아 체력을 잃은 놈은 폭발과 함께 죽었다.
게임이라고는 하지만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기분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너, 너어……."
"아이언 메이든 재밌더라."
"놔라. 이놈!"
"안 놔."
이단심문관의 머리채를 붙잡고 고문실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활짝 열려진 아이언 메이든 안으로 집어넣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칠대악룡의 추종자. 어딨냐."
"못 말한다! 네놈으로 인해 우리는 구원받으리라!"
"잘 가고."
겁을 주면서 뭐라도 캐내려고 했지만 오히려 안에 들어가서는 목소리에 떨림조차 없어졌다.
뒤탈이 없게 아이언 메이든의 뚜껑을 닫았다.
비명소리와 함께 불쾌한 효과음이 났다.
[도전과제, 복수는 그대로를 달성하였습니다.]
죽었나 살았나는 도전과제가 뜬 것을 보니 굳이 확인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핏물이 틈새에서 흘러나와 그냥 물러나려다가 혹시 뭐라도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뚜껑을 열었다.
시체가 바닥에 쿵 하고 떨어지며 품속에서 피에 젖은 편지 하나가 떨어져 나왔다.
[주교 닉의 명령서.]
데스티아 여신교의 주교 닉이네. 아웃사이더 시티와 빈민의 포교에 대한 일을 계속 진행하게. 알퐁스 교주가 배후였다는 가짜 증거를 잭 시장과 만들어 그를 파면시킨다면 데스티아 여신교는 우리 칠대악룡의 추종자들의 손에 들어올 것이야.
내 예상을 뛰어넘는 아이템이 나왔다.
이것만 있다면 지금 상황을 모두 뒤집을 수 있었다.
미크엘이 모든 이들을 붙잡고 나를 이곳에 보낸 것도 딱 맞아 떨어진다.
어설프게 이단심문관만 죽인 것으로 만족했다가는 크게 후회할 뻔했다.
[야! 너 혼자 즐기냐!]
피투성이가 된 나를 보며 임프가 불만을 드러냈기에 인벤토리에 넣어둔 와인 한 병을 주고 끝냈다.
콰아앙!
굳게 닫힌 문은 본 브레이커로 박살 냈다. 종이장처럼 찢겨진 철문을 보며 묘한 희열이 느껴졌다.
"이 짐덩어리는 잊지 말아야지."
다시 요한을 업고 위로 올랐다.
지하1층에도 날 막는 적들이 있었지만 그래봐야 아웃사이더의 경비였다.
요한을 바닥에 놔두고 그대로 밀어 버렸다.
블러드 골렘을 죽이면서 쌓은 쉴드량은 이미 10줄을 초과해 맞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밀어 버리는 것이 가능했다. 흡사 미크엘이 홀로 시장의 저택으로 전진하던 모습과 같았다.
[너 뭐야! 강해! 강해!]
"알아서 발에 매달려. 날아갈 거니까."
감옥 바깥까지 그야말로 일사천리였다. 중간에 레벨도 올라서 득이면 득이지 실은 없었다.
"아…으음……."
하늘 높이 날아서일까.
어깨에 맨 요한이 꿈틀거렸다. 이대로 미크엘에게까지 가면 정신을 차리지 않을까 싶었다.
미크엘 쪽에 가자 상황은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아웃사이더 시티의 병력만이 아니라 다른 종교의 이들까지 나타난 것이다.
"이것 좀 힘들겠는데."
데스티아 여신교를 제외한 일곱 개의 종교에서 나온 신성기사들과 성직자들은 가볍게 볼 수 없다.
미크엘이면 몰라도 나는 요한까지 책임져야하기 때문이다.
"수호자! 지금 사태를 설명하시오!"
"방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째서 이런 소란을 일으켰소!"
"같은 신도들을 죽이다니!"
다른 종교의 이들이 화가 난 것은 그 부분이었다.
데스티아 여신교의 신전에서 일어난 학살은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이 보면 물어뜯기가 딱 좋다.
"내가 하지 않았다. 여신의 이름에 걸고 맹세하지."
미크엘은 자신의 심장에 손을 얹으며 결백을 증명했다. 은은한 후광이 비추어지니 그를 질타하던 이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
미크엘은 거짓말을 말하지 않았다.
데스티아 여신교에서 칠대악룡에 연루가 된 이들을 죽인 것은 나였으니까.
[카칵! 네가 했다고 말하자!]
"눈치 좀 챙기고."
잠깐 하늘에서 사태를 관망해야만 할 것 같다.
스토리가 진행 중이니 저걸 다 쳐다보고 끼어들어도 늦지 않을 테니까.
"그렇다면 누가 죽였단 말이지? 당신에게 쓰러진 우리 도시의 병사들은 뭐란 말인가!"
잭도 아까 전과 달리 기세가 등등했다. 아무리 봐도 다른 종교에서 온 지원이 든든한 것처럼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데스티아 여신교보다는 적다지만 칠대악룡의 추종자들이 하나씩 보였다.
미크엘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보고 싶었지만, 그는 귀신 같이 위를 쳐다봤다.
"내려와라."
"…쳇."
호명을 당했으니 별 수 없나.
요한과 함께 바닥에 내려왔다.
"빈민의 구제자와 그 호위다!"
"저자가 수호자였다고!"
"데스티아 여신교가 빈민촌을 어지럽히다니!"
"네놈들이 사교도인가!"
주변의 NPC들은 요한과 함께 있자 나를 알아보고 성토를 하기 시작했다.
그 소음들에 살짝 눈살이 찌푸려졌다.
"수호자. 당신이 악에 물들었는지는 내 미처 몰랐소."
잠자코 있던 닉이 기다렸다는 듯이 물어뜯었다.
수호자와 주교. 둘을 비교하면 응당 수호자에게 무게가 실려야하지만, 칠대악룡의 추종자들이 주교 쪽에 물타기를 하자 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시장님! 큰일입니다!"
"또 무슨 일이야!"
"빈민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정문이 점령당했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피투성이가 되어 뛰어든 병사의 말에 잭은 화들짝 놀랐다.
"구원자를 지켜라!"
"빈민을 지켜라!"
저 멀리서 불길이 치솟고 수많은 이들의 음성이 겹쳐 들렸다.
[창공의 독수리를 사용합니다.]
"흥미롭네."
스킬을 써서 확인하니 아웃사이더 시티의 병력이 미크엘에게 묶여서 방어가 불가능했던 것 같다.
그 사이를 빈민들이 비집었으니 이건 순식간에 전쟁터가 되었다.
"경험치 잘 오르겠네."
양쪽이 엉켜서 싸우면 일단 나는 이득이다.
미크엘이 범위스킬을 써 주고 내가 마무리만 착실히 하면 또 레벨업을 기대할 수 있다. 그걸 생각하니 온몸이 근질근질 거렸다.
감옥에서 얻은 편지를 잠깐 숨겨 둬야만 할 것 같다.
갑자기 교통정리가 되어서 전쟁이 안 일어나면 손해 보는 느낌이 들 테니까.
"…제가 저들을 진정시키겠습니다."
"……."
하필이면 이때 요한이 정신을 차렸다. 상체를 일으키려는 그의 어깨를 황급히 붙잡았다.
부축 따위는 아니다.
이 녀석 때문에 갑자기 이 갈등이 해소가 되는 것이 싫을 뿐이다.
"그냥 쉬지."
"아닙니다. 제 운명을 따라야만 합니다."
말귀도 못 알아듣고 요한이 내 손을 뿌리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렇게 멀쩡한 것을 보면 괜히 체력을 회복시킨 것 같다. 딱 죽기 일보직전까지 내버려뒀으면 전쟁이 터지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을 것인데.
"잭 시장님. 빈민들을 진정시키겠습니다. 제발 그들을 죽이지 말아 주십시오."
"네놈이 사교도인데 어찌 믿으라는 것이냐!"
"여신께 맹세코 저는 그분에게 부끄러운 짓을 한 적이 없습니다."
요한의 몸에서는 미크엘처럼 후광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일반 사제가 저런 신성력을?"
"맙소사. 보통 신앙심이 아니구나."
그러자 신성기사들과 성직자들이 웅성거렸다. 저 후광이 미치는 의미가 꽤나 큰 것 같다.
"네놈이 돌변해서 저 빈민들의 대장 노릇을 할 것인지 어찌 아는가! 병력을 나눠서 저 불한당들의 난동을 막으라!"
잭은 상황이 변하자 다급하게 명을 내렸다.
쿠웅!
"불허한다. 아무도 움직일 수 없다."
물론 미크엘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그거 검으로 땅을 내려찍자 도시가 흔들릴 정도로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잭 시장. 저 요한이라는 자가 그렇게 불민한 이는 아니오."
"맞소. 우리를 죽이지 않고 그냥 보냈으니."
"오히려 난 치료해 줬소."
빈민구제로 인해 부딪혔던 성직자들도 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믿어 주십시오. 여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합니다."
요한은 그 말을 하고 바로 등을 돌렸다.
시점은 시네마틱 모드로 바뀌었다.
* * *
피투성이가 된 요한은 힘겹게 발걸음을 이어 갔다. 한 무리의 병사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호위보다는 만에 하나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아웃사이더 시티의 정문은 빈민들이 점거하였다. 억눌려왔던 빈민들은 욕설과 폭력을 배설했고 그곳은 전쟁터였다.
"빈민의 구원자시여!"
"오오! 살아계셨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빈민들의 난동도 요한이 지근거리에 알아보자 거짓말처럼 멈추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눈물을 흘렸고 누군가는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다.
"모두 분노를 거두십시오.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대들의 터전으로 돌아가 기다리십시오. 여신께서는 당신들의 운명을 지키기를 원합니다."
요한은 인자한 미소를 보였고 그의 후광은 미약하지만 여신의 형상을 띄기 시작했다.
빈민들은 귀신에 홀린 것처럼 아웃사이더 시티 바깥으로 물러났다.
"…말도 안 돼."
"이게 신의 기적인가."
그를 뒤따라 온 병사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때까지 아웃사이더 시티에서 본 누구보다도 지금의 요한이 성스러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