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2화 고인물은인기가넘침.
유명세가 좋은 것은 아니다. 그건 너무나 달콤해 다른 것에 눈이 멀게 만든다.
칠대종의 세트를 팔 때부터 시작이었던 것 같다.
그때의 다크게이머는 지금보다도 인식이 좋지 않았다. 누구도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같이 게임을 하는 이들에게 이단자로 평가받으며, 그 어떤 노력도 인정을 받지 못하던 생활이었다.
그래서 칠죄종의 세트를 쥐었을 때는 아직도 잊지 못했다.
이때까지 나를 비웃고 배척하던 수많은 이들이 그걸 가지기 위해 내게 다가왔고 한 번도 듣지 못한 찬사를 들었으니까.
무슨 짓을 하더라도 유명해진다면 박수를 쳐준다. 그 박수소리에 감추어진 것은 경멸이었고 시기였으며 질투심이었다.
괴리감을 느꼈어야만 했다.
칠죄종 아이템들로 거액의 수익을 거두자 뉴스에서부터 그에 대한 온갖 사회적인 문제와 우려에 대한 도배가 되었다.
아이템 거래에 대한 본격적인 규제가 걸렸으며 나에 대한 모든 분위기가 정반대가 되었다.
그때 알아차려야만 했다.
행운 뒤에 찾아오는 것은 행운이 아니다.
ZI존짱짱맨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당시의 나와 비교가 되는 초라한 몰골이라서만은 아니다.
난 다시 그때의 실수를 하고 싶지 않아서다.
당시의 성공이 그저 일생에 한 번 오는 행운이 아니라 내 노력으로 다시 얻을 수 있는 당연한 결과이기를 바랐다.
"근데 왜 너네가 지랄이냐고."
이세계 침공에 대해서 온갖 떡밥과 해석에 대한 것들이 넘쳐났다.
히든레코드는 오피셜 혹은 그에 준하는 것만을 다루기에 찌라시는 커뮤니티에서 발품을 파는 걸 선호했다.
방구석 궁예와 현자들이 간혹 그럴싸한 것을 뱉어내기 때문이다.
[ZI존짱짱맨과 썩이나감 중에 누가 더 게임 잘 하나요?]
아웃벤의 엘리멘탈 소울2 자유게시판은 누군가의 떡밥 제공으로 인해 그걸로 키보드 워리어 짓들을 하고 있었다.
원문 작성자는 이번 엘리멘탈 소울2로 입성한 뉴비로 예전부터 네임드로 거론된 ZI존짱짱맨과 오픈 초기부터 지금까지 시간이 갈수록 이름을 날리는 썩이나감을 비교한 것이다.
[씹뉴비새끼 야한 냄새 존나 풍기면서 비교질 개쩌네.]
[ZI존짱짱맨 모르는 뉴비들 많네. 우리 칠대악룡 템팔이 형님이 누구 조옥으로 보이시냐.]
[ZI존 형님이 좀 쩌셨지. 혼자 다 깨버려서 난이도 겁나 올라감 씨발.]
[너네가 ZI존짱짱맨 때문이다를 알아? 지금도 그 새끼 때문에 칠대악룡 다 깬 사람이 없어.]
[누가 템 팔아서 강남 아파트를 살 돈 버냐고. 응?]
먼저 격한 반응을 보인 것은 전작부터 즐긴 유저들이었다. 아무래도 당시에 나로 인해 생겼던 변화를 똑똑히 기억하는 이들인지라 내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장업하게 써댔다.
저걸 보면 ZI존짱짱맨 시절의 내가 이렇게 옹호를 받던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다.
개인적으로는 과거미화가 좀 된 것 같다.
[ZI존짱짱맨도 그냥 템팔이 아님? 게임은 썩이나감이 더 잘하는 것 같은데.]
[팬티 하나 걸치고 싸우는 개쩌는 컨트롤러랑 템 다 끼고 싸우는 겁쟁이랑 같음?]
[ZI존이가 잘했으면 팬티 하나만 입고 싸웠겠지.]
[엘소1 컨트롤 줫도 없었잖아.]
[그래서 썩이나감처럼 일본에서 변태검사 소리 들어봤냐고.]
[한국에서만 1티어. 세계적 1티어. 비교를 왜 하지? 이미 증명된 건데.]
반면에 엘리멘탈 소울2로 시작을 한 이들은 전적으로 내 편을 들었다.
과거 내 캐릭터 ZI존짱짱맨. 현재 내 캐릭터 썩이나감.
둘은 참 다른 캐릭터다.
그러나 둘은 하나가 같았다.
남들은 하지 못하는 것을 했다는 것이다. 특히 중요한 점은 혼자서 했다는 점이다.
ZI존짱짱맨을 키워드로 정리하자면 극도의 효율과 철저한 준비다. 칠대악룡의 경우 레이드 한 번을 위해 보스를 프레임 단위 분석하던 것이 기본이었다.
반면에 썩이나감은 규격 외의 데미지와 그걸 기반으로 한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플레이다.
전작과 비교할 수 없이 게임 난이도가 올라간 상황에서 내 움직임은 여전히 화제가 되고 있다.
스킬 위주보다는 평타기반의 플레이는 혼자서 핵 앤 슬래쉬를 하고 있다는 말이 과언이 아니다.
[썩이나감 개는 그냥 관종이잖아. 예전 길드들 다 실패한 것 혼자 잡았다니까 감이 안 옴?]
[꼬우면 칠대악룡 잡던가. 어디서 그런 관종러 씹변태 새끼랑 비교를 해?]
[썩이나감 안티들 왜 이렇게 많냐. 오히려 일본이 더 평가 후한 것 실화?]
[썩이나감 플레이는 ZI존 같은 애들 못 따라한다고. 차원이 다르다니까?]
떡밥은 꽤나 훌륭했는지 원문의 댓글은 물론 추가생산된 게시판의 글들은 어느새 ZI존장짱맨과 썩이나감을 비하하고 조롱하는 것들로 번졌다.
"지들끼리 싸우는데 왜 나만 욕 먹냐고."
그 둘이 같은 사람인 것을 알고나 저럴까.
[ZI존짱짱맨 뭐하고 있는지 암?]
그 새끼 노가다판에서 욕먹으면서 벽돌 날랐다. 븅신들 템팔아 성공이니 개지랄하고 있네. ㅋㅋㅋㅋㅋ.
지금 중요한 것은 바로 이 게시글이었다.
모든 이들은 그를 어그로 꾼이라 생각하고 욕설과 함께 비추천을 눌러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못하게 만들었다.
"…누구지?"
그간에 내가 전전한 공사판이 한 둘이던가.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은 물론 아르바이트로 나온 학생들도 제법 있었다. 물론 내 또래도 마찬가지다.
어떤 세대라고 하더라도 공통점은 내 ZI존짱짱맨 시절 이야기를 다 귓등으로 넘겼다는 거다.
지금에서야 그걸 믿고 이런 글을 쓸 사람은 없었다.
[ZI존짱짱맨 막노동 뛴다는 글쓴이 누군지 알겠다.]
저 새끼 뉴 알론에서 이제 막 들어온 놈임. 계속 자기 ZI존짱짱맨이랑 친했다고 아가리만 터는데 게임 존나 못함.
파티 돌다가 자꾸 트롤짓해서 내쫓으니까 ZI존이 불러와서 혼내준다고 하더라.
골 때리는 놈임.
조회스는 낮지만 다른 유저의 글은 괘나 신빙성이 높았다. 어차피 이런 일은 예상이 되었으니 가볍게 무시하기로 했다.
지금의 커뮤니티 반응을 보니 제3자는 믿지 않을 것 같다.
설령 ZI존짱짱맨이 실제로 공사장을 전전했다고 알려져도 썩이나감과 동일인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없으니까.
내가 바라던 이세계 침공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더 없다는 것에 실망스러웠다. 저런 생산성 제로인 떡밥을 같이 물고 뜯으며 시간을 더 낭비할 수는 없었다.
일본에 침략을 다녀온 동안에 랭커 300위 자리에서 밀려났기 때문이다.
"여기가 맞나?"
게임에 접속해 세 번째 동굴에 왔다.
입구에서부터 다른 곳과 달리 인위적으로 만든 흔적이 역력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횃불을 들고 있을 필요도 없이 은은한 빛이 비추어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바닥이 축축하거나 벽에 이끼가 기지도 않았다.
그 이유는 곧 드러났다.
동굴은 천장이 뻥 뚫려 있었다. 바람 또한 입구에서 불어오니 습기 같은 것은 있을 수 없었다.
다만, 주변에 보이는 몬스터들이 없다는 점이 의문요소였다.
어쩌면 바닥이 무너져서 던전이 드러날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기대감을 품으며 한쪽 벽에 새겨진 글자가 손을 뻗었다.
[죽음의 수련소3.]
-드디어 마지막 장소에 도착했다. 초월한 존재의 시험에 이겨 인정을 받도록 하자.
-완료 조건 : 초월한 존재에게 승리.
-실패 조건 : 초월한 존재에게 패배.
마지막 죽음의 수련소는 도대체 어떤 존재를 불러올까.
쿠구구구구.
갑자기 지진이 시작되었다. 가볍게 발바닥을 타고 오른 진동은 점점 심해져서 벽에 손을 짚고 있어야만 했다.
툭. 투둑.
머리와 어깨를 무언가가 건드린다. 고개를 들어보니 동굴의 천장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불사자의 영혼함을 바닥에 설치하고 낙석을 피했다.
쿠웅! 콰앙!
크고 작은 암석들이 무작위로 떨어졌다. 개중에 하나가 불사자의 영혼함을 직격했다. 박살난 것은 아니지만 넘어져서 바닥이 고정되지 않았다.
이 낙석 패턴에서 죽으면 꽤나 먼거리를 돌아와야만 한다.
"그건 안 되지."
낙석의 정도는 심하지 않았다. 아래와 위를 번갈아보며 침착하게 피하며 범위 바깥에 재설치를 했다.
드드드득!
낙석이 끝나자마자 바닥에 깔린 암석들이 들썩거렸다. 다시 지진인가 싶었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암석들은 뻥 뚫린 천장의 아래로 발이 달린 것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걸 보면서 떠오른 것은 하나였다.
"정령?"
초월적인 존재를 생각한다면 정령인 것이 이상하지 않다.
한 달 주기로 나타나는 첫 번째 필드보스인 절망하는 산맥의 고대정령인 나타날 시기이기도 하니까.
하나의 형체를 이룬 것은 레벨67인 석림의 바위정령이었다.
다른 죽음의 수련소의 보스가 65인 것을 감안하면, 역시 퀘스트의 마지막답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외관이 좀 불쾌하시네."
석림의 바위정령은 두 다리가 없었다. 비석과 같은 형태의 머리에서 눈에 뜨이는 것은 루비와 사파이어, 에메랄드가 눈을 대신해서 각각 두 개씩 박혀져있었다. 몸은 뱀처럼 길었으나 등에는 날개와 같이 여섯 개의 팔이 달려 있었다. 특히 신경이 쓰이는 것은 석림의 바위정령이라는 이름답게 온몸의 끝이 칼날처럼 날카롭게 벼려졌다.
석림의 바위정령이 가진 세 쌍의 서로 다른 눈에 빛이 들어왔다.
놈은 나를 응시했고 적의를 표하며 다가왔다. 그 속도는 너무 느리거나 빠르지는 않았다.
천장이 뚫린 동굴은 워낙 넓어서 운신을 하는 것에 불편함이 없었다.
촤악! 촤악! 촤악!
거리를 좁힌 석림의 바위정령이 상단, 중단, 하단으로 여섯 개의 팔을 한 번씩 휘둘렀다. 그 다음에는 여섯 개의 팔을 모아 찌르기를 했다.
해당 패턴들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공격범위를 가지고 있었다.
추가적인 패턴이 나올 때까지는 찌르기 다음의 경직 타이밍에 꾸준히 강공격을 넣었다.
후우우웅!
체력이 조금 떨어지자 석림의 바위정령은 팽이처럼 제자리에서 돌기 시작했다. 그 원형으 흐릿하게 보일 정도로 속도를 끌어올리자 나에게 이동해왔다.
처음과 이동속도와는 확연하게 달랐다.
전력으로 달려야하는 것은 물론 석림의 바위정령에게 빨려가기 때문에 구르기까지 위기 때마다 사용해야 온전히 피할 수 있었다.
그 뒤에 경직이 찾아오는 것을 방관할 수 없었다.
역시나 강공격을 가한 뒤에 패턴을 계속 지켜봤다.
팔을 휘두르고 찌르는 패턴이 두 번, 그 뒤에 회전공격이 한 번이었다.
1페이즈의 공격패턴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스피어마스터의 소울을 사용합니다.]
거리를 벌린 뒤에 역섬기검을 사용했다. 차징게이지를 최대한 맞춰 사용했기에 응축된 검기는 탄환처럼 빠르게 쏘아졌다.
쾅!
역섬기검에 석림의 바위정령이 순간 흔들렸다. 일반공격과 두 배에 가까운 피해가 생긴 것을 보면, 방어력은 생각보다 낮아도 그만큼의 체력이 높은 것 같았다.
일단 1페이즈에서 날 위협하는 요소가 전혀 없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석림의 바위정령은 천천히 시간을 들이며 공략했다.
쿠우웅!
5분을 침착하게 공격을 이어나가자 석림의 바위정령이 땅으로 떨어졌다.
2페이즈가 될 것이라 예상했기에 어설프게 다가가지 않았다.
석림의 바위정령은 다시 몸을 일으켰다. 벼락을 맞은 것처럼 벌벌 떨던 몸의 놈이 균열이 생겼다.
파바바밧!
깨진 몸의 파편이 화살처럼 쏘아졌다.
[결사항전의 방패를 사용합니다.]
이번 패턴은 봐야하니 스킬을 써서 아예 버틸 생각이었다. 한쪽 무릎을 꿇고 몸을 웅크렸다.
석림의 바위정령의 몸은 12시 방향부터 시작해 시계 반대방향으로 순차적으로 뻗어나갔다.
[YOU DIED.]
최대한 몸의 면적을 낮췄음에도 일곱 번이나 맞자 죽음을 맞이했다.
공격속도는 피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니 2페이즈까지 편안하게 갈 것 같다.
두 번째 도전에서는 조금더 속도를 내서 1페이즈를 끝냈다. 아까 전에 본 것처럼 석림의 바위정령의 몸의 파편이 화살처럼 쏟아졌고 미리 1시 방향에서 기다리다가 공격이 끝난 지점에서 대기를 탔다.
석림의 바위정령의 몸은 아까 전의 날카로움과 단단함이 사라졌다. 다소 왜소해진 몸체는 절로 공격을 불렀다.
카앙!
"쳇."
혹시나 해서 공격을 했지만 검은 튕겨졌다.
2페이즈 시작부분은 아쉽게도 무적판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