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92화 고인물은성장한다.
일본서버는 복수심으로 들끓고 있었다.
오크펠슨에 진출한 강자들이 한국서버와의 PvP에서 높은 확률로 무너졌기 대문이다.
현재까지의 승률은 6대4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대로 가면 7대3으로 밀릴 지경이었다.
"오, 오니기리다."
"그가 드디어 나타났어."
"복수전인가?"
침체되어 있던 분위기 속에서 투사길드에 등장한 사내를 보며 수많은 랭커들이 웅성거렸다.
일본서버랭킹 17위. 그 명성에 비하면 조금 낮지만, 누구도 그를 우습게보지 않았다.
저번 변태검사에게 패배를 당했다는 충격적인 소식 이후, 절차부심을 한 그에 대해 알려졌기 때문이다.
"PvP랭커들을 전부 쓰러트렸다면서."
"논히트 게임도 있댔어."
"역시 엘리멘탈 소울2의 최고의 사무라이인가."
"변태검사가 과연 나올까?"
투사길드에 있는 유저들은 모두 웅성거렸다.
오니기리의 날카로운 눈빛과 비장한 표정에서 풍겨나 나오는 압박감에 누구 하나 앞을 막지도 않았다.
미리 예약한 PvP가 있었기에 오니기리는 비장한 걸음으로 투기장에 들어갔다.
"왔다. 대주먹이다!"
"인간 최고의 검사!"
"오늘도 베어 버리라고!"
투기장에 들어서자 오크들은 오니기리를 보며 환호했다.
언제나 들어오는 것들은 조금도 그를 고양시키지 못했다. 차갑게 가라앉은 피를 다시 뜨겁게 만든다면, 그건 자신의 눈앞에 무릎을 꿇고 쓰러진 변태검사 하나일 뿐이다.
[매칭을 조율 중입니다.]
투기장의 문이 닫히고 기다렸던 메시지가 떴다.
"너여야만 한다."
오니기리는 자신을 패배시킨 그 이름이기를 바랐다.
[상대를 결정지었습니다. 진행하시겠습니까? Y/N]
가챠게임에서 0.001의 수학확률을 뜨고 나올 SSR급의 물품을 기다리는 것도 이것보다는 덜 기대될 것이다.
[KR. 독고무적 Lv62.]
"…꿩대신 닭인가."
알림에 뜬 이름은 그의 기대를 배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가치를 생각하면 꿩 대신 닭이 아닌 봉황일 수 있었다.
상대는 전작에도 이름을 떨친 강호. 현재도 KR서버의 1위를 지키는 부동의 강자였다.
"와라. 한국의 강호."
"와라. 일본의 패배자."
독고무적의 도발에 오니기리는 키득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일본 서버의 유저라면 모두가 알 것이다. 그건 오니기리가 진심으로 화가 났다는 증거였다.
* * *
"상대는 누구였어?"
먼저 대결을 마친 흑군은 뒤늦게 나온 독고무적을 반겼다.
"오니기리."
"오! 그 녀석 썩이나감한테 져서 이를 갈고 있다며."
"강하더라."
"…졌어?"
흑군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독고무적은 한국서버의 최강자 중 하나다. 썩이나감이 오니기리를 이긴 것은 단순한 헤프닝이고 누군가의 흑역사로 남는 정도다.
반면에 독고무적이 오니기리에게 지는 것은 꽤나 여파가 클 것이다.
"비겼어."
"비긴 것 맞아?"
"이겼는데 진 느낌이라 그래."
"어떤 건지 알겠네."
실력에 의한 차이보다는 캐릭터에 쏟은 현금에 승부가 갈라졌다는 뜻이었다.
"썩이나감은 요즘 뭐하지? 귓말도 안 받던데."
"우리 템팔이 레벨 좀 올리라고 꼽 좀 줬어. 지금 열렙 중이겠지."
"오크펠슨 정보 팔려고 혈안이었잖아."
"현실자각 정도지."
흑군은 히죽히죽 웃었다.
썩이나감이 다시 돌아올 때는 최소한 랭커에 돌입했을 시기일 것이다.
* * *
우우우웅!
바위투구 독벌 다섯 마리가 한 번에 나에게 달려들었다.
1인 도발을 쓰면 안정적이지만 그건 너무 효율이 나오지 않았다.
이번에는 다섯 중 둘이 머리로 돌진했고 셋은 독침으로 공격해 왔다.
카가가각!
먼저 십보섬검으로 머리를 들이대는 놈들의 투구를 박살냈다.
두 마리가 헤롱거리며 떨어졌다. 약점파악으로 머리 부분에 붉은 점이 떠올랐다. 저길 공격하면 치명타 데미지를 줄 수 있지만 무리하게 공격할 필요는 없었다.
벌침을 내미는 놈들은 2초 정도 늦게 도착하기에 곧바로 피해야만 한다.
오른쪽 바위로 자리를 옮겼다.
바위투구 독벌 세 마리는 내가 있던 곳에 독침을 찔렀다.
파바박!
독침이 바위에 박히며 파여진 자국에서 독액이 흥건하게 밑으로 흘렀다. 그 자국이 타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듯이 찔리면 초당 100의 데미지를 주는 무시무시한 독이다.
[스피어마스터의 소울을 사용합니다.]
깊게 박힌 독침을 빼는 동안에 팔을 길게 뻗어 휘둘렀다.
밑에서 바위투구가 깨진 독벌이 올라오기 전에 횡으로 길게 그었다.
카가가각!
속날개가 끊어지며 바위투구 독벌들이 휘청거렸다. 날개가 잘린 자국은 내 검이 훑고 지나간 자리에 붉은 선이 남았다.
스킬 약점파악은 항상 내가 공격할 치명적인 자리를 알려 준다.
다시 한 번 검을 길게 휘둘렀다.
검에 베인 놈들이 치명타를 입으며 윗날개까지 잘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체력은 10%도 남지 않았기에 바닥에 떨어지는 즉시 죽는다.
셋은 사이좋게 떨어지면서도 내가 있는 방향으로 자꾸 독침을 흔들었다.
부우우웅!
투구가 깨지고 다시 올라온 두 마리는 떨어지는 동료의 시체를 신경도 쓰지 않았다. 유이한 무기를 일었으니 방금 전의 놈들처럼 독침을 들이 밀었다.
삐이이이익!
거대 쥐덫에 섬광탄을 놓고 옆의 바위로 피했다.
등을 지고 있어도 느껴지는 환한 빛이 주변에 퍼졌다.
실명 상태가 되어 나를 찾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는 두 마리의 숨통을 끊었다.
그 뒤에는 간단하게 떨어져 내려 죽었다.
이곳에서 계속 닥사를 한 결과 바위 위보다는 아예 바닥에 두는 것이 나았다.
바위투구 독벌의 시체를 뒤적거리며 아이템을 회수했다. 애석하게도 바위투구조각은 나오지 않았다.
지금 보유하고 있는 바위투구조각은 96개 뿐이다.
이때까지 가장 많은 아이템을 얻을 수 있던 것은 벌집을 부셨을 경우였다.
"한 번 더 갈까."
벽타기로 바위 위를 달려갔다.
벌집을 지키는 바위투구 독벌은 스무 마리 정도다. 방금 전까지 죽인 것이 딱 마지막이었다.
처음에 죽인 개체가 부활하려면 10분 정도가 필요하다.
스무 마리를 모두 죽인 뒤에야 지면으로 내려오니 대충 4분 정도의 시간이 남은 것 같다.
벌집을 부수기에 모자란 시간은 아니다.
처음과 달리 벌집 주변에도 발판으로 삼을 함정들을 설치했기에 전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접근이 가능했다.
[스피어마스터의 소울을 사용합니다.]
벌집의 방어력은 무지막지할 정도다. 그래서 이걸 박살내려면 이 스킬이 필요했다.
콰드득! 콰드드득!
검은 위가 아닌 밑동을 찍어냈다.
바위에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던 벌집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부우우우웅!
벌집이 공격을 당하자 추가 바위투구 독벌이 나왔지만, 별로 무섭지 않았다.
바위투구 독벌의 벌집의 입구는 좁아서 한 마리씩 밖에 나오지 못했다. 그래서 머리를 들이미는 놈의 투구를 박살내어 길을 막고 다음에는 바위에서 떨어지게 계속 벌집을 찍어내면 된다.
쿠르르르릉!
스피어마스터의 소울이 끝날 때에 벌집이 밑으로 굴러갔다.
부우우우웅!
거기서 빠져나온 바위투구 독벌들이 공격을 해왔다. 이들에게는 싸울 생각이 없기에 그대로 죽었다.
지면에서 부활한 나는 완전히 박살난 벌집의 껍질을 뜯어냈다.
안에는 전투력이 전혀 없는 유충들과 바위투구 여왕독벌이 있었다.
유충이 내게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 목적은 바위투구 여왕벌이다. 이걸 잡으면 바위투구조각이 확정적으로 5개가 나타났다.
[키이에에엑!]
바위투구 여왕벌은 거대한 몸집 때문에 도망을 치지도 나에게 공격을 해 오지도 못했다.
거대한 몸체에 비하면 가련할 정도로 작은 목을 잘라 숨통을 끊었다.
벌집을 박살내고 여왕벌을 죽인 것이 다섯 번째다. 여기까지 익숙해지는 것에 무려 이틀이나 걸렸다.
[도전과제, '주택공급이 시급해' 달성하였습니다.]
[도전과제, '독벌 퀸 슬레이어'를 달성하였습니다.]
연달아서 뜨는 알림은 내 노력의 결과였으니 절로 흐뭇해졌다.
주택공급이 시급해는 건물파괴 데미지에 1% 상승이었고 독벌 퀸 슬레이어는 여왕벌 피해량 1% 상승이었다.
이곳에서 계속 사냥할 것이 아니면 별로 도움이 되는 것들은 아니었다.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여왕벌은 물론 나머지 것들도 샅샅이 뒤지니 바위투구조각은 103개까지 모을 수 있었다.
석림을 빠져나가 그렉에게 가려는데, 어쩐지 지형이 변해 있었다.
"이 식물들은 뭐야."
석림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바닥에서 보이는 잡초 혹은 그늘진 곳에 자리한 이끼였다. 그런데 좁은 바위 틈새로 가시넝쿨이 자라나서 길을 막고 있었다.
"뭔가 이상한데."
이틀 전에 없던 것이 생겼다. 그게 좋은 의미일 수 없으니 인벤토리에서 횃불을 꺼내 들이 밀었다.
화르르륵!
가시넝쿨에 불에 그슬리며 조금씩 쪼그라들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슬금슬금 횃불을 피하고 있었다.
"식인식물이다."
전작의 엘리멘탈 소울이 호평을 받은 것은 몬스터의 연계성이다.
뉴 알론에서 슬라임 때가 그랬다. 그 개채수를 줄이니 고블린의 영역싸움에 밀려서 밑으로 내려왔었으니까.
그때 돌발퀘스트가 생겼었다.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농후했다.
퀘스트를 받기 전에 식인식물을 잡을 필요는 없다. 벽타기로 바위에 올라 상황을 살폈다.
가시넝쿨을 쫓아 시선을 돌리니 석림 입구 가까이에 붉은의 거대한 꽃이 있었다. 얼핏 보면 장미와 같을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검은색 반점이 박혀 있었다.
창공의 독수리를 사용하니 저 식인식물은 적으로 인식이 되었다.
저 넝쿨을 피해 돌아서 석림을 벗어났다.
"부탁한 일 끝났습니다."
"……."
목표량을 초과한 바위투구조각을 주었건만 그렉은 썩 달가운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띠꺼운 눈으로 나를 흘겨보고 있었다.
"뭡니까. 사람을 그렇게 보고."
"네놈 얼마나 멍청하게 부쉈으면 저게 생겨난 거야?"
"저 꽃이요? 뭐죠?"
몬스터인 것은 알겠지만 레벨과 이름을 확인할 정도로 가까이 가지는 않았다. 어차피 미리 알아보는 것보다 관련된 사람에게 묻는 것이 확실하다.
"바위넝쿨장미다."
"그걸로 끝인가요?"
이름만 알아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이래서야 오크펠슨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지맥을 빨아서 꿀을 만드는 놈인데 저게 악질이야. 주변 숲이 싹 마르니까 알아서 없애라."
"바위투구 독벌이 알아서 하지 않을까요?"
"저게 생기면 못 없애!"
"독벌 잡으라면서요. 알아서 조심하라고 하던가. 외지인이 뭘 알겠어요?"
"……."
그렉은 눈만 버위넝쿨장미와 나를 번갈아 봤다.
"저보다 강하신 것 같은데 직접 하는 것은 어때요?"
"너 저거 없애고 씨 가지고 와 봐."
"보수도 못 받았어요."
레벨도 알차게 올렸다지만, 빈손으로 다음 퀘스트를 넘어갈 수 없었다.
"그 허약한 몸뚱이 단단하게 해 주는 거다."
그렉은 주황색 스킬북을 건네줬다. 나는 그가 다른 말을 하기 전에 얼른 받아 챙겼다.
[강철피부의 스킬북.]
-종류 : 일반.
-효과 : 스킬 습득.
-설명 : 강철피부를 배울 수 있는 책이다.
일반임에도 주황색 스킬이라면 나쁘지 않다.
[스킬, 강철피부를 배우셨습니다.]
[도전과제, 스킬부자를 달성하였습니다.]
알림은 두 개지만, 지금은 강철피부의 효능이 더 중요했다. 내게 절대적으로 부족한 방어력을 책임져 줄 스킬임이 분명하다.
[강철피부LV1.]
-종류 : 패시브 스킬.
-효과 : 물리방어력 및 마법방어력을 1 상승시킵니다.
물리방어력와 마법방어력을 동시에 올려주는 것은 중요하다. 특히 마나가 소모되지 않는 패시브 스킬이라는 것도 더욱 그렇다.
문제는 그 상승량이 너무 미미하다는 정도다.
스킬 숙련도를 올리기 위해 맞고 다니다보면 눈 먼 화살 맞고도 죽지는 않게 해 줄 것 같다.
만약 이걸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받았으면 든든했으리라. 지금은 방어력 1은 티가 나지 않을 정도였다.
"문제는 이건데."
스킬란에 처음 보는 것이 활성화되었다.
바로 스킬합성이었다.
전작에서는 없던 기능이었다. 뭔가 굉장한 걸 알아버렸다.
문제는 이게 왜 생겼냐는 거다.
불사자의 특전 같은 것은 아니다. 스킬합성의 튜토리얼을 찾아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