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95화 고인물은레벨업만.
[퀘스트가 등록되었습니다.]
"또 뭔데."
고대오크전사의 증표를 패대기를 치려고 하는데 퀘스트 알림이 떴다. 속는 셈치고 퀘스트를 확인했다.
[고대오크.]
-고대오크의 기상과 뜻은 끊어지지 않았다. 남은 죽음의 수련소를 들러 고대오크의 정신을 잇자.
-완료 조건 : 고대오크 증표(1/3).
-실패 조건 : 퀘스트 포기.
이 퀘스트는 너무나 뜬금없었다.
고대오크에 대한 정보를 모으려면 오크펠슨이라고 가야겠지만, 지금은 레벨업이 중요할 뿐이었다.
석림 일대를 보면 지금 내가 있는 장소와 비슷한 곳이 주변에 두 개가 있다.
문제는 여기서 그 장소들을 선으로 그으면 중앙의 공터에 근접한다는 거다.
"이거 너무 뻔히 보이는데."
석림에 깊게 들어갈수록 더 강한 몬스터가 나올 것이다. 그걸 생각하면 나머지 죽음의 수련소 예상지역 근처로 갈 수밖에 없었다.
"들리고 없으면 그냥 사냥만 하면 되지."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만이다. 퀘스트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포기해 버리면 된다.
주된 목표는 레벨업이다.
이 퀘스트는 부가적인 것에 불가하다.
저번처럼 오크펠슨에 진입해서 헤벌레하고 넋을 잃어서는 안 된다.
나는 강해져야만 하고 어긋났던 삶을 다시 부유하게 살찌울 거다.
석림도 안쪽에 다가갈수록 초입에 비해 이동할 수 있는 공간이 넉넉해졌다.
다음 목표로 보이는 동굴 근처로 가는 시간이 대폭 줄어들 수 있었다.
바위 틈 사이가 조금만 더 넓어진다면 말을 타고 움직일 수 있을 정도다.
문제라면 폭이 넓어진 것에 비해 변변찮은 몬스터가 안 보이는 정도였었다.
[우끼끼끼끼!]
[끼아아악! 끼아악!]
두 번째 동굴은 돌기둥 원숭이들이 있었다. 왜 돌기둥 원숭이인가 했는데 기둥처럼 큰 형태의 바위를 들고 다니고 있었다.
레벨은 62로 오크전사 골렘과 동일한 수준이었다.
원숭이와 같은 유인원 개체들은 지능이 높은 편이며 흔히 말하는 졸렬한 플레이가 가능한 AI를 지니고 있었다.
돌기둥 원숭이들은 다가오지 않고 자기들끼리 웅성거리더니 모두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쓰읍. 불안한데."
불사자의 영혼함을 설치하고 동굴로 들어갔다. 어쩐지 익숙한 이끼를 걷어냈을 때다.
[죽음의 수련소2.]
-전설을 잇는 곳에서 새로운 수련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단신으로 수십의 적을 압도하는 무력을 보이자.
-완료 조건 : 죽음의 수련소2 통과.
-실패 조건 : 퀘스트 실패.
동굴은 죽음의 수련소1와 달리 지하로 깊게 들어갔다. 중간마다 벽에 이끼가 있으면 틈틈이 긁어내서 팁을 찾아냈다.
[TIP]
야생의 감각은 중요합니다. 이곳의 훌륭한 교관들은 당신이 혼자서 수많은 상대에게 싸울 수 있도록 도울 겁니다.
차라리 오크병사 골렘보다는 이쪽이 더 좋을 것 같다. 대규모로 쏟아지는 적만큼 좋은 레벨업 수단은 없으니까.
"여기 종유석 동굴이구나."
계속 아래로 내려가던 중에 동굴은 조금씩 모양이 바뀌어갔다.
천장에서부터 뻗어 내린 종유석은 석림을 거꾸로 뒤집은 축소판과 같이 보였다. 거기에서 흐르는 지하수가 고여 호수가 되었다. 의아한 부분은 종유석이 있다면 석순과 석주가 있어야만 했다는 거다.
호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위적으로 무언가가 부러지고 꺽인 자국이 보였다.
좁고 굽어진 길을 지나 물소리를 따라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절벽이네."
동굴 안의 절벽. 밑을 확인하기 위해 들고 있던 횃불을 던졌다.
추락하는 빛은 점점 희미해졌고 수면에 떨어졌는지 돌멩이를 던진 것처럼 작은 소리가 들렸다.
밑에 물이 있다면 떨어져도 살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생기지 않았다.
벽은 습기와 함께 번들거리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위를 보면 종유석들이 자라나 있었다.
쩌저적.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에 시선을 조금 돌리니 종유석 하나가 밑으로 떨어졌다.
"낙사 위험. 낙석 위험."
죽음에 대한 패턴이 눈에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곳이다 싶어서 불사자의 영혼함을 설치했다. 어차피 죽어도 상관없으니 그대로 밀어붙일 생각이었다.
횃불과 미치광이 광대의 검을 들고 앞으로 나아갔다.
[우끼끼끼끼!]
"…저게 된다고?"
S자로 틀어진 길목에 진입했을 때, 머리 위의 천장에서 원숭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돌기둥 원숭이 세 마리였는데 바깥에서 보던 것들과 달리 덩치가 무척 작았다.
레벨도 30대인 것으로 보니 새끼들이었다.
쿵! 쿵! 쿵!
"저 새끼들이!"
돌기둥 원숭이 새끼들이 내 머리 위에서 날뛰기 시작했다.
천장이 울리며 종유석들이 흔들거렸다.
콰과과과곽!
종유석들이 머리 위에서 떨어진다. 다른 캐릭터면 몰라도 이쪽은 강철피부가 있기 전까지는 기본 방어력만 가지고 있던 불사자다.
종유석에 맞으면 필사다.
좁은 길목에서 속도를 붙이며 달릴 수밖에 없었다.
턱!
"어?"
꺾인 골목을 지나치는 순간에 무언가가 나를 밀었다.
[우끼끼끼!]
돌기둥 원숭이가 손바닥을 보이며 환하게 웃었다. 여기서 죽을 수는 없다.
[벽타기를 사용합니다.]
이 스킬이라면 절벽에 한 발이라도 닿기만 하면 살 수 있다. 그렇게 발버둥을 쳤지만 몸뚱이는 절벽에서 떨어졌다.
횃불이 꺼지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계속 낙하를 하며 죽을 때를 기다려야만 고민이 들었다.
[등가교환의 방패를 사용합니다.]
그때 생각이 난 것은 이 스킬이었다.
물에 떨어지면 피해량은 감소한다.
내 무지막지한 공격력의 30%를 방어력으로 바꾸는 스킬이라면 생존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었다.
수면으로 몸뚱이가 들어가기 전에 횃불을 하늘 높이 던졌다.
콰아앙!
드라마처럼 부드럽게 바다에 빠지는 것을 생각했지만, 그건 내 오산이었다.
아래에서 자라난 석순과 석주에 몸이 꿰뚫렸다.
[플레이어가 상태이상 기절에 걸렸습니다.]
[플레이어가 상태이상 출혈에 걸렸습니다.]
즉사는 아니지만 체력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회복을 하고 싶어도 상태이상으로 인해 그건 불가능했다.
물을 잔뜩 마셔 줄어든 산소보다 체력이 먼저 빠지고 있었다.
치이이이익!
내가 위로 던졌던 횃불이 뒤늦게 떨어지며 나뭇가지만 몸에 닿았다.
잠시 물속이 비추어졌고 보였던 것은 거대한 괴물이 벌린 입안이었다.
[YOU DIED.]
어류로 추정되는 몬스터에게 죽은 후, 곧바로 부활했다.
저 원숭이들을 어떻게 처리할까는 이미 계산이 서 버렸다. 손에는 아까와 달리 슬링이 들려 있었다.
[우끼끼끼끼!]
내가 모습을 보이자 새끼 돌기둥 원숭이들이 천장에서 난동을 부리려고 했다.
종유석이 떨어지기 전에 놈들을 향해 힘껏 슬링을 휘둘렀다.
화살보다 더 빠르게 날아가는 것은 돌멩이나 쇠구슬 같은 것이 아니었다.
삐이이익!
[끼아아아악!]
[끼이익!]
바로 섬광탄이었다. 진즉 눈을 가리고 있던 나는 상관이 없었지만, 새끼 돌기둥 원숭이들은 아니었다. 눈이 부셔서 비비다가 자신들이 흔들었던 종유석과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아까 나처럼 수면에 사는 무언가의 먹이가 되었을 확률이 높다.
[끼아아아악! 끼아아아악!]
새끼들이 죽어서일까.
나를 밀쳐서 죽였던 구간에 있던 돌기둥 원숭이로부터 지독한 고함소리가 들렸다.
구구구구구!
"와."
돌기둥 원숭이들은 가족에 대한 사랑이 대단한 것 같다. 나를 유인하기 위해 안으로 도망쳤던 놈들이 돌기둥을 들고 나한테 달려오고 있었다.
[창공의 독수리를 사용합니다.]
정확한 숫자를 알 수 없었다. 시선이 가는 것은 밑의 호수인지 강인지 알 수 없는 곳에서 먹이를 기다리는 괴물 하나 정도일까.
앞으로 달려 나가면서 불리한 싸움을 할 필요는 없다.
불사자의 영혼함이 있는 곳까지 후퇴했다. 바로 뒤는 좁은 통로였기에 내가 서있는 것만으로도 지나가지 못할 정도였다.
[끼아악! 끼아아악!]
돌기둥 원숭이 떼의 대열에서 맨손인 녀석이 선두에 있었다. 방금 전에 나를 밀어서 죽인 놈이었다.
내 사정거리에 다가오는 놈을 향해 역섬기검을 휘둘렀다.
[키헤엑!]
역섬기검을 놈을 피하지 못했다. 가슴팍에 길게 상처가 남으며 뒤로 나가떨어졌지만, 매정하게도 뒤의 동료가 놈을 밑으로 밀어버렸다.
"매정하네. 친구들."
다친 동료라서 버린 것일까. 아니면 새끼가 죽도록 해서 죽인 것일까.
뒤의 원숭이들은 돌기둥을 들고 달려들었다.
결사항전의 영역을 쓸까 싶었지만, 그건 좋은 선택이 아니다,
지능이 높은 개체들은 동료가 어느 정도 죽으면 무조건 뒤로 도망갈 것이다.
[1인 도발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좋은 것은 이 스킬이다.
최대한 먼거리에 사용하자 뒤에 있던 돌기동 원숭이가 억지로 동료들을 밀며 달려왔다.
[끼아아아악!]
[끼이이이익!]
그 앞의 놈들이 줄줄이 밑으로 떨어졌다.
나와 대치 중이던 놈은 어쩔 수 없는지 먼저 나에게 달려들었다. 공격모션은 평범한 내려찍기였다.
터엉!
그러면 튕겨내기로 바로 공격을 방어했다. 그 뒤에는 찌르기로 치명타를 터트렸다. 휘청거리는 돌기둥 원숭이의 발을 걸고 어깨를 잡아당겼다.
[끼이이익!]
돌기둥 원숭이는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어차피 마석이 나오는 개체는 정해져 있다. 저런 동물계통에는 보스급이 아니고서는 거의 나오지 않는 편이었다.
후웅! 후웅!
도발을 당한 돌기둥 원숭이는 동료 셋을 더 떨어트리고 나서야 나에게 당도했다.
위에서 찍어 누르는 공격을 튕겨낸 후에 똑같은 방법으로 밑으로 떨어트렸다.
[키하아악! 키하악!]
뒤에서 들린 소리에 돌기둥 원숭이들이 슬금슬금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걸 가만히 볼 수 없기에 헤이스트를 사용해 뒤따라가며 하나씩 끊었다.
돌기둥 원숭이들이 멈춘 곳은 공터였다.
쿵! 쿵! 쿵! 쿵!
[우! 우! 우! 우!]
원숭이들은 기둥으로 땅을 두들기로 거친 숨을 내뱉었다.
쿠웅! 쿠웅!
그보다 더 큰 진동이 맞은 편 입구에서 느껴지기 시작했다.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른 원숭이를 압도하는 거대한 몸뚱이었다. 곰을 같이 세워 놓아도 더 크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Lv65 대왕 돌기둥 원숭이.
오크전사 청동골렘과 동일한 레벨이었다.
"온다."
전형적인 보스 패턴이다. 내 생각보다 이 수련소가 일찍 끝나겠다고 생각할 때.
[우끼기기기긱!]
대왕 돌기둥 원숭이가 웃으며 돌기둥을 들어 올리자 다른 놈들이 나를 향해 돌기둥을 집어던졌다.
"…씨발."
이건 피할 수 없었다.
* * *
한국과 일본의 PvP 신경전은 날이 갈수록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다.
썩이나감과 오니기리의 충격적인 일전을 시작에 자극을 받은 한일양국의 유저들이 오크펠슨에 많은 진출을 시작했다.
그로 인해 서로 이기고 질 때마다 반응의 모아 퍼가면서 커뮤니티에서는 이기면 국위선양, 지면은 매국노라고 도배가 될 정도였다.
[삼보일배 : ㅅㅅㅅㅅ. 갓한민국 승리요!]
[한강의기적 : 금일 한일전 전적 2대1. 막판 역전승 실화냐.]
[지화자좋다 : 주모! 여기 국뽕 한 사발 더!]
게임 내부만 보더라도 1초가 무섭게 속보를 전했다. 신이 난 댓글들이 1차적으로 올라오면 그 뒤에는 끝없는 태극기의 물결이었다.
"멍청한 놈들."
황금추적자는 그런 분위기를 보면서 콧방귀를 뀌었다. 저들이 실컷 분위기를 내는 동안에 진짜 게임은 자신이 만들어가고 있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술 마시고 놀러다니는 멍청한 동기들을 보는 것 같았다.
"네놈들은 결국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게 될 거다."
다크로얄의 지원을 받아 마인시티에서 작업장을 만들 인프라를 갖추게 되었다. 오토로 돌릴 수 있게 프로그램도 새로 구매했으니 1주일 정도만 지나면 마석과 강화석을 대량으로 생산이 가능했다.
"한국시장만 먹는 것은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황금추적자는 성공적으로 작업장을 만들고 그 시스템을 다크로얄에 제공하기로 했다. 그러면 다크로얄은 다른 국가들에 자신이 한 시스템으로 작업장들을 만들 셈이었다.
로얄티를 받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마인시티에 대한 작업의 수익을 가지기로 했으니 마냥 나쁜 것도 아니었다.
"겨우 300위 랭커에 든 네놈 따위가 내 상대가 아니라는 거다."
황금추적자는 새로 갱신된 랭커명단을 보며 기분이 나빠졌다. 거기에는 썩이나감이라는 닉네임 네 글자가 당당하게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