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6화 고인물은성장한다.
다음에도 시기의 스탯을 돌리기 위해 칠죄종의 추적자를 잡는 반복작업을 했다.
그 뒤에 다시 시기의 거울을 쓸 때는 깜짝 놀랐다.
"또 수호자의 날개라고?"
한 번이 아니고 무려 세 번째다. 이쯤이면 확실한 것은 하나다.
미크엘에게서 얻어 낼 스킬이 이것뿐이라는 거다.
이번에는 어설프게 처음부터 날아서 피하지 않았다.
촤아아악!
공중에서 떨어져 내려오는 긴 일격을 한 번 뛴 후에 날갯짓을 해서 유유히 피했다.
"역시 불사자인가."
땅에 발을 디뎌 똑같이 한 번 더 피하자 미크엘은 자세를 낮추었다.
"시험에 응하라!"
"…응했지. 불수능이더라."
호통을 치는 그를 보며 쓴웃음을 머금었다.
저 새로운 대화를 듣기 위해 몇 번을 죽었는지 감히 셀 수 없었다.
2분 10초.
난 이제야 겨우 그걸 깨 나가고 있었다.
문제는 확정죽음 패턴의 쿨타임이 돌아오고 있다는 거다. 다소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한 번의 공격이 더 필요하다.
나 또한 천장에 등이 닿을 듯이 높게 난 뒤에 두 발로 그걸 밟았다.
촤아악!
"얕았다."
다리힘에 더한 힘찬 날갯짓. 그건 내가 펼칠 수 있는 가장 빠른 공격이었지만, 미크엘은 옆으로 피했다.
놈이 검을 들어 올린 것을 보자 쓴웃음이 머금어졌다.
이대로면 다시 죽는다.
공중에서 움직임에 한계가 보이지만, 모든 것을 포기할 이유는 없다.
미크엘이 다시 내게로 오기 전에 지면강타를 썼다.
콰아아앙!
스킬효과로 땅에 꺼진 내 몸뚱이 위로 미크엘의 검이 지나갔다.
만약 어설프게 날갯짓을 했다면 무조건 죽었다.
푸욱! 촤아악!
"큭! 역시 불사자인가!"
"2분 깨졌다. 씹새끼야."
미크엘의 등을 찌르고 베며 물러났다. 처음으로 평타캔슬을 성공시켰지만, 더 몰아붙일 생각은 없었다.
일반몬스터도 아니고 이런 보스를 상대로 필요한 것은 인내심이다.
드디어 들어선 1분 50초대. 자꾸만 저 시간에 눈길이 가는 것을 억눌렀다.
미크엘은 더 빠르고 강해질 것이다. 한눈을 팔면 죽는다.
[스킬, 수호자의 날개를 배우셨습니다.]
"떴다!"
문제는 다른 것이 내 눈길을 사로잡은 거다.
나도 모르게 환호했고 미크엘의 검이 나를 갈라 버렸다.
[YOU DIED.]
"이건 죽어도 좋네."
나도 모르게 헤실헤실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지금은 어깨와 등을 어루만질 때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날아야하겠다고 생각하자 수호자의 날개가 돋아났다.
미크엘처럼 상황에 따라 수납이 가능한 셈이다.
왜 미크엘에게 시기의 거울을 쓰면 수호자의 날개만 오는 것인 줄 알겠다.
어쩌면 필드보스인 절망하는 산맥의 고대정령에게서도 스킬을 뺏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자 특이한 스킬을 가진 보스몬스터들이 자꾸만 생각이 났다.
내가 얻을 스킬들이 무궁무진하다.
다만, 지금까지 경험을 토대로 하자면 몇십 번은 동일한 전투를 수행해도 힘들 것이라는 점이다.
다시 경비병을 잡으면서 시기의 스택을 채울 생각을 하며 미크엘에게 갔다.
"몇 번째인가. 불사자."
"……."
미크엘의 대화 패턴이 바뀌었다. 그는 조금은 흥미롭다는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어떤 NPC들도 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처음부터 전력을 보이겠다."
"…씨발."
미크엘이 곧바로 수호자의 날개를 꺼냈다. 검에 생긴 오러도 길게 뻗어졌다.
2분 대에야 보일 패턴이 처음부터 나타난 것이다.
"득보다 실이 많네."
어쩔 수 없이 나도 수호자의 날개를 폈다.
드러난 날개를 본 미크엘이 살짝 눈을 찌푸렸다.
촤아아악!
휘둘러지는 검은 백스탭을 쓰며 피했다. 천만다행이라면 수호자의 날개를 써도 처음부터 비행을 하지는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해야만 한다.
나도 백스탭과 구르기를 쓰면서도 종종 공중으로 올라 피했다. 움직임에 선택지가 하나가 늘어난 것만으로도 게임이 확 바뀐 것 같다.
십자검기 패턴은 더욱 쉬웠다.
공중에 뜨면 알아서 피해지기에 그게 끝나는 타이밍에 머리를 찌르며 도망갔다.
"이게 게임이지."
만약 상대가 NPC가 아니라 유저였다면 내 부모님의 안부를 물어봤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영리한 플레이로 게임을 이끌어 가고 있었다.
내가 특히 안심을 한 것은 2차 십자검기에 경비병이 난입한 패턴이다.
전과 달리 자유롭게 위에서 상황을 보다 칠대악룡의 추종자를 골라 죽였다.
시기 스택을 최대로 채우지 못했지만, 경비병을 최대로 살려 둔 상태로 한 번씩 미크엘의 머리를 두들겼다.
"꺼져라."
미크엘은 아직 남아 있는 경비병들을 상대로 검을 휘둘렀다. 큰 동작이지만 깊게 남은 궤적이 경비병들은 아무것도 못하고 죽어 나갔다.
만렙유저가 혼자서 저렙존에서 사냥을 해 대는 꼴이다.
"위치에 따라 사람이 달라지기는 하네."
그냥 마주하는 것과 달리 조금 더 높은 위치에 보니 미크엘의 동작이 더 자세하게 보인다.
미크엘은 경비병을 다 해치운 뒤에 날개를 활짝 펼치며 날아왔다.
그때는 바닥에 내려와 공격에 대비했다.
촤아아아악!
떨어져 내리며 길게 그어오는 일검. 그걸 피하고 재차 두 번째 검을 피했다.
다시 들어선 1분 50초 대에서 과연 미크엘은 어떤 움직임을 보일까.
"그걸로는 무리다. 불사자."
미크엘이 검을 높게 들었다. 검이 충만한 신성력이 천장에 닿았다.
신성력이 벼락처럼 내리치는 패턴이다. 이미 알고 있지만 문제는 그와 함께 나를 향해 검을 휘두르며 오는 미크엘이었다.
"미치겠네!"
머리 위에 떨어지는 벼락을 피하기 위해서는 계속 아래를 봐야만 했다. 그러면서 미크엘의 검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숨이 턱하고 막혀왔다.
미크엘이 공격모션을 취하는 것을 보자 곧바로 땅을 박찰 준비를 할 때.
콰지지직!
"컥!"
살짝 뒤로 젖혀진 상체에 정확하게 벼락 하나가 꽂혔다.
수호자의 날개가 주는 방어력 상승효과로 기적적으로 죽지는 않았지만, 그건 시기를 아주 조금 늦출 뿐이었다.
[플레이어가 상태이상 감전에 걸렸습니다.]
"제길."
범위공격치고 어째 피해량이 낮다 싶었는데 상태이상을 주는 것일 줄은 몰랐다. 캐릭터의 조작이 불가능해진 것만이 아니라 자기 마음대로 팔다리가 움찔거렸다.
그런데도 내 두 눈은 다가오는 죽음을 보고야 말았다.
촤하악!
[YOU DIED.]
총알처럼 쏘아진 미크엘이 다시 내 몸을 일도양단해 버렸으니까.
그래도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
내 가장 큰 단점은 바로 방어력이다. 그걸 포기한 만큼 공격력을 얻었지만 아무리 각오를 했더라도 눈먼 화살에 맞기만 하더라도 그대로 죽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걸 피했다.
수호자의 날개가 내 빈약하기 짝이 없는 방어력을 채워 준 것이다.
방금 전의 벼락 패턴 정도만이 아니라 경비병들의 눈먼 공격에 맞아도 죽지 않는다.
힐도 이제 쓸 이유가 생겨 버렸다.
미크엘이 보인 1분 50초까지의 공격패턴은 모조리 외운 상태라 다시 거기까지 나아갔다.
콰앙! 콰앙!
또다시 천장에서 벼락이 떨어졌다. 그 너머에서 나를 승냥이처럼 노려보는 미크엘은 섬뜩할 정도다.
발밑의 붉은 점은 확인하고 움직일 때다.
촤아아악!
미크엘은 천장을 박차고 떨어져 내렸다. 높게 뛴 후에 비행을 해 그걸 피했다.
한 번 공격을 하고 시간이 있으니 벼락을 피하며 다시 바닥으로 내려왔다.
수호자의 날개를 편 상태라고 하더라도 미크엘의 공격은 열에 한 번을 제외하면 피할 자신이 있다.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서로 중첩되어서 떨어지는 벼락이었다.
"…벼락 패턴이 랜덤이 아니라 문제네."
만약 십자검기처럼 고정패턴이었다면 이처럼 곤궁에 빠지지는 않았으리라.
눈으로 바닥을 훑고 붉은 점을 밟고 벗어난다.
한 번 타이밍이 벗어날 때마다 미크엘이 공격해 왔다.
콰지지직!
[플레이어가 상태이상 감전에 걸렸습니다.]
다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날개 끝에 벼락이 떨어졌다. 하늘에 떴던 두 다리가 바닥에 떨어졌고 감전으로 통제를 잃은 몸은 그대로 뒤로 나자빠졌다.
촤아아아악!
"…운이 좋은데."
미크엘의 검은 내 머리 위를 훑고 지나갔다. 그가 발밑의 나에게 검을 찍으려고 할 때, 감전이 끝나 몸의 자유를 찾았다.
카각!
날개를 활짝 피며 일어났다.
미크엘의 검은 다리사이를 찍었고 난 발로 녀석의 얼굴을 걷어찼다.
데미지는 줬으니 확정죽음 패턴은 초기화.
1분 30초에 들어선 미크엘이 어떤 패턴을 보일 것이냐가 문제다.
쿠구구구구!
"…어라."
미크엘이 검을 움켜쥐고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가슴팍에 생긴 빛의 구슬이 점점 커져 놈의 몸을 삼킨다.
저건 슬링으로 데미지를 줬을 때 생기는 패턴이었다.
"지금이라면!"
날개도 갖춰진 지금이라면 또 모른다. 곧바로 등을 돌리고 천장의 끝에 섰다.
콰과과과광!
빛의 구가 깨지며 빛이 확산되었다. 기꺼이 죽음을 맞이하려고 했으나 폭발은 나에게 미처 닿지 못하고 사라졌다.
"후우."
날개가 있으니 이 패턴을 이렇게 피할 수 있구나. 정말로 클리어 각이 보이니 나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 내렸다.
미크엘이 다시 날아올라 날갯짓을 했다. 불어오는 바람이 날 압박하기 전에 옆으로 이동했다. 그걸로 이동속도에 대한 너프를 피했다.
"언제까지 도망을 칠 것이냐."
미크엘이 날개짓을 크게 했다. 이전과 달리 지금은 허리를 숙일 정도의 동작이었다.
파바바바밧!
"……!"
미크엘의 날개에서 깃털이 화살처럼 쏘아졌다. 저 하나하나가 내게 치명적일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가 날아오며 휘두르던 검보다 느렸기에 피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세 차례의 깃털공격을 피하자 미크엘은 등에 감긴 무언가를 뜯어냈다.
바로 쇠사슬이었다.
미크엘이 채찍처럼 그걸 휘두르자 날개를 접어 밑으로 피했다.
촤르르륵!
"…뭐야!"
문제는 그 뒤였다.
쇠사실이 뚝 떨어지더니 내 상체를 옭아맨 것이다.
치지지직!
"제기랄!"
내 근력이 보통은 아니지만 상대는 수호자다. 압도적인 근력 차이에 질질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YOU DIED.]
그 뒤에는 너무나 당연히 검에 찔려 죽었다.
쇠사슬이나 채찍의 경우 상대에게 데미지를 주는 것이 아니라 묶는 것이 목적인 경우가 있다.
나도 그건 알고 있었다.
문제는 피했는데도 붙잡힌 거다.
"타겟확정? 아니야. 엘리멘탈 소울2에 그런 기능은 없어."
처음에 원거리 직업군들이 다들 불만이 있던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멀리서 마법을 사용해도 범위가 작은 스킬의 경우 상대가 움직이면 그대로 헛방이었다. 괜히 범위가 높은 스킬이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었다.
"유도 정도일거야. 아마."
내가 죽은 장면을 되돌려 봤다.
쇠사슬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처럼 나를 쫓아왔으니 유도형 스킬 혹은 아이템이라고 보는 것이 맞았다.
"이건 나도 원거리로 가자."
어차피 그 빛의 구 패턴은 날개만 있다면 피할 수 있는 것으로 확정되었다. 그걸 상기하며 다시 미크엘과 싸움을 시작했다.
촤르르륵!
문제의 패턴에서 다시 쇠사슬이 나를 향해 날아온다.
이번에는 끝까지 보면서 피했다. 쇠사슬은 약 3m 범위까지 날 쫓아오는 것이 확인되었다.
타앙!
그 뒤에 슬링으로 반격했지만, 역시나 미크엘은 그걸 튕겨 냈다.
전처럼 화약탄을 써서 미약하지만 데미지를 입혔다.
쿠구구구구!
미크엘은 다시 빛의 구의 패턴을 사용했다. 이번에도 맵의 끝까지 이동을 해 공격을 피했다.
꽈아아악!
드디어 1분의 벽이 뚫리자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남은 50초만 견디자. 그때는 분노의 전투로 10초를 버텨 낼 수 있다.
미크엘은 다시 깃털을 날리며 내 움직임을 강제했다. 그 방향으로 뒤이어 날아오는 쇠사슬은 피하는 것만으로도 스태미나를 듬뿍 써야만 할 정도다. 그 덕분에 비행에 점점 눈을 뜨는 것 같다. 어지럽지만 공중에서 방향을 자유롭게 틀기 시작했다.
남은 시간은 30초.
내게 다가온 성공을 보며 가슴의 두근거림을 느낄 때.
"운명의 저울을 너는 피할 수 없으리라."
미크엘은 어쩌면 마지막이 될 패턴에 돌입했다. 그의 등에서 운명의 여신이 저울을 들어 올렸고, 맵 전체가 그 범위 안에 들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