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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은 옷을 입지 않아-106화 (106/201)

제106화 고인물은전사를찾아.

"너 그 스킬 누가 주디?"

"주술사요."

"그 돌팔이 같은 놈?"

카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에게 방금 전에 만난 주술사에 대해 설명을 했다. 그는 오만상을 쓰며 더 캐물었다.

"석림에 뭐? 그렉을 만나? 그 새끼 살아있었어?"

"예. 잘 있던데요."

"그 망할 새끼 때문에 도시에서 벌꿀주를 못 만든단 말이다!"

카쿤이 화를 내는 것에는 역시나 술이 들어가 있었다.

[퀘스트가 등록되었습니다.]

"그 새끼한테 벌꿀 받아와!"

카쿤은 강제적으로 퀘스트를 떠넘겼다. 전형적인 심부름 퀘스트일 것 같아서 썩 달갑지가 않았다. 이렇게 퀘스트만 밀다가 레벨업 속도가 늦어지는 것이 내 특징이었으니까.

"거기에 힘 쎈 놈 하나 있으니까 전사 삼으면 된다."

"주술사나 이 증표에 대한 것은 궁금하지 않아요?"

"골치 아픈 것은 질색이다."

"오크 문제인데 도와는 줄 거죠? 명색이 시장이신데."

"나한테 전사 되라는 개소리만 안 한다면."

조건부이지만 카쿤의 도움이 있다면 진행속도는 한층 빨라질 수밖에 없다.

[그렉의 양봉농장.]

-오크펠슨의 명물인 벌꿀주의 생산이 급격하게 저하되었다. 그렉을 찾아가 벌꿀을 받아오자.

-완료 조건 : 그렉의 벌꿀 배달.

-실패 조건 : 퀘스트 포기.

전사 선별 퀘스트까지 겸사겸사 진행하면 썩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위치는 어디에 있어요?"

"석림 근처에 있지. 대충 여기다."

카쿤은 탁자에 돌멩이를 얹었다. 맥주를 살짝 뿌리더니 포그로 주욱 그었다.

돌멩이는 석림이고 맥주는 아마 강일 거다.

"여기다. 여기."

그 옆에 카쿤이 침을 퉤하고 뱉었다. 가래침이 너무 직관적이라 이해하고 싶지 않아도 한 눈에 파악 되었다.

*       *       *

카쿤이 그렸던 원시적인 지도는 너무나 정확했다. 폭은 3m도 되지 않고 깊이는 허리에도 오지 않는 강을 건너자 절벽에 자리를 잡은 큰 농장이 보였다.

[그렉의 양봉농장.]

농장의 입구에 적힌 표지판 밑에는 일꾼상시모집, 숙식제공, 가족 같은 화목함이라는 끔찍한 것들이 적혀 있었다.

일꾼을 상시로 모집을 하는 것은 일과 대우가 최악이라 이탈자가 많다는 것이다. 숙식제공은 그 일꾼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묶어두는 것이며, 가족 같은 화목함은 경영주 가족만 화목하지 직원들은 좃 같음을 경험할 수 있다는 뜻이다.

간혹 야근수당이나 특근수당에 대해 적혀 있어서 꺼려지는 경우가 있고는 한데, 솔직히 야근이나 특근을 해도 돈을 주지 않는 기업도 꽤나 된다.

사회적 통념상 우리는 그런 곳을 좃소기업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렉의 양봉농장은 그 좃소기업에 부합하는 아주 훌륭한 곳이지 않을까 싶었다. 의외라면 그런 곳일수록 직원의 등골을 빼먹어서 납기일은 귀신 같이 맞춘다는 거다.

그런데 납기를 못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사정이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석림에 들어가기 전에 그렉과 마주친 것을 보면 그렇다. 저 거대한 농장주가 사람을 안 쓰고 직접 두 팔을 걷을 정도면 경영난도 의심해야만 한다.

"그렉 씨. 거기 있습니까?"

이미 한번 본 사이니 편하게 농장 안으로 들어갔다.

겉에는 멀쩡해 보이던 것이 안에는 전혀 아니었다.

[그렉의 양봉농장에 입장하시겠습니까? Y/N]

며칠 동안 필드사냥만 하다가 오랜만에 던전에 입성이니 조금은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던전의 권장조건에 미달됩니다. 그럼에도 입장하시겠습니까? Y/N.]

사실 내가 권장조건을 맞춘 적은 거의 없었다. 이 안내문구도 낯설지 않았다.

우우우우웅!

로딩이 끝ㄴ타고 아주 익숙한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소리에 이끌려 이동하자 내가 알던 것과는 다른 몬스터가 있었다.

Lv63. 오크펠슨 식인말벌.

바위독벌보다도 훨씬 큰 몸뚱이는 드워프 몸뚱이만 했다. 턱은 강철도 껌처럼 씹을 정도로 툭 튀어나왔는데 독침은 갈고리처럼 끝이 휘어져 있었다.

[오크펠슨 식인말벌 무리를 퇴치하십시오. 0/5.]

UI상단에서 목표가 새로 갱신되었다.

"에라이. 아침부터 이 지랄 들이네. 망할 새끼들!"

그렉과 일꾼 다섯은 벌통 주변에서 열심히 몽둥이를 휘두르고 있지만, 오크펠슨 식인말벌 무리를 내쫓기에는 무리였다.

"양봉업자도 나보다 벌 덜 잡겠다."

석림에서 바위투구독벌을 상대한 것이 생각나 혀를 찼다. 그래도 이름만 바꾸고 몬스터 형태를 돌려막기를 한 것이 아니라 지루함은 덜할 것 같았다.

농장 입구에 불사자의 영혼함을 심었다.

일단 오크펠슨 식인말벌이 어떤 패턴을 보이는가가 중요하다.

그렉과 일꾼들이 싸우는 것을 보면 턱으로 물어뜯기가 기본공격이었고 스킬로 보이는 임펙트가 가미된 것이 공중에 끌고 올라가 떨어트리기와 독침으로 쏘는 것 정도였다.

모든 공격이 일반공격이던 바위투구독벌과 사뭇 다르다.

한 무리 당 개체가 셋이라는 점은 다행이다.

부우우웅!

도발적인 허수아비를 설치하자 오크펠슨 식인말벌 한 무리가 선회했다.

콰드드득!

오크펠슨 식인말벌1이 물어뜯자 도발적인 허수아비가 그대로 망가졌다. 나머지 둘은 가까이에 있는 나에게로 달려들었다.

식인말벌2는 날 잡으려고 발을 활짝 펼쳤고 식인말벌3은 그 흉악한 턱을 들이댔다.

역세기검을 펼쳐 식인말벌2를 공격했다.

그 후에 내 목에 다가온 식인말벌3의 턱을 백스텝으로 피했다.

옆으로 피하며  식인말벌3의 턱을 베었다.

식인말벌2의 체력은 60퍼센트, 식인말벌3은 70퍼센트의 체력이 남았다.

앞에만 신경을 쓸 수는 없는 것이 왼쪽에서 식인말벌1이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1인칭 시점이라 불편한 점은 옆이나 뒤에서 오는 공격은 제대로 반응할 수 없다는 거다.

레벨을 상회하는 데미지. 그러나 단 한 대라도 맞으면 죽는 나로서는 적에게 둘러싸이는 것은 자살행위와 다름이 없다.

차라리 농장의 창고에 등을 기대고 싸우는 편이 안전하다.

카득!

뒤로 물러나는 동안에 식인말벌들이 자꾸 턱으로 나를 깨물려고 했다.

놈들이 스킬을 쓸 때는 아예 구르기를 사용해 측면으로 빠졌다.

[1인 도발을 사용합니다.]

목표로 한 창고에 가까워지자 맨 뒤에 있는 오크펠슨 식인말벌3에 스킬을 사용했다.

부우우우우웅!

놈은 앞선 두 놈을 밀쳐내고 곧바로 내게 탐욕스러운 턱을 들이댔다.

터엉!

아까 전과 달리 거세고 큰 동작이다. 똑같지는 않아도 비슷한 바위투구독벌을 상대했을 때를 생각하면 튕겨내기도 어렵지 않았다.

푸욱! 촤악!

머리에 검을 찔러 치명적 찌르기를 적중시키고 곧바로 검을 옆으로 그어냈다.

두 번의 판정과 함께 식인말벌3은 모든 체력을 잃고 무너졌다.

그 뒤에 스킬을 한 번씩 사용해 쿨타임에 빠진 다른 두 마리를 향해 역세기검을 길게 펼쳤다.

카가가각!

차징게이지를 꽉 채워 추가데미지가 들어가는 일격은 두 마리의 몸통에 정확하게 맞았다.

스킬 약점파악으로 인해 놈들의 약점이 1쌍의 겹눈에 표시가 되어 은은하게 표시가 되었다.

둘 중에서 약점파악이 더 뚜렷하게 드러난 것은 역세기검을 두 번이나 적중당한 식인독벌2였다. 체력도 겨우 20%가 남아 날갯짓을 하는 것도 버거워 보였다.

[1인 도발을 사용합니다.]

그놈을 대상해 도발을 걸었다. 비틀거리면서 오는 속도는 식인말벌1보다는 조금 더 빨랐다.

터엉!

목을 노리는 물어뜯기는 튕겨냈지만, 반격을 할 엄두는 안 났다.

식인말벌1이 독침을 사용하는 모션이 너무 가까웠기 때문이다.

독침이 나를 꿰뚫었지만 백스텝으로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그 뒤에 비틀거리는 식인말벌2의 목숨을 꿇었다.

홀로 남은 식인말벌1은 어렵지 않게 끝냈다.

남은 것은 오크펠슨 식인말벌은 네 무리다.

"그냥 밀자."

헤이스트를 쓰고 오크펠슨 식인말벌들의 주위를 지나쳤다. 그렉과 그의 일꾼들을 공격하던 놈들은 곧바로 공격하기 위해 따라 붙었지만, 벌통을 약탈하는 놈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말썽쟁이들이네."

어설프게 몇 마리 남길 바에는 그냥 처음부터 시작이 깔끔하다.

우적. 우적.

식인말벌들이 나를 분질러 식사를 즐기는 사이에 다시 부활해 다섯 무리의 어그로를 끌었다.

물론 이번에는 벌통을 약탈하는 식인말벌들의 등을 찔렀다.

[결사항전의 영역을 사용합니다.]

다 모였으니 한 번에 밀어버릴 수 있다.

카가가각!

먼저 역섬기검을 길게 펼쳤다. 오크펠슨 식인말벌들 두 마리의 두꺼운 껍질이 불똥을 튀었다. 그 휘청거리는 두 마리를 피해 다른 놈들이 동시에 들려들었다.

턱이 몸을 잘근잘근 씹고, 독침이 몸을 찔러도 검은 쉴 새 없이 휘둘러졌다. 중간마자 찔러오는 독침에도 손은 쉬지 않았다.

일 대 십오. 그 일방적인 폭력에서 죽어나가는 것은 식인말벌 뿐이었다.

그런데도 내 움직임을 멈추게 하는 것이 있다. 내 몸을 붙잡고 공중으로 끌고 갈려는 여섯 개의 다리다.

끌려가서 잘근잘근 씹힐 때의 데미지가 문제가 아니다.

결사항전의 영역이 공중에서도 적용이 되냐는 거다. 언젠가 한 번 실험해도 되지만 그게 굳이 지금일 필요는 없다.

부우우웅!

잡기공격은 어설프게 피할 생각이 없어서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서 피하며 처리했다.

결사항전이 끝나는 시점에 고작 네 마리의 식인말벌이 남았다. 그마저도 크고 작게 다쳐서 약점파악을 통해 곁눈이 붉게 물들어있었다.

푸우욱!

식인말벌3의 눈을 찔러 치명타를 터트렸다. 절반의 체력 밖에 없었으니 일격에 죽을 수밖에 없다.

남은 것은 세 마리. 아까와 달리 용감하게 공격을 맞이할 수가 없다.

뒤로 피하자 식인말벌들의 턱이 허공을 씹어댔다.

강철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들렸다.

[1인 도발을 사용합니다.]

체력이 가장 많이 남은 식인말벌 14에게 도발을 걸었다. 날개를 힘차게 흔들며 다가오는 씹어먹기를 튕겨내기를 써서 턱을 비틀게 한 뒤, 그 위의 곁눈을 찌르고 베었다.

남은 것은 식인말벌7과 식인말벌1이었지만, 체력이 얼마 남지 않은 놈들은 피하면서 곁눈을 찌르는 것만으로도 끝났다.

약점파악의 스킬 레벨도 2가 되었는데 확실히 쓰임새가 뛰어나다.

"뉘신지 몰라도 고맙군. 덕분에 살았어."

"인간치고 강하잖아!"

"맨손으로 저놈들이랑 못 싸운데 고맙수다."

"이 거지 같은 곳에서 죽는 줄 알았네."

일꾼들은 하나 같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내게 감사를 표했다. 이들보다는 이곳의 주인이 더 감사해야하는 것이 맞을 텐데 말이다.

"혀라도 씹었어요? 감격스러운지 별 말도 못하시네."

"왜 왔냐? 나 혼자서 잡을 수 있었는데."

그렉이 퉁명스럽게 말하자 일꾼들은 난리를 부렸다.

"혼자는 개뿔이! 아무것도 못하더니만!"

"그러게 사람 좀 구하라니까. 우리 뒤질 뻔했잖수!"

"가족은 개뿔. 뒤지면 뭐 준다고."

"삼시세끼 풀만 줄 때 알아봤다!"

그래도 저 반응을 보니 위험한 것은 맞나보다.

[그렉과 대화를 하시오.]

역시 게임진행을 위해서 대화는 해야만 할 것 같다.

"카쿤이 꿀벌 내놓으라던데요."

"응? 아아. 납기 까먹었네."

"벌꿀주 없다고 아주 난립니다."

"이제 농장 다시 가동했다고."

그렉은 내게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양봉농장을 운영하는데 얼마 전에는 바위투구독벌이 난리는 부린 것에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농장주인이 석림에 가냐고 노발대발하는 것이 나보고 어쩌라는 건가 싶었다.

"우리 못 가. 사람 없어. 지금 재들도 일 안 하겠다고 뻐기잖아."

"그러면 옮기기만 하면 됩니까?"

"아냐. 그냥은 못 줘."

그렉이 손사래를 치니 또 무슨 일을 시킬 건가 싶었다.

"저기 절벽 위에다가 이것 좀 심어주라. 귀찮은 짓을 못하게."

그렉이 준 것은 매우 익숙한 물건이었다.

[바위넝쿨장미의 씨앗.]

-종류 : 퀘스트 아이템.

-설명 : 석림에 자라는 바위넝쿨장미의 씨앗이다.

바위넝쿨장미는 몬스터의 일종이니 여기를 습격하는 바위투구독벌이나 오크펠슨 식인말벌을 분산시키겠다는 뜻이다.

인력난인 양봉농장이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한 최선의 선택인 것 같다.

"그 손은 뭐냐?"

"저 이방인이라서 오크펠슨과는 관계가 없어요."

그러니까 보수를 내놓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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