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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은 옷을 입지 않아-128화 (128/201)

제128화 고인물은또잡는다.

[열파창 : 야. 원숭이들 미친 것 아냐?]

투사길드로 가는 와중에 열파창에게서 귓말이 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종유석 동굴의 좁은 통로에서 고생 중이라고 했다.

퀘스트 위치와 공략에 대해서 알려줬다지만, 역시 최상위 랭커 3인방답게 빠른 속도였다.

내가 겪었던 고충들을 생각하면 속이 쓰릴 정도다.

[썩이나감 : 새끼 원숭이 먼저 죽여서 하면 편하지 않습니까?]

[열파창 : 그게 더 어려워. 독고무적이 방어스킬로 그냥 밀고 들어가서 겨우 깼다고.]

[썩이나감 : 대왕 원숭이는 주의한 패턴 꼭 지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고생해요.]

어쨌든 저들이 펫을 얻는 과정까지 순조롭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썩이나감 : 펫을 얻는 퀘스트 루트 곧 팔겠습니다.]

[빨간약파란약 : 그게 정말입니까?]

[썩이나감 : 예. 제가 아는 사람들이 펫을 얻는 것이 확정되면 팔도록 하죠.]

[빨간약파란약 : 따로 VIP제도를 유지하는 점은 우려스럽습니다만.]

[썩이나감 : 전 전속이 아니니까요. 오히려 거래를 숨기고 뒤통수를 치는 것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빨간약파란약 : 알겠습니다.]

빨간약파란약으로서는 아쉽겠지만 랭커 3인방이 펫을 먼저 얻더라도 크게 손해는 아닐 것이다.

[빨간약파란약 : 해외에서도 임프 챌린지라도 석림을 공략하기 시작했다는 것만 알아주십시오.]

빨간약파란약은 어지간히 다급한 모양이었다.

저번에 푼 정보의 조금만 풀었음에도 엄청난 반응이 일어났다.

업계를 떠나 커뮤니티 전체에서 펫에 대한 정보를 갈구하고 있었다. 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남들의 손에 먼저 풀린다면 아쉬운 일임은 틀림이 없었다.

[썩이나감 : 한국 랭커 1위부터 3위까지의 파티입니다. 제가 한 퀘스트를 실패할 것 같지 않네요.]

해외의 수많은 유저 중에서 누군가는 내가 펫을 얻은 경로를 따라가고 있을 지도 모른다. 혹은 임프가 아닌 다른 펫을 얻는 방법으로 가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맨땅에서 헤엄을 치는 것과 이미 누가 다녀간 길을 가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썩이나감 : 내기하시겠어요?]

[빨간약파란약 : 아닙니다. 고객님을 믿습니다.]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불안함을 못 버리는 것 같았다.

그에 대해서는 신경을 접어뒀다.

[시기가 상승합니다.]

[인색이 상승합니다.]

임프를 데리고 다니는 것이 다른 이들의 감정을 점점 더 건드리는 것 같았다.

칠죄종 스택이 알아서 쌓이니 나로서는 전혀 나쁠 것은 없다. 오히려 눈이 마주치는 이들에게 웃는 낯으로 살짝 고개를 끄덕여주니 스택의 상승세는 가팔라졌다.

"B등급 용병이군. 그러면 우리도 B등급 투사로 대우를 한다고."

투사길드장은 나를 보자마자 대결목록을 갱신해줬다.

"B등급 투사와 동등한 대우인가요?"

"그건 아니다."

"그러면 B등급 투사가 되어야겠네요."

"인간 놈이 제법 오크스럽군."

투사길드장은 마음에 들었는지 내 어깨를 강하게 두드렸다. 이 못된 손짓은 근력이 센 NPC들이 가지는 특징인 것 같다.

[B등급 투사 시험.]

-B등급 투사가 되기 위해서는 그만한 위력을 보여 줘야만 한다. 투사길드장이 지정해 주는 대결에서 승리하자.

-완료 조건 : 대결 승리(0/3).

-실패 조건 : 대결 패배(0/3).

투사길드라서 그런지 B등급이 되기 위한 것도 투기장의 대결이었다.

"이 세 가지다. 해 봐."

투사길드장이 세 개의 대결을 지정했다.

첫 번째는 외눈박이 트롤 레이드. 이미 상대를 해 본 놈이니 상대를 하는 것에 별다른 부담감은 없었다.

두 번째는 C등급 오크투사 1vs3 대결이었다. 이것도 PvE로 60레벨 이하의 오크투사라면 싸우는 것에 무리는 없다.

그보다 신경이 쓰이는 것은 마지막에 자리한 대결이다.

[C등급 투사 1vs1 대결.]

이건 다른 서버의 유저와 매칭이 되는 대결이었다.

"이거 바로 됩니까?"

"대기를 걸어줄 수 있네. 연락이 오면 바로 와야한다고?"

"다른 대결 진행 중일 때는요?"

"그건 괜찮아."

"그러면 예약 부탁드리죠."

투사길드장에게 1vs1 대결을 맡긴 다음에 선택을 한 것은 외눈박이 트롤 레이드였다.

[퀘스트가 등록되었습니다.]

"해 보라고. 젊은이."

투사길드장은 곧바로 대결을 성사시켰다.

[외눈박이 트롤 레이드.]

-외눈박이 트롤은 그 강력함으로 인해 누구도 쉽게 덤비지 못한다. 놈을 이겨내어 당신이 강자로서 자격이 있음을 증명하자.

-완료 조건 : 외눈박이 트롤 레이드 성공.

-실패 조건 : 플레이어 사망.

외눈박이 트롤이 상대라면 오히려 반가울 정도다.

[어? 나 못 간다!]

뒤를 졸졸 따라오던 임프는 투기장 입구에서 더 들어오지 못했다.

투명한 벽에 막혀서 마치 마임을 하는 같아서 처음에는 장난이라도 치는 줄 알았다.

[으갸갸갸갹!]

"진짜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임프를 잡아당겼지만, 놈은 투명한 벽을 통과하지 못해 볼썽사나운 꼴로 비명만 질렀다.

투기장에는 펫을 대동하지 못한다는 것은 꽤나 중요한 정보다.

나 같은 경우는 샌드 웜 레이드 같은 것이 뜨면 투기장에서는 무조건 포기해야만 될 수 있다.

"악마주인 왔다!"

"대주먹이다!"

투기장에 들어서자 군중들은 나를 보며 환호했다.

쿠구구구궁!

뒤이어 투기장의 문도 닫혔고 임프의 모습은 아예 볼 수도 없었다.

[구워어어어어!]

맞은편의 문도 열리며 외눈박이 트롤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갑으로 손이 묶인 놈은 어른 팔뚝만한 쇠사슬에 목이 묶인 채로 오크투사들에 의해 끌려왔다.

철그럭.

투사 하나가 수갑을 풀자마자 외눈박인 트롤은 그를 두 손으로 잡더니 그대로 물어 뜯어버렸다.

"제기랄! 물러나!"

"이 녀석이 며칠 굶겼다고!"

다른 투사들도 황급히 도망치려고 했지만, 그건 무리였다. 외눈박이 트롤은 그들을 붙잡아 포식을 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정해진 수순인지 내 두 발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와아아아아아아!"

그 잔혹한 광경에 군중들은 투기장이 울릴 정도로 큰 함성을 내질렀다.

콰드드득!

[그워어어어어!]

포식을 끝내 공격속도 버프를 받은 외눈박이 트롤이 자신의 목을 옥죈 쇠사슬을 뜯어내고는 내게 집어던져졌다.

두 발이 움직여진 것은 이때부터였다.

콰아앙!

몸을 틀어 백스탭을 사용했다.

내가 있던 곳을 쇠사슬 뭉치가 부수고 지나갔다. 무적판정이 없는 구르기 따위를 썼으면 꼼짝없이 죽었을 거다.

쿵! 쿵! 쿵!

외눈박이 트롤은 곧장 나에게로 달려왔다. 몇 걸음 거리를 좁힌 녀석은 그대로 땅을 박차 올랐다.

내가 놈에게 얻은 스킬인 지면강타가 분명했다.

공격범위를 알고 있으니 어설프게 피할 생각은 없었다. 좌측으로 방향을 아예 틀어서 피했다.

쿠우우웅!

외눈박이 트롤의 거대한 몸뚱이가 지면에 충격을 주었고 먼지구름 속으로 역섬기검을 펼쳤다.

카가가각!

구름을 가른 검기는 그대로 외눈박이 트롤의 가죽에 상처를 남겼다.

외눈박이 트롤은 피와 살점이 남은 송곳니를 드러내며 다가와 하늘 높이 두 주먹을 들어올렸다.

쾅! 쾅! 쾅!

두 주먹으로 연신 바닥을 두들기자 시공간이동자의 블링크로 놈의 뒤로 피했다.

[결사항전의 영역을 사용합니다.]

[스피어마스터의 소울을 사용합니다.]

두 개의 스킬을 사용함과 동시에 공격을 멈추지 못하는 외눈박이 트롤의 등을 난도질했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 외눈박이 트롤이 상체를 들었고 내게 손을 뻗자 백스텝으로 뒤로 물러나 잡기를 피했다.

[그어어어어!]

한 대도 맞지 않고 공격을 가하는 내가 얄미운지 녀석은 불만에 가득찬 고함을 질렀다.

"잘 한다! 대주먹!"

"외눈박이 트롤도 잡으라고!"

일방적으로 외눈박이 트롤이 피해를 입고 있음에도 한 대만 맞아도 죽는 내가 인상적인지 관중들은 나를 환호했다. 가끔 수비적으로 싸우면 야유소리가 나오는데 적어도 이번 대결에서는 들을 일이 없을 것 같다.

쾅! 쾅! 쾅!

외눈박이 트롤은 다시 다가와 주먹질을 했다.

이번에는 시공간이동자의 블링크가 없기에 슬링으로 무기를 바꾸어 멀리서 쇠구슬을 던져댔다.

외눈박이 트롤에게 많은 데미지를 주기보다는 체력회복만 막겠다는 입장이었다.

"우우우우! 뭐하는 거야!"

"목숨 걸고 싸우라고!"

슬링으로 안전거리를 확보하며 견제를 하다 보니 군중들은 금방 나를 비난했다. 목숨을 거니까 이렇게 안전하게 싸우는 걸 모르는 NPC들이 불쌍할 뿐이다.

만약 무대 옆에 바로 벽이 있거나 혹은 구조물이 있다면 벽타기를 통해 더 적극적으로 공격을 하겠지만, 오크펠슨 투기장은 그걸 활용할 공간도 없었다.

쿠우우웅!

외눈박이 트롤이 다시 땅을 박차고 뛰어 올랐다.

아까처럼 똑같이 공격을 피했고 주먹으로 나를 내려치는 패턴이 나오자 시공간이동자의 블링크를 써 뒤로 이동했다.

역섬기검. 그 뒤의 본 브레이커로 데미지를 입히자 놈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절반 이하로 깎인 체력이 다시 차오르니 검에 독약을 바르고 활짝 열린 가슴팍을 헤집었다.

결사항전의 영역이 없어 데미지는 그보다 못하지만 독약으로 인해 체력회복의 속도를 더디게 만드는 것은 성공했다.

[그오오오오오!]

피가 섞인 침을 뚝뚝 흘리며 외눈박이 트롤은 연신 내게 손을 뻗었다. 단순무식한 잡기패턴이지만 워낙 거구인 트롤인 덕분에 가까이 다가가기는커녕 피하는 것에도 조심스러웠다.

결국 구석에 몰릴 때는 2단점프를 써서 간신히 손길을 피했을 정도였다.

쾅! 쾅! 쾅!

내가 손바닥 위를 빠져나가자 외눈박이 트롤은 분풀이를 하듯이 주먹질을 했다.

쿨타임이 돌아온 시공간이동자의 블링크를 쓰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다시 구석에 갇히게 된다. 딜이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죽게 되니 마나포션을 마시며 놈을 중앙까지 유도했다.

"우우우우! 그냥 죽어! 겁쟁이 새끼야!"

"저런 놈이 대주먹? 장난치냐!"

"그냥 깨끗하게 뒤져라! 나약한 인간 놈아!"

군중의 열화와 같은 성원은 내가 아주 정상적으로 플레이를 하고 있음을 깨닫게 했다.

또한 외눈박이 트롤의 눈에 붉은 점이 두드러졌다. 약점파악으로 인해 저길 맞추면 금방 끝이 보인다.

쿠우우웅!

외눈박이 트롤이 다시 땅을 박차 올랐다. 그 거구가 땅에 박히며 일어나는 충격파를 물러나 피한 뒤에 역섬기검을 사용했다.

목표는 바로 녀석의 눈이었다.

카가가각!

"쳇."

외눈박이 트롤이 살짝 고개를 숙이는 바람에 검기는 놈의 눈이 아닌 이마에 상처를 남겼다. 그래도 체력이 부족한 녀석은 뒤로 휘청거렸고 시공간이동자의 블링크로 다시 뒤를 점해 본 브레이커를 사용했다.

콰드드드득!

[그어어어어!]

검은 녀석의 오금을 정확하게 때렸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외눈박이 트롤이 두 무릎을 꿇었다.

[결사항전의 영역을 사용합니다.]

[스피어마스터의 소울을 사용합니다.]

다시 쿨타임이 찬 남은 스킬들을 키며 20%의 체력도 남지 않는 외눈박이 트롤을 몰아 붙였다.

"와아아아아아!"

10분이 넘는 시간 동안에 거둔 승리에 군중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환호를 했다.

그에 적당하게 팔을 흔들면서도 입에서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포식으로 공격속도 버프를 받은 놈이라지만, 임프가 없다는 것이 꽤나 레이드에 힘이 들었다.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승리를 한 뒤에 투기장을 나서자 곧바로 임프가 나를 반겼다.

[카악! 이겼냐! 잘했냐!]

"기다리느라 수고했다."

놈에게 스태미나를 조금 회복시켜주는 치즈 한 덩이를 던져줬다.

임프는 그걸 양손으로 잡아 우걱우걱 씹으며 내 뒤를 쫓았다.

"벌써 이긴 거냐? 대단해. 투기장이 모두 네 이름만 불렀다고!"

"다음은 이걸로 갈게요."

길드장의 말을 귓등으로 넘기며 나는 다음 대결 퀘스트를 선택했다.

[C등급 오크투사 1vs3 대결.]

-동급의 투사 셋은 감당해야 그 위를 노릴 수 있는 법이다. 열심히 승리해 18명까지 상대하도록 노력하자.

-완료 조건 : 대결 승리.

-실패 조건 : 대결 패배.

예약을 건 일본서버 유저와의 대결은 잡히지 않았으니 지금 선택은 이것 말고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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