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은 옷을 입지 않아-133화 (133/201)

제133화 고인물은대적한다.

"요한!"

상점을 박차고 바깥으로 뛰어갔다.

비명의 주인은 불행히도 요한이었다. 그는 피가 흐르는 팔을 붙잡고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죽어라! 사교도야!"

"이단을 죽여라!"

무기를 든 이들이 요한을 공격하고 있었다.

상점주인이 말한 일들이 바로 펼쳐진 것이다.

"허억! 누구야!"

"그 놈이다!"

시공간이동자의 블링크로 요한의 앞을 막아섰다.

적들은 놀랐음에도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뒤에는 요한이 있고 앞에는 동시다발적으로 뻗어 오는 칼들을 방어할 수단은 하나뿐이다.

[등가교환의 방패를 사용합니다.]

스킬을 쓰며 두 팔을 활짝 펼쳐 최대한 요한의 몸을 가렸다.

타다다당!

강철과 같이 단단해진 몸뚱이를 날카로운 검들이 두드렸다.

[플레이어가 상태이상 중독에 걸렸습니다.]

[플레이어가 상태이상 마비에 걸렸습니다.]

"쳇."

공격무효화가 아니라 방어력 상승이기에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것자체는 얼마 되지 않지만, 검에 발라진 독들이 문제였다.

마비 때문에 가위에 눌린 것처럼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등가교환의 방패가 끝난 뒤에 바로 죽을 것 같다.

"걱정하지 말고 싸우십시오!"

"드디어 도움이 되네."

그걸 해소한 것은 요한이었다.

등 뒤에서 상태이상을 회복시켜 준 덕분에 다시 조작에 자유로움을 찾았다.

"전 물러나겠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짐밖에 되지 않은 요한이었기에 알아서 물러난다니 고마울 뿐이다.

문제는 이 더럽고 좁은 길목에 빈민들로 인해 움직임에 제약이 걸렸다는 거다.

"놈은 강해! 정면대결은 피해!"

"우리의 목표는 저 말라깽이다!"

나에게 다행인 점은 적들의 어그로가 아직도 요한에게 쏠려 있다는 거다.

파바밧!

발을 묶기 위해 날아오는 암기들은 구르기로 피했다.

내가 자리를 비키자 놈들은 하나 같이 요한에게 달려갔다. 저렇게 훤히 등이 보이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카가가가각!

"으아악!"

"커헉!"

역섬기검을 빠르게 휘둘러 등을 노렸다. 검기는 정확하게 날 스쳐가던 놈들을 적중했다.

경비병들보다 레벨도 장비도 형편없기에 그 한 방에 무너졌다.

"괴물 같은 놈!"

"도망쳐!"

남은 놈들은 감히 싸울 생각도 하지 못하고 도망쳤다.

"괜찮아?"

"전 괜찮습니다."

요한은 그 사이에 체력을 회복했다. 칼자국이 난 피부에는 흔적도 없었다.

"맙소사! 사제였어!"

"신성력이야. 저놈도 이단심문관인가!"

"아니면 진짜 사교도야?"

목도한 이들은 놀라움을 표했다. 그 한 마디마다 요한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했다.

"아웃사이더 시티는 잘못되었습니다! 썩이나감 님. 이것은 여신님께서 내리신 시련입니다!"

좌절할 줄 알았건만 요한은 오히려 전의를 불태웠다.

*       *       *

어두운 지하실은 촛불 하나만이 켜져 있었다. 가면을 쓴 일곱 명은 모두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바람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밀실에서 유일한 빛이 사라졌고 가면 속에 억눌러진 침묵이 깨어졌다.

"아웃사이더 시티의 일에 지장이 있다."

"브라이크 지역의 도시인가."

"크리스가 깨우려던 그의 존재의 일인가?"

"데스티아 여신교에 문제가 생겼나."

목소리는 어지럽게 뒤섞였다.

처음에 흘렀던 목소리는 이어 말했다.

"포교의 문제다. 빈민촌에 벌레 하나가 끼었을 뿐. 데스티아 여신교는 우리에게 들어온다."

*       *       *

"흑막의 등장인가."

시네마틱 모드가 보여 준 영상은 앞으로의 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했다.

아웃사이더 시티의 이단심문에서 그치지 않고 데스티아 여신교와 사교의 일도 한꺼번에 터질 것 같다.

저 가면들이 내 스토리에서 거의 최종보스 급이지 않을까 싶었다.

"뭐라고 하셨죠?"

"아니야. 다음 장소로 가자고."

결사항전의 영역이 사용가능해졌으니 굳이 요한의 발목을 잡을 필요도 없다.

요한은 세 번째 빈민구제에 나섰다.

이번에는 어이라가 아니라 질서와 법의 신인 도로우의 사제였다.

"이 불결한 곳을 모두 불태워라. 옳지 못한 장소에 옳지 못한 기운이 모이는 것이니."

"예! 사제님!"

멀리서 불길이 보여서 화형식이라도 하는 줄 알아 헐레벌떡 왔건만, 도로우의 사제는 낡고 오래된 건물에 짚과 장작을 쌓고 있던 것이다.

터를 잃게 된 이들은 울부짖었으나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다른 이들은 주변에 찾아온 불행이 자신의 것이 아님에 그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하고 있었다.

"잠깐! 누군가의 삶의 터전인데 어찌 그렇게 함부로 태운다는 겁니까!"

이번에도 요한이 두 팔을 걷으며 난입했다.

그가 나서든지 말든지 불사자의 영혼함부터 재설치하고 도로우의 사제와 동행한 이들을 살폈다.

경비병 넷에 경비조장 한 명이 있었다.

"근래에 빈민가를 들쑤시는 이가 있다고 들었다. 그게 바로 그대인가."

"무엇 때문에 이런 만행을 저지르는 겁니까!"

"아웃사이더 시티에 사교도의 서적이 돌고 있다. 제본소를 하는 곳이 바로 여기이기에 집행하려는 것이다."

"……."

이번에는 요한이 할 말을 잃었다.

잠깐 머뭇거리던 그는 주변을 둘러봤다. 자세히 보면 장작과 짚들 밑에 수북이 쌓인 책들이 보였다.

"저 책들이 모두 사교의 것입니까?"

"아웃사이더 시티에 맞지 않는 것들이다. 검열할 가치도 없지."

"가이아 여신의 오래된 말을 사교로 몰거나 하는 일은 없겠지요?"

"뭐? 그게 무슨 바보 같은 소리냐."

도로우의 사제는 어처구니없어 했다.

어이라에 비해 이종족에 열린 설정이 있으니 그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서적이 이 제본소에서 나왔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거니와 만약에 그렇다 치더라도 저 책들을 모두 불태워서는 안 됩니다. 저 중에 다른 신의 말씀이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 아닙니까."

"너와 입씨름을 할 수가 없다. 이건 아웃사이더 시티에서 내린 결정이고 나는 질서와 법의 신의 말씀을 따를 뿐이니."

도로우의 사제가 집행을 명했고 경비들은 손에 든 횃불에 불을 밝혔다.

요한이 날 쳐다보고 입을 벌리기 전에 먼저 걸음을 옮겼다.

"거기까지."

검을 뽑자 경비들은 나를 경계했다.

경비조장을 중심으로 네 명이 좌우로 펼쳐져 나를 포위하려는 움직임을 취했다.

"반항하지 말아라."

"얌전히 포박당해라."

"싫은데."

사정거리에 놈들이 오자 제자리에서 높게 뛰었다. 한 발자국 더 다가온 것을 확인하고 2단 점프로 한 번 더 뛰어오른 후에 지면강타를 사용했다.

콰아아아앙!

"크흑!"

"컥!"

내 중심으로 반경 5M의 대지가 들썩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충격파가 퍼졌다.

경비대들은 모두 충격을 입고 주춤거렸다.

"물러서지 말고 나아가시오!"

어이라의 사제와는 달리 도로우의 사제는 경비병들에게 버프를 걸기 시작했다.

방어력 상승과 체력이 가장 많이 단 경비병에게 힐을 건 것이다.

반면에 요한을 흘겨봤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저 정도면 포션보다 못하다.

도로우의 사제가 회복을 다 끝내기 전에 경비병 하나에게 본 브레이커를 썼다. 시기적절하게 치명타가 터지며 하나는 그대로 쓰러트렸다.

"놈! 보통이 아니구나!"

경비조장은 분개하며 거칠게 검을 휘둘렀다. 확실히 경비병보다 더 공격속도가 빨랐다. 체력과 방어력도 높기도 했다. 이 정도면 스킬을 구사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결사항전의 영역을 사용합니다.]

10번의 빈민구제 중에서 이제 고작 3번째일 뿐이다.

추가 병력지원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면 이대로 쓸어버리는 것이 옳았다.

촤악! 촤악!

막 회복이 끝난 경비병에게 검을 휘둘렀다. 빨라진 공격속도로 반응조차 못해 체력을 깎은 일반공격이 건맨의 소울로 한 번 더 들어갔다.

한 발자국 물러나며 가볍게 찌르는 것으로 두 번째도 쓰러트렸다.

[레벨이 1 상승합니다.]

[전 능력치가 1 상승합니다.]

시기적절하게 레벨도 올라갔다. 이러면 마나생각을 하지 않고 스킬을 써도 된다.

카가가가각!

경비조장에게 역섬기검을 날려 견제를 한 뒤에 좌우를 노리는 경비병 중에서 우측을 노렸다.

터엉!

거리를 좁히자 먼저 휘두르는 검을 튕겨낸 후, 경직된 몸뚱이에 검을 찔러 넣고 베어냈다.

나무토막처럼 쓰러진 경비병에게서 시선을 때자마자 경비보장이 방패를 강하게 휘둘렀다.

쿠웅!

"큭!"

결사항전의 영역으로 인한 체력회복이 순간 끊길 정도로 위력이 있는 한 방이었다.

잠깐 조작이 멈춰진 상황에 남은 경비병 하나가 검으로 허리를 찔렀다.

그 팔을 붙잡으며 역으로 목을 긋고 등판을 찔러서 죽였다.

"이 악귀 같으니!"

도루우의 사제의 회복에 의해 체력을 완전히 채운 경비조장이 연이어 검을 휘둘렀다.

백스탭으로 그걸 피한 뒤에 밀쳐내기 스킬로 세 번째 공격을 무효화한 뒤, 공중에 뛰어 올랐다.

콰아아앙!

"크헉!"

지면강타에 직격해 뒤로 밀려난 경비조장의 품에 연이어 본 브레이커를 사용했다.

경비병들이랑은 확실히 다른지 두 번의 스킬을 맞았음에도 체력은 30% 가량이 남아 있었다.

튕겨내기를 쓸지도 모르기에 반박자 느리게 공격을 했다.

경비조장의 검이 먼저 뽑혔음에도 내 검이 먼저 그를 베어나가는 것을 세 번 정도 반복하자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이 사교도 놈들이……!"

로우어의 사제는 그걸 보며 치를 떨었다. 경비병들과 제본소, 나와 요한을 번갈아 보던 그는 이를 악물고 물러났다.

"와아아아아아!"

빈민들은 그 후에 두 손을 번쩍 들며 환호성을 질렀다.

"사교도가 아니라면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곧 모든 것이 정해진 대로 흘러갈 것입니다."

요한은 부하의 프로젝트를 당연하게 강탈하는 직장 상사마냥 그 환호성을 자신이 차지했다. 아직 바닥에 주저앉은 NPC를 일으키고 위로하는 꼴을 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젓게 될 정도였다.

"영웅님! 변변찮은 것이지만, 이것을 받아주십시오!"

제본소의 주인은 장작과 짚더미를 치워 책 하나를 나에게 줬다.

주황색 스킬북은 예상하지 못한 획득물이었다.

[힐의 스킬북.]

-종류 : 일반.

-효과 : 스킬 습득.

-설명 : 힐을 배울 수 있는 책이다.

물론 빨간색과 주황색이 가장 낮은 등급이니 내용물이 훌륭할 수는 없었다.

판매를 하더라도 이걸 굳이 사갈 유저는 없을 것이다.

[스킬, 힐을 배우셨습니다.]

힐은 성직자 계통만이 쓸 수 있는 스킬일 뿐더러 자동으로 얻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나라는 예외는 항상 존재한다.

내가 요긴하게 쓸 수는 없더라도 하나라도 익히면 스킬조합의 재료가 될 수도 있으니 마냥 나쁜 것은 아니다.

"이건 가능하려나."

문득 내가 익힌 패시브 스킬 중 하나인 신성한 흐름이 생각났다.

모든 회복속도와 저항력을 올려주니 힐이랑 조합이 가능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스킬조합 정보도 슬슬 풀어야겠네."

아직 이 정보가 공개가 되지 않았으니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물론 미리 괜찮은 스킬들은 미리 사재기를 해서 시세가 오르면 팔아 버릴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힐과 신성한 흐름의 스킬합성을 진행하시겠습니까? Y/N.]

스킬합성 기능을 열어 두 스킬을 집어넣었다.

창고에 넣지 않고 인벤토리에 보관 중인 마석이 세 개가 있으니 실패해도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스킬합성이 실패하였습니다.]

"쓰읍. 내 마석."

스킬합성이 무조건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석의 소모는 아쉽기만 하다.

다시 마석을 등록하며 스킬합성을 시도했다.

[스킬합성이 실패하였습니다.]

"이걸 실패해?"

두 번이나 실패를 한 것은 처음이었다. 마석도 하나 밖에 남지 않았다.

액티브 스킬과 패시브 스킬의 합성이 유독 성공률이 낮은 것일 수도 있다.

"어차피 실험이니까. 해보자."

힐과 신성한 흐름이 그렇게 맞지 않는 스킬인지 고민을 해도 정확한 답을 낼 수 없었다.

이때까지 스킬합성에 성공한 스킬들의 설명을 보면 사실상 억지로 짜 맞춘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이때까지 성공한 것이 운이 좋았다고 여겨야만 할 것 같다.

"결국 모든 것이 경험이고 데이터로 남으니까."

투자에 아쉬워하지 말고 3차 합성을 시도했다.

[스킬합성이 실패하였습니다.]

"……."

이 스킬 두 개의 합성은 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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