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은 옷을 입지 않아-132화 (132/201)

제132화 고인물은싸웠다.

"너는 누구냐! 감히 신의 행사에 끼어드는 것이냐!"

이교도심문관은 갑작스럽게 개입한 방해꾼을 표독스럽게 째려봤다.

요한은 수많은 시선에도 불구하고 떳떳하게 나아갔다.

"지나가던 사람입니다."

"신도들을 어지럽히는 마녀를 체포했으니 아무것도 모른다면 물러나라."

"마녀가 어디에 있다는 겁니까. 제 눈에는 작은 오해가 쌓여 핍박받는 이가 있을 뿐입니다."

요한은 성큼성큼 다가가더니 이교도심문관이 들고 있는 책을 지적했다.

"겉표지에 있는 문양을 보십시오. 그게 정말로 사교도의 것입니까?"

"누구냐고 물었다!"

"누구도 엘프의 신인 가이아를 사교라고 하지 않습니다!"

"……네놈!"

이교도심문관의 얼굴은 피를 뿌린 것처럼 붉어졌다. 자신의 무식함을 들켜서일까 아니면 정말 몰라서 발끈하는 것일까.

둘 중에 어떤 것이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인의 앞에서 창피를 당한 것 때문임은 확실하다.

"사제님. 정말입니까?"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됩니까."

엘프 여인을 억누르던 경비병들은 난처함을 표했다.

이교도심문관은 악을 쓰기 시작했다.

"저놈도 잡으시오! 이단을 옹호하는 것을 보니 사특한 무리일 것이니!"

"…알겠습니다."

엘프 여인을 포박한 한 병을 제외한 나머지 경비병들은 마지못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요한은 아주 자연스럽게 나를 불렀다.

"당신이 나설 차례입니다. 썩이나감 님!"

"…예에."

기어들어 가듯이 힘없는 대답에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주변의 이들이 다들 놀라 멀어졌다.

[요한을 지켜라.]

퀘스트의 목표도 조금은 수정되었다.

저 경비병들이 그에게 피해를 주지 못하도록 해야만 한다.

인벤토리에서 불사자의 영혼함을 심은 뒤, 슬금슬금 요한에게 다가가는 경비병에게 검을 휘둘렀다.

선공필승은 항상 중요하다.

터엉!

"어……?"

문제는 경비병1이 내 검을 튕겨낸 것이다. 한쪽 팔이 젖혀져 활짝 열린 가슴팍에 경비병2의 검이 꿰뚫었다.

[YOU DIED.]

"뭐야."

도시의 흔하디흔한 NPC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튕겨내기를 그렇게 깔끔하게 사용할 줄은 몰랐다.

심지어 난 30% 능력치 상승을 받고 있던 상태에서 이걸 당할 줄은 몰랐다.

불사자의 영혼함에서 빨리 부활한 뒤에 곧바로 전투에 합류했다.

이때의 요한은 경비병들에게 포위가 된 상태였다.

카가가각!

한 발자국 내딛으며 곧바로 역섬기검을 썼다.

날 죽였던 경비병1이 방어하지 못하고 그대로 몸으로 맞았다. 검기에 갑옷이 찌그러지며 불똥이 튀었고 체력도 단번에 80%가 날아갔다.

일단 레벨은 나보다 낮은 걸로 볼 수 있었다.

문제는 방금 전의 죽음에서 알 수 있듯이 AI 자체가 상승했다는 점이다.

세 번째 도시이니 난이도가 올라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NPC 상대로 튕겨내기 후에 평타가 중점인 나에게는 치명적인 상황이다.

[결사항전의 영역을 사용합니다.]

그렇다면 더 빨라진 공격도 얼마나 막을 수 있나 실험할 수밖에 없다.

"놈은 강하다! 방어해라!"

"섣부르게 나서지 마!"

"호오."

예상외인 것은 경비병들의 태도다.

창과 검을 쥔 경비병들은 몸을 웅크리며 방어를 할 준비를 했다.

콰앙!

"커허억!"

"이것까지는 못 피하네."

그 위를 힘껏 내리쳤다.

섬전과도 같은 일격은 휘두르겠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경비병을 가격했다.

생각과 그 다음의 행동까지의 시간은 찰나와 같았다.

"으악! 이길 수 없어!"

"사제님을 지켜라!"

결사항전의 영역에서 내 검은 폭풍처럼 휘둘러졌다.

경비병들은 방어를 해서 데미지를 적게 입었다지만 그뿐이었다. 웅크린 거북이보다 초라한 방패와 갑옷은 그들의 빈약한 체력을 조금도 지켜주지 못했다.

"너는 어쩔래."

"……."

마지막은 엘프 여인을 억압하는 경비병이다. 검을 들이밀자 그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썩이나감 님. 너무 손속이 과하셨습니다."

"……."

이때 정말 얄미운 것은 요한의 행동이었다.

내가 쓰러트린 경비병들에게 다가가 하나하나 힐을 걸어준 것이다.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얄밉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누가 봐도 내가 나쁜 놈이고 요한만 착한 놈이 되는 그림이다.

"네놈들은 도대체……!"

"그 책이 사교도의 것입니까?"

"이건……!"

이단심문관은 자존심 때문에라도 어쩌지 못하는 눈치였다.

요한은 그의 두툼하고 기름진 손을 두 손으로 꼬옥 잡았다.

"공무에 바쁘셔서 착오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그 신고를 한 이가 이단심문관님을 현혹한 것이니 꼭 면밀히 조사를 하십시오."

"……."

그 사람 좋은 인자한 미소에 이단심문관은 입을 꾹 다물었다.

"…가겠다! 다음에는 조심하도록!"

어이라의 이단심문관은 요한의 두 손을 뿌리치고 등을 돌렸다. 정신을 차린 경비병들도 그 뒤를 얼른 쫓아갔다.

요한은 땅바닥에 버려진 가이아의 성전을 주웠다.

"가이아의 말씀을 이렇게 자신의 삶에 가까이하시니 그분을 따르는 분이 맞으십니다."

"아아!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엘프 여인은 그걸 가슴에 품고는 눈물을 펑펑 흘렸다.

[도전과제, 구원자 곁의 악마를 달성하였습니다.]

"쓰읍."

나와 요한의 활약 덕분에 도전과제가 하나 해결되었다.

보상으로는 아웃사이더 시티의 악명과 명성이 소폭 상승하는 효과가 있었다.

"뉘신지 이름을 알 수 있겠습니까."

"구원자님! 당신의 이름을!"

"이름을 밝히기에는 부끄러운 몸입니다. 가시지요. 썩이나감님."

요한은 자신을 붙잡는 사람들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며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자신의 이름을 숨기면서 왜 내 이름을 밝히는 의도도 참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작사의 섬세하지 못함이겠지만 저게 현실이면 뒤통수라도 한 대 갈겼을 거다.

다음 이단심문관도 곧 만났다.

이번에도 어이라의 사제였는데, 그는 경비병들과 함께 한 집에 들어가 쑥대밭을 내놓고 있었다.

"사교의 증거를 찾아라! 분명 이곳이 맞다!"

"예! 반드시 찾겠습니다!"

"샅샅이 뒤져라!"

집 바깥에서도 악에 찬 목소리는 떠들썩하게 들렸다.

집 주인으로 보이는 드워프 사내는 문앞에 주저앉아 사색이 되어 떨고 있었다.

"이, 이봐. 거기 가지마!"

"너네까지 휘말린다고!"

요한이 그에게 다가가자 주변에서 기겁하며 뜯어 말렸다. 물론 요한은 그런 것을 뿌리쳤다. 그리고는 드워프 사내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은은한 빛이 흘러나오자 드워프 사내의 안색도 아까 전보다는 편안해 보였다.

"지나가는 길입니다만, 도대체 어떤 일이 있으신 겁니까."

"…난 사교도가 아니야. 아니라고."

"당신의 운명을 오해받았군요."

요한은 당연하게 나를 쳐다봤다.

[이단심문관과 경비병을 저지하라.]

목표도 새로운 것으로 바뀌었다.

결사항전의 영역은 아직 쿨타임 중이지만 내부가 좁으니 벽타기를 통한 공격은 가능하다.

"네놈은 누구냐! 썩 나가지 못해!"

"재가 이야기 좀 하자는데."

날 노려보는 이단심문관에게 슬쩍 바깥으로 가리켰다.

그는 요한을 쳐다보지도 않고 명했다.

"저 놈을 잡아라! 분명 사교도와 한패일 것이다!"

전투는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집안을 부수며 뒤지던 경비병들이 내게 무기를 들이댔다.

경비병의 수는 다섯이지만 집안을 가득 채우기는 부족함이 없었다.

집안이라 그런지 경비병들은 검과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그들은 동시에 내게 공격을 해왔다.

[1인 도발을 사용합니다.]

[벽타기를 사용합니다.]

동시에 스킬을 썼지만, 1인 도발은 실패했다.

고렙존에 왔으니 NPC들의 상태이상에 대한 내성이 높아져 이 스킬은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것 같다.

대열을 부술 수 없으니 벽을 밟고 천장을 지면처럼 걸으며 경비병들의 머리를 베었다.

카앙! 캉!

검에 맞은 헬멧이 큰 소리와 함께 찌그러졌다.

경비병 둘이 바닥에 주저앉고 다른 놈들은 반격을 해 왔다. 백스탭으로 물러난 뒤에 천장에서 발을 떼고 지면강타를 사용했다.

콰아아아앙!

"커허억!"

"으악!"

충격파는 집안을 가득 채웠다.

무릎을 꿇은 경비병 둘은 아예 쓰러졌고, 나머지 셋은 충격에 비틀거렸다.

이단심문관은 아예 집 바깥으로 튕겨져 나간 것은 이득이라면 이득이다.

푸욱! 촤악!

지면강타의 충격에 아직 움직이지 못한 경비병 하나를 찌르고 베어 쓰러트렸다.

남은 것은 고작 둘이지만 좌우에서 동시에 찔러오는 검에 다시 백스탭을 썼다.

본 브레이커를 쓰고 싶지만 마나가 부족하다. 마나포션을 마시고 싶어도 그럴 시간과 여유가 없었다.

남은 것은 평타뿐이지만, 그건 경비병들이 튕겨내기를 쓸 수 있다.

우측으로 돌아 경비병 둘을 일렬로 만들었다.

맨 앞의 녀석에게는 스킬 밀쳐내기로 공격을 무효화시켰고 뒤에서 공격하는 경비병의 몽둥이를 튕겨내기로 경직시켰다.

푸욱!

"커허억!"

내 공격은 다시 맨앞의 경비병의 폐부를 찔렀다. 검을 비틀고 빼내었다.

실낱같이 체력이 남았지만 출혈이 걸려 곧바로 쓰러졌다.

남은 경비병은 하나 검을 휘두르는 척을 하자 놈은 곧바로 검으로 튕겨내기를 하려고 했다.

헛손질을 유도한 뒤에 빠르게 허벅지를 찔렀다.

"으아아!"

경비병은 피해를 입으면서도 검을 휘둘렀다.

스킬 밀쳐내기의 쿨타임은 아직 20초가 남았다.

마나도 바닥이라 결사항전의 방패를 쓸 수 없었다.

남은 것은 백스탭뿐이었다.

후우우웅!

검은 코끝을 스쳤다.

간담이 서늘해져 옅은 한숨을 내쉰 뒤에 목을 베어 전투를 끝냈다.

"후우. 힘드네."

경비병 다섯이 이렇게 버거울 줄은 몰랐다.

이단심문관이랑 엮이면 종래에는 성기사와도 나타날 것이니 그걸 생각하면 가시밭길이 펼쳐진 셈이다.

"임프가 없으니까 이건 아쉽네."

쓰러트린 경비병들에게서 아이템을 수집했다. 7은화 36동화. 딱딱한 빵, 치즈 한 조각, 맥주 두 병, 경비병의 몽둥이, 경비병의 장검이 전리품이었다.

경비병의 몽둥이와 장검은 경매장에 올릴 가치도 없어서 그냥 상점에 팔아야할 정도로 빈약한 수준이었다.

불사자의 경험도 있으니 스킬북이라도 나오기를 바랐지만, 경비병들에게서 얻을 스킬일 얻을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감히 어이라의 조사를 방해하다니! 네놈들 전부 이단인 것이 분명하다!"

혼자 남은 이단심문관은 목에 핏대를 세웠다. 그와 마주선 요한의 목소리는 작아서 뭐라고 하는 지가 잘 들리지 않았다.

"네놈들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반드시 사교도라는 것을 입증시킬 것이다!"

곧이어 이단심문관은 씩씩 거리며 도망쳤다.

요한은 부지런하게 내가 쓰러트린 경비병들을 치료했다.

사교도 추적의 완료조건도 10번 중에서 이제 2번을 채웠을 뿐이다.

남은 8번의 빈민구제가 딱 이 정도 난이도면 좋은 것인데 뒤로 갈수록 난이도가 높아질 것은 분명하다.

"그래도 어이라만 만나니까 다행인가."

수치상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지금 퀘스트로 어이라교와의 관계는 틀어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앞으로의 플레이에 지장만 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저 둘이 그 분들이지?"

"맞아. 우리를 지켜주시는 분들."

"이단심문관 좀 혼내주라고."

다음 목적지로 가는 동안에 우리를 향한 NPC들의 대화가 사뭇 달라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요한은 당연하다는 듯이 가고 있지만, 아무런 콩고물이 떨어지지 않으니 나로서는 마냥 반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잠깐만 기다려봐."

마침 상점이 보이니 인벤토리를 채운 잡화를 처분해야만 할 것 같다.

"음. 8은화인데 이거라도 가져가라고."

상점주인은 판매금액 이외에 투척용 단검도 다섯 개 얹어줬다.

"이걸 왜……?"

"서비스다. 내 친구 도와줘서 고맙다고."

상점주인의 종족은 드워프였다. 방금 전에 도운 빈민구제 덕분임은 확실했다.

"그래도 조심하라고. 이단심문관들을 일을 방해했으니 자네들을 더 집요하게 노릴 거야."

"성기사라도 올까?"

"모르지. 그 부패한 놈들이면 사람이라도 쓸 거야. 여기는 돈 만 주면 범죄를 저지를 놈들이 많다고."

상점주인은 이제부터 어려워질 퀘스트에 대한 시그널을 완벽하게 전해줬다.

"으아아악!"

바깥에서 비명소리가 들린 것도 그때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