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4화 고인물은기겁한다.
화아아악!
경직 상태에 걸렸던 미크엘의 몸이 빛을 발했다.
[플레이어가 상태이상 경직에 걸렸습니다.]
"후우."
뒤로 물러나 거리를 벌리던 내 눈앞에 알림 메시지가 떠올랐다.
경직은 심각할 정도로 오래 걸리지 않아 금방 풀렸다.
만약 본 브레이커를 넣었다가는 기절 상태에 빠지게 되고 다음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죽게 된다.
그래서 아예 공격을 피하기만 했었지만, 미크엘은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을 경우에는 여신의 시험을 감히 거부하는 것이냐 라는 말과 함께 손짓을 하는데 이건 피하지도 못하는 확정죽음을 줬다.
체감상으로는 최대 50초 이내로 한 번은 피해를 줘야만 확정죽음을 피하는 거다.
이쯤이면 개발자들이 악랄하다 못해 미친놈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 어떻게 할까."
그래도 이 구간까지 오면 남은시간 4분이라는 마의 글자가 깨지려고 한다.
"죄를 받으라."
미크엘이 검을 역수로 쥐어 바닥에 찍었다.
콰드드득!
그를 중심으로 십자 형태로 검기가 퍼졌다. 바닥을 부수고 올라오는 검기는 조금씩 각도를 비틀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건 맨끝으로 물러나 있으면 달릴 필요가 없이 잰걸음으로 이동하며 피할 수 있다.
콰드드드득!
"겸허히 받들라."
십자검기가 한 바퀴를 돌면 역으로 한 바퀴를 돈다. 그 후에 검기를 수거한 미크엘이 그걸 자신의 검에 모아 힘껏 휘둘렀다.
콰가가가가각!
문제는 심자검기가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회전하며 온다는 거다.
이때는 그간 아껴 둔 시공간이동자의 블링크를 사용해 피했다.
미크엘도 피할 수 없는 법칙은 큰 스킬을 쓴 후에 빈틈을 보인다는 것이다.
카가가가각!
역섬기검으로 멀리서 검기를 써서 데미지를 입혀서 확정죽음이 시간을 다시 초기화시켰다.
남은 시간은 3분50초.
"이게 무슨 소란인가!"
"수호자가 있는 방향이다!"
신전 곳곳에 대기하고 있던 경비병들은 그 소란에 놀라 다가왔다.
"수련 중이다. 다가오지 말아라."
미크엘은 목소리를 높였다. 신성력을 담아 쩌렁쩌렁거리는 목소리게 경비들은 더 다가오지 못하고 물러났다. 그 덕분에 내가 있음은 알려지지 않는다.
딱 여기까지가 1페이즈였다.
3분 40초.
약 10초를 제거해 준 경비병이 고마울 뿐이다.
이 소소한 이벤트가 좀 자주 등장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불사자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할 수 있다. 그런데 어째서 보이지 않는가."
이때부터는 미크엘도 말이 많아졌다.
개발진도 중간에 쉬어가라고 만들었는지 강력한 검기를 쏘면 알아차리고 피할 수 있는 정도였다.
"온다."
다시 미크엘이 눈을 찌푸렸다.
백스탭으로 간신히 피하고 연달아 구르기를 써야만 피하는 두 번의 베기 패턴.
그 뒤에 체력을 1로 고정적으로 만들어 버리는 찌르기 스킬까지.
앞선 1페이즈의 반복이지만 차이점은 힐을 쓸 시간을 주지 않는다는 거다.
"죽지 않는 자가 지칠 리가."
미크엘이 검을 번쩍 들어올렸다. 신성력을 품은 검이 천장에 뿜어지고 벽화에 생동감을 주었다.
운명의 여신 데스티아. 그녀를 추종하는 천사.
그 부분마다 신성력을 머금고는 벼락처럼 내리치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콰아아앙!
피하고 피한다.
명단이 적힌 바닥에 붉은 원이 생기고 확장이 되는 순간이면 늦는다.
원이 아닌 점을 봐야만 한다.
하나씩 떨어지던 신성력은 비처럼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때는 점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점을 밟고 나아간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후우."
그걸 다 피하면 그 괴물 같은 미크엘도 작게 한숨을 쉬게 된다.
스태미나가 아슬아슬하지만 술래잡기라도 하는 것처럼 검으로 그를 콕 찌르고 물러났다.
내가 불사자라 공격력이 높은 것인지 미크엘의 체력이 조금씩이지만 닳는 점은 놀랍다.
그 외의 특이점이라면 저 엄청난 스팩에도 불구하고 따로 체력이 회복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이게 유저를 위한 조금의 밸런스 조정일지도 모른다.
남은 시간은 3분20초.
오랜만에 다시 여기까지 진행이 되었다.
"안에서 벼락이 쳤다!"
"미크엘이여! 이번에는 잠자코 있을 수 없다!"
경비병은 다시 들이 닥쳤다. 개중에 하나에게서 불사자의 눈이 발동했다.
칠대악룡의 추종자가 나타난 것이다.
"부정한 사교도가 감히 내 앞에 나타나다니!"
미크엘도 그걸 보자마자 손을 썼다. 그의 검이 칠대악룡의 추종자를 베어 버린 것이다.
문제는 추종자는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멀쩡한 경비병일 뿐이라는 거다.
"수호자가 동료를 죽였다!"
"신전을 제압하라!"
"드디어 이놈들이 선을 넘었구나!"
주변의 경비병들이 입에 거품을 무는 것도 당연하다. 여기서부터 아주 지랄 맞은 패턴이 나온다.
미크엘, 경비병, 나.
이 삼파전이 벌어지는 거다.
"죽기 싫으면 물러나라!"
미크엘은 호통과 함께 다시 검을 바닥에 꽂았다. 십자검기 패턴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전이라면 어렵지 않게 이걸 피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개미떼처럼 전장에 합류하는 경비병들이 앞을 가리기 때문이다. 이들이 미크엘에게만 달려가면 좋겠지만, 절대 그렇게 될 수 없다.
3분의 2가 미크엘에게 간다면 나머지 3분의 1이 나에게 온다.
콰드드드득!
십자로 퍼지는 검기가 한 번 경비병들을 긁은 후, 검기가 시계방향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먼저 힘껏 검을 휘둘러 좌측의 경비병을 쳐내고 나아갔다.
뒤에서 거리를 좁혀 오는 검기를 생각하면 한 발자국도 멈추지 않고 적들을 밀어내야만 한다.
이럴 때는 성기사의 용맹한 돌격이나 블레이드 유저의 돌격일섬과 같은 스킬이 절로 생각나 부러울 따름이다. 그런 스킬이 없다고 마냥 아쉬워할 필요는 없었다.
이가 없다면 잇몸만이라도 써야한다.
미크엘의 검기에 맞은 경비병들은 죽기 직전이니 한 걸음에 한 번 검을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일보일살이 가능했다.
죽이고 걷고, 걷고 죽인다.
"죽어라!"
"못 간다!"
피투성이가 되었음에도 경비병들은 내 앞을 막았지만 검에 스치기만 해도 그들은 무너졌다.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돈 검기가 다시 역시계방향으로 회전했다. 그걸 확인하고 등을 돌리자 코앞에 검이 들어왔다.
터엉!
"깜작이야."
미크엘에게 하도 시달려서인지 나도 모르게 튕겨내기를 성공했다. 기꺼이 죽음을 감수했던 나이기에 심장이 벌렁벌렁 거렸다.
"여신의 시험을 방해하지 말라."
칠대악룡의 추종자만이 아니라 경비병까지 모두 해치운 미크엘의 표독스런 두 눈이 다시 내게 닿았다.
남은 시간은 2분30초.
난 무려 절반이나 버틴 것이다.
처음으로 여기까지 왔다. 무척이나 기쁘지만 무턱대고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었다.
미크엘을 다시 죽여서 확정죽음의 패턴의 시간을 초기화시켜야만 한다.
그래서 죽음을 각오하고 미크엘에게 달려갔다.
잠깐 숨을 고르는 녀석이 다가가는 순간 검을 휘두를 것 같기에 조마조마할 뿐이었다.
"아니지.
내가 굳이 검을 써야만 할까? 어차피 데미지만 줄 수 있다면 그럴 필요는 없다.
주무기인 검이 아니라 보조무기인 슬링으로 바꿨다.
쇠구슬을 먹어 힘껏 던진 순간.
터엉!
미크엘은 그걸 튕겨냈다. 쇠구슬은 던진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날 스쳐 지나갔다.
잘못하면 쇠구슬에 맞아 죽을 뻔한 것이다.
"미련한 짓."
미크엘은 그런 나를 비웃었지만, 두 번째 공격에는 데미지를 입었다.
화약탄을 녀석이 검이 뻗지 못할 거리에 던진 것이다.
콰앙!
"큭."
아슬아슬하게 사정거리에 걸린 미크엘이 눈살을 찌푸렸다. 도트로 표현하자면 거의 1도트 정도로 미세하지만 중요한 것은 확정죽음 패턴을 초기화 시켰다는 점이다.
우우우우웅!
"더러운 짓을 하는구나. 아무것도 증명하려고 하지 않다니."
미크엘은 아예 두 눈을 감았다. 그의 심장에서 툭 튀어나와 생성된 빛의 구슬이 점점 커져 몸을 삼켰다.
뒤이어 깨끗한 원형을 이룬 외형에 금이 가더니 깨지며 가득 차있던 빛이 사방으로 퍼졌다.
그 빛의 파동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인지한 순간에 스킬을 쓰는 것이 고작이다.
[등가교환의 방패를 사용합니다.]
내가 가진 유일한 방어스킬이다. 이거면 어떻게든 죽음은 피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콰아아아앙!
빛을 맞은 내 몸뚱이는 폭탄에 맞은 것처럼 뒤로 나가 떨어졌다.
[YOU DIED.]
"뭐야."
이렇게 죽는 경우가 있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어안이 벙벙해 다시 시작한 전투에서도 처음의 공격패턴을 피한 다음에 화약탄을 사용해 피해를 입혔다.
우우우우웅!
"더러운 짓을 하는구나. 아무것도 증명하려고 하지 않다니."
경악스럽게도 미크엘은 방금 전의 그 빛의 구슬을 몸에서 생성하기 시작했다.
소모품을 써서 데미지를 입히면 돌아오는 패턴이었던 것이다.
[YOU DIED.]
"별 수 없지."
기꺼이 죽음을 받아드릴 수밖에 없다.
죽자마자 불사자의 영혼함에서 부활해 다시 미크엘에게 갔다. 첫 공격에 타이밍을 못 잡아 또 허무하게 죽어 버렸다.
다음 차례에서는 다행히 그 마의 구간을 넘기는 것에 성공했다.
4분. 3분. 줄어드는 시간 때마다 패턴은 반복되었다.
미크엘과 경비병. 나의 삼파전도 무사히 넘겼다. 그 십자검기 패턴은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아예 외곽이 아니라 조금 더 깊숙이 돌아가 경비병을 죽이고 움직여 나갔다.
[레벨이 1 상승합니다.]
[전 능력치가 1 상승합니다.]
그 대가로 레벨이 올라간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지금 상황을 보면 0.1초라도 더 빠른 반응이 필요했기에 민첩에 능력치를 투자했다.
십자검기 패턴 이후에 잠깐 움직임을 멈춘 녀석에게 다가가 검을 휘둘렀다.
촤악! 촤악!
"…그렇군. 이 정도인가."
건맨의 소울 효과가 터지며 일반베기가 두 번이나 들어갔다.
미크엘의 체력은 눈곱만큼 깎였다.
하지만 그뿐이다. 나를 보는 녀석은 실망스럽다는 기색을 굳이 감추지 않고 있었다.
내게 남은 시간은 2분20초다.
"힘뿐이라면 시험을 통과할 수 없다."
미크엘의 검이 더 큰 오러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눈대중으로 보아 사정거리가 무려 30cm는 길어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터였다.
"더 피하기 힘드네."
진짜 더럽다는 말밖에 먼저 나오지 않았다.
검의 오러만이 변화의 끝이 아니었다.
미크엘의 등에는 마치 천사처럼 날개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다른 점이라면 조류의 것처럼 깃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빛으로 인해 형태만 날개와 같았기 때문이다.
그걸 보면서 허울뿐이라고 생각했지만 미크엘의 빛의 날개가 펄럭이기 시작했다.
그의 두 발이 조금씩 지면에서 떨어졌다. 조금씩 공중에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실화냐."
난 이로서 공중에서 날아다니는 수호자 미크엘을 상대해야만 한다. 심지어 그가 변하는 동안에 2분20초의 시간은 단 1초도 줄어들지 않았다.
[너의 모든 것을 보여라. 나는 그리 말했다.]
미크엘은 완전한 전력을 보이기로 한 모양이다. 입을 다문 그의 음성은 고막이 아니라 머리에서 울렸다.
의념까지 보낼 정도면 남은 2분20초가 내 제삿날은 확실하다.
지금부터는 어떤 패턴을 보일까 두려울 정도였다.
후우웅.
미크엘에 공중에 뜬 상태로 상체를 비틀었다. 빛의 날개가 상반신을 가린 상태로 그는 나에게 날아왔다.
촤아아아악!
공격속도는 두 말할 것도 없이 최상이다. 다만, 그 전의 모션이 커서 백스텝이 아니라 구르기로 안전하게 피할 수 있었다.
"아니. 위험했나."
그게 내 착각이었음은 몸을 일으키면서 알았다.
미크엘이 휘두른 검은 내 발앞에 길고 깊은 흔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내게 다행인 점은 미크엘이 그 일격 이후에 곧바로 공격을 잇지 않았다는 거다.
다시 공중에 날아오른 그는 똑같은 모션으로 공격해 왔다.
촤아아아악!
이번에는 아까전보다도 더 멀리 구르기를 쓰며 피했다. 아무리 빨라도 사전에 알 수 있다면 어처구니없게 죽지는 않는다.
문제는 저렇게 공중에 뜬 놈이 확정죽음 패턴을 내리기 전에 공격을 한 번 성공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후웅! 후웅!
이때까지 높게 뜨기만 했던 미크엘이 본격적으로 비행을 하기 시작했다. 날개가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강한 바람이 내게 불어왔다.
내 이동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진 것이다. 데미지는 없지만 이건 큰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