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3화 고인물은방어한다.
내가 정보 및 공략 정보를 판다면 최우선적으로는 당연히 히든레코드를 통해서다.
여러 국가의 언어로 알아서 번역을 해주기 때문에 여기서 오는 수익은 무시할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해 그걸로 이사를 오고 그걸로 부모님 침대를 살 수 있었다.
나머지는 아이템 판매비용은 적금이라도 들기 위해 건드리지 않고 쓰고 있었다.
고객을 가려서 받아도 내가 먹고 사는데 지장은 없었다.
"VIP가 뭔데? 너 스펠링은 알고나 말하는 거냐? 못 배워서 템이나 파는 놈이."
"재 그거네. 돈 더 받으려고? 그래라. 몇 푼 더 줄게."
"팬티만 입고 다니던 놈이 출세했네. 목이 힘 똭 주고 말이야."
내 대답은 눈앞의 이들을 자극시킨 모양이다. 얼굴을 붉히고 삿대질을 해댔고 그걸 구경하던 이들은 키득거리며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다.
언제나 느낀다.
내 비극은 남들에게는 희극이다.
"정보가 필요하시면 히든레코드에 문의해 보시죠."
"거기가 뭔데 좃밥아."
"펫 정보나 달라고 사 준다니까?"
"너 버그 써서 그러지?"
저 의미가 없는 이들과 거리를 두려고 해도 아스파트 막 뱉은 껌처럼 질척거렸다.
"즐겜이나 하세요."
최대한 친절하게 그들을 지나치려고 했지만, 그중 하나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용산이라도 온 것처럼 가격 먼저 말해줘? 아니면 그놈의 VIP가 뭔데 그렇게 튕기는 건데?"
내가 원하는 답을 해 주지 않으니 꽤나 부아가 치민 모양이다.
"엠페러나 흑군 개들이랑 친해지니까 세상 무서운 줄 모르지?"
"템팔아 잘 생각해라. 너 잘 모르나본데 우리도 만만치가 않아. 우리 혈맹 다 데리고 와?"
다른 둘도 이미 흥분해서 나를 둘러싸려고 했다.
내가 왜 이들을 기피하는 것은 올드유저라면 알 거다. 무적 길드라고 엘리멘탈 소울1 시작 때부터 흔히 말하는 개꼬장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무적 길드는 다른 길드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사냥 및 보스 통제를 했고 툭하면 주변의 유저들 모두를 죽이는 막피를 유행시키던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 짓거리가 너무 심해서 결국 다른 길드들에게 제압을 당했지만, 엘리멘탈 소울1이 리마스터가 되면서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했다.
"그러던가."
놈들이 다시 게임을 해도 두렵지가 않다.
PK 페널티가 전작보다 약하기에 아예 성장하기 전에 짓밟아줄 자신감도 있었다.
"우리를 이딴 식으로 대해? 쪽을 준 대가를 치르게 될 거다."
"그 새끼들이랑 틀어지면 넌 끝이야."
"너 우리가 접을 때까지 괴롭힌다."
무적 길드 출신의 유저들이 이를 갈아도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승냥이도 아닌 동내 들개에 불과한 놈들이니까.
[스윗 : 본사와 계약을 만료한 인물이 썩이나감님을 괴롭히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히든레코드에 불만이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연락을 주십시오.]
이때를 기다렸는지 다크로얄의 스윗이 다시 귓속말을 보내왔다.
궁신이 불쌍하다는 느낌은 든 적이 없다. 내게 개수작을 부렸으니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다크로얄의 방식은 여전히 마음에 안 들었다.
* * *
말을 몰아서 남쪽으로 달리면 협곡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는 두 개의 부족이 있다.
서쪽이 검은두건 오크부족이고 동쪽이 바위피부 오크부족의 진영이었다.
두 부족은 절벽 아래의 강가의 소유권을 두고 다투고 있는데, 강에 목을 축이러 온 몬스터들로 인해 그 분쟁을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 있었다.
내 목표는 그들이 분쟁을 끝낼 동안에 방어선을 지키는 거였다.
[분쟁의 방어선에 입장하시겠습니까? Y/N.]
어제 정보가 올라온 곳이니 이곳을 찾는 유저는 별로 없었다. 공략에 난이도가 있으니 이곳을 피하는 거다.
[던전의 권장조건에 미달됩니다. 그럼에도 입장하시겠습니까? Y/N.]
이 알림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내 권장레벨에 맞는 던전에 들어가면 어떤 광경이 펼쳐질까이다.
아마 중간보스나 최종보스를 제외하면 죄다 일반공격 한 번에 끝날 것 같았다.
[당신의 도전은 소중하고 가치가 있습니다. 그래도 다음 사람이 따라하지 않죠. 소울리스 CEO 대니얼 올림.]
로딩화면 중에 어쩐지 뼈가 아픈 메시지가 보였다. 진지하게 대니얼의 얼굴을 보고 진짜 네가 작성했는지 묻고 싶은 마음 뿐이다.
"바위피부 이 놈들아! 머드팩이나 마저 바르고 여기서 꺼지라고!"
"그 더러운 두건 빨려고 물 더럽히지 말고 너네나 꺼져라. 썩은내 나니까!"
서로 절벽에 선 오크들은 서로 돌팔매질을 하며 욕설을 섞었다.
[절벽을 내려가 협곡의 방어선에 합류하십시오.]
지금 내 위치는 바위피부 오크족의 진영이었다.
검은피부 오크족의 조롱처럼 바위피부 오크들은 전투 전에 진흙을 몸에 바른다고 했다.
진영을 둘러보면 다들 진흙을 바르지 않는 이가 없었다.
[재내들 다 시끄럽다!]
임프조차도 귀가 아프다며 찡얼거렸다.
공략자의 말로는 해당 퀘스트에서 오크들에게 말을 걸어도 달라지는 결과가 없다고 했다.
절벽은 아찔할 정도로 높았지만, 밑으로 내려갈 수 있도록 밧줄을 나무에 묶어 둔 상태였다.
밧줄을 손에 단단하게 묵고 절벽을 천천히 밟으며 내려갔다.
[제대로 가라. 인간! 아프다! 아프다아!]
절벽을 내려가면서 예상했던 난관은 몬스터의 난입이나 발을 잘못 디뎌서 낙사를 하는 거였다.
지금처럼 임프가 내 머리를 붙잡고 벌벌 떠는 것은 예상에 없었다.
내 두 발이 안전하게 바닥에 닿자 임프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혼자 떠들고 다녔다. 그걸 뒤로하고 앞서 대기하고 있는 용병들이 있는 방어선으로 갔다.
먼저 파견된 오크펠슨의 용병들은 부서진 목책을 수리하고 있었다.
강이 얕아서 방어선을 구성하는 것에는 무리가 없었다.
"인간 신입이라더니 정말이군. 여기로 와서 일 좀 하라고!"
이번 의뢰를 책임진 용병인 B등급 용병 칼튼이 명령을 했다.
"여기여기에 함정 설치해."
[알았다!]
임프에게는 목책 정해진 지점에 함정을 성치하게 명했다. 그러는 동안에 목책을 부지런하게 수리했다.
"더 못 참는다! 싸우자! 이 버러지들아!"
"다 내려가자. 저놈들 죽일 거다!"
두 부족의 오크들이 참지 못하고 절벽을 기어 내려왔다. 나처럼 밧줄을 탄 놈들도 있지만 자기 성미에 못 이겨서 맨손으로 내려오다가 떨어지기도 했다.
강에 뛰어들어 오크들은 서로를 향해 주먹질을 했다.
왜 무기를 들지 않냐고 하면 그랬다가는 피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몬스터의 수가 너무 많아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주먹질이라도 서로 뒤엉켜서 싸우면 곧 피가 나기 마련이다.
이 퀘스트의 시작은 거기부터다.
[카카카칵! 잘 싸운다! 재밌다!]
임프는 그 난투를 보면서 손뼉을 치며 웃었다.
오크 중 하나가 억 소리를 내며 무너지자 아예 바닥에서 뒹굴 정도였다.
[방어선을 지켜내십시오.]
목책의 수리도 끝나고 목표도 바뀌었다.
임프가 웃음을 멈추고 있지 않으니 피를 흘리는 오크들이 늘어났다는 반증이다.
두두두두두!
협곡 안이 울리기 시작했다. 뿌연 먼지구름이 피어나고 그 속에서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오크펠슨의 들소 무리였다.
레벨은 65로 저 달려오는 몸뚱이에 속도가 실리면 그것만으로도 버겁다.
저건 랭커급 탱커도 막는 순간에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임프."
[카카카카카칵! 재들 봐봐! 카카카카칵!]
"불쏘라고. 이놈아."
아직도 오크들의 싸움을 보며 낄낄거리는 임프의 뒷목을 잡아 들렸다.
목표는 임프에게 미리 설치를 시킨 함정들이다.
콰과과광!
임프가 화염구를 던지자 기름에 불이 붙었다. 확산된 불길에 주변의 화약통을 비롯해 폭탄들이 연쇄폭발을 시작했다.
오크펠슨의 들소들이 달려오던 폭염에 휩쓸렸다. 제일 옆에서 피해를 입은 놈은 쓰러졌지만, 나머지는 그대로 달려들었다.
"창을 들어라아아아!"
칼튼의 지휘에 맞춰 용병들이 창을 들었다. 창대를 바닥에 지지하고 목책에 얹게 했다.
콰아앙! 콰아앙!
오크펠슨 들소들이 파도처럼 목책에 들이받았다. 용병들의 창이 두터운 가죽을 뚫고 살에 박혔다.
들소들은 속도를 잃었고 피를 토하며 거칠게 머리를 흔들었다.
목책의 내구도는 빠르게 떨어졌다.
독약을 검에 바른 뒤에 역세기검을 썼다.
목책 위로 머리를 들이밀던 오크펠슨 들소 하나가 그걸 맞고 휘청거렸다.
용병들은 체력이 떨어진 놈을 난도질했고 축 늘어져 목책에 몸을 기댄 몸뚱이에 그대로 본 브레이커를 사용했다.
오크펠슨 들소의 체력이 워낙 높아서 두 번의 공격을 더해야 죽었다.
"왼쪽을 도와! 뚫린다!"
뒤에서 칼튼이 명령을 내렸다. 용병들은 당장 앞을 막기에 급급했기에 내가 그쪽으로 달려갔다.
내구도가 바닥이 난 목책에 무려 두 마리가 있다.
[결사항전의 영역을 사용합니다.]
스킬을 통해 버프가 된 공격속도는 오크펠슨 들소가 부수기 전에 숨통을 끊어야만 했다.
"뭐지? 힘이 솟는다!"
"놈들을 막아라아아아!"
주변의 오크용병들도 버프를 받자 힘을 내기 시작했다.
스킬이 빈 상태였으나 거기서 세 마리의 오크펠슨 들소들을 사냥했다.
콰드드득!
중앙의 방어선의 목책이 오크펠슨 들소 하나에 의해 방어선이 뚫렸다.
레벨 66인 오크펠슨 대장들소였다.
드디어 목책 너머러 앞발을 들이민 오크펠슨 들소대장은 자신들을 공격했던 용병들에게 칼날보다 날카로운 뿔을 들이밀려고 했다.
첫 번째 방어는 저 녀석까지 죽여야만 한다.
"임프!"
[카아아악! 저 뿔 탐나!]
화염구만 뒤에서 던지던 임프가 교란을 사용했다.
오크펠슨 들소대장의 공격명중률이 떨어지며 뿔은 위태롭게 옆을 스쳤다.
푸욱! 촤악!
나는 앞으로 달려가 그 우람한 뒤태에 평타캔슬로 찌르고 베어냈다.
[음머어어어!]
오크펠슨 들소의 어그로는 곧바로 나에게 쏠렸다. 먼저 놈은 뒷발로 나를 걷어차려고 했다. 사전에 공격모션을 파악하고 있던 나는 앞발에 무게를 싣고 머리를 숙이는 순간에 백 스탭을 사용했다.
퍼어엉!
엄청난 힘을 담은 뒷발에 공기가 터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풍압도 어찌나 센지 머리카락을 어지럽혔다.
뒤이어 오크펠슨 들소가 몸을 틀며 머리를 들이밀었다. 저검 감당할 도리가 없기에 구르기로 피했다. 아직 공격스킬들이 쿨타임이 돌아 믿을 수 있는 것은 내 몸뚱이 뿐이었다.
두두두두두!
오크펠슨 들소는 나를 스쳐지나갔다. 그대로 선회해서 또다시 돌격해 왔다.
카가가가각!
쿨타임이 돈 역세기검을 사용했다.
목표는 녀석의 무릎이었다. 아직 약점파악이 발동하지 않았지만, 충분한 데미지를 입은 오크펠슨 대장들소의 속도가 줄었다.
"설치 다 했어?"
[물론이다!]
그사이에 미니맵에 핑을 찍은 곳에 임프가 함정 설치를 끝냈다.
난 벽타기로 목책을 밟으며 강을 건넜다.
오크펠슨 대장들소는 쫓아오며 건너다 강가에 발을 들이 밀었다.
푸욱!
[크허엉!]
처음에 발동이 된 것은 거대 곰덫이었다.
오크펠슨 대장들소가 함정을 뿌리치며 달려왔지만, 속도는 확연히 느려졌다.
[이거 먹어! 두 번 먹어!]
임프는 전기의 구슬을 먼저 던졌다.
파지지지직!
물가에 있으면 전기의 구슬은 피해량이 높아지는 것만이 아니라 조금 더 높은 확률로 마비에 빠지게 했다.
오크펠슨 대장들소가 딱 그 경우였다.
[얼음 없다! 떨어졌다!]
임프는 뒤이어 빙결의 구슬을 던지다가 빈손을 보였다.
드디어 인벤토리에서 악성재고로 남아있던 구슬 소모품들을 다 쓴 것이다.
빙결의 구슬 또한 강가에 쓰면 이동속도를 더 낮춰 준다.
오크펠슨 대장들소는 어린아이 걸음마처럼 느려진 속도로 오다가 그마저도 못해 제자리에 섰다가를 반복했다.
콰드드드득!
함정과 구슬들로 인한 효과가 효과를 다하고 강가에서 막 발을 뗀 놈의 이마에 그대로 본 브레이커를 사용했다.
쿠우우웅!
오크펠슨 대장들소는 비명도 내지 못하고 자리에 뻗었다.
[이 뿔 나 줘라! 나 쓴다!]
죽은 몬스터들의 전리품을 수집하다 들소의 뿔이 마음에 들었는지 임프가 그걸 머리에 대며 소리쳤다.
"이봐! 부상자는 뒤에서 회복하고 나머지는 목책을 수리해! 시급하다고!"
1차 방어가 무사히 끝나자 칼튼은 얼른 명령을 내렸다.
"이거 함정 추가로 줄 테니까 설치해."
거기에 합류하는 나도 임프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