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4화 고인물은대적한다.(2)
스킬합성을 기꺼이 접고 4번째 빈민구제를 위해 이동했는데 번에는 가까이 간 순간부터 굉음이 사건현장에서부터 퍼져왔다.
나보다 조금 빠른 속도로 앞서나가던 요한은 갑자기 앞으로 달려갔다. 물론 허약하기 짝이 없는 스펙인지라 금방 숨이 차 헐떡여 나에게 따라잡혔다.
"허억. 허억. 이게 저에게 내려진 시련인 것입니까? 여신이여. 이건 너무나 가혹합니다."
"그러시겠지."
포션 역할 이상을 바랄 수 없는 약골이 조금 성장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게임 극초반을 제외하면 조금도 도움이 안 되었던 것 같다.
어쨌든 지친 녀석과 함께 이동하며 현장에 당도했다.
빈민촌에 보기 드물게 2층 높이의 건물이 있었다. 높이만큼이나 넓었는데 다른 곳과 달리 석재도 섞어서 지은 제대로 된 곳이었다.
이번에는 짚더미와 장작이 보이지는 않았다.
도로어의 사제와 동행한 경비들은 3번째와 똑같은 구성으로 2층 건물의 주변에 말뚝을 박고 있었다.
"아이고. 회관을 저렇게 폐쇄하다니."
"우리가 왜 사교도라는 거야!"
"너무하잖아. 도로어 놈들!"
그걸 보는 이들은 분노를 아끼지 않았다.
지난 3차례에 비하면 가장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역시나 도로어의 사제에 대해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보면 모르나? 저놈들이 회관을 폐쇄한다잖아."
"빌어먹을 도시인간 놈들!"
"머릿수가 많아지니까 이딴 식이라니!"
요한이 말을 걸자 다들 답답한지 가슴을 두들기며 목청을 높였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네놈도 인간인데 뭘 도와!"
"말라빠져 가지고는 무슨."
"썩 꺼져!"
호의를 보인 요한에게 돌아온 것은 호구취급이었다. 실망하지 않고 그는 앞으로 나아갔다.
이종족들 사이에서 그가 나오자 도로우의 사제는 관심을 보였다.
"빈민촌의 사람이 아니군."
"저 시설을 폐쇄하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빈민촌에서 사교도의 집회설로 쓰이고 있기에 집행할 뿐이다."
"도로우에 그 권리가 있습니까?"
"이곳은 아웃사이더 시티고 이 결정은 모두의 것이다."
도로우의 사제가 고개를 젓자 경비병들이 창문과 정문에 나무판자를 대고 못을 박기 시작했다.
"썩이나감 님!"
"알겠다고."
이번의 목표는 회관의 폐쇄를 막아라였다.
내가 나서자 경비들이 손에 들고 있던 못과 망치를 바닥에 던졌다. 그걸 대신해 옆구리에 찬 검과 방패를 빼들었다.
"포위하라."
경비조장의 명에 네 명이 양옆으로 펼치며 다가온다. 이미 겪은 전투양상은 똑같은 과정을 밟아나갔다.
지면강타로 범위안의 적에게 피해를 입힌 후, 결사항전의 영역을 펼쳤다. 경비조장이 스킬을 쓰는지만 눈대중으로 확인하며 경비들을 하나씩 죽였다.
경비들의 모션에도 익숙해졌기에 튕겨내기에 당하는 불상사도 사라졌다.
학살.
그 단어 하나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었다.
결사항전의 영역이 끝나기도 전에 경비조장만이 남았다.
"10초."
내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남았다. 4차례나 싸운 경비병에게 익숙해져서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1레벨이 상승한 덕분이다.
경비병들이 튕겨내기를 시도하려는 모션이 묘하게 느려졌기 때문이다.
"괴물인가!"
경비조장은 단번에 썰려나간 부하들을 보며 경악했지만, 손은 정직하게 스킬을 사용했다.
퍼엉!
백스텝으로 뒤로 물러나니 그의 방패는 허공에 사용되었다. 그 후에 방패를 거두는 모션에 빠르게 다가가 밀쳐내기 이후 본 브레이커를 사용했다.
"커허억!"
경비조장은 뒤에서 열심히 힐을 해주는 도로우의 사제 덕분에 즉살은 면했지만, 그 뒤에 이어진 두 번의 공격에 그대로 무너졌다.
도로우의 사제는 불편함을 감추지 못했다.
"네놈들이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지 알고 있더냐?"
"다른 신을 믿는 이들을 도로우의 마음대로 처벌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닙니까."
"네놈. 사교도인기."
"함부로 남을 속단할 수 없는 일이 아닙니까."
"기억하겠다. 이번 일을 잊지 않을 테니까."
도로우의 사제는 요한과 나를 번갈아 쏘아보더니 다른 놈들처럼 도주를 했다.
변수가 생긴 것은 그 다음이었다.
"죽어라! 본교의 복수!"
"커허억!"
몰려든 군중들 사이를 비집고 가던 도로우의 사제가 기습을 당한 것이다.
"뭐, 뭐야! 어느 미친놈이야!"
"사교도다! 사교도야!"
도로우의 사제는 바닥에 쓰러졌고 마치 역병을 본 것처럼 빈민들이 물러났다.
인파에 파묻혀서 도로우의 사제를 공격한 이를 놓쳤다.
[창공의 독수리를 사용합니다.]
다급한 마음에 스킬을 썼다.
미니맵에 보이는 붉은 점 하나가 빠르게 전방으로 달려갔다.
"비키십시오. 제가 치료합니다!"
요한이 도로우의 사제에게 달라붙는 것을 확인한 나는 인파들을 비집고 달렸다.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NPC가 많아 내 움직임에 제약이 걸렸다. 그 사이에 습격자는 멀리 도망치고 있었다.
그때 선택한 것은 시공간이동자의 블링크였다.
습격자와 거리를 혁신적으로 줄일 수는 없지만, 비교적 가까운 빈민촌의 집 지붕이 목적이었다.
지붕과 지붕을 징검다리처럼 뛰어다니며 습격자와의 거리를 좁혔다.
놈도 주변의 NPC들에게 부딪혀 속도가 느려지고 있었다.
문제는 지붕 위로 올라온 나도 썩 좋은 상황은 아니라는 거다. 얇고 허름한 판잣집이라 한 번씩 발이 빠지기도 했을뿐더러 그마저도 미끄러져서 균형을 잃기도 했었다.
[헤이스트를 사용합니다.]
[벽타기를 사용합니다.]
습격자와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승부수를 띄웠다.
이번에 실패하면 어쩔 수 없이 놈을 보낼 수밖에 없다.
"지붕 무너진다. 십새끼야!"
"위에서 무슨 짓이야!"
사람의 심리가 묘한 것이 보험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거침이 없어졌다.
지붕이 부서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미끄러져서 바닥에 떨어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속도가 붙었다.
내가 발을 디딘 건물 아래에 놈이 지나오자 그대로 뛰어내려 덮쳤다.
"잡았다. 이 쥐새끼 같은 놈."
"이이이익! 네놈은 누구냐!"
"너 지옥에 데리고 갈 사람."
습격자는 네 몸뚱이에 깔려 발버둥 쳤다. 그러나 압도적인 근력 차이로 벗어날 수 없었다. 저렇게 쓸데없이 움직여 봐야 지치는 것은 놈일 뿐이다.
"죽어라!"
그러자 놈은 손목에 감춘 단검을 역수로 쥐로 나를 찌르려고 들었다.
앞으로 엎어진 상태에서 뒤를 노려봐야 무섭지도 않았다.
밀쳐내기 스킬로 공격을 저지하자 손에 쥔 단검도 놓쳐 버렸다.
"말해. 누가 보냈어."
"나, 나는……."
두려움에 벌벌 떨던 놈이 말을 끝내 잇지 못하고 축 쳐졌다.
"어? 자살했어?"
입안에 독이라도 숨겨둔 것인지 습격자는 녹색의 거품을 물고 있었다.
"제길."
일단 습격자를 들고 요한에게 갔다.
요한은 다행스럽게도 도로우의 사제를 치료한 뒤였다.
"그 자를 잡아 왔군요. 역시 대단하십니다!"
"독약을 먹고 죽었어."
습격자의 시체를 바닥에 내렸다.
"제가 살펴보겠습니다."
요한이 붙어 회복마법을 연달아 걸기에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지만, 곧 그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죽었습니다. 저에게는 방도가 없어요."
"그렇겠지."
망자를 죽일 수 있다면 부활 마법을 써야하지만, 요한은 그만큼의 고위직이 아니었다.
"…일단 고맙다는 말은 하겠다."
상황을 살피던 도로우의 사제는 불편한 낯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사교도가 있다는 것은 이번 기회에 확인했다. 철저하게 색출할 것이고 그에 대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무고한 이들을 사교로 몰지 마십시오."
"그럴 거다. 정말로 무고하다면."
도로우의 사제는 그대로 사라졌다.
요한이 한숨을 푹 쉬는 사이에 죽은 습격자의 몸뚱이를 뒤졌다.
뭔가 퀘스트에 도움이 될 아이템이라도 나올까 싶었지만 전혀 없었다.
"저희는 계속 가야만 합니다. 썩이나감 님."
"그러자고."
4번째에 습격자가 나타났으니 5번째부터는 당연히 난이도가 올라갈 것이다.
그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5번째 빈민구제는 대장간에서 일어났다. 거기에는 어이라의 사제와 도로우의 사제가 있었는데 경비조장 1명과 경비병 4명만이 아니라 기사 2명이 추가되어 있었다.
특히 기사들은 사제들의 곁에 경호원처럼 붙어 있었다.
4번째에 일어난 습격자에 대한 대비가 바로 된 것이다.
"빈민촌에서 사제를 암살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대장간을 압수수색해서 사교도의 증거를 찾아라!"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는 자는 사교도로 치부할 것이다. 경거마동하지 말아라!"
사제 둘의 명에 경비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대장장이와 그 조수들을 바깥으로 쫓아내고 한쪽에 산적한 물건들을 모두 바닥에 던져 댔다.
"아직도 이런 짓이라니."
요한은 두 눈에 불을 켜고 앞으로 나섰다.
"저분이 나서신다."
"우리의 구원자!"
"모두 비키라고!"
그간의 활약 덕분에 요한을 알아본 군중이 알아서 갈라졌다. 그 덕분에 사제들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았다.
"네놈이 요즘에 떠들썩한 그 자인가?"
"공은 있으니 벌하지 않을 것이지만, 거기까지다."
어이라와 도로우의 사제는 사뭇 다른 태도를 보였다. 공통점이라면 전보다 더 경계심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나, 나는 무기는 안 만듭니다. 다 농기구라고요!"
"진즉에 무기는 금지였잖습니까!"
대장장이와 그 조수는 억울함을 가득 담아 소리쳤다.
"도대체 어디까지 억압하는 것입니까. 아웃사이더 시티는 오로지 인간만을 위한 도시라는 겁니까!"
요한은 화를 멈추지 않았다. 저 태도가 바뀌지 않는 것은 데스티아 여신교가 종족을 구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라면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개척하지 않고 또 슬쩍 나를 보면서 도움을 바란다는 점일까.
"보통 내기가 아니다. 조심하라!"
"동시에 덤벼라!"
두 명의 기사는 천천히 움직이는 경비들을 압박했다. 그 명대로 다섯이 동시에 내게 공격하기 위해 달려왔다.
정석대로 2단점프로 높게 오른 다음에 지면강타를 썼다.
공격범위 내의 경비병들이 휘청거리자 어이라와 도로우의 사제가 하나씩 체력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결사항전의 영역을 사용합니다.]
기사들에게 쓸까 고민도 했지만, 내게 버거운 것은 강한 두 명의 적보다 약한 다섯 명의 적이다.
촤악! 촤악!
체력회복을 받지 못한 경비병 3을 베었다. 건맨의 소울 효과로 두 번 중첩되어진 공격에 곧바로 쓰러졌다.
푸욱! 푹!
텅 빈 내 등과 허리를 다른 경비병들이 찔렀다.
결사항전의 체력회복 효과로 떨어지던 체력은 다시 차올랐다.
푸욱! 촤악!
평타캔슬로 날 찌른 경비병1을 반격했다. 한 호흡에 찌르고 베어냈기에 영역 내에 있는 것은 경비병 둘과 경비보장 하나뿐이다.
퍼엉!
경비조장의 방패공격을 백스탭으로 피했다. 아슬아슬하게 영역에 두 발이 걸쳤기에 머리를 베어오는 경비병2의 검을 튕겨낸 후에 한 발자국 뒤에서 공격하는 경비병4의 목을 먼저 베었다.
"이노옴!"
경비조장은 어깨부터 들이밀었다. 구르기로 피했음에도 그는 허리를 틀어 내 목을 노렸다.
터엉!
"후우."
무릎을 핌과 동시에 아슬아슬한 타이밍으로 공격을 튕겨냈다. 경직상태의 그에게 본 브레이커를 먹었다. 확정된 기절 상태인 그를 버려두고 마지막 남은 경비병에게 역섬기검을 쓰고 찌르기로 마무리했다.
결사항전의 영역은 아직 10초가 남아있었다.
스릉.
경비조장만 남은 상태에서 기사 둘이 검을 빼들었다. 사제들도 경비조장에게 회복이 아니라 기사들에게 버프를 연달아 걸기 시작했다.
"빈틈이다!"
친절하게도 한 눈을 팔자마자 경기보장이 공격을 해 왔는데 백스탭으로 흘린 후에 품에 다가가 찌르고 베어 물러나게 한 뒤에 무릎을 베어 무너트렸다.
"강한 놈이구나."
"우리 앞에서는 힘들 것이다."
기사들은 방패를 높게 들고 자세를 낮추며 슬금슬금 다가왔다.
레벨로 치면 어느 정도일까.
나와 비슷한 수준이면 어설픈 공격을 했다가는 역으로 죽을 거다.
2차 전직이면 유저가 아니라 NPC만 하더라도 얼마나 무서운지 내가 직접 겪어 봤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