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4화 고인물은승리자다.
"미친 놈. 그걸 해 내다니."
파티원들이 기다리고 있는 뉴 알론의 17채널, 제3구역의 광장. 거기로 부활한 나에게 돌아온 것은 열파창은 격한 칭찬이었다.
[도전과제, 뉴 알론의 수호자를 달성하였습니다.]
[도전과제, 내로남불을 달성하였습니다.]
"뭘요."
차원침략. 정확하게는 이세계 약탈을 막은 대가로 받은 것은 금화 30개와 마석 5개였다.
내가 고생을 한 것에 비하면 썩 알맞은 대가는 아니지만, 남는 시간에 한 노력이니 눈물 젖은 빵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 눈앞을 가린 알림들은 하나는 뉴 알론의 수호자라는 칭호와 함께 명성을 대폭 높여 주었고, 내로남불의 대가로는 탈것의 속도와 스태미나를 일시적으로 올려 주는 말먹이였다.
"잠시 이 친구들 회복 좀 시킬게요."
나를 따라다니는 고대오크전사들은 모두 빈사상태였다. 가까운 신전에 들러 치료를 받은 뒤에 도시 바깥을 나섰다.
"나눔합니다. 하나씩 받아가세요."
지금처럼 급하게 말을 타고 가야할 경우는 드물기에 말먹이 아이템을 들고 다니는 경우는 없었다. 그랬기에 파티원들도 굳이 거부하지는 않았다.
"뭘 한 거지? 커뮤니티에 이상한 사진이 업로드 되었었다."
"친구들인가? 다 맨발에 바지만 벗고 있더라."
"너는 왜 신발만 신었어?"
내가 오기 전까지 심심했는지 다들 질문을 던졌다.
거기에 대해서는 간략하게 어떤 전투를 치렀는지 설명해 줬다.
다들 섬광탄 부분에 대해서는 헛바람을 들이켤 수밖에 없었다.
시야가 한정된 상황에서 자신이 믿고 있는 정보가 틀어지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빠지는지 잘 알아서다.
[레이드알리미 : 3페이즈 입성입니다.]
[돔황챠 : 쪼렙들 튀어나와서 딜해라.]
[폭풍 : 랭커 다 뒤져요옷.]
전채채팅으로 세 명의 길드장에게 묻지 않아도 대략적인 레이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유저들의 수준이 전체적으로 높아진 덕분인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공략소도가 빨라지고 있었다.
다음에 나타난다면 일본서버의 침략이고 자시고 절망하는 산맥의 고대정령부터 밀어버리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싶었다.
지평선 너머에 필드보스가 보였다.
놈은 거대한 허물을 벗고 여섯 개의 팔로 공격을 가하고 네 개의 다리로 멈추지 않고 이동하고 있었다.
3페이즈에서 필드보스의 시야각은 120도로 확장되었다. 또한 여섯 개의 팔로 나무를 투창처럼 던져 대는 패턴은 레벨이 높은 유저부터 공격을 해 댄다.
우리 파티가 놈을 공격하려면 엄청 뒤로 돌아가야만 했다. 물론 그런데도 공격을 당할 것은 뻔했다.
콰아아앙! 콰아아앙!
거리가 가까워지는 와중에 절망하는 산맥의 고대정령이 던지는 나무에 높은 레벨의 유저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랭커들은 진즉에 뒤로 물러났고 원거리 딜러들이 계속 공격해 무너트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무릎을 노려!"
"약점이 저기야!"
지켜보고 있던 랭커들은 하나 같이 절망하는 산맥의 고대정령의 무릎을 가리켰다.
다들 약점파악 스킬을 익힌 만큼, 체력이 떨어져 가는 필드보스의 약점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다들 노련하게 움직이니 이번에는 랭커에 들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우린 진격한다."
"에?"
다른 이들이 좋은 의미로 예상을 벗어났다면 지금 독고무적은 정반대였다.
누구보다 계산적인 그였으니 필드보스가 무너진 다음에야 움직일 줄 알았었다.
중요한 점은 흑군도 당연하다는 듯이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거다.
잠시 뒤쳐진 상태로 나는 열파창을 봤다.
"…나도 몰라."
열파창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도 저 두 사람과 함께 레이드를 뛸수록 자신과 길드의 부족함이 무엇인지 절실하게 깨달을 것이다.
"잠시만요. 우리 길드장님 버프 좀 넣고 가실게요."
"비켜 주세요. 길드장님 좀 바쁘시거든요."
"귀신 잡는 해병대! 길드장 선배님 앞길 터라. 실시!"
"버프 준비해! 그냥 가시게 할 거냐!"
엠페러 길드원과 흑랑 길드원들이 다가와 각자의 길드장에게 힘을 실었다.
거의 모든 직업의 버프를 두르다시피 한두 사람의 돌진은 무서울 정도였다.
"넋 놓지 말고 따라와."
"딜 안 넣을 거야?"
둘은 뒤쳐진 나와 열파창에게 눈치를 줬다. 뜨끔한 나와 그는 말의 속도를 올려 급히 뒤를 쫓았다.
"방법 있어요? 저거 맞으면 아플 텐데!"
내가 불안함을 느낀 것은 독고무적의 이동동선이었다.
시야의 사각을 파고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정면돌파를 선택한 것이다.
예전의 독고무적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선택이다.
"내가?"
독고무적은 고개를 돌려 나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
랭커 중의 랭커.
전작과 달리 이번 작에서는 한국서버의 절반을 움켜쥐었다는 거대길드장의 여유가 보였다.
"아니면 나?"
흑군도 마찬가지로 여유를 보였다.
독고무적과 유일하게 경쟁할 수 있는 거목을 꼽으라면 당연히 그일 수밖에 없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유일한 경쟁자였다.
"결사항전의 영역은 잘 봤다. 나도 하나 보여 주지."
독고무적이 자신의 방패를 높게 들었다. 팔에 끼우는 카이트 실드는 백색에 푸른 무늬가 들어가 신비하다는 느낌을 주고는 했다.
전세계에서 그만이 가지고 있는 아이템으로 푸른 성기사단장의 방패라는 이름 이외에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그 장비였다.
엄청난 성능이 있을까 생각을 했지만, 차원침략자와 싸울 때를 생각하면 기댓값만큼 대단해 보이지는 않아 보였었다.
아아아아아!
갑자기 하늘에서 수많은 목소리의 화음이 들렸다. 빛이 독고무적이 들고 있는 방패를 내리쬐며 거대한 막이 생성되었다.
콰아아아앙!
절망하는 산맥의 고대정령이 힘껏 던진 나무는 그 방패에 맥없이 부서졌다. 거기서 놀란 점은 공격을 받은 대상은 독고무적인데 오히려 필드보스의 체력이 떨어진 것이다.
지금 시점으로 무적에 가까운 방어력일 뿐더러 상대에게 데비지를 그대로 반사한다.
단언할 수 있다.
저 스킬은 완전한 나의 카운터다.
독고무적은 두 번째, 세 번째 공격도 완벽하게 방어했다. 자신의 줬어야 할 데미지를 고스란히 받은 절망하는 산맥의 고대정령은 균형을 잃고 무너졌다.
파지지지직!
"내 차례다."
내가 결사항전의 영역을 쓰기 전에 흑군이 앞으로 뛰쳐나갔다.
말보다 더 빠르게 나아가는 그의 몸 전체에서 전기가 방출되고 있었다.
쩌저저저저저적!
흑군은 고속으로 달려간 그대로 절망하는 산맥의 고대정령에게 부딪쳤다. 그 거대한 몸집의 일부가 부서지며 남아 있는 체력도 급격하게 깎였다.
"도대체……."
체감 상으로 달려오는 자동차보다 빨랐다.
근거리에서 저걸 피할 방도는 없다. 또한 스치기만 하더라도 죽을 것이다.
"…괴물들이냐. 저 늙다리들."
거기에 충격을 받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랭킹 3위인 열파창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에게 랭킹 1, 2위와 3위의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다고 말할 것이다.
종이 한 장 차이이니 조금만 더 하면 넘어갈 수 있다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직접 목도하니 달랐다.
지금으로서 열파창은 절대 저 두 사람의 수준이 아니었다.
"안 잡을 거냐?"
"너네 몫 사라진다."
독고무적과 흑군이 다시 공격을 개시했고 나는 이를 악물며 그들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결사항전의 영역을 사용합니다.]
결국 저 두 사람 중에 한 명이 필드보스에게 가장 많은 데미지를 기록할 것을 확정지은 셈이지만, 순간 치솟은 질투심과 나에 대한 실망감을 억눌렀다.
저 능구렁이들이 나에게 모든 것을 말할 이유가 없다. 자신들끼리만 숨겨 둔 비밀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지금은 몰라도 멀지 않은 미래에서는 다를 것이다.
결국 저 스킬들을 과시하듯이 꺼낸 것에는 이유가 있을 테니까.
다른 셋에게 뒤쳐지지 않기 위해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고대오크전사들도 뒤늦게 와 맹공을 가했다.
뒤이어 합류한 유저들의 공격으로 절망하는 산맥의 고대정령을 공격했지만, 다시 시작된 공격에 우리 파티는 한 번 더 전멸했다.
열파창은 부활을 하자마자 두 사람에게 물었다.
"방금 전의 스킬들은 뭐지?"
"유니크 스킬이다."
"너도 곧 얻게 될 거야."
독고무적과 흑군은 자세하게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걸 보여 준 이유는요?"
"성능시험이다. 얼마 전에 얻었거든."
"만족스럽더라고. 결사항전의 영역보다는 쪼금 더 좋을걸?"
그래도 다행인 점은 내 질문에 최소한의 정보공유는 해 줬다는 거다.
유니크 스킬을 받는 방법이 오크펠슨에 존재한다는 거다.
"나도 곧 받겠군."
열파창의 꽁해 있던 표정이 조금이나마 녹았다. 두 사람과 그의 레벨차이는 없다. 행적을 되새기면 그 또한 저기에 뒤지지 않는 스킬들을 받게 될 것이었다.
그때 독고무적과 흑군을 보니 알 수 없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열파창은 유니크 스킬을 받기가 꽤나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 버렸다.
나 또한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파티는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방금 전에 보인 강력한 스킬에는 역시 쿨타임이 존재하는지 이번에는 독고무적이나 흑군이 정면으로 치고 달리지 않았다.
전처럼 측면과 후방으로 흩어지며 약점인 무릎을 맞고 무너지는 필드보스를 공격하는 식의 반복이었다.
아아아아아!
다시금 같은 패턴이 시작되었다. 온갖 버프를 받은 독고무적이 방패를 들어 올려 그 스킬을 시작했다.
절망하는 산맥의 고대정령은 연거푸 거기에 공격을 해 댔지만, 오히려 자신의 체력만 깎아 버리는 기현상을 만들어 냈다.
콰지지지직!
그 뒤에 흑군이 대지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무너지지 않고 똑바로 서있는 필드보스의 다리에 힘껏 주먹질을 했다.
쿠우우우우웅!
필드보스의 다리가 박살나며 그대로 뒤로 무너졌다.
다른 유저들의 수많은 공격이 누적되었다지만, 필드보스급의 몬스터가 일격에 다리가 부서지는 것은 소름이 돋는 광경이었다.
"네 차례다."
이를 악물고 열파창이 내 등을 밀었다.
저번 레이드에서 누구보다 뛰어난 기록을 세웠던 나조차도 질투가 느껴질 정도다.
지금까지 아무런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한 열파창의 속은 열불이 터질 것이다.
[결사항전의 영역을 사용합니다.]
나는 다시금 결사항전의 영역을 전개했다. 그 속에서 가장 분전을 하는 것은 열파창이었다. 그가 쉼없이 펼쳐내는 스킬은 유수와 같이 흘렀다.
그래서 스킬을 전개한 내가 그들에게 가려지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절망하라. 이 땅의 모든 것이여.]
이후, 두 번이나 같은 장면이 반복되자 절망하는 산맥의 고대정령은 끝을 고했다.
[절망하라.]
마지막 패턴대로 자폭을 시작하자 주변의 모든 것을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일대에 모인 모든 유저들이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독고무적이나 흑군마저도 팔짱을 끼며 다가올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콰아아아아앙!
절망하는 산맥의 고대정령의 몸에서 엄청난 폭발이 시작되었다. 광장에서 부활하자 필드에서 보였던 이들이 수십 명이나 보였다.
다들 각 채널별로 흩어져서 부활한 것이다.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어쨌든 필드보스를 잡았던 것이 되어서 관련된 퀘스트를 보고하기만 하면 된다.
주변의 유저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이번 레이드에 대해 인상적인 것들을 토론했다.
"엠페러 길드장의 그 스킬은 뭐였지?"
"흑랑 길드장도 압도적이었어."
이야기의 귀결은 자연스럽게 우리 파티의 가장 강한 두 사람에 대한 것이었다.
필드보스에게 비교적 가까이에 있던 유저들만 하더라도 너무나 쉽게 끝난 레이드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을 터였다.
독고무적과 흑군이 보인 스킬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썩이나감이 생각보다 약하구나."
"열파창도 3위 그릇은 아니네."
뻔히 들리는 뒷담화에 대해서는 아예 신경을 껐다.
두 사람이 잘한 거지 내가 못한 것은 아니다.
"수고했다. 다음에 또 보지."
"우린 길드 수습 좀 할게."
두 사람은 더 귀찮아 지기 전에 파티를 탈퇴해 길드원들과 돌아갔다.
두 길드는 이번 활약이 마음에 들었는지 전체적으로 표정이 좋았다.
"…저 둘에 너까지 이겨 주마."
반면에 열파창은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었다.
이번 VIP 파티에서 가장 자존심을 구긴 인물을 꼽자면 단연코 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