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은 옷을 입지 않아-93화 (93/201)

제093화 고인물은합성한다.

[튜토리얼.]

스킬합성은 직업스킬 이외에 획득한 스킬들을 합쳐서 더 강력한 스킬을 만들기 위한 기능입니다.

스킬합성의 첫 내용부터 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내 스킬란은 크게 네 가지 분류로 나눌 수 있다.

링크, 직업, 일반, 생활이다.

링크스킬은 처음에 택한 세 가지의 소울이었다. 물론 불사자 특전으로 나는 네 개다.

칠죄종의 스킬도 있는데 이건 칠죄종의 소울로 인한 것이라 사실상 한 몸이라 치부해도 된다.

직업스킬은 불사자라 세 가지 밖에 없었다. 일반적인 유저는 이 직업스킬이 압도적으로 많은 구조였다. 오히려 스킬이 너무 많아서 필요 없는 것은 배우지도 않는 경우가 많았다. 여기서 소분류로 들어가 액티브와 패시브 스킬로 나눠진다.

링크와 직업을 제외한 이외의 것을 일반스킬로 부른다.

나의 경우는 직업이 아닌 이 일반스킬이 많을 수밖에 없었고 또 의존해야만 하는 구조라 여기서 액티브와 패시브로 나눠진 상태였다.

일반스킬만 18개고 마지막인 생활스킬이 2개였다.

내 스킬을 파악한 뒤에 튜토리얼의 가이드를 유심히 살폈다. 두 개의 스킬을 슬롯에 올리고 마석을 사용해 융합하는 거였다.

소울리스가 양심적인 것이 이 스킬 두 개가 합성이 실패해도 마석만 소비가 되었다. 만약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취소할 수 있었다.

"내가 마석이 있던가."

창고에 있던 것으로 기억이 나기에 그렉의 옆에 불사자의 영혼함을 심어 두고 바위넝쿨장미에 다가갔다.

휘리리릭!

바위의 좁은 틈으로 들어가자 가시넝쿨이 고치처럼 나를 감아쥐었다.

[YOU DIED.]

빈약한 방어력에 그것만으로도 사망했다.

회색의 시야를 살짝 가리는 선택지를 무시하고 본 것은 가시넝쿨이 내 몸뚱이를 삼킨 꽃잎이었다.

욕조에 입욕제를 푼 것처럼 묘한 색깔이 번지며 내 캐릭터의 뼈가 떠오르는 것이 보였다.

식인식물은 확실하다.

가까운 도시로 이동을 눌러 오크펠슨에 부활해 창고를 털었다. 나중에 가격이 오르면 팔려고 쟁여둔 마석이 다섯 개 정도있었다.

오크펠슨 바깥으로 나가 죽은 다음에 안전하게 불사자의 영혼함에서 부활했다.

"뭘 합성해볼까."

스킬이 사라지지도 않고 시중의 마석은 다섯 개다. 이걸 시험하려면 뭔가 합쳤을 때 그럴 듯한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어야만 한다.

먼저 택한 것은 십보섬검이었다.

카쿤에게 얻어서 요긴하게 쓰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아쉬웠다.

다음에는 슬링의 사용비중이 적어졌으니 해당 액티브 스킬은 파워샷을 택했다.

지금보다 십보섬검이 더 강해진다면 든든할 수밖에 없다.

[십보섬검과 슬링샷의 스킬합성을 진행하시겠습니까? Y/N.]

스킬합성확률은 50%로 높은 편이었다. 이러면 실패할 염려가 없으니 마음 놓고 실행했다.

쿠궁! 쿠궁! 쿠궁!

십보섬검과 파워샷의 아이콘 부분이 흔들리며 천천히 찢겨졌다. 그사이에 놓인 마나석이 발화하며 조용히 사라졌다.

[스킬합성이 실패하였습니다.]

"……."

설마 80% 확률을 실패할 줄 몰랐다. 이쯤이면 눈앞에서 총을 쐈는데 말도 안 되는 물리엔진으로 빗나간 상황이었다.

네 개 남은 마석을 어루만지며 다시 스킬합성을 시도했다.

쿠궁! 쿠궁! 쿠궁!

다시 스킬 아이콘들이 흔들리며 마나석이 발화했다.

아까 전에는 마석이 하얀색으로 끝났는데 이번에는 금색으로 끝이 났다.

[스킬합성이 성공하였습니다.]

"좋았어."

이것마저 실패했다면 고객센터에 장문의 편지라도 썼으리라.

[십보섬검을 훼손하였습니다.]

[파워샷을 훼손하였습니다.]

[역섬기검을 생성하였습니다.]

일단 스킬합성은 되었지만, 그게 날 만족시킬 수 있냐는 다른 문제였다.

[역섬기검.]

-스킬 : 액티브 스킬.

-효과 : 6M 이내의 적에게 물리공격력 110% 데미지를 줍니다. 무기공격력이 추가피해를 줍니다.

-쿨타임 : 2분.

-마나 소모량 : 100.

-기력 소모량 : 25.

이 스킬은 처음으로 얻은 차징형 스킬이었다. 추가피해를 주려다가 적의 공격에 맞고 죽지 않도록 유의해야만 한다.

십보섬검을 기준으로 하면 마력소모량이 25초가 주는 대신에 기력이 그만큼 소모가 되었다. 나로서는 반길 일인데다가 쿨타임이도 2분대로 줄어드는 기적을 맛봤다.

"미쳤다. 미쳤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스킬효과였다. 이건 단순한 스킬이 아니라 필살기라도 불러도 무방했다.

드디어 나에게도 다른 직업군과 비교해도 자랑할 만한 스킬이 생긴 거다.

남은 마석 세 가지로 기분 좋게 다른 스킬들을 시도했다.

물론 가슴이 아플 정도로 실패만 뜨고 마석이 사라졌다.

"처음이 운이 좋은 거였나."

스킬이 아무렇게나 합쳐지는 것은 아닐 것이고 조합식도 있을 거다. 그걸 다 파악하려면 엄청나게 많은 마석이 소모될 터였다.

"…이건 당분간 숨겨야지."

누구에게도 이건 알려줄 수 없다. 미리 마석과 스킬북을 사재기라도 한 다음에 써야만 한다. 어지간히 심심한 놈이 아니면 나처럼 일반스킬을 무작위로 배웠을 리가 없으니까.

[도전과제, 스킬합성 1회를 달성하였습니다.]

[도전과제, 스킬합성 1회 실패를 달성하였습니다.]

[도전과제, 스킬합성 1회 성공을 달성하였습니다.]

누적된 도전과제 알림도 체크하며 보상을 기대했지만, 마석이 아니라 고작 은화 30개가 끝이었다. 이래서야 누구 코에 붙이라는 것인 줄 모르겠다.

"그래서 일 할 거야. 말 거야?"

"해야죠. 어르신. 시켜만 주세요."

날 다그치는 그렉이 이렇게 감사할 수 없다. 웃음을 참을 수 없어서 아주 헤실헤실 나왔다.

[퀘스트가 등록되었습니다.]

"저거 없애고 잎이랑 뿌리랑 들고 오라고. 가시넝쿨은 알아서 하고."

그렉이 또 어떤 보상을 줄 것인지 잔뜩 기대를 하며 바위넝쿨장미로 이동했다.

놈은 여전히 가시넝쿨로 좁은 바위사이를 다 막아 둔 상태였다. 그 이외의 공격은 하지 않는 것을 봤기에 기름통을 거기에 설치했다.

촤르르륵!

가시넝쿨은 곧바로 기름통을 감쌌다가 물러났다.

"귀찮게 편식하네."

다시 기름통을 회수하고 벽타기로 바위 위에 올라갔다. 이번에는 기름통을 바닥에 던져버렸다.

콰앙!

기름통이 바위에 부딪치며 깨졌다. 안에 차 있던 기름들은 가시넝쿨을 촉촉하게 적셨다.

"피부에 양보하고 잘 가라."

오랜만에 슬링을 꺼내 화염의 구슬을 기름에 젖은 부분에 던졌다.

화르르르륵!

가시넝쿨이 불이 붙으며 꿈틀거렸다. 여기서 의외의 상황이 나왔는데 불이 더 번지기 전에 자신의 넝쿨을 일부 잘라 버린 거였다.

[키이이이익!]

처음에 내가 죽을 때와 다르게 바위넝쿨장미가 소리를 냈다. 발성기관이 있다는 것은 별로 좋은 소식은 아니다. 지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물론 일반 몬스터가 아니라 최소 정예일 것이니까.

후회하기 전에 불사자의 영혼함을 심고 화염의 구슬을 던졌다.

기름이 묻지 않아 바위넝쿨장미에게 불이 붙지는 않았다.

촤르르륵!

놈도 가만히 있을 마음은 없는지 바위 아래를 가시넝쿨로 휘감으며 나를 옥죄여왔다.

"자. 바겐세일이다."

식인식물을 상대하는 것에는 가장 좋은 것이 있다.

바로 불과 얼음이다.

놈의 화염내성이 높아 기름이 묻은 것이 아니면 통하지도 않아서 문제다.

내 시간을 벌기 위해 빙결의 구슬을 바닥에 던졌다.

쩌저저적!

얼음내성은 낮은 편인지 가시넝쿨이 잠깐 움직임을 멈췄다.

이때다 싶어 아직 남은 기름통을 던져댔다.

콰앙! 콰앙!

기름통이 바위와 거기에 얽힌 가시넝쿨에 부서졌다. 사방에 기름이 흩뿌려졌는데 바위넝쿨장미는 꽤나 지능이 높은 개체인지 곧바로 넝쿨을 빼려고 했다.

"어딜 가."

그냥 보내면 섭섭하니 화염의 구슬을 던져 가시넝쿨 일부에 불을 붙였다.

바위넝쿨장미는 이번에도 그 넝쿨들을 잘랐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넝쿨을 잘라낸다고 피해를 입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놈에게 다가가기까지 발판이 필요하다.

10개만 남은 거대 쥐덫도 아껴 써야만 한다. 기름통을 터트려서 쉽게 다가오지 못하고 했다.

거대 쥐덫은 기름에 젖지 않은 바위 위에만 설치했다.

화르르륵!

바위넝쿨장미가 계속 공격을 시도하자 기름에 젖은 바위에 불을 붙였다.

놈에게 가는 길목에서 우측은 완전히 차단된 것이다.

촤르르륵!

궁지에 몰린 바위넝쿨장미가 재차 공격을 가해왔다.

발판은 거의 완성이 되었다. 놈에게 다가가다 거리가 되자 드디어 역섬기검을 준비했다.

역섬기검은 검을 양손으로 굳게 쥐고 머리 위로 들어 올리는 것에서 시작한다.

꽈아아아악!

양손에 힘을 주는 동안에 UI 하단에 차징게이지가 차올랐다.

우우우웅!

끝에 다다르자 온몸에 진동이 왔다. 잘못하면 바위에서 떨어질 수 있을 정도로 위태로웠다.

바위넝쿨장미는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불도 꺼져 갔기에 가시넝쿨로 내 몸을 노려왔기에 힘껏 검을 뿌렸다.

촤아아아아악!

십보섬검은 육안으로 잘 보이지 않는다.

반면에 역섬기검은 그 검기가 뚜렷하게 보였다. 일자로 그어지는 검기는 그대로 바위넝쿨장미를 잘랐다.

퐈하아아악!

바위넝쿨장미가 두 동강이 나며 소화액과 함께 무너졌다. 나를 노리던 가시넝쿨도 힘을 잃고 바닥에 깔렸다.

"이거지."

바위넝쿨장미가 약한 것도 있었지만, 역섬기검의 위력도 보통이 아니었다.

[도전과제, 꽃잎이 지다를 달성하였습니다.]

이번 도전과제의 보상은 내가 절대 쓰지도 않을 해독포션이었다.

불사자의 영혼함을 회수한 뒤, 아래로 내려가 바위넝쿨장미를 정리했다.

그렉이 바랐던 바위넝쿨장미 씨앗은 물론 바위넝쿨장미의 꽃잎과 소화액이 나왔다.

추가로 가시덩쿨을 살피니 바위넝쿨장미 가시채찍이라는 긴 이름의 아이템이 나왔다.

내게는 필요가 없는 지라 이건 경매장에 팔 것이다.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이 친구 꽤 잘하는구만!"

그렉은 마음에 들어 하며 지도 하나를 줬다.

"이거 뭐죠?"

"석림의 지도야. 이게 최신판이고 더 자세하게 나와 있으니 알아두라고."

그렉은 그 말과 함께 사라졌다.

지도를 얻은 것은 좋은데 워낙 기대를 한 것이 커서 속이 쓰린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쨌든 그렉이 준 지도를 통해 석림을 자세히 살폈다.

내 예상보다도 석림은 굉장히 넓었다. 특히 눈길이 가는 것은 중앙에 공터가 있는데 거기에 건물 표시가 되어있던 것이다.

저기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내 레벨을 높이는 거였다.

내 위치에서 가까운 사냥터가 필요하다.

바위투구 독벌은 이제 주는 경험치량이 줄었다. 혼자서 사냥을 해서 랭커가 되려면 최소 8레벨 정도 차이가 나는 몬스터가 필요한 것 같았다.

목표는 바위투구 독벌 서식지를 지나가 폭포 근처에 있는 동굴이었다.

게임에서의 공식이라면 역시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미지의 공간에 강한 적이 있다는 거다.

이곳이라면 보다 안정적인 사냥터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바위투구 독벌을 피해 도달한 폭포는 절경이었다. 떨어지는 물결은 온화한 달빛을 끝이 나지 않는 은하수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현실이었다면 여기에 컵라면 하나를 먹으면서 즐기고 싶었을 것이다.

감상은 접어두고 동굴에 발을 디뎠다.

불사자의 영혼함을 심어두고 횃불을 들었다. 동굴 안은 옆의 폭포로 인해 습기가 심했지만, 무척이나 넓은 편이었다.

개인적으로 시선이 가는 것은 형체를 알 수 없는 석상들이 줄 지어져있다는 거다.

"좀 크게 걸렸는데."

전작에서 고대문명과 접하게 되는 시나리오가 생각이 났다. 물론 고대문명이 한 종류만 있던 것은 아니다. 어떤 곳은 아예 멸종된 종족에 관한 것이거나 어떤 곳은 악신숭배를 하는 곳이었다.

석림은 인적이 드문 곳이니 후자는 아니지 않을까 생각했다.

"여기 괜히 들어왔나."

문제는 아무리 동굴 이곳저곳을 뒤져도 날 위협하는 몬스터는커녕 그 흔한 함정 하나가 없었다. 그 어떤 위협요소가 없어서 불안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막다른 길이라도 나오면 이걸 핑계 삼아 물러날 것인데 길은 또 막힘이 없었다.

뭔가 조금만 더 가면 시간을 투자한 결과가 나올 것 같아서 억지로 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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