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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은 옷을 입지 않아-110화 (110/201)

제110화 고인물은다모았다.

엘리멘탈 소울2는 기본적으로 먼거리를 자동적으로 이동하는 웨이포인트의 수가 적다. 그래서 뉴 알론의 생활은 말을 타고 이동하는 것에 자연스럽게 적응하게 된다.

오크펠슨은 도시 내에 웨이포인트가 있으니 해당 시설을 사용하면 곧바로 뉴 알론으로 이동했다.

"오오. 이곳이 뉴 알론인가?"

"도시가 삭막하군."

동행한 그레골라와 잭칼은 뉴 알론을 신기해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날 알아보는 유저들 사이를 지나가 1구역의 시청으로 이동했다.

목표는 당연하게 시장인 록이었다.

"오랜만이군. 다들."

시장실에서 록은 나는 물론 그레골라와 잭칼까지도 반갑게 맞이했다. 우려를 한 대로 잭칼은 록에게 이빨을 드러냈다.

"도망자. 오랜만이다."

"너는 여전히 날 싫어하는군."

"오크펠슨에서 날 이기고 도망가다니. 다시 나와 겨루자."

"시장이 된 이상 너와 싸울 이유는 없다."

록은 단호하게 거절하며 나를 봤다.

"이 도시의 위험을 구하기 위해 다시 온 것인가. 참 좋은 일이군."

"무슨 문제가 생겼어?"

"이 도시에 또다시 절망이 찾아올 것 같다."

록의 말은 당연하게도 절망하는 산맥의 고대정령을 뜻하는 것이 분명했다.

"이것 알아?"

난 인벤토리에서 빛을 발하는 완성된 고대오크전사의 증표를 보였다.

록은 다른 둘과 달리 이번에도 난색을 보였다.

"미안하지만 무엇인지 모른다."

"고대오크전사를 선별로 널 찾아왔어. 카쿤의 추천이었거든."

"카쿤 어르신인가."

록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시장이 되어서 오크펠슨으로 가는 길이 열렸지만, 반대로 그가 시장이기에 이 퀘스트를 수행할 수 없는 것인가 걱정도 들었다.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하겠다. 그분의 추천이면 자랑스러운 일이지."

다른 고대오크전사를 찾을 걱정을 하던 중이었으니 록의 허락은 예상외의 것이었다.

[레벨이 1 상승합니다.]

[전 능력치가 1 상승합니다.]

퀘스트의 보상으로 주어진 것은 바로 레벨업이었다. 그 어떤 것보다 값지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퀘스트가 등록되었습니다.]

"고대오크전사는 그 어떤 것에도 물러나지 않지. 절망의 산맥에서 찾아올 절망에 함께 맞서주게."

록의 역제안과 함께 새로운 퀘스트가 나타났다.

[고대오크전사의 증명.]

-고대오크전사는 항시 용맹을 증명했다. 찾아오는 절망을 맞이하여 증명하자.

-완료 조건 : 절망하는 산맥의 고대 정령 토벌.

-실패 조건 : 퀘스트 포기.

퀘스트는 예상대로의 것이었다. 이야기가 너무 순탄하게 흐른다면 그에 합당한 무언가가 나타날 줄은 알았다.

어차피 절망하는 산맥의 고대정령이 한 달 주기인지라 랭커들도 다시 오크펠슨으로 돌아가 대규모 레이드를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썩이나감 : 레이드 준비 잘 되갑니까?]

[독고무적 : 바쁘다. 너는 오크 NPC 둘이랑 돌아다닌다던데. 또 레벨은 안 올리는 건가?]

독고무적은 묘하게 부모님이 생각나는 잔소리를 해 댔다. 그 아이들이랑은 놀지 말아라 성적은 언제 오르냐.

그때 그 말들을 들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썩이나감 : 레벨도 착실히 올리고 있어요. 랭커된 것 보이시잖아요.]

[독고무적 : 서둘러라. 곧 일본쪽에서도 움직일 테니까.]

[썩이나감 : 아. 이세계 침략말이죠?]

저번에 한국서버가 침략을 하고 일본서버는 점점 악에 받치기 시작했다.

PvP에 다소 회의적이던 상위랭커들도 움직여서 곧 이세계 파편 100개를 채울 것이라는 의견이 다분했다.

[독고무적 : 겹칠 수 있다.]

[썩이나감 : 게네들 손해 아니에요?]

[독고무적 : 그쪽은 이미 페널티 중이니까.]

[썩이나감 : 아. 그렇죠.]

이세계 침략을 당해서 시청이 점령당하면 페널티가 생긴다.

뉴 알론의 몬스터 침공의 수준이 높아지는 것이다. 때때로 몬스터들이 도시 안으로 들어와 활개를 쳐대는 통에 뉴비들이 학살을 당하는 것은 물론 몬스터에게 죽을 경우 페널티가 더 세졌다고 한다.

역으로 우리가 당하면 그만큼의 피해가 없을 거다.

[독고무적 : 그래서 누군가는 수비를 해야할 것 같다만.]

[썩이나감 : 저도 이번에는 힘들 것 같은데요. 레벨업이 너무 뒤쳐져서.]

어쩌다가 마주치면 모를까 전담해서 일본서버의 침략자들을 막는다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못하고 시간만 끌어야한다.

[독고무적 : 나도 그러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필드보스를 일찍 잡자는 거지. 일본서버는 다음에도 또 올 수도 있고, 또 갈 수 있지만 필드보스는 월 1회니까.]

희귀성을 따진다면 역시 절망하는 산맥의 고대정령이 더 가치가 있다는 셈이다.

[썩이나감 : 그 말은 파티 맺자는 거죠?]

[독고무적 : 이번에는 너만 딜량 랭커를 찍게 둘 수 없지.]

[썩이나감 : 그러면 한 명 더 끼워도 됩니까?]

진짜 게임을 빨리 끝낼 생각이 떠올랐다.

*       *       *

"길드 꼴이 왜 이래. 다들 엘소2 안하고 또 뭘 돌린 거야."

뉴 알론으로 복귀를 한 랭커 중 하나, 열파창은 필드보스가 나타날 시기가 근접했음에도 접속하지 않은 길드원들을 보며 짜증을 낼 수밖에 없었다.

다들 다른 게임에서 즐기다 온 사람들이라 그런지 아직 본진을 제대로 못 바꿨다.

전에 즐기던 게임이 대규모 패치를 하면 가을연어마냥 고향으로 거슬러 올라가고서는 호갱 혹은 호구가 되어 돌아와 울분을 토하며 빡겜을 하고는 했다.

이번에도 PIFA4의 새로운 패키지가 나왔다고 빡겜 길드는 물론 산하 길드의 유저들이 우루루 즐기러 가버렸다.

"이러니까 내가 랭킹1등 못하지. 밑에 놈들만 받쳐줬어도 내가 먹는데."

열파창은 투덜거리며 다른 길드장들과 연락을 했다.

저번 절망하는 산맥의 고대정령은 그야말로 원거리 딜러들을 위한 축제였다.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딜만 꽂으면 되니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데미지 랭킹은 다 그들이 차지했기 때문이다.

"개는 왜 강한 거야."

열파창은 자연스럽게 썩이나감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썩이나감은 최대데미지 30인에 든 유일한 근거리 딜러이자 1위를 찍은 유저였다.

지금보다도 더 약했을 것이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도 지금은 자신이 있었다.

2차 전직도 했을 뿐더러 원거리 직업군에 대한 너프가 꾸준했기 때문이다.

[썩이나감 : 계십니까?]

[열파창 : 계십니다.]

[썩이나감 : 레이드 준비는 잘 되십니까?]

[열파창: 불난 집에 기름 붙냐?]

다 알면서 물어보는 것이 분명하다 생각한 열파창의 반응은 날카로울 수밖에 없었다.

[썩이나감 : 뉴 알론에 온 김에 연락을 드렸을 뿐입니다.]

[열파창 : 마침 잘 되었군. 이번 레이드도 혼자서 활동할 건가?]

[썩이나감 : 이번에는 파티를 짜고 싶네요.]

[열파창 : 그거 좋은 소식이군.]

열파창은 썩이나감이 자신의 파티에 들어오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저번 절망하는 산맥의 고대정령도 그렇고 일본침략 때를 생각하면 썩이나감은 아주 훌륭한 전력이었다.

주변에서 판만 깔아주면 일당백도 가능할 것이다.

[열파창 : 빡겜 길드에 들어오라는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 우리와 파티를 짜자.]

[썩이나감 : 좋은 소식이군요.]

[열파창 : 맞아. 아주 좋은 소식이지. 우리는 네가 마음껏 날뛰게 해줄 수 있다.]

열파창은 절대 허언이 아니었다. 빡겜 길드는 다양한 게임의 하드유저들이 모였다. 썩이나감의 플레이에 쓸데없는 제약을 걸기는커녕, 그의 장점을 살려줄 자신이 있었다.

[열파창 : 난 그 틀딱들이랑 달라.]

열파창이 추정하기로 독고무적과 흑군의 나이는 최소 사십대였다. 게이머로서의 피지컬이 꺾이고 꺾여 아이템과 레벨빨이 아니면 절대 랭커를 찍을 실력이 아니라 생각했다.

[썩이나감 : 전 파티 제안을 하려고 왔는데요.]

[열파창 : 난 빡겜 길드장이야. 연합과 산하길드까지 생각하면 최소 삼백 명을 이끌어야한다.]

그들의 지휘가 우선이건만 그걸 포기하는 것은 썩 달갑지 않은 소식이었다.

빡겜 길드의 단점은 길드의 단합력과 조직력이 부족하다는 거다.

길드장이 파티를 직접 이끌지 않는 것을 그걸 부추긴다.

[썩이나감 : VIP 파티인데요?]

[열파창 : 그 말은 설마…….]

[썩이나감 : 네. 우리끼리 해먹을 겁니다.]

썩이나감의 그 말에 열파창은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우리끼리 해먹는다는 그 말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었다.

[열파창 : 좋아. 가지.]

길드에서도 자신이 참여하는 파티인원의 면면을 보면 입을 다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셋 중에서 둘이 불편하지만 적어도 그건 그들의 개인적인 능력이지 현재의 위치까지 얕잡아 보지는 않았다.

*       *       *

"한국서버의 흑막이 네놈이 아닐까?"

열파창과 대화를 끝나자마자 도착한 흑군은 사뭇 진지하게 나를 평가했다. 그의 말에 가볍게 웃었지만, 내가 동원할 수 있는 인맥이 결코 작지 않음을 실감하고 있었다.

과연 누가 4인 파티에서 랭킹 1등부터 3등까지를 소환할 수 있을까.

"흑막이 맞지. 나도 이렇게는 못 짜."

독고무적도 열파창이 참여한 것에서는 의외라고 평했다. 그만큼 기존 유저층과 신규 유저의 간격은 명백하게 존재했다.

"VIP분들의 단합 파티잖아요. 열파창이 온다고 너무 쪼아대지는 마세요."

"그놈이 주제 넘는 거다."

"새파랗게 어린놈이 개기면 뭐다? 밟아야지."

독고무적과 흑군은 아무래도 열파창에 대한 반발이 있는 것 같다. 유치하게 그걸 다 드러낼 인물들은 아니지만 이번 파티가 마냥 부드럽게 흘러가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보다 저 셋은 계속 따라오는 건가?"

"록 시장에 오크펠슨에서 못 봤던 오크들이라니."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화제를 넘겼다.

실제로 세 명의 오크들과 함께하는 내 행렬은 인게임 내에서 모든 이목을 잡아끌고 있었다.

지금도 다른 오크펠슨 진출자들이 빨리 공략법을 내달라고 해서 성화다.

특히 조련사들의 성화는 보통이 아니었다.

"그런데 조련사쪽은 명칭이 왜 바뀐 거죠?"

2차 전직이 시작되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전작과 달리 직업군의 명칭에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기초직업군 사육사의 최종직업은 테이머와 정령왕이었다.

그런데 테이머의 명칭이 사라졌다.

1차 전직이 조련사, 2차가 소환사, 3차가 와일드 마스터가 된 것이다.

"조련사가 테이머잖아. 진즉 말이 많았다."

"맞아. 한글만 쓰면 한글만 쓰던가 1차가 조련사고 3차가 테이머면 한글과 영어 차이잖아."

"……."

둘의 장난에 난 웃을 수 없었다.

"트레이너가 그건 줄 알았죠."

"우리나라 기초교육이 허술하군."

"너도 참 대단한 친구다."

내 투덜거림에 다른 둘도 손을 들었다.

도대체 뭘 보고 착각을 했는지 알 것 같다면서 동그란 돌을 주더니 가서 몬스터나 잡으라고 했다.

"다들 사이가 좋으시네."

일방적으로 놀림을 받던 와중에 열파창도 합류했다.

"왔나? 빡겜 길드장."

"무식한 친구 제의 잘 들어줬네."

둘도 연륜이 있는 만큼, 얼굴을 보자마자 틱틱 거리지는 않았다.

"파티초대 할게요. 다들 들어오세요."

또 날 놀려대기 전에 셋을 파티에 초대를 했다.

다른 둘과 달리 열파창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불사자? 이건 도대체 뭐야!"

"저 다른 직업 쓴다고 이미 다 알고 있던데. 모르셨어요?"

"그건 다 추측이잖아. 불사자라니. 죽지 않는다는 말은 뭐야. 좀비인거냐?"

열파창은 꺼림칙한 눈으로 날 봤다. 평소에 구비해두는지 성수를 꺼내서는 나에게 촥 뿌렸다.

"좀비 아닙니다."

"진짜냐? 파티원이라서 데미지 안 입는 것이 아니고?"

열파창은 아예 파티에서 탈퇴하더니 다시 나에게 성수를 뿌렸다.

게임이라고 해도 벌건 대낮에 면상에 물을 맞으면 기분이 좋을 수는 없었다.

"건방지군. 저 인간."

"싸우자는 거냐?"

"뉴 알론에서 건방지군."

잠자코 있던 내 오크들도 불만을 드러냈다.

"진짜냐고. 이거."

열파창은 그래도 어안이 벙벙한 모습이다.

"진짜입니다. 버그나 오류 아니에요."

"이 직업을 숨기려고 혼자 활동한 건가? 이제야 밝히는 이유는? 히든클래스에 대하 공개할 수 있나? 그 능력과 획득조건 말이야!"

갑자기 흥분을 하기 시작한 열파창은 내 어깨를 잡고 마구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차오르는 귀찮음과 버거움에 독고무적과 흑군을 봤지만, 둘은 나몰라라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궁금한 것을 대놓고 물어보는 열파창에게 손을 들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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