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88화 고인물은샌드웜봤다.
샌드 웜 사냥을 대비해서 좋았던 점은 두 거대길드의 주인들이 함께한다는 점이다.
내가 필요하다는 소모품들이 있다고 말하면 우편으로 물건을 받아서 곧바로 건네줬다. 그래서 인벤토리에는 샌드 웜을 위한 선물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더 필요한 것은 있나?"
"말만 해. 구해줄게."
두 사람은 소시민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달콤한 멘트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댔다. 작정하고 더 챙기고 싶지만 고작 소모품에 집착해서 내 신용을 떨어트리고 싶지는 않았다.
"위치는 어떻게 되죠?"
"동쪽에 사막지대가 있다. 지도로는 오크펠슨 세 개 정도의 크기인데 거기서 출몰한다."
"다른 몬스터도 있겠지만, 퀘스트면 던전화가 될 테니까 문제도 없고."
독고무적과 흑군은 전작의 지식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직접 NPC들에게 발품을 팔았다. 기본적인 대화나 선물은 물론 그들이 파는 보잘 것 없는 정보도 모두 긁어 모은 것이다. 그야말로 자본주의 만만세다.
"바로 가시죠."
파티를 맺고 그들을 따라 동부사막지대로 갔다. 흔히 생각하는 모래사막이 아니라 암석과 자갈이 잔뜩 깔린 곳이었다.
모래사막이 아니라 이동에는 제약이 없겠지만, 반대로 샌드 웜이 튀어오를 때마다 비처럼 쏟아지는 자갈을 조심해야 하는 것이 문제였다.
[샌드 웜의 영역에 입장하시겠습니까? Y/N]
눈앞에 뜬 알림을 파티원 전체가 Y를 눌렀다.
[던전의 권장조건에 미달됩니다. 그럼에도 입장하시겠습니까? Y/N.]
이번에도 모두가 Y를 누르자 로딩 화면으로 들어갔다.
[파티가 좋은 점이 뭔지 아십니까? 당신이 못해도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몰 수 있어서입니다. 팀플레이의 미덕이죠. 소울리스 CEO 대니얼 올림.]
매번 느끼는 주옥같은 문구를 대충 읽어넘기며 로딩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후우우웅!
로딩이 끝남과 동시에 건조한 바람이 모래를 감싸고 스쳐지나갔다.
"계획대로 갑니다."
독고무적과 흑군이라는 거물들이 나를 찾은 이유가 단순한 폭딜만은 아니다.
내가 얼마든지 죽어도 페널티가 없기 때문이다. 그걸 알기에 낙오된 화전민의 마을에서 통제를 당해도 마냥 지켜볼 수 있었던 거다.
두두두두두두.
앞으로 나아갈수록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아!
[키이이이이익!]
약 300m 앞의 대지를 뚫고 샌드 웜이 나타나 비명을 질렀다. 그 뒤에 다시 땅에 들어가서는 내 쪽으로 오기 시작했다.
드드드드드.
얕았던 진동은 마치 지진처럼 두 다리를 흔들더니 뚝 멈추었다.
갑자기 날 중심으로 5m의 공격범위가 나타났다.
[등가교환의 방패를 사용합니다.]
이번에는 피할 생각은 없었다.
샌드 웜이 가장 자주하는 공격에 버틸 수 있는가가 중요하니까.
콰아아아아아!
[키이이이이익!]
내가 선 땅이 갈라지고 보이는 것은 발아래 깔려 있던 자갈보다 많은 톱날 같은 이빨이 수없이 박힌 어둠이었다.
몸을 비틀며 나선형으로 일어났기에 내 몸뚱이는 그 이빨이 무참하게 갈려 나갔다.
[YOU DIED.]
죽은 뒤에 곧바로 부활을 선택했다.
파티 전원이 사망하지 않는다면, 던전 초기화가 되지 않았다.
불사자임에도 같이 파티사냥을 할 이들을 바랐던 이유다.
다만, 전처럼 칼같이 부활이 안 된다.
게임 진행에 따라 부활시간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예 초반이기에 10초 만에 부활이 가능했다.
부활을 하자마자 내가 죽는 장면을 두 사람에게 공유했다.
"보다시피 놈이 튀어나올 때는 데미지를 안 입는 판정입니다. 삼켜진 다음에 몸속의 이빨에 몸이 닿을 때마다 피가 달죠."
"그 스킬까지 쓰고 그랬다면, 우리도 결국 확정 죽음이군. 버틸 수 없겠어."
"삼켜진 후에 못 움직인 것도 크네. 그냥 죽어야 하잖아."
영상을 검토하면서 삼켜지면 무조건 죽는다는 걸 확인했다.
다음 시험은 놈이 튀어나올 때 얼마나 안정적으로 도망을 칠 수 있냐는 거였다.
어느 정도 속도여야만 피할 수 있냐는 거다.
콰아아아아아!
[키이이이이익!]
다시 샌드 웜이 대지를 부수고 나타났다.
속도 실험 첫 번째는 흔히 말하는 일반적인 걸음이었고 두 말할 것도 없이 죽었다.
보통 걸음부터 빠른 걸음도 마찬가지였다.
이 다음에는 가볍게 달리는 정도면 어떨까 싶었다.
어느 타이밍부터 움직여야 하는지 알기에 순조롭게 공격범위에서 벗어났다.
투두두두두두!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샌드 웜에 의해 부서진 지형이 떨어져 내렸다.
[YOU DIED.]
자갈과 암석에 깔려 나는 죽고 말았다.
이건 독고무적과 흑군이라면 제대로 된 방어구가 있으니 죽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왔다.
나와 달리 장비무게가 있는 이들은 스태미나가 빨리 떨어져서 최악의 경우 가볍게 달리며 피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패턴 갑니다."
나만 혼자 죽는 것이지만,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독고무적과 흑군은 내 작업스타일에 맞춰서 외부에서 플레이를 촬영해 실시간으로 분석을 하고 있었으니까.
땅을 뚫고 튀어나오는 일반 공격은 머리에서 떨어지는 자갈비를 제외하면 3초 뒤에 땅으로 다시 들어간다.
퍼억! 퍼억!
근접거리에서는 위험하기에 오랜만에 슬링을 꺼내어 힘껏 던졌다.
쇠구슬을 사용하면 샌드 웜에게 데미지가 잘 나왔다. 그 이외에도 빙결의 구슬의 효과가 뛰어난 편이었다. 나머지 화염의 구슬이나 전기의 구슬은 기대조차 할 수 없었다.
쿠구구구구!
가까이서 봐야 알 정도로 조금의 체력이 단 샌드 웜은 나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 나타났다.
전작 기준이면 저 몸뚱이를 휘둘러 날 공격할 것이다.
머리 부분이 움직이는 모션을 보자마자 안전하게 뒤로 구르기를 사용했다.
"틀렸다. 썩!"
"옆으로 튀어!"
상체를 들기도 전에 독고무적과 흑군의 말이 귀를 어지럽혔다.
무슨 호들갑인가 싶었지만 그게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샌드 웜은 몸뚱이를 휘두르지 않았다. 오히려 내 쪽으로 그 흉악한 주둥아리를 벌리고는 무언가를 쏟아냈다.
쿠구구구궁!
샌드 웜이 토해낸 것은 자신이 집어삼켰던 흙과 모래였다. 직선으로 길게 뻗는 패턴의 공격은 처음보는 것이라 당황했지라 피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방금 전에 모션 설명 좀 해 줘요."
"지면에 드러난 부위가 순차적으로 간헐적으로 확장이 된다."
"물 틀고 호스를 꽉 잡을 때 알지? 그렇게 되더라고!"
두 사람의 피드백에 그때의 상황이 머릿속에서 그림이 그려졌다.
샌드 웜은 원거리 공격 후에 곧바로 지하로 들어가지 않았다. 축 쳐진 상태로 10초를 대기한 뒤에야 들어갔다.
지금 상황에서 저때가 유일하게 데미지를 넣을 수 있는 순간이었다.
[YOU DIED.]
다음에도 똑같은 패턴이 반복되자 과감하게 죽었다.
"지금은 딱 저기까지 나왔는데 해 보시겠어요?"
"죽는 거야 각오했다."
"2페이즈로 가면 우리는 빠질게."
두 사람과 적당한 선에서의 행동지침을 정한 뒤에 움직였다.
"파티버프 쓴다. 알림 꺼둬."
신성기사가 된 독고무적이 온갖 버프를 걸기 시작했다.
최대체력부터 최대스태미나 상승을 기본으로 물리방어력과 마법저항력 등 평소에는 꿈도 못 꾸는 것들이었다.
"난 이 정도만 할까."
뒤이어 흑군도 버프 스킬을 사용했다. 그로 인해 명중률과 회피율이 올라갔다.
"이제 네 차례다."
"꺼내 봐."
두 사람은 랜덤박스를 보는 눈으로 나를 봤다. 보통 가챠에서 그런 걸 기대했다가는 꽝만 나오는 것이 국룰이다.
"전 따로 버프 없어요."
"너무 숨기는군."
"우리가 빙다리 핫바지 같아?"
독구무적과 흑군은 전혀 믿지 않았다.
"하지만 이게 파티에 같이 적용되죠."
어차피 공개될 것이니 결사항전의 영역의 효과를 그들에게 띄워 주었다.
"이게 그때의 그 스킬인가? 어마어마하군."
"공격력 및 공속 상승에 피흡 10%라니. 단일스킬에 무슨……."
직접 스킬의 효과를 보게 된 두 사람이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 것이다.
"30초의 사신이 괜한 말이 아니군."
"이러니 PK 1등이지."
낙오된 화전민의 마을에서의 활약에 대한 의구심도 풀렸을 것이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이 스킬을 쓰자고 말했다.
그 뒤에는 서로 흩어져서 죽으면서 2페이즈 패턴을 빨리 보자는 식이었다.
"그러면 먼저 갑니다."
전방으로 달려가자 다시 샌드 웜이 나를 표적으로 다가왔다.
콰아아아아아!
[키이이이이익!]
놈은 세 번이나 바닥을 뚫고 일어나 나를 노렸다.
어그로가 이쪽으로 쏠려 있는 상황에서 독고무적과 흑군이 조금씩 거리를 좁혔다.
그 뒤에 샌드 웜은 나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아까 전과 놈의 토사물의 방향이 바뀌었다. 거리가 더 가까운 흑군을 향해서였다.
처음에 어그로가 끌린 것은 나지만 결국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않았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알아서 피해요!"
"죽지만 마라."
이미 예상한 일이니 나나 독고무적은 놀라지 않았다.
흑군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독고무적보다 빠르고 나보다는 방어력이 높았으니 이미 패턴이 파악된 상황에서 어그로를 끌기에는 좋았다.
"내 걱정 말고 알아서 달라붙어."
흑군이 이동기를 써서 토사물을 피하는 동안에 나와 독고무적은 샌드 웜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스피어마스터의 소울을 사용합니다.]
"갑니다."
공격을 시작한 것은 샌드 웜이 토사물 공격이 끝나고 축 쳐진 것을 다 확인한 뒤였다.
다음 페이즈를 보기 위함이었으니 스태미나를 모두 소진할 각오로 맹공을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놀란 것은 독고무적의 딜이 예상보다도 강한 점이다.
"딜 왜 그렇게 세요?"
"네가 할 말은 아니다. 괴물 같으니."
물론 놀란 것은 상대도 마찬가지다.
선물받은 미치광이 광대의 검이 전에 쓰던 것보다 공격력도 높고 옵션도 좋아서 예상했던 것보다 체력을 많이 빼놓기는 했다.
쿠그그그그.
그러나 1페이즈를 졸업하기에는 모자랐다.
샌드 웜이 다시 지하로 몸을 숨겼고 독고무적과 떨어져서 움직였다.
쿠구구구구!
대지가 들썩이는 진동은 이번에도 나에게 향했다.
아까 전과 달리 높은 데미지를 기록했으니 첫 번째 패턴과 두 번째 토사물 패턴까지 온전히 나만을 노렸다.
"무리하지 말고 하세요."
과연 샌드 웜은 손실된 체력을 일부 회복한 상태였다. 그래도 전작보다는 체력회복속도가 느렸다.
샌드 웜은 다시 몸을 감췄다. 한 번 공격을 쉬었음에도 놈은 나에게 자꾸 공격을 시도했다.
[등가교환의 방패를 사용합니다.]
[헤이스트를 사용합니다.]
"스킬 한 번 빼고 갈게요."
샌드 웜이 쏟아내는 토사물을 피하기만 해서는 내가 공격할 타이밍이 없다. 이번 공격을 뚫고 나가서 독고무적과 흑군에게 가담해야만 한다.
투두두두두!
이전과 같은 횡이동이 아니라 사선으로 전력으로 뛰었다. 그런데도 토사물의 일부가 내 몸을 두들겼다.
그때마다 체력이 깎였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피해는 적었다.
"죽지는 않게 해주마."
독고무적이 내가 스킬시전거리에 들어오자 곧바로 체력을 채워주었다.
토사물 패턴 뒤에 축 쳐진 샌드 웜이 셋이서 전력을 다해 공격했다. 나 같은 경우는 스태미나가 부족해서 중간에 물약을 빨아야만 했을 뿐이다.
[키히이이이익!]
샌드 웜이 요동을 치며 다시 땅으로 들어갔다.
"어그로는 저일 겁니다. 두 사람은 저한테 떨어져요."
이번에 샌드 웜은 어떤 패턴을 보일까가 중요하다.
전체적인 것은 전작과 비슷하지만 모든 것이 같을 수는 없을 테니까.
우려했던 바는 곧바로 일어났다.
샌드 웜은 이때까지 알던 것과 다른 형태로 다가왔다. 마치 뱀처럼 지면 위를 기어서 접근하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그 속도가 지면 속에 있을 때보다 더 빠르다는 것이었다.
옆으로 구르기를 사용해 방향을 틀었다.
샌드 웜은 내가 있던 곳을 지나가더니 다시 머리를 돌려 내가 덤벼왔다.
무기를 바꾸고 슬링으로 놈의 활짝 열린 입 속으로 공격을 가했다.
놈의 입안에 쇠구슬을 던져도 효과는 없었다. 혹시나 싶어 빙결의 구슬을 던지자 샌드 웜의 체력이 조금 달며 이동속도가 아주 조금 늦춰졌다.
다른 구슬들도 던지자 외부에 쓰던 것과 달리 대부분의 구슬들이 효과가 있었다.
"몸속에 데미지가 더 들어오네요. 속성 아이템이나 마법이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내가 뒷말을 더 하기도 전에 독고무적과 흑군이 인벤토리에서 함정과 폭탄을 꺼내 설치하기 시작했다.