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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은 옷을 입지 않아-104화 (104/201)

제104화 고인물은바위를깼어.

"흐, 흑군!"

궁신으로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골드캐시를 등에 업고 건드렸다가 그야말로 피눈물을 쏟지 않았던가.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

"이 새끼 답이 없네. 왜? 또 내 머리에 빵꾸내게?"

흑군은 궁신의 어깨에 팔을 감았다. 또한 자신의 관자놀이를 검지로 두드리며 당시에 화살을 맞은 자국을 정확하게 짚었다.

"아, 아니요."

"너 왜 왔어? 황금추적자 발바닥 핥으러 가야지."

"짤렸는데요."

"우리가 황금추적자보다 사람 좋아보이나 봐?"

흑군은 궁신의 어깨를 천천히 잡아당겼다. 강제적으로 비틀어진 시야에 들어온 것은 또 다른 절망이었다.

"독고무적."

궁신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썩이나감에게 느끼는 것이 자격지심과 증오였다면 눈앞의 흑군과 독고무적의 공포의 대상이었다.

하나를 마주쳐도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데 무려 둘이나 마주쳤다.

"벌레가 여기까지 기어왔군. 통제가 약했나."

독고무적에게는 장난기 같은 것이 없었다. 그는 벌레를 본 것처럼 진심으로 불쾌해했다.

"…그때는 죄송했습니다. 하루 벌어먹고 사는 입장이라."

궁신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보다 더 목소리는 작았고 기어들어갔다.

다크로얄의 제의를 받은 순간부터 자존심을 버리기로 했지만, 그게 마냥 쉽지가 않았다. 움츠러든 어깨와 꽉 쥔 주먹은 자신이 도망가지 않게 억누르기 위함일 뿐이다.

"오크펠슨에서 장사할 생각은 버리는 것이 좋다."

"꼬우면 접어. 알지?"

독고무적과 흑군은 경고를 남기며 물러났다.

골드캐시에 속했었던 이들이 겪는 고충이 이거다. 업계에서도 냉대를 받고 거대길드들에게는 조롱의 대상이 된다.

"씨발."

궁신은 이대로 가서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마땅한 방도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수를 써야 반전이 된다는 말인가.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린다면 모를까 이대로라면 이 바닥에서 버티는 것조차 힘들지도 몰랐다.

"약한 주제에 제법인데?"

"너보다 강한 놈 좀 죽여 봤구나?"

오크펠슨의 정문을 지키는 NPC들은 궁신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 둘은 게이머들에게 카오스 판독기라고 불렸다. 반길수록 PK 및 뉴 알론의 NPC들에게 평이 좋지 않다는 증거였다.

궁신은 그 반응이 마냥 좋지는 않았다. 그 PK 때문에 일이 이렇게 꼬여버린 셈이다.

"오오오! 고대의 영혼이 깨어난다! 전사를 받들라. 전사를 받들라!"

"저건 웬 지랄 생쑈야."

시장인 코쿤에게 가던 와중에 한 주술사로 보이는 늙은 NPC가 괴성을 지르며 난동을 부리는 것을 목도했다. 특이한 것은 그 험하기로 유명한 오크펠슨의 NPC들이 조용히 경청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퀘스트인가?"

궁신은 호기심이 들어 말을 걸고 싶었다. 그러나 그 주술사 주변으로 독고무적과 흑군 등 적대적인 유저들이 모이기 시작해 더 가까이 가지 못하고 물러나야만 했다.

*       *       *

한 곳에 모은 바위를 화약탄을 던지며 곧바로 구르기를 사용했다.

폭음을 느끼며 몸을 일으키자 가는 뒤이어 가는 진동이 내가 지나온 곳을 훑었다.

바위창이 빠졌으니 그대로 석림의 바위정령에게 다갔다. 놈은 여섯 개의 팔을 지면에 처박은 상태였다.

짧게 펼친 역세기검으로 놈의 겨드랑이를 노렸다.

카가가각!

왼쪽 최상단의 겨드랑이에 검기가 깊게 파고들었다.

쿠웅!

팔 하나가 박살나며 석림의 바위정령이 무너졌다.

4페이즈가 되서야 약점을 노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약점파악의 스킬레벨이 낮은 것을 포함해 석림의 바위정령을 죽인 적이 없어서 체력이 절반 이하가 되어야 약점이 뚜렷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헤이스트를 사용합니다.]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남은 왼쪽 팔 두 개를 연달아 찍어냈다.

성문처럼 단단하고 창날처럼 날카로워 보였던 팔들이 떨어져 나갔다.

가그그그극!

왼쪽의 팔이 다 부서졌다. 남은 것은 오른팔 세 개뿐이다.

석림의 고대정령은 균형을 잃어 오른쪽으로 살짝 치우쳐진 상태에서 공격을 해왔다.

일반적인 공격은 상중하로 나눠진 팔들이 한 차례씩 공격하지만, 한쪽뿐인 공격은 튕겨내기를 쓰기에 너무나 적합하다.

터엉!

첫 번째 공격을 튕겨내고 나타난 경직은 절대 놓칠 수 없다. 찌르기를 통해 회심의 일격을 터트리고 검을 바깥으로 빼내며 우측으로 몸을 돌렸다.

"…없다?"

오른쪽 어깨부분에 있어야할 약점파악의 붉은 선이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4페이즈 패턴을 완전히 몸에 익혔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변수다.

후우우우웅!

그사이에 석림의 바위정령이 제자리에서 회전을 하기 시작했다.

[등가교환의 방패를 사용합니다.]

스킬을 사용함과 동시에 전력으로 뛰쳐나갔다.

파바바밧!

한쪽으로 삐꺽거리는 석림의 바위정령의 회전은 뒤통수와 목, 날개뼈부터 시작해 발목까지 상처를 남겼다.

체력도 절반이나 사라졌으니 죽지 않은 것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저 회전 패턴이 체감상 제일 까다롭다.

무적은 아닌데 잘못 공격하면 배로 당하기 때문이다.

그그그그극.

30초에 달하는 회전패턴이 끝나고 석림의 바위정령이 움직임을 멈췄다. 과열되어 살짝 붉게 달아오른 몸은 여전히 우측으로 쏠려 있었다.

[스피어마스터의 소울을 사용합니다.]

쿨타임이 돈 소울스킬에 힘입어서 공격을 가했다.

콰득! 콰드득!

이때까지와 다르게 검에 베인 석림의 바위정령의 몸에 크게 상처가 남기 시작했다.

석림의 바위정령의 체력도 벌써 20%밖에 남지 않았다. 이때까지 페이즈를 생각하면 곧 마지막으로 예상되는 5번째 페이즈가 시작된다.

쩌저저적!

살얼음이 깨져서 박살이 나는 소리가 석림의 바위정령에게서 나기 시작했다. 우박처럼 몸뚱이가 떨어져갔으나 석림의 바위정령이 가진 여섯 개의 눈은 더 광채를 발했다.

"5페이즈다."

드디어 기다렸던 마지막에 달했다.

석림의 바위정령에게서 어그로가 빠지기를 바라면서 날 대신해 공격을 맞을 허수아비들을 설치했다.

보스 몬스터는 이런 아이템에 잘 안 통하지만, 마지막에 다다른 나의 절박한 바람이었다.

쿠우우웅!

석림의 바위정령은 위로 몸을 띄웠다가 그대로 바닥에 내려앉았다. 거기에서 시작된 파동이 동굴 전체로 퍼졌다.

발밑에서 퍼지는 원형의 지진은 가까이 설치한 허수아비를 박살냈다. 그걸 본 순간 제자리에서 높게 뛰어 올랐다.

반격을 가하려고 했지만, 그건 쉽지 않았다. 그 빌어먹을 낙석 패턴도 다시 함께하고 있었으니까.

쿵! 쿵!

문제는 이전 페이즈와 비교도 할 수 없게 빠르게 바위들이 떨어진다는 거다. 심지어 동굴에 전체적으로 떨어져 내렸다.

"아. 이거 그거다."

바위창 패턴 때를 생각하면, 석림의 바위가 지진을 썼을 경우 맵 전체에 바위파편이 퍼질 거다. 그러면 내 죽음이 확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절대 그것만 피해야만 한다.

거대 돌기둥 원숭이 때처럼 다음 페이즈를 넘어가기 위해 특수한 조건을 형성하는 것이 아님에도 이미 10번은 넘게 죽었다.

[헤이스트를 사용합니다.]

이건 어쩔 수 없다.

머리 위를 보면서 낙석을 피하며 걷다가는 무조건 죽는다.

내게 주어진 것은 지진파 패턴이 오기 전에 딜로 찍어 누르는 것뿐이다.

[결사항전의 영역을 사용합니다.]

석림의 바위정령이 가까이에 다가가 곧바로 결사항전의 영역을 사용했다. 놈의 여섯 개의 눈이 다시 빛을 발하는 것을 봤기에 곧바로 역세기검을 펼친 뒤에 같은 자리에 연거푸 검으로 찌르고 베었다.

쿠우웅!

순식간에 누적되는 높은 딜량을 감당하지 못하고 석림의 바위정령이 떠오르던 그대로 다시 주저앉았다.

드디어 끝을 볼 수 있다.

기대를 넘어 확신이 될 일에 난도질을 했다.

체력이 바닥을 보이면서도 석림의 바위정령은 천천히 위로 떠올랐다.

쿠우우우웅!

끝내 석림의 바위정령이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놈의 몸에서 시작된 지진이 내 발을 어지럽히며 모든 체력을 앗아갔다.

회색으로 변하던 시야는 기계적으로 휘저은 검이 놈의 몸을 파고듦으로서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파바바바박!

동굴 전체에 퍼져 있던 바위들이 지진이 연쇄작용을 일으켰다.

고슴도치라도 된 것처럼 온몸에 파편들이 박혔다.

[YOU DIED.]

또다시 죽었지만 드디어 깼으니 별다른 불만은 없었다.

죽음의 수련소 1은 적당했는데 2부터는 난이도가 너무 급상승했다.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깼다."

불사자의 영혼함에서 부활하자마자 뜬 알림에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동굴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부서진 파편들이 발목까지 차오를 정도였다. 그 영광의 흔적을 밟으며 석림의 바위정령에게 손을 뻗었다.

내가 획득한 것은 정령석, 석회암 2개, 석림의 바위정령의 창이었다.

[석림의 바위정령의 창.]

-등급 : 레어.

-공격력 : 561~654.

-효과 : 10% 확률로 방어력무시, 지속성 저항력 10 상승, 마법저항 5 상승, 최대체력 100상승, 최대스태미나 100상승, 관통Lv2, 파괴Lv2.

-전용스킬 : 스톤스피어Lv1.

-설명 : 석림의 바위정령의 팔을 뜯어서 만든 창. 석림의 기상과 바위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

"미쳤다."

공격력 자체는 조금 아쉽지만, 거기에 딸린 옵션이 보통이 아니다.

스피어 계열의 전사에게 이건 욕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스피어라. 그러면 한 명인데."

먼저 떠오른 것은 저번 일본침략 때 함께했던 열파창이다.

[썩이나감 : 똑똑. 계십니까?]

한 번도 연락을 한 적이 없지만, 일종의 방문판매라 생각하기로 했다.

철판을 깔고 귓말을 보내자 곧 답변이 왔다.

[열파창 : 무슨 일이지. 길드 가입인가?]

[썩이나감 : 그건 아닌데요.]

[열파창 : 그러면 용무는 없다.]

[썩이나감 : 직거래 하실래요?]

열파창에게 아이템에 대한 것을 보여주자 잠깐 동안 답이 없었다.

[열파창 : 얼마냐.]

곧 답이 온 그는 구매하기로 마음을 굳혔나 보다.

열파창 또한 지갑이 참 훌륭하게 두꺼운 소중한 고객님이라고 하니 조금 넉넉하게 불러도 될 것 같았다.

[썩이나감 : 작게 두 장만 주세요.]

얼마나 비싸게 뜯어먹을까 싶었지만, 잠깐 조사해 보니 열파창이 쓰는 무기도 좋았다. 어차피 거래를 트는 겪이고 히든레코드를 통한 거래가 아니니 다소 저렴하게 팔아도 큰 손해는 아니었다.

[열파창 : 무슨 꿍꿍이지.]

[썩이나감 : 전 특별한 분들과만 거래를 합니다.]

[열파창 : 독고무적과 흑군의 관계를 말하는 건가.]

열파창은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그와 내 관계를 생각하면 당연한 거다.

[썩이나감 : 전 제가 인정하는 사람과만 연락합니다.]

[열파창 : 내가 필요하면 널 이용할 수도 있나? 독고무적과 흑군과 싸울 수도 있다.]

[썩이나감 : 다른 VIP가 마음에 들면 오히려 모든 이들을 적으로 돌릴 수 있습니다.]

이건 거짓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독고무적과 흑군과의 관계에만 매달릴 생각은 없다. 난 그들의 동료가 아니라 개인사업자와 고객의 관계일 뿐이니까.

[열파창 : 웃긴 놈이군.]

[썩이나감 : 싫습니까?]

[열파창 : 무슨 의미가 있지?]

[썩이나감 : 제가 인정한 사람이라는 거니까요.]

열파창은 과연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다크게이머라는 인식을 떠나 한국을 떠나 전세계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플레이어를 꼽자면 무조건 나일 수밖에 없다.

과연 그는 이 내가 인정을 한다는 말을 오만하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그냥 관심을 받으려고 난리를 치는 것이라 생각할까.

[열파창 : 몇 번째지?]

[썩이나감 : 세 번째입니다.]

[열파창: 아쉽군.]

[썩이나감 : 싫으십니까?]

열파창은 깊게 고민을 하지 않았다.

[열파창 : 오크펠슨에서 보자.]

[썩이나감 : 퀘스트 끝내고 마저 연락드리죠.]

[열파창 : 친추는 안 받나?]

[썩이나감 : 아직 그럴 분이 안 타나났습니다.]

[열파창 : 그건 흥미롭군.]

불사자라는 직업 때문에 그랬던 것이지만, 열파창은 자신이 최강의 두 사람과 동등한 자리라는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 그러면 세 번째 증표를 잡아보실까."

동굴에 더 들어가 벽에 자란 넝쿨에 감춰진 고대오크전사의 증표를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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