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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은 옷을 입지 않아-94화 (94/201)

제094화 고인물은탐험한다.

동굴의 막다른 벽에 다다랐다. 미니맵 상으로도 완전히 탐험을 다했다.

[도전과제, 모험가의 정신을 달성하였습니다.]

"……."

지금 뜬 알림은 어쩐지 날 조롱하려는 것만 같았다. 여기까지 온 시간까지 생각하면 거의 10분 이상을 땅에 버렸다. 그걸 생각하니 부아가 치밀었다.

내가 이러는 동안에 부주까지 쓰는 놈들은 더 레벨이 올라가고 있을 것이다.

사람인 이상 잠을 자야만 하는 나와 달리 그들은 적게는 2인에서 많게는 4인까지 하루 종일 한 캐릭터를 돌리니 그걸 따라잡기란 쉽지 않았다.

최소 3시간씩 매일매일 쌓였으니 그 차이는 이루어 말할 수 없다.

불사자라는 것을 떠나 혼자서 고레벨의 몬스터를 잡음에도 랭커에 못 드는 것에는 이유인 것이다.

"뭐라 적혀 있는데."

이끼로 가려진 벽은 뭔가 흔적이 있었다. 손으로 그걸 지우자 글자가 드러났다.

[죽음의 수련소.]

"……."

아무것도 없는 수련소라니 무엇일까. 죽은 뒤에는 아무것도 없으니 그걸 뜻하는 걸까.

[퀘스트가 등록되었습니다.]

갑자기 이건 무슨 일일까. 이해가 되지 않아 퀘스트를 확인했다.

[죽음의 수련소.]

-고대의 오크전사들이 절망의 산맥을 재패하는 용맹한 전사가 되기 위해 들렀던 곳이었던 죽음의 수련소가 다시 열렸다. 지금은 잊힌 이곳을 통과해 전설을 잇자.

-완료 조건 : 죽음의 수련소 통과.

-실패 조건 : 플레이어의 사망.

아무래도 내가 굉장한 곳에 도달한 것 같다.

결국 절망의 산맥을 제패하지 못한 오크들이 오크펠슨을 세우고 그조차도 모자라 뉴 알론 건설에 힘을 보탠 거니까.

즉, 이 수련소를 통과해야 오크펠슨을 넘어갈 자격이 주어진다는 소리였다.

던전은 아니라지만 플레이어의 사망이 실패이니 썩 기분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맛만 볼까."

지금까지 지나온 동굴을 생각하면 유력한 것은 함정이었다.

횃불을 들고 왔던 길을 돌아갔다.

아까 전에 지나왔던 것과 다른 부분은 없다.

이끼가 낀 벽에 파인 자국이 보여 혹시나 싶은 마음에 손으로 털어냈다.

[TIP.]

죽음의 수련소는 총 3단계로 나눠집니다. 1단계는 함정, 2단계는 모의전투, 3단계는 대결입니다.

뭔가 튜토리얼 느낌이 나는 친절한 설명이었다. 만약 경험치도 튜토리얼만큼 준다면 좌절할 것만 같았다.

앞을 조심스럽게 나아가면서 이끼들을 걷으면서 갔다.

[TIP.]

부상을 입어도 당신을 도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곳에 들어선 자들에게 용기를 주는 말이다.

내가 선택한 것이니 악으로 깡으로 버틸 수밖에 없었다.

[TIP.]

먼저 죽은 자들의 흔적을 쫓으면 당신이 죽을 확률을 줄일 수 있습니다.

이번 팁을 보면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오래 지났는지 그 흔한 백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착용했을 무기와 방어구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내가 죽음으로서 하나하나 쌓을 수밖에 없다.

[헤이스트를 사용합니다.]

[벽타기를 사용합니다.]

던전의 컨셉마다 함정은 다양하다. 개중에 가장 사망확률이 높은 것은 바닥 부분이었다.

바닥이 꺼지는 기본적인 것은 물론 잘못 발을 내딛으면 천장이나 양쪽 벽에서 함정이 발동되어서 뭔가가 쏟아진다.

벽도 마찬가지다. 잘못 등을 대거나 손을 짚으면 함정이 발동된다.

그래서 느낀 건데 차라리 천장을 밟고 달리는 것이 안전했다.

스태미나를 모두 덜어낼 작정으로 전력으로 달렸다.

벽타기의 유지시간이 끝나고 천장에서 떨어져 바닥에 내려왔다.

달칵.

내 두 발보다 조금 더 앞의 바닥이 살짝 내려갔다. 직접 무게를 싣지 않아도 충격 때문에 작동한 것이었다.

[등가교환의 방패를 사용합니다.]

반사적으로 스킬을 사용함과 동시에 양옆에서 수십 개의 창들이 몸을 찔렀다. 순식간에 체력이 30%가 닳았다.

[플레이어가 상태이상 중독에 걸렸습니다.]

녹색으로 변한 체력게이지가 조금씩 사라졌다.

이전에 받은 해독약을 즉각 섭취했다. 설마 이렇게 요긴하게 쓰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함정은 이런 식으로 지나가면 되겠네."

함정 하나하나를 피하기 위해 사방을 조사하는 것은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린다.

스킬 쿨타임을 기다렸다가 그대로 밀어 버리는 것이 제일 효율적이었다.

두 차례 더 같은 방식으로 동굴을 지나오자 보이는 것은 간간이 보이던 괴이한 석상이었다.

카드드득.

날 보는 석상들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간 쌓인 흙먼지와 녹이 껍질처럼 부서지며 드러난 것은 두 손에 도끼를 한 자루씩 들고 있는 오크의 형상이었다.

Lv61. 오크전사 골렘.

바위투구 독벌보다 2레벨이나 높다. 내가 죽을 치고 사냥하기에 딱 좋았다.

쿵! 쿵! 쿵! 쿵!

오크전사 골렘은 나를 보자마자 무거운 발걸음을 움직였다. 가까이 다가오기도 전부터 쉴 새 없이 도끼를 휘둘러 대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특이한 점은 오크치고는 체격이 작은 편이었다. 또한 오래되었는지 움직임일 때마다 한 번씩 관절 부분에 불통이 튀며 버벅거렸다.

푸쉬이이이익!

오크전사 골렘이 움직임을 멈추고 관절들에서 열기가 빠져나왔다.

예열이 끝난 오크전사 골렘의 움직임은 방금 전보다 부드러워졌다.

도끼도 그냥 찍어 대던 것이 중간마다 횡으로 베는 것으로 바뀌었다.

푸쉬이이이익!

오크전사 골렘은 다시 한 번 열기를 배출했다. 처음에 색을 잃었던 몸뚱이는 점점 색을 찾고 있었다. 마냥 패턴을 본다고 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 뒤늦게라도 끝내야만 한다.

[스피어마스터의 소울을 사용합니다.]

골렘의 특징은 역시 엄청난 방어력에 기인한다. 체력만 무식하게 많은 개체보다 나에게는 이쪽이 더 편하다.

카가가각! 카가가각!

멀찍이 떨어진 후에 역섬기검을 펼쳤다. 차징게이지도 모두 채웠기에 추가 데미지까지 적용된 일격은 오크전사 골렘의 몸뚱이를 베며 정신이 사나울 정도로 불똥을 튕겨냈다. 적절하게 건맨의 소울도 발동되어 무려 두 번의 공격판정이 되었다.

쿠웅!

오크전사 골렘은 단번에 절반이상의 체력을 잃고 무릎을 꿇었다.

푸욱! 촤악!

품속으로 다가가 평캔으로 찌르고 베어내며 두 번의 데미지를 준 후에 뒤로 돌아 마무리 일격으로 등판을 박살냈다.

오크전사 골렘에게서는 고철 2개와 망가진 기어 1개. 그리고 마석 1개를 획득할 수 있었다.

다른 것보다 마석을 획득한 것에 눈이 번뜩 뜨였다.

무기 강화석이나 방어구 강화석은 공급도 수요도 많은 반면에 마석은 공급량이 무척 부족한 편이었다.

지금 필요하기는 한데 무조건 살 필요는 없다. 내 돈 주고 사기는 아까운데 수량이 적어지면 불안해지는 찝찝한 입장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얻을 수 있다면 최고다. 확실히 골렘은 비교적 높은 확률로 마석을 드랍하는 쪽이었다.

"이러면 풀로 땡겨야지."

죽음의 수련소가 아니라 마석채굴장이 아닌가. 이러면 오크전사 골렘을 관찰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이곳에서 레벨 2 정도는 올릴 때까지 말뚝을 박는다.

오크전사 골렘이 열기를 뿜어대기 전에 곧바로 죽여 나갔다. 그렇게 나아가다가 내가 설치한 불사자의 영혼함의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오크전사 골렘이 보였다.

위치상으로 보면 2단계는 이미 지났다.

3단계인 대결로 보였다.

저 오크전사 골렘이 마지막인 것도 확실했다.

드드드득.

레벨65의 오크전사 청동골렘은 두터운 목을 돌려 나를 응시했다.

이때까지 오크전사 골렘이 쌍도끼를 들은 것과 달리 놈은 거대한 배틀엑스 하나를 양손으로 쥐고 있었다.

[그거걹궑컥!]

목에 가래가 아닌 칼날을 박은 것만 같은 거칠고 듣기 불편한 음성이 오크전사 청동골렘에게서 흘러 나왔다.

[고대 오크어를 배우지 못했습니다.]

[고대 오크어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냥 괴성인 줄 알았건만 나름대로 심어 놓은 메시지가 있던 모양이다.

전작에서 고대종족어는 퀘스트로도 못 얻는다.

고대라는 타이틀이 달린 몬스터를 수천마리를 잡아도 고대종족언어 책 하나가 나올까 말까였다.

오크전사 청동골렘을 굳이 상대할 필요는 없다.

[헤이스트를 사용합니다.]

[등가교환의 방패를 사용합니다.]

목표는 오크전사 청동골렘의 뒤에 있는 불사자의 영혼함이었다.

콰앙!

골렘의 괴력에서 휘둘러지는 배틀엑스가 내 머리를 후려쳤다.

내 몸뚱이는 그대로 아작이 나버렸다.

[YOU DIED.]

회색으로 변한 시야는 드워프로 플레이하는 것처럼 낮아졌다. 충격에 못 이겨 아예 다리가 작살나며 죽은 탓이다.

달빛으로 인해 흑백이 가려진 세계에서 청동골렘은 기이하게도 전투태세를 풀지 않고 있었다.

[퀘스트를 실패하였습니다.]

성공적으로 퀘스트는 실패했으니 잠깐 기다리면 어그로는 빠질 것이다.

"재 왜 안 가."

문제는 3분이 지났는데 오크전사 청동골렘이 날 죽인 장소에서 물러날 생각을 안 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플레이어가 죽으면 몬스터는 제자리로 돌아간다.

"불사자 영혼함 때문은 아닌데."

불사자 영혼함이 근처에 있어서 어그로가 유지가 되는 현상은 있을 수 없다.

예전에 이미 확인한 일이었다.

"별 수 없나."

어쩔 수 없이 불사자의 영혼함에서 부활하는 수밖에 없다. 이놈을 죽이고 다시 퀘스트를 받으면 될 뿐이니까.

[결사항전의 영역을 사용합니다.]

[스피어마스터의 소울을 사용합니다.]

불사자의 영혼함에서 부활하는 즉시 스킬을 가동했다.

[그거걹궑컥!]

오크전사 청동골렘은 또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였다. 놈이 크게 배틀엑스를 들어 올리자 구르기로 옆으로 이동했다.

콰앙!

배틀엑스가 지면을 후려치고 천장이 무너진다.

결사항전의 영역 속이니 머리와 어깨를 두드리는 바위들을 무시하고 등과 옆구리에 검을 찔러 넣었다.

[카캌크투케악!]

가래침을 뱉기 전의 소리 같아 불쾌함도 들었다.

차징게이지를 포기하고 역섬기검을 짧게 쓰며 충격을 준 뒤에 잠깐 멈칫거리는 놈의 겨드랑이를 후벼 팠다.

쿠웅!

연이은 충격에 절반의 체력을 잃은 오크전사 청동골렘이 뒤뚱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이때를 놓칠 수 없어 연이어 공격을 가하려고 했다.

푸쉬이이이익!

"큭!"

오크전사 청동골렘이 열기를 내뿜었다. 가까이에 있던 탓에 체력이 순식간에 떨어졌는데 황급히 반격을 가해 체력을 채움으로써 만회했다.

후우웅!

열기로 일그러진 공간을 가르며 청동골렘의 배틀엑스가 나를 노려왔다.

반사적으로 주저앉으며 피했다.

배틀엑스는 피했지만 아직 놈의 몸에서 뿜어지는 열기 탓에 체력은 실시간으로 빠졌다.

[플레이어가 상태이상 화상에 걸렸습니다.]

가까이에 있는 것만으로 결국 화상도 입었다. 움직일 때마다 체력이 닳아 버리니 한시라도 빨리 청동골렘을 쓰러트러야만 하는 이유가 생겼다.

터어어엉!

튕겨내기를 쓴 것은 배틀엑스를 머리 위에서 찍어 누를 때였다.

골렘 특유의 정직한 동작은 다른 몬스터에 피해서 파악하기가 쉬운 편이었다.

푸욱! 촤악!

그 후의 경직상태에서 치명적 찌르기로 치명타를 입힌 후, 그대로 검을 그어 버렸다.

쿠우우웅!

오크전사 청동골렘은 무릎을 꿇으며 무너졌다. 놈의 몸을 뒤지자 나온 것은 마석 하나와 고대오크전사의 증표였다.

레벨이 높은 개체라 기대했건만 가지고 있던 것은 변변찮다.

[고대오크전사의 증표.]

-종류 : 퀘스트 아이템.

-설명 : 고대오크가 용맹을 증명한 전사에게 주는 증표이다.

이 아이템이 어떤 퀘스트를 줄 것인지는 지금으로서는 모른다. 아마 석림을 더 뒤져야 하겠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이 동굴에서 골렘의 사냥이 더 중요했다.

레벨도 올리고 마석도 얻는 일석이조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불사자의 영혼함을 회수해 다시 동굴 끝으로 돌아가 손을 뻗었다.

[퀘스트가 등록되었습니다.]

다시 마석과 경험치를 얻을 생각을 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 꿀을 나만 빨고 아무런 필요가 없을 때 히든레코드에 정보를 올리던가 해야겠다.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응?"

문제는 손을 떼자마자 뜬 알림이었다.

어째서 다시 시작하기도 전에 퀘스트가 끝났단 말인가. 이상함을 느낄 때 인벤토리에 있는 고대오크전사의 증표가 보였다.

"씨발."

이걸 줍지 말았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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