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91화 고인물은충격을받다.
오크펠슨의 퀘스트를 주도하는 것은 나라고 생각다.
높은 레벨 혹은 명성에 따라 추가적으로 퀘스트가 열린다지만, 예약이라는 기능은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상황이 벌어졌으니 이때까지 레벨을 제대로 올리지 못한 내 실수였다.
오크펠슨의 정보를 긁어모아서 파는 것에만 급급했다.
"B등급이라는 것이 용병길드만인가요. 아니면 투기장까지인가요."
용병길드에서 승급시험은 나와 치렀다.
투사길드에서도 같은 과정을 거치는 것이 정상적이었다.
"용병길드만 B등급 되어도 다른 곳에도 혜택이 주어지지. 여기 친구들은 귀찮고 복잡한 건 질색이라서 말이야."
"……."
아예 독립된 곳이라 생각해서 물어보지도 않았다.
NPC들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서 체크하는 것이 기본이건만 그걸 지키지 않았다. 이걸로 밥 먹고 산다는 놈이 당장 푼돈에 눈이 먼 셈이다.
"그래서 레벨업하라고 한 거군요."
B등급이 되기 위해서는 2차 전직을 해야만 한다. 즉, 60레벨이 기본조건에 해당한다는 거다.
지금 내 레벨은 고작 50이었으니 꽤나 시간이 필요했다.
"정답이야. 나랑 독고가 괜히 레벨업에 투자하라고 했겠어?"
"숲이 아니라 나무를 봤네요."
오크펠슨의 정보가 돈이 된다. 거기에 눈이 멀어서 더 양질의 정보를 얻기 위한 투자가 부족했다.
결국 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자신은 썩이나감이라는 캐릭터의 강함이었으니까.
"60레벨이 되고 뵙겠습니다."
"폐관수련하게?"
"비슷하게는 해야죠."
결국 경험치 수급이 제일 중요하다.
그러면 필드사냥이 답이다.
남들의 눈이 없는 오크펠슨이라면 필드에서 하루 종일 사냥이 가능하다.
사냥터에 불사자의 영혼함을 심어서 죽으면 부활해서 싸우기만 하면 되니 레벨업 속도는 기형적으로 빨라질 것이다.
오크펠슨에서 상대한 몬스터 중에서 어떤 것이 사냥하기 좋을까. 고민을 하다가 선택한 것은 바위투구 땅벌이었다.
개체수도 많아서 필드에서 리젠이 빠르게 될 것으로 보였다.
바위투구 독벌의 서식지는 용병길드에 물어본 결과 서쪽의 석림(石林)에서 많다고 했다. 그곳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어서 정보길드에 돈을 주고 지도를 받았다.
"석림은 석림인가 보네."
활성화된 오크펠슨의 서부지도를 보면 바위투구 독벌이 있다는 석림은 회색으로 되어 있다. 그 지대가 황폐해지거나 불에 타서 소실이 된 것은 아니라 말 그대로 암석으로 된 숲이기에 그렇게 칠해준 것이다.
석림으로 가는 동안에 그냥 넉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출몰하는 몬스터를 기록하며 다음 사냥터가 될 곳을 내심 정하기도 했었다.
석림이 고지대에 위치했기에 느리게 올라가는 말 위에서 주변을 정찰하기도 쉬웠다.
[창공의 독수리를 사용합니다.]
스킬을 쓰자 미니맵에 수많은 점들이 보였다. 이곳에 오면서 본 몬스터들을 생각하면 그들이 대규모로 나오는 곳을 알 수 있었다.
석림은 60레벨이 되고서도 종종 들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오크펠슨의 서부 석림에 도착했습니다.]
높게 솟은 바위들이 깎이고 떨어져나가 울창한 숲처럼 보였다.
석림의 앞에는 NPC 하나가 자리를 틀고 앉아있었다. 머리에 뜬 퀘스트 마크를 지나칠 수 없어 다가갔다.
"여기서 뭐합니까."
"바위투구 독벌 놈들이 내 양봉 장사를 다 망쳐서 불 지르러 왔다!"
양봉업자 그렉은 화가 단단히 난 상태였다.
오크펠슨의 병사들보다 더 건장해 보이는 그렉은 한 손에는 도끼를 다른 손에는 횃불을 들고 있었다.
"너 같이 허약한 인간은 왜 여기 있는 거냐."
"벌이나 잡으려고 왔죠."
"너 강하냐?"
그렉은 영 못 미더운지 아래위로 훑어봤다. 오크가 인간을 낮게 보는 경향은 있지만, 강하면 그만큼 인정을 한다.
가까운 예로 독고무적과 흑군은 2차전직을 한 상태인지라 나에 비하면 무척이나 대우를 받았다.
반면에 나는 오크펠슨 인근의 오크들에게 하나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대주먹입니다."
"오! 카쿤놈의 제자인가?"
"그건 아니고 팔대조직은 이겼죠."
"그러면 제법 쓸 만하겠는데."
그렉은 놀랍게도 카쿤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내 예상보다 그렉은 거물인 것 같았다. 이곳을 잘 찾아왔구나 싶을 정도였다.
"너 나랑 일이나 하자. 난 우리 양봉농장 고쳐야 하거든. 독벌들 말고도 자꾸 우리 꿀을 훔쳐가서 말이지."
"뭘 어떻게 할까요."
"독벌 새끼들 뚝배기 깨. 한 백 개쯤 가지고 와 달라고."
"하죠."
그렉의 제안을 거절할 필요가 없이 퀘스트를 받았다.
[백 개의 뚝배기.]
-그렉의 양봉농장은 오크펠슨에서 제일 유명한 곳이다. 그곳을 습격한 바위투구 독벌의 개체 수를 줄이자.
-완료 조건 : 바위투구조각 100개.
-실패 조건 : 퀘스트 포기.
여러 퀘스트를 했지만 몬스터 수집품을 100개나 모으라고 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이 무식한 퀘스트는 오히려 예전의 향수를 떠올리게 했다.
[창공의 독수리를 사용합니다.]
내게는 절대 빠질 수 없는 스킬로 주변을 밝혔다.
작은 점들이 빠르게 돌아다니는 지점으로 걸음을 옮겼지만, 길이 없어 막혀 있었다.
미로를 찾는 것처럼 일단 이곳저곳들을 들쑤셨다.
석림은 생각보다도 빽빽하게 들어서서 길이라고 부를 것도 없었다. 바위와 바위 사이에 몸을 집어넣으며 힘겹게 나아갈 뿐이었다.
말은 탈 수 없어서 진즉 소환을 해제해야만 했다.
우우우웅.
위에서 벌의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벽타기를 사용해 창날처럼 날카롭게 깎인 바위를 밟고 올라갔다.
건너편 바위에는 벌집이 있었다. 부피를 보면 숟가락이 생각 날정도로 바위투구 독벌의 벌집은 거대했다. 그 주변을 바위투구 독벌이 쉴 새 없이 돌아다니고 있었으니 잘못 찾은 것은 아니었다.
콰득!
"으아악!"
벽타기가 끝나자마자 발을 디딘 꼭대기가 부러져 낙사할 뻔했다.
석림의 바위 끝은 뾰족하고 뭉특하고를 떠나서 면적 자체가 적어서 서 있기도 힘들었다.
바위투구 독벌을 상대로 이곳에 있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이걸 어쩌냐."
다시 지상으로 내려가는 것도 자칫하면 낙사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
위에서 고민을 하는 것도 답은 아니다.
벽타기의 쿨타임이 3분이니 기다리는 것도 썩 나쁘지는 않을 터였다.
"저 벌집까지 없애면 뭐가 떨어질까."
여왕벌도 있을 것이 분명하니 보상도 엄청날 것이다.
"한번 해보자."
주변의 바위들을 살피며 끝이 가장 평평한 곳에 불사자의 영혼함을 얹었다. 혹시나 떨어질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설치는 되었다.
[1인 도발을 사용합니다.]
먼저 주변을 배회하는 바위투구 독벌에게 스킬을 사용했다. 팔자를 그리며 내게 날아오는 속도는 이전 퀘스트에서 상대했던 모습 그대로였다.
십자섬검으로 머리를 노렸지만, 바위버섯 독벌이 살짝 몸을 낮추는 바람에 머리를 스쳤다.
서걱!
목표를 빗나갔다고 생각했지만 커다란 앞날개 끝을 잘라지며 바위버섯 독벌이 궤도를 잃고 휘청거렸다. 설마 저 얇은 날개에도 데미지가 들어갈 줄은 몰랐다. 심지어 비행에도 영향이 간다는 정보는 무척이나 중요했다.
부우우우웅!
바위버섯 독벌은 다시 궤도를 찾아 나를 향해 머리를 들이 밀었다.
침착하게 옆의 왼쪽의 바위에 발을 얹으며 피했다.
바위버섯 독벌이 허공을 가르며 지나갔다. 도발이 끝나지 않아서 녀석은 거듭 머리로 나를 들이받으려고 했다.
성난 황소를 농락하는 투우사가 된 꼴이지만, 그들처럼 경쾌하게 움직이지 못했다.
잘못 발을 내딛었다가 벌벌 떠는 겁쟁이가 있을 뿐이다.
"이러다가 언제 사냥 끝내!"
환경적인 요소가 크다고 하더라도 바위버섯 독벌 하나 잡지 못해서 이러는 것은 불사자의 장점을 전혀 살리지 못하는 일이었다.
콰앙!
이번에는 피할 생각을 버렸다.
복부로 날아오는 바위버섯 독벌의 머리통을 힘껏 검으로 후려쳤다.
바위버섯 독벌의 공격은 스킬이 아니다. 일반공격 대 일반공격이 부딪치면 양쪽에 피해를 입고 넉백효과도 있다.
저번 사냥 때는 바위버섯 독벌을 죽이는 것에는 총 다섯 번의 공격이 필요했다.
십자섬검으로 투구를 박살내어 기절, 그 후에 네 번의 평타다.
공격을 이어나가야만 한다.
문제는 두 발을 채 딛지도 못하는 위태로운 바위에서 넉백이 되기도 전에 난 바위투구 독벌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죽었다는 거다.
[YOU DIED.]
회색으로 변하는 시야는 끝없이 떨어지고 날 공격하던 바위버섯 독벌은 그 고고한 날갯짓으로 주변을 맴돌았다.
나에게 어그로가 빠지고 다시 벌집으로 복귀하기 전.
[지정한 지점에서 부활.]
[가까운 도시에서 부활.]
[불사자의 영혼함에서 부활.]
죽고 나서 보이는 선택지에서 오로지 나만이 세 개의 선택지를 보유하고 있다.
불사자만이 누릴 수 있는 유일한 특권.
석림이란 곳에서는 누구의 눈치를 보지도 않고 이걸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씨발."
불사자의 영혼함은 분명히 안전한 장소에 설치했다. 문제는 내가 살아난 장소도 그렇냐는 문제였다.
내 몸뚱이는 불사자의 영혼함 앞에서 되살아났다. 아주 당연하게도 딛고 설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YOU DIED.]
이번에는 머리부터 바닥에 떨어져 죽고 말았다.
* * *
살얼음 위를 걷듯이 위태로운 석림 위에서 어떻게 싸울 것이냐.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 먼저 바위의 판정을 살펴봐야만 했다.
겉으로 보기에 송곳 같은 바위도 발가락 하나만 닿아도 한 발이 온전히 지면에 닿은 것만 같은 판정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약 30여 분의 끈질긴 시범 아래에 그건 없다고 판단되었다.
두 번째는 그러면 발을 디딜 공간을 만드는 거다.
석림의 바위들은 날카롭게 깎여있지만, 그 틈마다 평평한 부분이 있었다.
실제로 발끝으로 간신히 밟고 서있을 수 있는 부위도 있었다. 이런 부위가 조금만 확장된다면 바위를 편하게 오르고 내려오며 사냥할 수 있었다.
맨 처음에는 나무계단이나 사다리 같은 것을 생각했지만, 제작기술도 없고 건설기술이 없는 내가 건드릴 것은 아니었다.
인벤토리를 보면서 궁리를 하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이템 한 개를 꺼냈다.
[거대 쥐 덫.]
-등급 : 일반.
-내구도: 100/100.
-효과 : 10초 동안 이동속도 30% 감소, 3초 기절, 출혈Lv5.
-설명 : 곡물을 넘어 인간과 가축을 탐하는 거대 쥐를 잡기 위해 만들어졌다.
특별하게 데미지를 주는 것은 아니지만, 부가옵션이 좋은 물건이었다. 형태는 가로세로 1.5m, 0.5m 정도가 되는 이름 그대로 거대했지만, 흔하게 볼 수 있는 쥐덫의 확대판이었다.
만약 이게 설치가 된다면 계단을 대신해서 요긴하게 쓸 수 있다.
덜컥.
바위 옆면의 작은 틈에 걸쳐두자 놀랍게도 거대 쥐 덫이 설치가 되었다.
"…된 거야?"
내가 시도를 한 거지만, 진짜 설치가 되어서 놀랐다. 그래도 의심을 버리지 못하고 천천히 덫에 무게를 실었다.
함정은 발동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떨어져 나간 것도 아니었다.
판정의 오점이 드러난 것 같다.
"이거다."
내가 있는 바위를 중심으로 주변 네 개의 바위에 같은 작업을 했다.
꼭대기에 하나를 기본으로 하고 밑에 두 개에서 세 개를 추가로 설치했다.
한쪽에 너무 큰 충격이 실리면 함정이 발동될 수 있다.
무게분산 및 이동시에 안전성을 위해 아래에 발을 디디면 꼭대기 부분을 손으로 짚을 생각이었다.
[1인 도발을 사용합니다.]
설치가 끝났으니 다시 바위투구 독벌을 도발했다. 놈은 나를 향해 날갯짓을 해 왔다.
퍼걱!
이번에는 보다 가까이에 다가왔을 때 십자섬검을 펼쳤다. 정확하게 바위투구가 부서지며 독벌이 휘청거렸다. 바닥에 고꾸라지는 놈을 차마 쫓을 수는 없었다.
우우우우웅!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정신을 차렸는지 바위투구 독벌은 나를 향해 다시 날아왔다.
놈이 오는 것을 보자마자 옆의 바위로 몸을 날렸다.
미리 연습을 한 대로 바위에 설치한 거대 쥐덫을 발판과 손잡이로 썼다.
벽에 머리를 부딪치고 잠깐 헤롱거리는 바위투구 독벌의 등을 찌르고 베었다.
십자섬검을 포함해 네 번의 공격이면 죽는다.
문제는 시체가 바닥에 떨어졌다는 거다. 저걸 회수하지 않으면 그대로 증발해 버렸다.
저것만 개선하면 꾸준히 사냥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