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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은 옷을 입지 않아-89화 (89/201)

제089화 고인물은공략대다.

"아이템 설치한 장소 핑 찍어 줘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독고무적과 흑군이 핑을 찍기 시작했다. 먼저 곰덫으로 유인해 어떤 판정을 받을 것인지 실험할 예정이었다.

어째서인지 뒤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이 사라졌다.

"놈이 다시 들어갔다."

"다음 공격 대비해!"

두 사람의 말에 고개를 돌리니 샌드 웜은 그 거구를 다시 지하로 밀어 넣고 있었다.

1페이즈에서 보인 패턴의 반복일까. 아니면 새로운 패턴일까.

스태미나를 채우며 빠른걸음으로 주변을 배회했다.

구구구구구!

샌드 웜의 움직임은 이상해졌다. 진동은 같은 자리에서 강해졌다가 작아지기만을 할 뿐이었다. 그럴 때마다 놈이 들어간 구멍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었다.

누가 먼저 말할 것도 없이 전원 물러났다.

모래지옥 마냥 샌드 웜이 모습을 감춘 부분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방금 전가지 설치한 함정 일부도 빨려갔다. 가만히 있었다면 낭패를 볼 뻔했다.

콰아아아앙!

의외의 이득이라면 아래 빨려나간 함정이 발동했다는 것이다.

함정 중에 기름통과 폭탄이 있었으니 효과가 컸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쿠우웅!

샌드 웜이 빨아 당겼던 흙과 모래를 모두 토하며 바깥에 몸을 축 내놓았다.

이 너무나 먹음직스러운 순간을 마냥 방관할 수 없었다.

흑군이 먼저 달라붙어 공격을 시작했고 그 뒤를 독고무적과 내가 이었다.

[키히이이익!]

체력이 60%가 남은 샌드 웜이 다시 바닥으로 숨었다.

우리는 세 방향으로 흩어졌고 역시나 샌드 웜은 가장 딜량이 높은 나를 쫓아왔다.

"놈의 몸통에 움직임이 멈췄다."

"옆으로 틀어!"

뱀처럼 기어오는 패턴에 대해서는 이미 독고무적과 흑군이 파악을 끝낸 것 같다.

그들의 말에 주저없이 따랐다.

콰드드드득!

날 스쳐가는 샌드 웜이 대지를 집어삼키며 지나갔다.

"함정 새로 설치하고 핑 찍어주세요!"

모래지옥처럼 지면을 빨아당기는 패턴에 함정이 효과적임을 이미 다 알았다.

독고무적과 흑군은 덫 종류처럼 날붙이로 위협을 주는 함정류는 죄다 제거하고 폭약류와 기름통 같은 2차 피해를 주는 것들만 설치했다.

그사이에 두 번의 공격을 더 피했다.

이때는 동선을 함정들 사이로 정했기에 샌드 웜이 모래지옥처럼 우리를 끌어들이려다가 함정들이 모조리 발동해 버렸다.

콰과과과광!

설치한 함정의 3분의 2가 샌드 웜에게로 빨려갔다.

축제 때 터져나가는 폭죽을 보던 것처럼 장렬한 소리가 지면에서부터 들렸다.

쿠우우웅!

샌드 웜은 아까보다 더 크게 쓰러졌다. 벌려진 입에서 쏟아지는 잔해들은 폭발한 흔적이 역력히 남아 있었다.

이번으로 2페이즈를 끝낸다.

다 같은 생각이었는지 아껴두었던 공격스킬들을 퍼부었다.

[키히이이이익!]

한창 공격을 진행하던 중에 샌드 웜이 비명을 질렀다. 상처투성이가 된 놈의 몸에서 녹색체역이 흘러나왔고 그러자 놈의 피부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나왔다.

샌드 웜 기생충 Lv62.

날개가 달린 실지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큰 벌레였다.

"3페이즈가 저놈이네."

전작에서부터 샌드 웜이 귀찮았던 이유가 바로 기생충이다. 저걸 없애는 사이에 샌드 웜이 회복을 해서 빨리 없애지 못한다면 다시 2페이즈로 돌아가야만 할 수 있다.

"독고야. 좀 모아 주라."

"당연하지."

먼저 나선 것은 흑군과 독고무적이었다.

독고무적은 먼저 용맹한 돌격으로 기생충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 다음 신성한 방패로 방어력을 높이며 모든 공격들을 받아냈다.

흑군은 한쪽에 몰린 적들에게 무투가의 스킬은 풍령유성권을 사용했다. 유성처럼 빛나는 수백 개의 주먹질이 바람을 타고 샌드 웜 기생충들에게 작렬했다.

샌드 웜 기생충들의 어그로가 그쪽에 쏠리자 독고무적 또한 신성기사가 되어 배운 신성기사의 칼구름을 펼쳤다.

두 사람의 스킬에 체력이 대폭 닳은 기생충의 마무리는 내 몫이었다.

쿵! 쿵! 쿵!

[키이이익! 키이이익!]

샌드 웜이 자신의 몸뚱이를 대지를 후려쳤다. 체력은 고작 30%밖에 남지 않았다.

이때까지와 달리 땅에 숨지도 않았다.

전작에서 봤던 패턴대로 자신의 몸통을 이용해 찍거나 휘두르거나 혹은 입안으로 집어삼키는 패턴뿐이었다.

나에게 주로 어그로가 끌렸지만 독고무적과 흑군이 옆에서 피해야할 타이밍을 알려 줬기에 아직 죽지 않고 있었다.

삼키는 패턴만 제외하면 독고무적이나 흑군도 죽을 염려가 없어 보였다.

"여기서 끝내자."

"죽어도 금방 리트 가능하잖아."

두 사람은 끝이 다가옴을 느꼈다.

[결사항전의 영역을 사용합니다.]

나 또한 별다른 꺼림칙함이 느껴지지가 않아 이때까지 참아왔던 스킬을 꺼냈다.

"얼마나 대단한지 써 볼까."

"최초가 눈앞이라고!"

독고무적과 흑군은 결사항전의 영역에 들어왔다.

샌드 웜이라는 거대 몬스터를 상대로 5M의 공간에서 셋이서 옹기종기 모였다. 내려찍기는 몰라도 후려친다면 셋이서 다 같이 맞기에 딱 좋다.

하지만 그걸 걱정할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콰앙! 콰앙!

샌드 웜의 몸뚱이가 머리 위에 떨어져도 나를 포함한 누구도 물러나지 않았다.

"우리가 샌드 웜이 된 것 같군."

"체력이 닳지 않잖아!"

나야 익숙한 경험이지만 다른 둘은 아니었다.

보스급이 때리는데 체력을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싸울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고작 30초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겠지만, 오로지 30초 동안 공격에만 전념할 수 있다는 의미는 고렙들에게는 엄청난 것이었다.

[키에에엑!]

샌드 웜은 비명을 지르며 무너졌다. 익숙함에 속아 그 가치를 몰랐던 것은 나였을까. 혼자가 아니라 저 둘과 하니 솜사탕을 물에 녹는 것처럼 체력이 닳아버렸다.

1페이즈부터 패턴을 파악하기 위해 죽은 것이 허무하다 느껴질 정도다.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최초인가……."

"좋네. 이런 느낌."

눈앞에 뜬 알림에 가슴이 먹먹해진 것은 독고무적이나 흑군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이번 샌드 웜에 대한 것을 피드백하면서도 우리는 부지런하게 움직였다.

샌드 웜을 대상으로 생활스킬이 사용한지부터 혹시 숨겨진 이스터에고가 있는지 전작의 것들을 실험해 봤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허탕이었다.

"그래도 일찍 깼네요."

"동감한다. 샌드 웜이었으니까. 우리도 몇 번은 죽을 줄 알았었다."

"전작보다 약했고 우린 강했지."

전작을 겪어본 이들이라 샌드 웜에 대해서는 다들 동감하는 바였다.

최상위 랭커 둘에 그걸 상회하는 딜러인 내가 있었음에도 1시간가량 걸렸었다.

다른 이들이 샌드 웜을 해결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샌드 웜 공략 작성해도 되죠?"

물론 맨땅에 헤딩을 하지 않게 정성껏 공략을 적어 줄 사람이 있다면 다르다. 나 혼자 진행한 것이 아니니 독고무적과 흑군의 허락도 필요하다.

"물론이다. 어차피 우리가 최초라는 것은 잘 알려질 테니까."

"최초라는 가치에 비하면 그쯤이야 뭐."

둘은 내게 작성한 공략을 한 번씩 읽어 봤기에 터치를 할 생각을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내 공략은 굉장히 건조하고 사설은 적은 편이다. 그래서 쓸데없는 정보가 섞일 수는 없었다.

"그러면 전 공략 쓰고 오겠습니다."

오크펠슨의 정보는 세계에서 내가 제일 빠르다고 자부할 수 있다. 해외고객들의 구매도 보장되어 있으니 한시라도 빨리 히든레코드에 제출해야만 했다.

"거기다 댓글 놀이해도 되냐?"

"네가 쓴 공략도 구독 좋아요 해 주면 되지?"

두 사람의 농에 피식 웃으며 로그아웃을 했다.

*       *       *

샌드 웜 공략을 작성한 후, 곧바로 히든레코드에 보냈다. 검토중에 있던 문서는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등록으로 처리가 되었다.

전에는 짧아도 1시간은 걸리던 것이 오크펠슨의 정보면 극단적으로 짧아졌다.

나라는 사람의 신뢰도가 높아진 것이니 기분은 괜찮았다.

실적이 쌓이면 이렇게 알아서 모신다.

[쪽지가 도착했습니다.]

히든레코드에서 쪽지가 오는 것은 드문 일이다.

[고객님께.]

히든레코드의 CEO인 진이라고 합니다. 업계의 건강한 시장형성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본사와 함께 일하여 주신 것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히든레코드 홈페이지에서 곡냄과 같은 VIP를 위해 VIP전담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니 혹여 원하는 아이템 혹은 정보가 있으시다면 해당 링크로 연락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장문의 쪽지는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나에게 특별대우를 하는 것도 오히려 한 박자 늦은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에 대한 것은 접어두고 쏠쏠한 정보가 있나 살폈다.

각 도시에 진출한 자들이 늘어났기에 구매할 가치가 있는 정보가 하나 둘씩 생겼다.

물론 오크펠슨 쪽은 내가 올린 것 이외에는 전멸하다 싶은 정도였다.

골드캐시가 있다는 마인시티에 대한 것만 구매해서 보는 정도로 그쳤다.

"이 양반도 돈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아."

마인시티는 흔히 말하는 작업장을 가동시키기 좋은 장소였다. 황금추적자는 그만한 인력과 자본을 쓸 수 있으니 거기서 사업을 벌일 것 같았다.

이번 샌드 웜 사냥 때도 느꼈지만, 믿을 수 있는 파트너가 필요했다.

"물…이 없네."

냉장고를 여니 그 흔한 생수 하나도 없었다.

생수라도 마실까 싶었지만 차마 그건 하고 싶지 않았다. 한창 혈관에 알콜이 흐를 때 목이 말라서 수돗물을 먹었다가 체해서 혼쭐이 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관절에 비명 좀 질러볼까."

택배라도 시키면 되지만, 사실 이런 생필품 구실이 아니면 나는 바깥으로 나가지 않는다.

떡진 머리는 모자르 누르고 듬성듬성 난 수염은 마스크로 가렸다. 무릎이 툭 튀어나온 십 년 된 츄리닝을 걸치고 바깥으로 나섰다.

계단을 내려가는 것이 더 힘들다던데 마스크라도 벗을 걸 그랬다.

군대에서 방독면을 쓰고 훈련을 받던 것이 절로 생각날 정도로 숨이 가빠왔다.

마른 오징어도 짜면 물이 나온다더니 부족한 식사로 말라가는 몸뚱이에서 땀도 흐르기 시작했다.

마트에서 물건을 사 오고 과연 살아서 돌아올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마트는 무리."

대형마트는 버스를 타고 두 정거장은 가야하고 구멍가게는 언덕길을 올라가야만 한다. 체력적인 합의점을 찾아 편의점을 찾았다.

내가 쓰는 통신사가 할인해 주는 곳은 아니라 비싸지만, 벌써부터 무릎이 아파서 안 되겠다.

생수 큰 걸로 두 통에 2+1하는 캔커피와 컵라면에 삼각김밥을 샀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특유의 무표정에 온기가 없는 어투로 물었다.

"봉투 필요하세요?"

"예."

"20원 입니다."

"예?"

언제부터 편의점에서 봉투를 돈 주고 팔았었지? 순간 뒤통수가 얼얼했다. 눈 뜨고 코를 베이는 느낌이었다.

"봉투 필요 없으세요?"

"…주세요."

계산대 바코드에 찍힌 비닐봉투 가격을 보니 세상이 가면 갈수록 각박해져 감을 느꼈다.

하루라도 빨리 더 돈을 벌지 않으면 여름에 에어컨을 틀 전기세조차 아깝다고 느낄지도 모를 테니까.

"아. 잠깐만요. 여기 파스도 하나 추가요."

비닐봉투에 꽉 찬 물건들을 보니 분명 근육통이 날 괴롭히리라는 확신이 왔다.

"씨벌. 씨벌. 씨버어어얼."

옥탑방에 가기까지 계단에 발을 얹는 것이 너무나 힘들게 여겨졌다. 물건을 들은 팔은 끊어질 것 같아서 계속 번갈아 들었는데 그때마다 다리가 휘청거릴 정도였다.

처음에 여기 올 때는 운동도 할 겸 정했는데, 아무래도 틀린 선택이었다.

난 그른 인간이다.

바른 생활도 못하는데 운동 따위를 할 리가 없었다.

세상이 하도 난리라지만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마스크를 밑으로 내렸다. 얼굴에 가득 차있던 열기가 빠지며 조금은 살 것 같았다.

1층을 올라갈 때마다 숨을 껄떡거리며 쉬는 고난 끝에 옥탑방에 다다른 나는 샤워고 뭐고 일단 엎드려서 숨을 골랐다.

"난 미래를 보는 것이 아닐까."

양팔과 허리, 무릎이 비명을 질렀다.

땀으로 젖은 몸을 간단하게나마 씻고 곧바로 파스를 붙였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스트레칭이라도 신경을 써야만 할 것 같다.

편의점 국룰인 컵라면에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습관적으로 엘리멘탈 소울2 커뮤니티들을 둘러 다녔다. 그러다 눈에 띄는 게시글이 보였다.

[3ch. 썩이나감 vs 오니기리 PvP. 일본 반응.]

난 유출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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