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5화 고인물은고대전사.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도전과제, 고대오크 전사 수료식을 달성하였습니다.]
시야에 뜬 알림 중에서 먼저 확인한 것은 도전과제였다. 해당 보상은 오크상대로 1%의 데미지가 더 나온다는 거였다.
오크 상대로 PvP에는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만족했다.
그 뒤에는 인벤토리에서 완성된 고대오크전사의 증표를 확인했다.
[완성된 고대오크전사의 증표.]
-퀘스트 아이템.
-설명 : 고대오크전사임을 증명하는 현 시대의 유일한 증거이다.
다 모으면 끝인 줄 알았는데 퀘스트는 계속 연계가 되는 것 같았다.
[퀘스트가 등록되었습니다.]
아이템을 확인하고 뜬 퀘스트는 어떤 것일까 기대가 되었다.
[고대오크전사의 선별.]
-고대오크의 정신을 잇기 위해 새로운 전사들을 찾아 전통을 잇도록 하자.
-완료 조건 : 오크전사 선별 (0/3).
-실패 조건 : 오크전사 선별 실패.
육하원칙을 기준으로 하면 결격사유가 많은 퀘스트다.
어쩌면 이게 소울리스의 초심일지도 모른다. 부족한 퀘스트 설명으로 인해 유저가 일일이 정보를 캐내야만 하니까.
저 선별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가장 확실한 것은 코쿤 시장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딱 레벨 4만 올리면 된다."
현재 레벨은 56으로 다시 랭커 300위에 위치했다. 지금 사냥 속도로 며칠만 유지하면, 다른 직업군의 2차전직 레벨이 된다.
그때는 요한이 불사자인 나에게 새로운 스킬 직업스킬을 하나라도 내놓지 않을까 기대가 되었다.
그때까지는 여기서 조용히 레벨을 올릴 예정이다. 석림의 좁은 공간은 바위투구독벌과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한 번에 많아봐야 둘에서 셋과 싸우니 나로서는 닥사를 위한 최적의 공간이었으니까.
[썩이나감 : 지금 오크펠슨에 가겠습니다.]
인벤토리를 한번 정리하고 열파창도 만날 겸해서 일단 오크펠슨으로 귀환을 했다.
칼귀환을 위한 방법은 간단하다.
안전한 장소에 불사자의 영혼함을 설치한 후에 지나가는 몬스터 하나에게 어그로를 끌어서 죽으면 된다.
[YOU DIED.]
내 집처럼 편안한 화면에서 가까운 도시에서의 부활을 선택했다.
오크펠슨의 광장에서 부활한 나는 제작재표들은 일단 창고에 넣고 열파창을 만나러 갔다.
열파창의 주변에는 빡겜길드원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신기하게 보면서도 썩 내켜하지 않아했다.
"다시 랭커에 들었던데 재밌는 퀘스트라도 있어?"
"공략해서 괜찮으면 팔려고요."
"샌드 웜처럼 괜찮은 공략은 얼마든지 환영이다."
"도움 되셨나 봐요."
"괜찮더군. 다음 레이드에 널 데려가고 싶을 정도야."
열파창이 어쩐지 쉽게 무기를 거래한다더니 이쪽으로도 욕심이 난 것 같다.
"몇 명이서죠?"
"음. 대충 10명 정도 레이트 파티를 꾸릴……."
"불가합니다."
"뭐? 독고무적과 흑군이랑 다르게 차별하는 거냐?"
왜 그들과는 같이 갔으면서도 자신과는 안가냐는 말이겠지만, 이 부분은 정확하게 짚어야만 한다.
"전 VIP아니면 같이 안 가요."
"……."
열파창의 벙찐 표정을 지을 정도였으니 무시를 당했다고 생각한 빡겜 길드원들은 얼굴이 붉어져 욕지거리를 내뱉기 일보직전이었다.
"우리 애들이 궁금한 것이 있는 것 같은데."
"제가 유튜버입니까? Q&A해 주게."
"길드장이라고 독단적으로 움직이지 않아."
즉, 열파창은 앞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라면 알아서 수습하라는 거다.
난 빡겜 길드원 중 랭커 세 명을 지목했다.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저들은 빡겜 길드의 간부이기도 할 것이다.
"딱 세 분만 질문 받죠. 지금 제 발언에 궁금하신 것 있을 것 같은데."
그 말에 자기들끼리 눈빛을 주고받다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VIP가 무슨 소리냐."
"제 개인고객입니다. 조건은 제가 인정할 수 있는 유저이어야만 합니다."
그 조건은 보다시피 바로 옆에 있는 열파창이다. 슬쩍 옆을 보니 열파창이 은밀히 손가락을 놀리고 있었다.
그 직후에 질문을 던지던 랭커들이 짧게 탄성을 터트렸다
VIP가 누구인지 귓말을 한 것이다.
"크흠! 우리가 레이드의 걸림돌이라는 건가?"
"예."
두 번째 질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다. 난 ZI존짱짱맨이자 썩이나감이다.
다크게이머 단신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레이드에 대해서 알고나 하는 거냐? 혼자서 움직이는 네가 걸림돌이 될 텐데."
"제 다른 VIP분들께 물어보시면 됩니다."
그 VIP가 누구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세 개의 질문을 다 던졌음에도 빡겜 길드원은 영 만족하지 못한 표정이다.
"꼬우면 뜨시던가요."
난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할 생각이 없다. 여기서 고객은 열파창 뿐이다. 그를 제외한 이들에게 저자세로 나아갈 생각은 없었다.
"……."
예상대로 빡겜 길드원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현재 썩이나감이 가장 화제가 되는 것은 바로 PvP 능력이었다.
"나머지는 내가 잘 이야기해 두지."
"고객님께 우편으로 넣어두었습니다. 물건 잘 쓰시고 다음에 필요하면 이야기를 또 하죠."
"다른 두 사람보다 널 더 자주 부를 수 있다."
"제가 움직일 가치가 있다면 얼마든지."
열파창과의 대화는 거기까지 하고 잡화는 상점에 팔고 사냥을 위한 소모품들을 인벤토리에 채웠다.
"오오오! 고대의 영혼이 깨어난다! 전사를 받들라. 전사를 받들라!"
도시 바깥으로 나가던 와중에 한 무리의 이들이 모여있었다. 유저들도 섞여있지만, 대부분이 NPC들이었다.
"저게 그 알 수 없는 행위라는 거지?"
어제부터였던 걸로 기억한다.
주술사로 보이는 오크 NPC가 오크펠슨에 랜덤하게 나타나 알 수 없는 괴성을 지른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그걸 보고서 다른 오크들이 경청한다는 거다.
"진짜 특이하네."
아침이라면 덜할 뿐이지 점심부터 모든 음식점과 주점에 오크 NPC들이 있었고 그들은 툭하면 서로 주먹질을 하며 싸우는 이벤트를 벌였다. 그걸 관전하다가 종종 판돈이 열려서 내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푼돈으로 즐기고 적당하게 싸움을 즐기는 재미로 그 짓거리를 반복하면 도전과제 하나가 열린다고 한다.
보상으로 구경꾼이라는 칭호를 주는데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했다.
우우우웅!
"음?"
갑자기 인벤토리 아이콘에서 진동음이 들렸다. 뭔가 싶어서 인벤토리를 여니 완성된 고대오크전사의 증표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내가 그걸 인벤토리 바깥에서 빼는 순간이었다.
"고대오크전사의 영혼이 강림하셨다아아아아!"
오크 주술사 NPC가 침을 튀기며 인파를 헤치고 다가왔다. 광인의 행색인지라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을 정도였다.
꽈아아악!
오크 주술사는 증표를 쥔 손을 두 손으로 꽉 붙잡았다.
"이것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고대오크전사의 영혼, 긍지가 바로 이곳에 있다!"
"오오오오! 고대오크전사의 영혼이여!"
"오오오오! 위대한 긍지여!"
주변의 오크들도 무릎을 꿇고 괴상한 소리를 외쳐대기 시작했다.
"또 썩이나감이야?"
"재는 무슨 퀘스트 중인거지?"
"난 놈은 난 놈이다."
"공략해주겠지."
그걸 보는 유저들은 흥미롭게 관망하고 있었다.
어쨌든 나로서는 이 증표 퀘스트를 완료할 수 있다는 것에 흥미가 생겼다.
"고대오크전사가 뭐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강함을 증명하기 위해 더 앞으로 나서는 자!"
"내가 뭘 해야 하지?"
"당신과 함께 할 고대오크전사들을 찾으시오!"
"나는 고대오크전사가 아니오?"
"인간은 인간이오. 우리 오크의 긍지를 이어나갈 오크전사가 필요하오!"
주술사 NPC는 내게서 등을 돌리며 소리쳤다.
"고대오크전사를 찾을 이가 여기에 있다. 곧 다가올 절망을 막을 용사들이여. 이곳으로 오라!"
"…절망?"
그 절망이 무엇인지 감이 잡혔다.
첫 번째 필드보스인 절망하는 산맥의 고대정령이 다시 나타날 시기가 코앞이었다.
"그 선별은 어떻게 하지?"
"그대가 아는 가장 강한 자들을 설득하시오. 오크라면 그걸 거부하지 않을 것이니!"
결국 발품을 팔라는 것이다.
주술사 NPC와 함께 돌아다니는 오크들을 봤지만, 그들은 별 비중이 없는 일반 NPC들이었다.
"이들 중에서 뽑으라는 건가?"
"전사로 보이시오?"
"일단 강하면 된다는 거지."
"당신을 위해 이걸 드리겠소."
주술사 NPC는 스킬북 하나를 줬다.
[파악의 스킬북.]
-종류 : 매직.
-효과 : 스킬획득.
간략하게나마 상대에 대해 알 수 있는 스킬북인 것 같다.
친구가 아니면 상대의 정보창을 볼 수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건 꽤나 효과가 좋을 것 같았다.
[스킬, 파악을 배우셨습니다.]
과연 얼마나 대단한 성능을 가졌는지 확인해 볼까.
[파악LV1.]
-스킬 : 액티브 스킬.
-효과 : 10m 내의 지정대상의 강함을 추측합니다.
-쿨타임 : 1분.
-마나 소모량 : 100.
쿨타임이 짧은 것은 좋지만 추측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비루한 성능치고 마나 소모량이 많았다.
"이것만 쓰면 되나?"
"그렇소. 당신보다 강한 존재라면 그 기운이 뿜어져 나와 알 수 있을 것이오."
그 설명 이후로 몇 번을 캐물어도 돌아오는 답변은 큰 차이가 없었다. 이미 깊게 진행 중인 퀘스트이니 취소하기도 아까웠다.
[파악을 사용합니다.]
먼저 주술사 NPC에게 스킬을 사용했다. 그의 몸에서는 아무런 이상징후도 보이지 않았다.
"영혼을 쫓고 목소리를 듣는 자이니 나는 전사가 아니오."
주술사 NPC는 고개를 저었고 쿨타임을 기다렸다가 주변의 NPC에게도 한 번 더 써봤다.
역시나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음? 저 새끼가 여기 왜 있지?"
어떤 NPC가 좋을까 돌아다니다가 익숙한 닉네임의 유저가 골목으로 사라지는 것을 봤다.
궁신.
골드캐시에서 쫓겨난 놈이 결국 여기까지 온 것이다.
"꼴좋다. 주제도 모르던 놈이."
골드캐시가 똬리를 튼 마인시티에는 갈 용기를 못 내는 놈이 적들이 와글와글한 오크펠슨에는 용케 왔다.
거미줄을 친 목구멍에 뭐라도 놓고 싶어서 그런 것이니 쓴웃음이 머금어졌다.
작년의 내가 저 꼴보다 더 초라했을 테니까.
[썩이나감 : 궁신이 오크펠슨에 있네요. 제가 모르는 정보라도 있습니까?]
[빨간약파란약 : 어차피 갈 곳이 없었습니다. 참고로 이미 경고를 받았다고 합니다.]
[썩이나감 : 경고? 누구한테요.]
[빨간약파란약 : 엠페러와 흑군 길드요. 조용히 지낼 수밖에 없을 겁니다.]
[썩이나감 : 의외네요. 아예 접게 할 줄 알았는데.]
전작에서 이런 부분에서는 칼 같던 양반들이 꽤나 유해졌다. 아니면 다른 속셈이 있는 것일 수 있다.
골드캐시에서 쫓겨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본보기가 되니까.
[궁신 : 잠깐 대화 좀 될까?]
[썩이나감 : 말해.]
이대로 관심을 끄려는데 귀신 같이 나에게 귓말을 보내 왔다.
[궁신 : 사람 안 필요하냐?]
예상외의 말이었기에 나도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이 새끼 순진한 놈이었네."
전작에서부터 궁신이란 놈이 얼마나 약아빠졌는지 잘 알았다. 그러니까 다크게이머가 되어서도 놀라울 정도로 잘 적응했던 거였다.
작은 원한도 죽어라 잊지 못하는 놈이 내게 저자세를 보인다면 이유는 하나다.
다크로얄이 언제나 그렇듯이 폐기처분할 놈에게 마지막 의뢰를 맡긴 거다.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면 기회를 주겠지만, 과연 궁신이 그럴 능력이 있나 모르겠다.
[썩이나감 : 응.]
[궁신 : 다시 생각해 봐. 황금추적자에게는 나도 불만이 있다고. 우리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장문의 귓속말은 부담스러워서 여기부터는 답변도 하지 않았다.
"나한테만 안 붙으면 되니까."
오크펠슨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누굴까. 먼저 떠오른 것은 이전 대주먹이자 십보섬검을 전수해준 시장 카쿤이었다.
[파악을 사용합니다.]
"무슨 짓을 하는 거야. 건방지게 날 파악하려고 하다니."
시청 옆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그에게 파악을 사용했지만, 스킬은 통하지 않았다.
"나보다 약한 겁니까?"
혹시나 하는 물음에 카쿤이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놨다.
[플레이어가 상태이상 공포에 빠집니다.]
"지랄. 뒤질라고?"
"……."
술에 젖어 반쯤은 맛이 간 눈동자와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상태이상이 걸렸다.
파악의 스킬이 너무 낮거나 혹은 카쿤에 비해 내가 너무 약하거나.
전자보다는 후자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