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0화 고인물은수감자.
[사람을 믿나요? 아니면 사랑을 믿나요? 전 사망을 믿어요. 그건 배신하지 않아요. 소울리스 CEO 대니얼 올림.]
로딩 중간에 뜬 메시지가 묘하게 눈에서 떠나지 않았다. 확실히 이 세상에 믿을 놈은 없다.
대니얼이라는 사람이 평소에 남기던 약 올리는 메시지보다는 확실히 눈길이 갔다.
로딩이 끝난 후에 머리에 씌워진 천과 안대가 벗겨졌다.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어둡고 습한 통로와 금방이라도 꺼질 것처럼 타오르는 횃불들이었다.
끼이이익.
"얌전히 있어."
경첩이 비명을 지르며 쇠창살 안으로 누군가가 내 등을 밀었다.
나와 달리 요한은 볼썽사납게 바닥에 엎어졌다.
저게 근력에 1도 투자하지 않는 사제의 나약함이다.
간수가 멀어지자 요한은 옷에 묻은 흙을 대충 털어내고 짚이 싸인 곳에 앉았다.
[퀘스트가 등록되었습니다.]
"쉬시지요. 썩이나감 님."
일단 요한의 옆에 앉아서 퀘스트를 확인했다.
[교주와의 만남.]
-알퐁스 교주가 보낸 대리인에 의해 감옥에 갇혔다. 이곳에서 그를 만날 때까지 기다리자.
-완료 조건 : 알퐁스 교주와의 만남.
-실패 조건 : 퀘스트 포기.
드디어 알퐁스 교주를 만나는 것이 코앞에 다가왔다.
"제가 여신의 뜻을 따르기로 시작한 것은 예전……."
그 사이에 요한은 예전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하나도 관심이 없는 것이라 대충 인터넷 창을 띄워서 다른 것을 살폈다.
내가 판매한 정보 중의 일부가 벌써 일반 커뮤니티에 돌아다니면서 석림에 유저들이 잔뜩 모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해외 쪽도 석림의 순례가 돌아다니니 이번에 통장에 꽂힐 돈을 기대해도 될 것 같다.
요한의 이야기를 듣다가 묘하게 조용한 것 같아 생각해 보니 임프가 보이지 않았다.
저벅. 저벅.
혼자서 라디오처럼 떠들던 요한의 목소리가 작아지고 천장에 떨어지는 물방울소리만 나던 감옥에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 미약하던 것이 조금씩 커졌는데 조심스럽거나 다급함이 없이 느긋함이 느껴졌다.
그 발자국 소리에 뒤이어 불빛이 어두운 복도를 환하게 밝히기 시작했다.
"오래 기다렸습니다."
감옥 바닥에 질질 끌릴 정도로 큰 로브에 제등을 들고 온 이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여, 여신의 종이 교주님을 뵙습니다."
이때까지 조용히 있던 요한이 일어나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반갑습니다. 크리스의 뜻을 이어 주어서 고마울 뿐입니다. 어린 사제여."
"그저 제게 내려진 운명을 수행할 따름입니다."
"그보다……."
로브를 벗자 알퐁스라는 이름 세 글자가 NPC의 머리에 떠올랐다. 작지만 당찬 풍채에 백발이 인상적인 그가 내게 시선을 보냈다.
"불사자여. 반갑습니다."
"반갑네요. 아주."
"당신을 깨운 것의 의문이 있을 것입니다."
드디어 본격적인 스토리가 진행이 되기 시작한다.
"칠대악룡의 사후, 그들의 추종자가 당신을 찾고 있습니다. 그 힘을 하나로 모은 당신이라면 세상을 지배할 절대악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 가둔 것인가? 이제 와서 처리하게?"
갑자기 불안함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데스티아 여신교가 불사자의 능력을 해금시켜주는 곳이니 반대로 나에게 제약을 걸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신은 불사자입니다. 죽지 않는 존재를 어찌 죽일까요. 물론 불멸자가 아니니 방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요."
"……."
돌려 말하지만 저 압박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데스티아 여신교에 평소 공물이라도 받쳐서 호감도를 좀 높여줄 것을 그랬다.
"문제는 그 칠대악룡의 추종자들이 어둠속에서 세력을 키웠다는 것입니다. 슬프게도 그들은 이미 가까이에 있지요."
알퐁스의 말에 떠오르는 것은 튜토리얼 때의 그 언데드 무리였다.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먼저 이곳에서 나가지요."
알퐁스가 손짓을 하자 신성한 빛이 스며들어 두 손을 압박하던 수갑이 갈라졌다.
퀘스트 보상은 방어구였다.
[데스티아 여신교의 로브.]
-종류 : 일반.
-방어력 : 235.
-효과 : 마나 최대치 30 상승, 상태이상 저항 13% 상승. 신성LV1.
-설명 : 데스티아 여신교의 사제들이 공동으로 지급을 받는 로브다. 신성한 기운이 스며들어 있다.
물론 방어구의 성능은 좋지 않았다.
천 방어구치고는 방어력이 괜찮은 편이지만, 낮은 등급만큼 옵션이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이건 팔아도 팔릴 것인지가 의문이다.
"이 비밀통로를 나가면 아웃사이더 시티입니다."
"정말이야?"
"예. 추종자들을 색출하여 제거해 주십시오. 다음 만남은 그때일 것입니다."
알퐁스는 그 말과 함께 먼저 비밀통로로 발을 뻗었다.
"어떻게 그들을 찾으라는 거지?"
또다시 무작정 발품을 팔기에는 내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레벨업도 뒤쳐지는 것은 물론 그 부산물인 아이템을 획득해 판매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제가 실수를 했군요. 당신의 눈이 감겨져 있었으니."
알퐁스가 내 이마에 검지를 툭 하고 두드렸다.
[스킬, 불사자의 눈을 배우셨습니다.]
"불사자의 눈?"
60레벨이 되고 불사자의 경험이 끝인 줄 알았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직업스킬을 하나 더 얻게 될 줄은 몰랐다.
[불사자의 눈.]
-종류 : 직업 전용 스킬.
-효과 : 불사자는 칠대종이 극에 달한 자들을 찾아내어 뺏을 수 있다.
칠대악룡의 끄나풀을 아마 이 스킬로 찾아내라는 것 같았다. 특히 마음에 드는 것은 뺏을 수 있다는 단어였다.
즉, 매번 스택을 채우기 위해 쓸데없는 노동을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퀘스트가 등록되었습니다.]
"무고한 이들의 운명을 지켜 주십시오."
알퐁스는 그 말과 함께 사라졌다. 굳이 뒤쫓지 않고 퀘스트를 확인했다.
[칠대악룡의 끄나풀.]
-당신이 제거한 악의 숨결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하나가 된 악을 재건하려는 이들을 찾아 섬멸하자.
-완료 조건 : 칠대악룡 끄나풀 제거.
-실패 조건 : 퀘스트 실패.
불사자의 눈이 없었다면 굉장히 막연한 퀘스트였을 것이다.
물론 모든 것이 순조로운 것은 아니다.
아웃사이더 시티에 진출하게 된 것은 좋지만, 처음에 공개된 것 이상의 정보를 확인한 적이 없었다. 이건 어쩔 수 없이 히든 레코드에서 돈을 좀 써야만 할 것 같았다.
직원이 아니니 DC를 바라는 것도 무리다.
"일단은 나가시죠. 아웃사이더 시티에는 본교의 신전이 있지만, 이번에는 그곳을 피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좋은 생각이다."
요한이 드디어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비밀통로로 가자 평소보다 긴 로딩이 되었다. 끝나고 드러난 것은 어둡고 비가 계속 내리는 우중충한 도시의 한복판이었다.
[아웃사이더 시티에 도착했습니다.]
"드디어 세 번째 도시다."
뉴 알론을 떠나 각 도시에 진출한 유저들은 이제 꽤나 되지만, 또 다른 곳에 당도한 유저들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한을 따라 도시외곽의 허름한 여관에 터를 잡았다.
게임은 대기상태에 걸어 두고 히든레코드에서 아웃사이더 시티에 대한 정보를 깡그리 긁어모았다.
아웃사이더 시티는 뉴 알론보다 더 다양한 종교가 모여 있었는데 특히 인간중심이 세를 강하게 했다.
아웃사이더 시티가 범죄자 혹은 추방자들의 도시지만, 이곳을 갱생시키기 위해 많은 종교인들이 찾아왔다는 설정이다.
물론 오크들 일색인 오크펠슨이나 드워프로 가득한 마인시티를 생각하면 아웃사이더 시티의 NPC 대부분이 인간이라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문제는 뉴 알론보다도 더 빡빡한 도시라는 점이다. 치안이 나빠 보이는 것과 달리 길거리에 쓸모가 없는 아이템을 버리기만 해도 벌금을 물 정도라고 한다.
"그러면 어디로 가야 하나."
해외의 정보를 찾으면 다른 곳과 달리 길드가 아니라 종교시설에 의해 퀘스트가 주로 진행이 된다고 했다.
알퐁스의 말을 생각하면 데스티아 여신교의 신전도 쉽게 들리지 못하는 나로서는 뼈가 아픈 일이다.
그래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지 도시 외부에서 퀘스트를 진행하면 된다고 했다.
한번 도시 전체를 둘러서 지도를 밝힌 다음에 불사자의 눈으로 칠대악룡의 추종자들을 찾아야만 한다.
"저도 아웃사이더 시티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다시 게임에 접속하자 요한이 먼저 자리를 비웠다.
[카카카칵! 여기는 새로운 도시다!]
그간 모습이 보이지 않던 임프가 나타났다.
과연 여기서 이놈을 데리고 다녀도 되는 것인가 고민이 되었다.
전작 기준으로도 악마에 대해 관대한 종교가 없던 것으로 알아서다.
[걱정마! 안 들킬 거야!]
임프는 방구석에 널부러진 포대기 하나를 뒤집어썼다.
꼬리만 감추면 장난꾸러기 아이 정도로 보일 체구기는 했다.
만약 이 녀석으로 문제가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퀘스트가 새로 생길 것 같았다.
여관을 나와 아웃사이더 시티의 광장을 부활장소로 정했다.
그 뒤부터는 기약 없는 걸음의 연속이었다.
오크펠슨처럼 누가 시비라도 걸어오나 싶었지만, 이 도시는 타인에게 조금의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간혹 경비병들에게 잡혀서 벌금을 내고 쩔쩔매는 소시민들이 보일 뿐이었다.
[여기 뭔가 고향생각나네!]
삭막한 도시를 임프는 오히려 반겨했다.
"다 돌았네."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건물 내부를 제외하고 다 지도를 밝혔다.
그런데도 불사자의 눈이 발동하는 상대는 보이지 않았다.
[재! 냄새난다!]
뒤따라서 오던 임프가 갑자기 옷깃을 잡아당겼다. 놈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경비병들의 눈을 피해 골목으로 들어가는 사내들이 보였다.
"오?"
그중의 하나에게서 검은색 오오라가 보였다.
이게 불사자의 눈이 발동한 효과인 것 같았다. 발소리를 죽여 조심스럽게 골목으로 향했다.
막다른 골목에는 네 명의 사내들이 있었다.
불사자의 눈이 발동한 사내를 세 명이 둘러싸고 있었다.
"정말 이 물건이 확실한 거지?"
"이 교전이 맞는 거요?"
"그냥 낡은 책인데."
셋은 의문을 표했다. 그에 낡은 책을 든 사내가 고래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리를 감시하는 눈들이 너무 많으니 그렇잖소. 이 책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모르는 것이오?"
"뭐. 그야 그런데……."
"너무 낡은 책이라서 그렇지."
"내용은 확실하겠지?"
세 명은 누그러진 기색으로 책을 받았다.
"이 진실된 성전을 읽고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될 것이오. 절대 다른 이들에게 알려져서는 안 될 것이오."
성전이라고 말하는 책을 준 후에 사내는 골목 바깥을 나오려고 했다.
저 만남을 없앨 수 없다.
막다른 곳이니 저들을 모조리 잡아서 사태의 전말을 알 수 있다.
"나랑 이야기를 좀 하지?"
"……!"
내가 나타나자 다들 놀라 소리도 내지 못했다.
불사자의 눈에 발동된 사내는 이를 악물고 내게 달려들었다. 손목 밑에 숨겨 준 단검을 꺼내 찌르는 폼이 암살자에 가까웠다.
카가가가각!
"억!"
물론 그의 공격보다 내 역섬기검이 더 빨랐다. 검기에 맞은 사내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사아아아아.
그의 몸에서는 검은색 기운이 피어올라 내게로 스며들었다.
[교만이 상승합니다.]
단 한 줄의 알림이지만 교만의 스택이 최대치인 100까지 차올랐다. 본래 83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로 효율적인 싸움이었다.
문제는 전말을 파악하기 전에 죽었다는 점이다.
"거기! 무슨 소란이냐!"
어쩔 수 없이 남은 셋에게 추궁을 하기도 전에 뒤에서 경비병들이 나타났다.
"살인사건이다!"
"저놈을 잡아라!"
"이상한 책을 거래해서 잡았어요. 오히려 정당방위라고요."
경비병들이 즉각 내게 달려들자 반항하지 않고 두 손을 들어 올렸다.
경비병은 나와 죽은 사내를 번갈아보더니 구석에서 벌벌 떠는 이들을 포박했다.
"히익! 살려 주십시오!"
"우린 아직 안 읽었다고요!"
"안 봤어요! 안 봤다고!"
세 명의 사내들은 공포에 젖은 상태로 끌려갔다.
경비병들은 날 깔끔하게 무시한 것이다.
[야! 이거 주웠어!]
그 사이에 임프가 문제의 물건을 주웠다.
진실된 성전이라던 이 낡은 책이 어떤 것이기에 이 사단이 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