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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은 옷을 입지 않아-142화 (142/201)

제142화 고인물은빠르게.

[카칵! 재들도 배고픈가!]

저택에 침입할 때는 가만히 대기하고 있던 임프도 어느새 뒤에 따라붙었다.

"그런가보다."

[재들이 사탕 준다고 따라가지는 마!]

"안 간다."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임프를 무시하고 창공의 독수리를 사용했다. 확실히 퀘스트 이전보다 돌아다니는 경비병의 수가 많고 동선도 서로 겹쳐져 있었다.

미니맵만을 보면서 관찰한 결과 단독행동은 위험하다고 확신했다.

잠깐 기다렸다가 앞을 지나가는 NPC 무리에 합류했다.

뒤꽁무니에 붙자 경비병들이 하나씩 잡아 검문을 했다.

난 그때마다 피할 수 있었고 동행한 무리가 셋도 남지 않자 다른 무리에 시공간이동자의 블링크로 붙었다.

데스티아 여신교의 방향을 가지 않고 광장을 빙빙 돌아도 인내심을 가지고 검문만큼은 피했다.

[똥 마려워? 왜 계속 같은 곳만 다녀?]

"기다려."

나라고 이러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림자 걷기라도 쓰고 싶지만, 경비병들이 너무 많아서 그럴 수 없었다.

쿨타임이 다 돈 시공간이동자의 블링크로 다른 무리에 합류했다.

합류한 무리가 정답이었는지 서쪽으로 잘 이동하고 있었다.

"거기. 일로와."

"너희는 여기다."

골목 사이에서 경비병들이 튀어나와 한 명씩 검문을 했다. 하나씩 흩어질 때마다 미니맵을 보며 다른 무리에 붙기는 두 차례 더 하자 데스티아 여신교의 신전이 보였다.

문제는 그곳에 위치한 경비병들이었다.

아웃사이더 시티에서 데스티아 여신교가 보유한 사유지 전체를 틀어막아 버린 것이다.

이러면 어디에 침입해서 미크엘을 만날 것인지가 막막하다.

[미크엘을 찾아라.]

위의 목표를 보면 신전의 어디에 미크엘이 있는지를 알 수 없다.

신전일까. 아니면 창고? 경전을 모아둔 도서관? 신자들이나 사용인이 머무는 숙소? 아니면 성기사들이 수련하는 훈련소?

미니맵을 보며 수없이 찍힌 많은 점을 보며 골치가 아파왔다.

어쨌든 자세히 지켜보면 틈이 나올 것이다.

NPC들 무리에서 튀어나와 신전에 비교적 가까운 골목으로 몸을 숨겼다.

담을 타고 넘어 신전에 비교적 가까운 저택의 지붕으로 올라갔다,

신전과의 거리는 시공간이동자의 블링크를 쓴다면 딱 닿을 정도였다.

불사자의 영혼함을 심고 창공의 독수리로 시야를 더 확인했다.

"내 시야에 보이는 것들이 안 찍히네."

창공의 독수리의 최대장점은 넓은 범위의 정찰이지만, 단점은 독수리의 시야에 가려진 이들은 표시가 안 된다는 거다.

지금만 봐도 그렇다.

신전의 정반대쪽의 경비병들이 있던 지점은 깨끗했다.

"그 말은 여기에 있는 경비병들도 표시가 안 된다는 건데."

미니맵상으로 봐도 건물에 가려진 경비병들이 몇일까 짐작이 되지 않았다.

주랑이나 광장을 제외하면 파악이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사냥개까지 있으면 잠입이 가능하려나."

여러모로 골치가 아파왔다.

죽고 도전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신전까지 가기 위해서는 담벼락을 넘어 주랑과 광장을 지나야만 한다.

거기까지 얼마나 많은 난관이 있을 것인지 몸을 숨기면서 이동이 가능할 것인지가 의문이었다.

[똥 싸냐! 바지 벗고 싸!]

뒤에서 쓸데없이 지껄이는 임프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기껏 깊어진 생각을 마음대로 헝클어 놨다.

그래도 마냥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고민과 생각을 한다면, 그건 난관에 부딪친 이후다. 아직 신전에 한 발도 내딛지 않았는데 그럴 이유는 없었다.

지붕에서 최대사거리로 시공간이동자의 블링크를 사용했다.

난 정확하게 담벼락 위로 이동했다.

"무슨 소리지?"

"뭔가 있었나?"

밑에서 경계를 서던 경비병이 위화감을 눈치챘다.

[그림자 걷기를 사용합니다.]

고개를 들어올리기 전에 스킬로 은신을 취했다. 살금살금 옆으로 모서리로 이동해 데스티아 여신교의 사유지로 들어왔다.

신전까지 최단경로는 서쪽의 주랑과 광장을 통해야 한다. 그걸 주의하며 움직였지만, 해당 지점들에는 모두 경비병들이 있었다. 그걸로 끝이면 무시하고 가겠지만 사냥개도 함께하고 있었기에 지나갈 수 없는 곳이 되었다.

다소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나로서는 정원과 신전의 작은 텃밭을 거쳐서 갈 생각이었다. 거기에는 중간마다 나무와 수풀도 있어서 은신에 보다 수월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이것도 써야 하나."

인벤토리에서 무음의 신발과 은형의 외투를 만지작거렸다.

전에는 쓸모가 많았지만 이걸로 온갖 꼼수를 버린 놈들 덕분에 대규모 너프를 맞아 사실상 유명무실한 아이템이 되어 버렸다. 그야말로 공간만 차지하고 되팔기도 불가능한 쓰레기인 셈이다.

외투의 은신 판정은 스킬 혹은 공격 모션을 취하면 바로 취소되었고 신발의 소음도 나무늘보처럼 느리게 가야만 유지가 되었다.

내가 굳이 스킬들을 사서 조합을 했던 것이 아니다.

그림자 걷기라도 있어서 퀘스트를 진행한 셈이지만, 쿨타임이 있는 스킬이라 이것만 믿고 간다면 종일 퀘스트에만 매달려야 한다.

몇 걸음을 떼면 금방 효과가 떨어지지만, 원활한 진행을 위해 삼보일배 마냥 템을 써 대야만 했다.

그래야만 할 정도로 신전에 경비병들이 너무 많았다. 가끔은 그들 사이를 슥 지나가고 싶어도 사냥개가 있어서 불가능했다.

아이템이 녹는 소리는 지갑의 잔고가 줄어드는 것과 같기에 속은 부글부글 끓었다.

예상외의 투자지만 악성재고를 소모했다고 생각하면 그리 나쁜 일만은 아니다.

결국 신전의 근처까지 당도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문제는 경비병들이 입구는 물론 창문마다 붙어 있어서 도저히 들어갈 공간이 나오지 않았다는 거다.

"이건 곤란한데."

[맛집이다! 맞는 거냐!]

"먹고 조용히 해."

요리로 만들지 않아 신선도를 잃은 사과 하나를 던져 주고 창공의 독수리를 사용했다.

역시 신전의 반대쪽 경비병들은 나오지 않지만 대칭구도로 있다고 생각하면 도저히 각이 나오지 않았다.

"잠입게임 보면 답은 위일 것인데."

신전 주변의 나무들 중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갔다.

[벽타기를 사용합니다.]

스킬을 써서 재빠르게 올라간 뒤에 미니맵을 확대시켰다. 신전의 지붕 끝과 내가 있는 위치는 10m는 훌쩍 넘기고 있었다.

그러면 10m 안으로 줄이면 된다,

시공간이동자의 좌표는 XY좌표로만 움직여진다. 고도는 중요하지 않으니 미니맵을 눈여겨봤다.

거리는 넉넉하니 은형의 외투를 쓰며 빠른 걸음으로 이동을 했다.

경비병들의 감지는 시각이 제일 넓었고 그 뒤는 청각이었다. 다만, 거리가 좁혀지면 청각이 압도적으로 민감해졌다.

20m 정도까지는 빠르게 걸어오다가 그 뒤부터는 무음의 신발을 써서 천천히 이동을 했다. 느린 걸음에 스스로도 답답했지만, 죽어서 다시 이 작업을 반복하는 걸 생각하면 침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림자 걷기를 사용합니다.]

[헤이스트를 사용합니다.]

10m에 들어가기 직전에 스킬을 써야만 시공간이동자의 블링크를 써도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 은밀하고 빠른 걸음으로 원하던 위치까지 옮긴 이후에 시공간이동자의 블링크로 신전의 지붕에 올라섰다.

후우우우웅!

해가 저물며 불거진 하늘의 한기가 머리를 쓰다듬고 지나쳤다.

겉에서 보기보다 신전은 더 높았다.

"…구멍이 없네."

천장에 올라서서 기대를 한 것은 숨겨진 통로였다. 흔히 보는 게임에서처럼 어느 부분을 스윽 밀어서 잠금해제라도 되기를 바랐건만, 대리석을 쌓고 붙인 지붕은 밀어서 들어가기는커녕 미끄러져서 뒤질 일만 남았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이곳저곳 두드렸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누구냐!"

"뭔가 있었어!"

오히려 밑에서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신전을 포위한 경비병들이 반응을 할 뿐이었다.

그때 머리가 번쩍 뜨였다.

경비병을 바깥으로 빼낸 뒤에 저 공백을 이용하는 거다.

"저 나무 보이지? 태워. 그리고 반대쪽에는 이걸 쓰고."

[카칵! 불놀이! 이불지도!]

"싸도 여기서는 안 싼다."

임프에게 화염구를 사용할 것을 명하고 놈의 배낭에 폭탄류를 꽉꽉 채웠다.

[나 못 움직여!]

"상관없어."

다 쏟아내서 경비병의 이목만 잡아준다면 성공이다.

[캬캬캬캭! 다 뒤져라아아!]

임프는 화염구를 나무에 써서 불을 붙이고는 곧 폭탄들을 사방에 던져 대기 시작했다.

콰앙! 펑! 펑!

"무, 무슨 일이야!"

"적의 습격이다!"

"지원 바란다! 적이다!"

경비들이 임프가 난동을 부리는 방향으로 대폭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창공의 독수리로 그걸 확인한 뒤에 그림자 걷기로 몸을 감췄다.

시공간이동자의 블링크로 아래로 내려가 신전 안으로 스며들 생각이었지만.

[커엉! 컹!]

입구 안으로 발을 내딛자마자 사냥개 한 마리가 튀어나와서 짖어댔다.

푸욱!

"침입자다!"

"감히 여기를!"

벽 뒤에서 대기하던 경비들도 나를 알아채 나를 찔러 죽였다.

[YOU DIED.]

"개새끼 같으니."

설마 신전 안에도 사냥개가 있을 줄은 몰랐다.

발 한번 내딛기 위해 투자한 재원을 생각하면 하루 이틀은 배부르게 먹고 살 돈이기에 속이 쓰리기만 했다.

"또 반복해야만 하나?"

데스티아 여신교의 사유지에 전체적으로 깔린 경비병을 세어보자면 적어도 백 명은 넘을 것이다. 그래봐야 복사 붙여넣기 수준의 동선과 지능이지만, 내 조잡한 은신과 잠입 수준으로는 그걸 뚫기가 힘들었다.

불사자의 영혼함에서 부활한 뒤에 내가 죽기까지의 플레이를 재생했다. 시점을 다르게 해서 봐도 뭔가 뾰족한 구석이 나오지 않았다.

한번 신전까지 갔으니 저번처럼 쓸모없는 지출은 확 줄일 수는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딘가 숨은 곳이 있다면 좋을 것인데.

"…비밀통로?"

딱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빈민촌이 생각났다.

시장의 저택에 가는 비밀통로가 없을 뿐이었다. 다른 비밀통로는 폐쇄가 되었다지만 분명히 존재는 했었다. 두드리면 하나쯤은 내가 원하는 곳이 나올 수 있다.

꼭 신전 바로 밑은 아니라도 데스티아 여신교 사유지 내부라면 된다.

하나의 희망을 품고 빈민촌으로 갔다.

처음 찾아간 이는 촌장이었다.

나와 요한을 지하통로로 도와준 인물이기도 했으니 원하는 답을 줄 것이다.

"비밀통로 말입니까?"

"맞아. 데스티아 여신교의 신전에 들려야 하거든."

"……."

갑자기 촌장이 침묵했다.

그때 든 생각은 내가 잘 찾아왔구나라는 거였다.

"…잠시 이쪽으로."

촌장은 주변의 눈치를 보더니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 느린 걸음에 답답해서 얼른 가라고 등을 밀어주고 싶을 정도였다.

종잇장처럼 얇은 문을 닫은 후에 촌장이 물었다.

"그곳에는 어쩐 일로 가려고 하십니까."

"일이 있어서."

"구원자께서 잡혔다는 것은 사실입니까? 그가 데스티아 여신교의 사제라는 것도?"

"그들에게 문제가 있나?"

"……."

촌장은 우물쭈물하며 내 눈치를 봤다. 침묵을 지키고 계속 보고만 있었더니 결국 입을 열었다.

"빈민촌에 항상 지원을 해 주는 곳입니다. 만약 구원자께서 데스티아 여신교라면 이곳의 모두가 일어날 겁니다."

만약 다른 NPC가 해 주는 말이었다면 덥석 손을 잡겠지만, 상대는 빈민촌의 촌장이었다. 이곳의 NPC에게 무력적으로 기댈 것이 하나도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만약 빈민촌 몰살이나 혁명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절대 택하고 싶지 않는 루트다.

"걱정 말고 보내줘. 그곳과 연이 있으니까."

"다만, 신전에서 봉쇄된 것이라 허탕을 치실 겁니다."

"그건 알아서 할게."

막혀 있다면 뚫어버릴 생각이었다. 일단 미크엘을 만나야 다음 스토리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촌장은 걱정을 하는 한편, 데스티아 여신교 신전으로 가는 비밀통로를 알려 주었다.

지도상으로 보면 신전에서 가장 가까운 쓰레기장이었다.

"이 안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촌장이 쓰레기 더미를 헤집자 땅구멍이 드러났다. 거기로 몸을 집어넣자마자 로딩 화면이 떠올랐다.

[좁고 답답한 곳은 달걀일 뿐입니다. 그걸 깨고 부화를 하면 당신은 훌륭한 닭으로 자랄 겁니다. 치킨은 맛있죠. 소울리스 CEO 대니얼 올림.]

역시 희망도 보람도 없는 쓸데없는 메시지에 혀를 찰 뿐이다. 저런 식으로 유저들을 기만하던 제작사들이 하나 같이 골로 가 버린 것을 알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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