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은 옷을 입지 않아-90화 (90/201)

제090화 고인물은번역을본다.

여러 국가 간에 재밌을 것 같은 글과 그 댓글들을 번역해 오는 글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해외 리그에서 뛰는 한국선수를 향한 서포터즈의 반응이라던가 케이팝 아이돌 뮤비에 달린 외국인들의 댓글이 대표적인 예였다.

게임도 종종 번역을 올라오기는 하지만, 그건 이스포츠 경기나 게임 트레일러 반응일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PvP 경기 반응이 번역되는 것도 드물 뿐더러, 그 대상이 나라는 것은 지나칠 수 없었다.

"오크펠슨 정보는 나뿐이니까 그렇다고 쳐도……."

PvP 대상이 오니기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몇 없다.

일본 쪽의 반응이니 내가 아는 사람이 유포했을 가능성이 낮아 다행이었다.

[일본 무사 삼각김밥 한국인에게 패배 키타아아아아!]

ID:Catv001. 5시간 전.

이 스레를 열게 되었습니다. 엘소1의 투기장 황태자께서 엘소2에서는 한국인에게 졌습니다.(웃음)

ID:SusiWWW. 5시간 전.

한국인이면 누구?

ID:Catv001. 5시간 전.

국내에 소개 된 가면 안 쓴 변태검사입니다.

ID:SusiWWW. 5시간 전.

그 굉장한 변태 아직 게임 중이었냐고!

먼저 포문을 연 것에는 오니기리를 이긴 유저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저것 이후에 나라는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 너뷰트 영상 링크도 달려있었는데, 그걸 본 이들은 모두 변태 킷타WWW 라던가 역시 RPG는 노출도와 방어력이 비례하는 건가라는 식의 놀라움이었다.

ID:Masaka. 6시간 전.

엘소2에서 한일양국 안 잡히지 않아?

ID:Ascenter006

서버 다르면 못 붙는데 스레주인 거짓말하네.

물론 해당 주제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표하는 유저가 있었다.

저건 아주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국내에도 업계사람이거나 고객이 아니면 투기장에서 한일유저의 PvP에 알려지지 않았다.

ID:Catv001. 7시간 전.

모두를 위한 증거. 한낱 히키코모리한테 황태자께서 도움을 요청하셨어.(웃음).

글을 쓴 이는 쪽지 하나를 캡쳐해서 올렸다.

번역을 한 이의 짧은 설명에 의하면 오니기리가 누군가에게 패배를 하여 PvP에 능통한 유저들에게 단체로 쪽지를 보내서 협력을 구한 것이다.

문제는 그 대상들이 나를 따라하거나 혹은 그나마 비슷한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을 즐기는 유저라는 거다.

ID:WoW_DLC. 8시간 전.

킷타WWWWW.

ID:Monster. 8시간 전.

사실이냐고WWWW. 저거 딱 봐도 변태검사 복제품들이잖아!

유력한 증거였기에 다들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오니기리가 지는 것도 드물지만, 그 대상이 나라는 것에 더 놀란 모양이다.

이후에는 어떻게 한일유저가 붙었던 것인지 버그가 아닌지에 대한 문의글이 쇄도했다.

ID:Catv001. 7시간 전.

유료로 구매한 거라 정보는 못 줘. 곧 좋은 일이 있을 거니까. 다들 한국 조심하라고.(웃음).

글을 쓴 이는 그걸로 끝이었다.

번역글은 다 좋지만 핵심적인 내용을 빼면 걸러도 되는 화면만 채우는 리액션용 댓글이었다.

이 번역본을 본 유저들도 왜 나와 오니기리의 PvP가 가능한지 의아해했다.

일부 악플러들은 내가 오니기리 같은 대단한 유저를 이길 수 없다며 평가절하를 하기도 했지만, 저건 눈에 담지도 않았다.

"오니기리가 저렇게 나온다라."

오크펠슨의 투기장에서 당분간은 일본유저를 보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새로운 글을 대충 살펴보다 엠페러 길드와 흑랑 길드는 샌드 웜의 최초 토벌을 성공했다는 글을 올렸다. 거기에 삽입된 스크린샷에는 나와 독고무적, 흑군이 같이 서있는 장면이었다.

거기 적힌 댓글에는 왜 썩이나감이 저기에 껴 있냐는 말과 함께 샌드 웜을 또 봐야 하냐는 절망어린 댓글이었다.

*       *       *

"미치겠다. 진짜."

게임에 접속하자마자 엄청난 숫자의 귓속말과 우편이 내 앞으로 왔다.

유력한 다크게이머 팀에서의 스카우트 제의부터 시작해 히든레코드보다 더 돈을 주겠다는 업체도 있었다.

서버 최강의 두 명과 함께 사냥을 뛰는 모습은 여러모로 매력적으로 보일 테니까.

앞선 경우보다 드물지만 랭커들 중에 나에게 직접 아이템이나 퀘스트에 대한 문의를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히든레코드에 판매 중인 정보에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만 조금씩 알려줬다.

그들에게 친절을 베푼 이유는 친분을 쌓기 위함만이 아니다. 어디까지 게임을 진행하는지 알기 위해서였다.

"오크펠슨에 이렇게 많이 왔다고?"

그로써 알게 된 것은 오크펠슨에 진출했거나 오고 있는 유저가 백 명은 넘었다는 거다.

마인시티도 이보다는 못해도 비슷한 숫자는 유지하고 있으리라.

"일본쪽도 비슷할 것 같은데."

뭔가 촉이 오기 시작했다.

투사길드로 가서 어떤 대결이 있나 확인을 했다. 그중에 내가 바라던 것이 있었다.

[C급 투사 1vs1 대결.]

"떴다."

어떤 조건에서 생기는 것인지 몰라도 주변에 다른 유저가 없을 때 얼른 처리해야만 했다.

[퀘스트가 등록되었습니다.]

3ch에 올라간 글 때문에 호기심이 동한 유저일까. 나에게 복수를 하려고 짧은 시간 동안 칼을 간 오니기리일까. 혹시 중국쪽의 유저일 수도 있었다.

"대주먹이다!"

"샌드 웜을 잡은 자!"

투기장에 가까이 가자 나를 향한 외침이 조금 바뀌었다.

[매칭을 조율 중입니다.]

"좋았어!"

투기장에 완전히 들어서자 기다리던 알림이 떴다.

[상대를 결정지었습니다. 진행하시겠습니까? Y/N]

이걸 거부할 이유가 없다. 빨리 게임이 되기를 바라며 Y를 광클했다.

[JP. 혼노지승려 Lv59.]

오니기리보다 레벨이 1은 높지만, 처음 들어보는 유저였다. 소식이 밝은 유저라면 날 알고 있을 것이니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가 궁금했다.

"만났다. 내 라이벌을 이긴 변태검사."

혼노지승려는 나를 보며 전의를 불태웠다. 그 라이벌이 오니기리라는 것은 굳이 물어봐도 알 것 같았다.

상대를 보며 반가운 마음이 드는 것은 순례자라는 점이다. 이미 대처법은 알고 있으니 레벨이 높다고 두려운 마음은 없었다.

혼노지승려는 먼저 자신에게 차례대로 버프를 걸었다. 거리가 멀었고 상대의 기량도 점검할 겸해서 무기를 슬링으로 바꾸었다.

"날 우습게 보는가!"

혼노지승려는 내가 슬링을 던지자 분개했다.

어디 모난 구석은 없지만 잘난 구석도 없는 순례자답게 쉽지도 어렵지도 않게 내 슬링들을 피했다.

그러면서도 착실하게 나와의 거리를 좁혔다.

오니기리도 그렇지만 혼노지승려도 그렇고 움직임이 국내 유저들보다는 독특했다.

저쪽이 뭔가 격투게임스러운 동작이었다.

슬링은 한 대도 맞지 않고 거리를 좁혀왔다.

내가 검으로 바꾸려는 동안에 혼노지승려는 원거리 공격 스킬들을 사용했다.

헬조선순례자는 무작정 날 맞추려는 바보 같은 짓을 했다. 스킬에 따라 맞춰야만 진가가 발휘하는 것이 있다면, 상대를 견제하는 것이 더 가치가 있는 것이 있다.

혼노지승려는 후자에 맞게 스킬을 썼다.

내가 슬링을 든 채로 한 걸음 더 움직이게 만드는 사이에 자신의 카드를 아끼며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더 가까이 올 수 있겠어?"

거기서 더 다가온다면 나의 공간이다.

혼노지승려는 더 다가오지 않았다. 뒷걸음질을 치기에 내가 다가가자 놈은 걸음을 멈추고 공격을 시작했다.

근거리에서 피하기가 무척이나 까다로운 범위스킬인 깨달음의 파도의 시전 모션이었다. 360도에 공격을 가하는데다가 내가 힘껏 검을 뽑아도 닿지 않기 때문이다.

[등가교환의 방패를 사용합니다.]

그러면 공격을 쉬면 될 뿐이었다.

퍼어어엉!

빛의 파도가 내 몸을 후려쳤다.

"이겼다!"

내 체력이 감소하자마자 혼노지승려는 쾌재를 불렀다. 방어력이라고는 1도 없는 상대였으니 당연히 죽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미안하게도 내 체력에 조금의 손상만이 있을 뿐이었다.

"응. 아냐."

그걸 보며 절로 웃음이 나왔다.

등가교환의 방패를 모르는 유저가 많다는 것이 한몫했다.

"거짓말!"

"거짓말 아니야."

내가 얼굴을 들이밀자 혼노지승려는 백스텝과 함께 이동기로 뒤로 물러났다.

헬조선순례자 따위와는 감히 비교도 되지 않는 스킬 운용이었다.

"끝."

등가교환의 방패가 끝남과 동시에 혼노지의승려에게 다가가 검을 휘둘렀다.

"아니. 피했…!"

혼노지승려는 아슬아슬하게 내 검을 피했다. 곧바로 반격을 가하려던 그의 가슴팍에는 길게 검상이 남았다.

스킬, 십보섬참.

오크펠슨에서 배운 이 스킬은 상대를 속이기에 너무나 좋았다.

촤하아악!

"커허억!"

반박자 느리게 혼노지승려가 무릎을 꿇었다. 보기와는 다르게 체력과 방어력이 높았는지 아직 숨이 붙어있었다.

[결사항전의 영역을 사용합니다.]

[스피어마스터의 소울을 사용합니다.]

"이제 못 도망간다."

등가교환의 방패와 십보섬참에 당하는 걸 보고 느꼈다.

오니기리가 도움을 요청한 유저 중에 혼노지승려는 없다. 그가 졌다는 말에 무작정 투기장에 왔던 것이 분명했다.

만약 오니기리에게 주의를 받았다면, 지금이라도 이동기로 물러났을 것이다.

하지만 혼노지승려는 반격을 준비했다.

내 방어스킬이 빠진 것을 확인했으니 한 번이라도 공격하면 이긴다고 확신을 해서다.

현재 내 발밑에 깔린 스킬이 무엇인지 확인조차 하지 않은 행동이다.

게임센스는 있는데 그 이상은 없다. 좋은 아이템에 좋은 플레이를 가지고 있지만, PvP에 어울리냐면 그건 아니었다.

"너 재미없네."

오니기리의 칼날밟기처럼 날 놀라게 하는 특별한 플레이를 기대할 수 없었다.

상대의 뻔한 공격에 상식을 뛰어넘는 공격력으로 압박했다.

[혼노지승려 사망.]

결사항전의 영역의 유효시간을 넉넉하게 놔둔 채로 혼노지승려는 무너졌다.

[혼노지승려님에게 승리하였습니다.]

이겨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반면에 혼노지승려는 참담한 기색이었다. 설마 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내가 왜 진 거지?"

"다음에는 좀 강한 애들로 불러봐."

국적은 달라도 게이머는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 강한 상대가 나타나면 한 번쯤은 겨뤄보고 싶다는 거다.

이번에는 혼노지승려지만, 다음에는 누가 될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정작 판을 깐 내가 기회를 놓칠 수도 있었다.

"두 개째."

투기장을 나와 결과를 보고하고 인벤토리에 두 개가 된 이세계의 파편석을 어루만졌다.

"너 설마 다녀온 거냐?"

"이겼습니다. 혼노지승려라고 하는 순례자더라고요."

"나도 일본 애들이랑 PvP하고 싶었는데."

뒤늦게 들어온 흑군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흑군은 흑랑 길드의 책임자다. 또한 랭킹 2등이기도 한 그는 PvP를 마음껏 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혹시 낭패를 겪어서 다른 길드와 사이가 틀어지거나 흑랑의 평판을 나쁘게 할까 봐 였다.

그런데도 일본유저가 상대라면 이야기가 다른 것 같았다.

"좋아. 바뀌었다!"

갑자기 흑군이 나를 제쳐두고 투기장으로 뛰어갔다. 어느새 결투가 갱신되어서 일본유저와 붙는 대결이 생겼나 보다.

결과가 궁금해져 기다리니 흑군은 당당하게 엄지를 추켜올렸다.

"레벨56짜리 정예마법사라 간단했어."

"그렇죠. 레벨61에 무투가면 상대하기 힘들죠."

해당 일본 유저가 누구인지 몰라도 안타까울 뿐이다. 그 레벨이면 한국에서도 충분히 랭커이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걸려도 한국 랭킹2등인 흑군과 만났는가 모르겠다.

"이러면 독고에게도 말해야겠다. 개도 하고 싶어 하던데."

"이미 끝났잖아요."

"길드장한테 예약 걸어서 괜찮을 걸."

"그게 무슨……."

흑군의 말이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투기장의 대결은 한정되어 있다. 현재 일본유저와 PvP가 가능한 동급 투사와 1VS1은 한 명이 하면 사라지는 구조였다.

"우린 예약해 주던데. 다른 곳에서 온 애들이랑 붙을 수 있다고 말이야."

"……."

흑군이 대수롭지 않게 한 말이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설마 저 이벤트가 예약이 되는 줄은 몰랐다.

"언제부터요?"

"B급이 되고나서부터."

"그럼 저는 당연히 모르죠."

"그래서 알려 주잖아."

흑군이 장난기 가득한 웃음으로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이제 보니 방금 전에 급하게 온 것도 퀘스트에 알림이 떠서 그렇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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